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희 써드스페이스 베를린 환경아카데미 대표<br>
고정희 써드스페이스 베를린 환경아카데미 대표

[Landscape Times] 검은 아스팔트. 검은색도 아스팔트도 정원과는 무관하다. 여태 그랬었다. 그런데 지난 10월 15일, 평택 동말 근린공원에서 열린 LH 가든쇼에 검은 아스팔트로만 이루어진 정원이 나타났다. 해외 초청작가 정원이었다. 작가는 이미 우리에게 친숙한 독일 토포텍의 라인-카노. 정원의 명칭은 작가의 이름을 따서 라인-카노 정원이라 했고 부제는 <BLACK OVER BLACK>, 검디검은 정원이다. 이 검디검은 정원이 녹색 가든쇼 초입을 장식했다. 동방예의지국인지라 손님에 대한 예의로 첫 자리를 내주었는데 이 사실에 매우 감동한 작가는 위치 덕분에 검디검은 아스팔트 정원에 대한 아이디어가 태어났다고 말한다.

정통 정원 개념, 즉 식물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파라다이스의 측면에서 본다면 작가 라인-카노는 이단자급이다. 식물 정원의 정통성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정원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찾고 조경의 영역을 확장하고자 부단히 애쓴다. 20세기 중반, 예술의 영역을 확장하기 위해 회화를 거부했던 요셉 보이스를 연상케 한다. 라인-카노는 <정원, 즉 파라다이스>라는 영원한 명제를 족쇄로 여기는 듯하다. 그보다는 <조경, 즉 예술>이라는 등식을 완성하고 싶어 한다. 그러므로 식물 외의 소재를 찾아 일상을 뒤적이며 “과연 이 소재를 정원이라는 무대에 올려도 될 것인가.”를 끊임없이 묻는다. 그러다 아스팔트까지 가게 된 것 같다. 새로운 소재를 찾았다고 해도 그 소재를 어떻게 적용하는가에 따라 결과는 사뭇 달라진다. 예를 들어 산책로를 아스팔트로 깔았다면 아무 의미가 없었을 것이다. 그는 고스란히 아스팔트로만 이루어진 공간을 구성했다. 아스팔트가 본래 기능과 역할에서 풀려나 정원의 주제가 되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그동안 먼지를 뒤집어쓴 채 자동차 바퀴에 깔려 살았던 아스팔트가 신데렐라가 된 것이다.

완공 직후. 야간 조명과 안개분수 ⓒ유청오<br>
완공 직후. 야간 조명과 안개분수 ⓒ유청오

라인-카노 작가의 말을 들어보자:

“<BLACK OVER BLACK>은 동말 근린공원으로 들어가기 위해 통과하는 입문정원이다. 음악에 견준다면 서곡에 해당한다. 서곡은 앞으로 3악장, 4악장으로 펼쳐질 음악의 세계를 몰입할 수 있게 준비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바깥세상의 일을 잊고 정원의 세계로 들어가기 위해 오감이 깨어나게 하는 것이 BLACK OVER BLACK 정원이다. 앞으로 펼쳐질 녹색의 세계에 대비하는 공간이며 그리로 가기 위해 통과하는 곳이다. 검고 거친 아스팔트에 놀라고 틈새를 건너고 블록 사이에서 솟아오르는 안개를 피부에 느끼는 사이 오감이 깨어날 것이다.

아스팔트는 지금껏 미운 오리 새끼와 같은 존재였다. 이제 흑조로 태어나 사랑받을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정원은 그런 곳이다. 관심받지 못했던 존재를 사랑받게 만드는 곳이다.”

옥의 티? 길이 수직으로 만나고 잔디를 경계선까지 끌고 가 녹색과 검은색이 서로 맞붙었다면 완벽했을 것이다 ⓒ유청오
옥의 티? 길이 수직으로 만나고 잔디를 경계선까지 끌고 가 녹색과 검은색이 서로 맞붙었다면 완벽했을 것이다 ⓒ유청오

작가 초청부터 시작하여 개막식 영상 제작까지 전 과정에 관여했던 까닭에 <BLACK OVER BLACK> 정원, 일명 라인-카노 정원의 탄생을 가까이에서 지켜보았다. 관계자 모두 여태 아스팔트를 정원소재로 써본 적이 없던 터라 시공 단계에서 많은 토론이 오갔다. 국내는 물론이고 독일에서도 처음 있는 일이기 때문에 토포텍에서는 사전에 스티로폴을 이용하여 1:1로 모형을 만들어 블록의 적정 크기와 블록 사이의 적정 간격 등을 찾아냈다. 이어 조형물 제작 전문 업체에 의뢰하여 아스팔트 블록의 샘플을 만들어 보았다. 블록 상태에서 얼마나 단단한지 모서리가 깨지지는 않을지 등에 대해 우려도 컸다. 예정대로라면 토포텍 직원이 샘플을 들고 입국하여 국내 시공사 함께 현장에서 과제를 풀어낼 생각이었다. 코로나로 인해 입국이 여러 차례 연기되었다가 마침내 완전히 취소되었는데 그러는 사이 결국 온라인으로 추진하여 공사가 마무리되었다.

국내 시공사로서도 커다란 도전과제였다. 일을 맡은 한고연의 윤준 대표와 박진수 대표가 뛰어난 역량을 발휘한 덕분에 기대 이상의 좋은 결과가 나왔다. 모두 576장의 블록으로 이루어진 정방형의 공간을 완벽하게 조성하여 토포텍 사의 감탄과 환호를 받았다.

편한 차림의 여성 방문객들. 구두굽이 심연에 빠지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유청오
편한 차림의 여성 방문객들. 구두굽이 심연에 빠지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유청오

전 면적에 아스콘을 붓고 죽 밀었다면 수월했겠으나 굳이 50 x 50cm의 블록을 만들고 5cm 간격으로 나란히 배치한 것은 그 안에 안개분수와 조명을 설치해야 한다는 기능적 성격도 있었지만, 그에 못지않게 “블록 사이의 검고 깊은 심연이 필요하다.”라는 것이 작가의 설명이다. 이 심연으로 구두 굽이 빠진다면 이 역시 오감의 깨어남에 일조할 것인지? 이 질문에 대해 작가는 크게 웃고 만다. 여인들이 직접 실험해 보면 알 게 될 터인데 개막식 사진을 보니 모두 운동화를 신었으니 확인해 볼 길이 없다.

의미심장한 것은 배경의 녹색이 없다면 이 검디검은 정원이 제대로 돋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더 나아가 처음부터 녹색 배경이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그에 기대어 설계한 것이다. 앞으로 시간이 흘러 수목이 풍부해지고 녹색이 짙어질수록 검디검은 실험 정원의 효과도 커질 것이다. 아쉬운 점은 있다. 옥의 티라고 해야 할까. 검은 사각형의 반듯한 틀과 주변의 잔디 사이에 배수용 자갈 수로가 드러나 보인다. 그 위에 잔디를 덮었다면 녹색과 검은색이 직접 맞닿아 더 깔끔하고 완벽하게 마무리되었을 것이다.

[한국조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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