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희 써드스페이스 베를린 환경아카데미 대표

[Landscape Times] 수년 전, 재미난 소송 사건이 하나 있었다. 어느 노인이 아래층에 이사 온 이웃을 내쫓아 달라고 법원에 호소한 사건이었다. 아래층 남자가 발코니에서 담배를 피우는데 그 연기가 올라와 건강을 해친다는 것이다. 간접흡연으로 인해 암에 걸릴까 무섭다고 했다. 게다가 본인은 종일 발코니에서 거리를 바라보는 것이 취미인데 아래층 남자 때문에 발코니에 나갈 수 없으니 개인의 자유도 제한된다고 했다. 일명 발코니 사건으로 알려졌는데 물론 그 심정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아래층 입주자를 강제로 내쫓을 수 있는 법 조항이 없어서 패소했다. 전문가 분석에 따르면 아래층에서 올라오는 담배 연기로 인해 위층 주민이 암에 걸릴 확률은 거의 없다고도 했다.

그때 이런 생각을 했었다. 도로에서 올라오는 매연 속에 아래층 담배 연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발암물질이 포함되어 있는데 그 노인은 왜 자동차들을 모조리 고소하지 않았을까? 만약에 그랬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그런데 이 경우 대체 누구를 상대로 소송을 내야 할까. 자동차 운전자들? 도로를 만들어 자동차를 달리게 한 도시계획과? 아니면 자동차 산업? 매연과 소음은 말할 것도 없고 교통사고로 죽는 사람, 다치는 사람은 또 얼마나 많은가. 도로와 주차장이 점유하는 도시 면적은 또 얼마나 큰가. 그런데도 아무도 감히 도로 교통 자체를 시비의 대상으로 삼지 못한다.

거리를 내다보며, 만약에 자동차가 없다면 얼마나 조용하고 깨끗할까. 저 가로수들은 얼마나 아름답게 빛날까. 생각하는 적이 많다. 그런데 지금과 같은 추세로 간다면 그런 날이 곧 올지도 모르겠다.

지난 9월 22일은 아시다시피 세계의 <차 없는 날>이었다. 우리 동네 골목 하나가 차 없는 거리에 선발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마침 날씨도 좋기에 구경하러 나갔었다. 오후 2시부터 6시까지 네 시간 동안 거리가 놀이터로 변한다고 했다. 어떤 풍경이 펼쳐질지 매우 궁금했다. 그날 두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첫째는 우선 우리 동네에 아이들이 꽤 많이 살고 있다는 즐거운 사실이다. 둘째는 그 아이들의 부모들이 매우 적극적이고 진취적이라는 사실이다. 그 거리에 사는 가족들이 죄다 나온 것 같았다. 완전 거리 축제였다. 기어 다니는 아이, 훌라후프 돌리는 아이, 공차는 아이 등 그런 풍경이 따로 없었는데 그중 가장 진풍경은 가로에 아예 퍼지르고 앉은 젊은 어머니들이었다. 그중 무릎에 딸을 안고 있는 노란 티셔츠의 여인은 만삭이었다. 에구머니나. 만삭의 몸으로 길바닥에 나앉아 있다니. 기가 찼다. 그러나 차갑고 딱딱한 것은 둘째 치더라도 지저분한 아스팔트길에 앉아 있는 것이 썩 즐거워 보이지는 않았다. 즐겁지 않은데 왜 할까? 취향이 남달라 편안한 거실을 두고 거리에 나 앉은 것은 아닐 것이다. 왜 저러고 있을까? 결론은 하나밖에 없다. 시위 중인 것이다. 나를 보라. 내 무릎에 앉은 어린 딸과 배 속에서 자라는 둘째 아이를 위해 이러고 앉아 있다. 차 없는 도시를 만들어 달라. 그날 그 거리에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젊은 부모들 모두 놀이터가 없어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차 없는 날을 계기로 삼아 축제형 시위를 벌이기 위해 나온 것이다.

베를린 바바로사 거리. 9월 22일 차없는 날의 풍경. © 고정희
베를린 바바로사 거리. 9월 22일 차없는 날의 풍경. © 고정희

유럽의 여러 대도시에서 이미 자동차와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자전거 도로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승용차와 같은 도로를 나눠 쓰고 있는 암스테르담의 경우는 물론 말할 것도 없다. 이제는 파리에서도 승용차를 몰고 다니는 것이 매우 어렵게 되었다. 파리의 안 이달고 시장은 공영 주차장을 순차적으로 없애고 있다. 전기차도 해답이 아니라고 하며 이미 선도적인 파리의 지하철 노선을 더욱 확장하여 십 년 내로 급행 지하철을 완성하겠다고 공약했다. 그렇게 되면 도시 외곽에 사는 사람들도 지하철을 타고 빠르게 출퇴근할 수 있게 된다. 올해 재선된 것을 보면 파리 시민들이 그녀의 교통 정책을 지지하는 듯하다.

오스트리아 빈에서는 등교 시간에 학교로 통하는 도로의 교통을 전면 통제하고 있다. 안전한 등굣길이 목적이며 앞으로 이런 통제 구역의 범위를 확장해 나갈 계획이다. 다른 한편 시내 교통 요금이 매우 저렴하여 대중교통 이용을 자연스럽게 권장하고 있다. 일 년 정기권이 365유로, 즉 어디를 가거나 하루 차비가 1유로밖에 들지 않기 때문에 이제는 시민들 대다수가 정기권을 끊어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다닌다. 반면 자동차 주차 요금은 하늘로 치솟고 있다. 차주들에게 주차비를 비싸게 받아 그 돈을 모두 대중교통 시설에 투자하는 것이다. 그 덕에 빈은 2019년 유럽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 1위에 선발되었다.

복잡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나폴리도 이제 교통정리에 나섰다. 어차피 시내에 주차 공간이 거의 없으므로 그동안 불법 주차가 몹시 성행했었다. 이제는 불법주차 시 견인차가 바로 나타난다. 시내에 볼일이 있어 차를 타고 가려면 외곽에 세워 두고 걸어가거나 버스를 타고 가는 편이 낫다. 나폴리를 선두로 볼로냐, 볼차노, 플로렌스, 피사, 밀라노, 팔레르모, 로마, 토리노 등의 대도시들이 차례로 도심에 교통 통제 구역을 설치하고 있다.

코로나 사태 초기, 수 주일 동안 락다운 되었을 때 갑자기 한산해진 도시에서 사람들이 많은 것을 느꼈던 것 같다. 차도 밀리지 않고 시끄러운 교통 소음도 잠잠해지자 그동안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고 살았는지 새삼 알게 되었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코로나가 오히려 고맙다는 얘기도 조심스럽게 들려온다. 눈을 뜨게 해 줬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쾰른에서 최근 설문조사를 한 결과를 보면 시민들 71퍼센트가 자동차 없는 도시를 원한다고 대답했다. 자동차의 나라 독일은 유럽의 다른 국가에 비교해 자동차에 대한 믿음이 확고한 편이었다. 한편 환경 선진국이라고 하면서도 자동차에 대한 애정 사이에서 갈등을 겪었다. 이제 그 믿음이 흔들리고 있다. 한국의 경우는 어떤가? 차 없는 날을 다들 어떻게 보냈을까?

[한국조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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