정원이 있었다. 아주 큰 정원이었다. 정원이 얼마나 컸는지 세상의 모든 나무가 다 자라고 있었다. 정원 한가운데로 개울이 굽이굽이 흘렀다. 개울 이편에는 동산이 있었다. 동산에는 온갖 과일나무가 자랐다. 개울 저편에는 늠름한 떡갈나무, 도토리나무, 상수리나무, 밤나무, 호두나무, 대추나무, 잣나무 들이 빽빽하여 숲을 이루었다. 숲속 빈터에 어린 전나무가 혼자 서 있었다.과일나무 들은 모두 흰색, 연분홍색, 선홍색의 꽃을 피워 온통 꽃구름 같았고 가지에는 과일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사시사철 꽃이 피고 사시사철 열매가 열렸다. 어
[Landscape Times] 지금이 아침 일곱 시인데 밖은 한밤중이다. 아직 한 시간은 더 있어야 해가 뜰 것이다. 내가 사는 이곳 북유럽은 요즘 아침 8시가 되어야 비로소 해가 뜨고 오후 네 시면 컴컴해진다. 기상청 홈페이지에 들어가 검색해 보니 이 글이 발표되는 12월 8일에는 아침 8시 4분에 해가 뜨고 오후 3시 51분에 해가 져서 낮이 7시간 47분이라고 한다. 하루의 3분의 2를 컴컴한 상태에서 살아야 한다.올겨울에는 특히 날씨가 나빠, 거의 매일 흐리기 때문에 날이 밝았는지 다시 어두워졌는지 분간이 되지 않아 몽롱한
[Landscape Times] 한국에서 태어났으나 초등학교 때 미국에 이민 갔다가 거기서 독일 남편을 만나 지금 베를린에 와서 사는 친구가 있다. 한국말이 무척 서툴지만, 어떻게든 한국말을 하려 애쓰는, 그 노력이 매우 가상한 친구이다. 그러다 가끔 기발한 표현을 만들어 내어 좌중을 웃게 만든다.며칠 전, 함께 어딜 가던 중에 은행나무 가로수 길을 지나게 되었다. 친구가 문득 이렇게 말했다. “은행나무가 멋지긴 한데 가로수로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 어째서 그러냐고 물었더니 “가로수는 엠&hel
[Landscape Times] 오늘이 어제 같고 어제가 오늘 같은 날의 연속이다. 벌써 8개월째 모든 행사와 미팅이 온라인상으로만 이루어지고 있다. 친구들 실물 본지도 오래된 데다가 5월부터 기대했던 고국 방문길도 끊겨 시름에 잠겨 있던 중 베네치아에 사는 온라인 친구가 반가운 이메일을 한 통 보내 왔다. 내가 부탁했던 일을 알아보기 위해 ‘산 프란체스코 델라 비냐 수도원’의 사제와 얘기를 나눴다고 했다. 사제가 한번 만나보고 싶다고 하니 다녀가지 않겠는가. 솔깃했다. 그러나 이런 시기에 베네치아 여행이 가당
[Landscape Times] 검은 아스팔트. 검은색도 아스팔트도 정원과는 무관하다. 여태 그랬었다. 그런데 지난 10월 15일, 평택 동말 근린공원에서 열린 LH 가든쇼에 검은 아스팔트로만 이루어진 정원이 나타났다. 해외 초청작가 정원이었다. 작가는 이미 우리에게 친숙한 독일 토포텍의 라인-카노. 정원의 명칭은 작가의 이름을 따서 라인-카노 정원이라 했고 부제는 , 검디검은 정원이다. 이 검디검은 정원이 녹색 가든쇼 초입을 장식했다. 동방예의지국인지라 손님에 대한 예의로 첫 자리를 내주었는데 이
[Landscape Times] 수년 전, 재미난 소송 사건이 하나 있었다. 어느 노인이 아래층에 이사 온 이웃을 내쫓아 달라고 법원에 호소한 사건이었다. 아래층 남자가 발코니에서 담배를 피우는데 그 연기가 올라와 건강을 해친다는 것이다. 간접흡연으로 인해 암에 걸릴까 무섭다고 했다. 게다가 본인은 종일 발코니에서 거리를 바라보는 것이 취미인데 아래층 남자 때문에 발코니에 나갈 수 없으니 개인의 자유도 제한된다고 했다. 일명 발코니 사건으로 알려졌는데 물론 그 심정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아래층 입주자를 강제로 내쫓을 수 있는
[Landscape Times] 전속력으로 질주하는 토끼를 본 적이 있다. 그 때 그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모른다. 우화 속의 토끼가 아니라 실제의 토끼라면 대개 우리에 갇혀있거나 팔자가 좋아 봐야 공원 잔디밭에서 풀을 뜯는 정도일 것이다.2015년이었던 것 같다. 슈투트가르트의 로젠슈타인 파크를 답사할 때였다. 로젠슈타인 파크는 19세기 초에 조성된 대형 풍경정원이다. 오래된 아름드리나무들이 울창한 수림을 이루고 있고 사이사이에 드넓은 잔디밭이 펼쳐져 도심 공원이지만 자연인 듯 착각하게 만드는 곳이다.함께 간 동료들과 산책로
코로나, 긴 장마, 세 번의 태풍, 그리고 또 코로나 – 한국은 지금 지구촌 어느 나라보다 큰 시련을 겪고 있다. 사실 좀 억울하긴 하다. 그간 거물급 산업국가로 도약했다고는 하나 영토도 작고 인구도 적은 한국이 과연 지구환경파괴에 몇 퍼센트 책임이 있을까. 그리 크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피해는 이리 크게 보고 있으니 되로 주고 말로 받은 셈인가. 하필이면 태풍이 지나가는 길목에 나라를 세운 조상을 탓해야 하나. 그러나 지금은 그런 걸 따지고 있을 때가 아니다. 상황이 얼마나 급한지 그것부터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지난
이름: 마누엘라. 여성. 사십 대 초반. 용모: 다부지고 씩씩함. 직업: 정원사. 근무처: 베를린 녹지국 공원관리과 고용직. 특기 사항: 기록 보유자. 무슨 기록? 베를린 정원사 중 연간 잡초를 가장 많이 뽑아 나른 기록. 손수레로 420개 분량.이름: 잉게와 유르겐. 34년 차 부부. 취미: 공원 산책. 특기 사항: 기록보유. 무슨 기록? 그동안 함께 걸은 산책로 총연장 10,800km. 베를린에서 블라디보스톡까지의 거리에 해당.이름: 프랑크. 사십 대 남성. 직업: 삼림 마스터. 근무처: 베를린 삼림청 수목 관리팀장. 특기 사항
[Landscape Times] 본래 꿀벌을 살리기 위해 시작된 움직임이었다. 그런데 엉뚱하게 그 불똥이 ‘잡석 정원’으로 튀었다. 생태 본좌로 널리 알려진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에서는 지금 자연보호법을 개정하는 중이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앞으로 잡석 정원 조성이 금지될 뿐 아니라 이미 조성된 잡석 정원도 철거해야 한다. 개인의 자유를 이런 식으로 억압할 수는 없다며 항의하는 잡석 정원 소유주들과 볼썽사나운 잡석 정원은 정원에 대한 모독일 뿐 아니라 생물종 다양성의 원칙을 무시한 ‘죽음의 정원&r
[Landscape Times] 어려서 들은 이야기 중에서 유난히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 옛날에 딸이 태어나면 마당에 오동나무 한 그루를 심고 그 딸이 시집갈 때 그것으로 장을 짜 주었다는 얘기다. 그때만 해도 나는 오동나무 실물을 본 적이 없었다. 나중에 대학 시절, 순천 송광사에 찾아갔다가 그 뒷산에서 오동나무를 처음 보았다. 산길 양옆에 두 그루가 서서 수문장 역할을 하고 있었다.그때 우연히 만나 길동무를 해 주셨던 어느 ‘보살님’께서 가르쳐 주어 알았다. 아~ 오동나무가 이렇게 아름다운 나무였구나. 그
[Landscape Times] 그들이란 야생 동물과 야생 동물의 서식지를 말한다. 환경보호는 환경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실은 우리 인간의 건강을 위해 너무나 시급한 일이다. 서식지를 잃고 쫓겨난 야생 동물들이 갈 곳이 없어 민가를 기웃거리다가 가축한테 바이러스를 옮기고 그 바이러스가 가축의 몸에서 하이브리드로 변하여 인체로 옮아가는 연쇄 작용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저 잊고 싶어 잊고 살 따름이다.고국에서 코로나19 치료제 공급이 시작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온다. 그러나 “코로나 치료제 나왔대~ 야 다행이다
[Landscape Times] “숲에서는 인간의 두 가지 무기 – 언어와 카메라 - 가 한계에 부딪힌다. 숲은 카메라 렌즈에도 스케치북에도 화폭에도 담기려 하지 않는다. 숲은 붙잡지 못한다. 숲은 언어로도 묘사할 수 없다. 묘사한다고 하더라도 구구절절 장황해지거나 구태의연함에 머물고 말 것이다.” - 존 파울즈(John Fowles ‘The Tree’)그렇게 말해 놓고도 존 파울즈는 결국 나무에 대해 에세이 한 권을 썼다. 김훈 작가도 장편 소설을 하나 써야 숲을 묘사할 수 있
[Landscape Times] 지난 5월 31일 환경 예술가 크리스토 자바체프가 향년 84세로 세상을 떠났다. 포장 예술가 혹은 대지 예술가로도 알려졌으나 본인 스스로 환경 예술가(Evironmental works of art)라 했으니 그리 칭하는 것이 옳아 보인다. 그는 부러울 만큼 일관되고 꽉 찬 삶을 살다 갔다.1995년 베를린에서 그의 작품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가 베를린 연방 의사당을 포장했기 때문이다. 6월 말에 작업이 완료되어 공개되었고 7월 7일에 다시 걷어냈는데 매일 저녁 보러 갔었다. 낮에도 간 적이 있다.
[Landscape Times] 독일어를 한국어로 번역하다 보면 글의 분량이 부쩍 줄어든다. 한자어를 많이 쓰는 우리글의 속성상 어쩔 수 없다. 아무리 긴 독일어 단어라도 대개는 두세 음절로 압축되기 때문이다. 아주 드물기는 하지만 걸맞은 사자성어라도 얻어걸리면 문장 전체를 단 네 글자로 줄일 수 있으므로 글은 더욱 짧아진다. 그런데 거꾸로 간단한 독일 문장을 아주 길게 설명해야 하는 때도 있다. 번역이 되지 않기 때문에 에둘러 말하거나 설명하듯 번역해야 한다. 양국의 제도 차이, 의식 차이에 기인하는 문장이 그러하다.‘
[Landscape Times] 나는 삼림이라는 말이 좋다. 독일어로는 발트Wald 혹은 포레스트Forest라고 한다. 좀 문학적으로 표현하고 싶을 때는 이를 숲이라고 하고 환경생태 분야의 글을 번역할 때는 주로 삼림이라고 한다. 집밥처럼 어감이 좋을 뿐 아니라 나무 목木자 다섯 개가 모여 있으니 그 뜻이 그린 듯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무 다섯 그루를 집단으로 심으면 이미 삼림인가? 혹은, 나무 다섯 그루부터 산림청 담당인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농담이 아니라 어디까지가 삼림이고 어디서부터 삼림이 아닌지 문득 궁금해졌다.
지금쯤이면 행장을 꾸려서 정원박람회 구경하러 길을 떠날 때다. 그런데 갈 곳이 없다. 올해는 BUGA가 없고 주 정원박람회 LAGA/LGS만 열릴 예정이었다. 남쪽의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의 위벨링겐, 바이에른 주의 잉골슈타트 그리고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의 캄프-린트포르트라는 세 도시에서 준비했다. 물론 모두 연기되었다.그런데 연방주의 성격에 따라 연기하는 양상이 각각 다르다. 화끈한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는 5월 5일로 연기했고, 느긋한 바이에른 주는 5월 29일에 오픈하겠다고 했다가 아주 내년으로 연기한다는 소식이 방금 들어
[Landscape Times] 로마의 공기가 청정해지고 베니스의 운하에 다시 맑은 물이 흐른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이탈리아에서는 지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로 인해 지옥을 방불케 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으니 파란 하늘과 맑은 물이 시니컬하지 않을 수 없다. 겨우 내 우중충하던 베를린 하늘도 봉쇄가 시작된 이후 미치도록 파랗다.독일의 코로나19 감염 확진자 수가 한국의 확진자 수를 추월한 지 며칠 되었다. 지난 토요일 저녁 메르켈 총리는 기자회견을 통해 앞으로 “2인 이상의 만남을 금한다.”라는 내용의
[Landscape Times] 지난주부터 꽃자두, 꽃복숭아가 피기 시작했다. 4주 정도 빠르게 왔다. 내게는 기적으로 느껴지는 그 분홍꽃들을 보고 있자니 여러 생각이 오가는 데, 문득 스웨덴 예테보리의 핑크 풀장이 떠올랐다. 스웨덴 사람들은 세계 어느 나라 사람들보다 체격이 크다고 알려졌다. 그 커다란 사람들이 핑크빛 풀장에서 수영하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나는 웃음을 참지 못한다. 무슨 얘기인가 하면;내년 2021년에 스웨덴의 도시 예테보리가 400주년을 맞게 되는데 이를 기해 도심에 있는 구 산업 항을 재생하여 신도시를 만들고 그
[Landscape Times] 오늘은 원래 기후변화가 산업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에 관한 이야기를 할 예정이었다. 산업이 기후변화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다는 사실은 삼척동자도 다 알고 있다. 그런데 이제는 기후변화가 산업을 역공격하고 있다는 요지의 글을 쓸 작정이었다. 예를 들면 이상 기상 현상 등으로 인해 산업시설이 큰 피해를 볼 수 있다. 결국 누워서 침 뱉은 꼴이 된 것이다. 그래서 유럽연합 환경위원회에서는 기후변화가 산업에 미치는 피해의 유형과 정도 그리고 이에 대처하는 방법에 관한 포괄적인 매뉴얼을 발표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