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희 써드스페이스 베를린 환경아카데미 대표<br>
고정희 써드스페이스 베를린 환경아카데미 대표

[Landscape Times] 지금이 아침 일곱 시인데 밖은 한밤중이다. 아직 한 시간은 더 있어야 해가 뜰 것이다. 내가 사는 이곳 북유럽은 요즘 아침 8시가 되어야 비로소 해가 뜨고 오후 네 시면 컴컴해진다. 기상청 홈페이지에 들어가 검색해 보니 이 글이 발표되는 12월 8일에는 아침 8시 4분에 해가 뜨고 오후 3시 51분에 해가 져서 낮이 7시간 47분이라고 한다. 하루의 3분의 2를 컴컴한 상태에서 살아야 한다.

올겨울에는 특히 날씨가 나빠, 거의 매일 흐리기 때문에 날이 밝았는지 다시 어두워졌는지 분간이 되지 않아 몽롱한 상태로 지내기도 한다. 이런 흐릿한 겨울날엔 이 세상과 저세상의 경계가 희미해져서 귀신과 정령들이 인간 세상으로 넘어와 돌아다닌다는 이야기가 있다. 요즘 같아선 그게 사실이 아닐까 여겨지기도 한다. 그림동화, 안데르센동화 등 수많은 이야기가 이런 겨울에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겨울 공원에서 굴뚝새의 날카로운 노랫소리가 잦아지기 시작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온다는 징조다. 굴뚝새는 전 세계 온난한 곳에 퍼져 사는데 몸통 크기 10cm 남짓에 몸무게 10g 정도로 깃털 급의 작은 새이다. 온몸이 갈색 깃으로 뒤덮여 있어 썩 예쁜 편은 아니다.

그런데도 <새 중 왕>이라 불린다. 이미 아리스토텔레스가 그리 불렀다고 한다. 그러니 2004년도에 독일 자연보호연맹에서 굴뚝새를 <올해의 새>로 선정했을 때 내심 가소롭게 여겼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내가 새 중의 왕인데 올해의 새는 무슨……. '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아주 옛날, 새들이 모여 왕을 선발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가장 높이 나는 새가 왕이 되기로 했다. 후보에 나선 새들이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굴뚝새도 후보로 나섰다. 모두 웃었다. 물론 독수리가 가장 높이 날았다. 모든 새를 물리친 독수리가 “내가 왕이다.”라고 외치는 순간, “아닌데요~” 라는 소리가 들렸다. 독수리가 올려다보니 굴뚝새가 머리 위로 오르고 있었다. 여태 독수리 등에 타고 있다가 그제야 솟아오르며 “내가 왕이야!”라고 삐악거렸다.

지금 굴뚝새는 성량이 풍부하고 가창력이 뛰어난 새로 꼽힌다. 그러나 2천 년 전만 해도 가창력은커녕 삑삑거리는 게 고작이었다고 한다. 목이 꽉 잠겨 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었다. 그래서 수만 년 동안 명창의 자리를 내놓지 않는, 눈부신 노란 색의 꾀꼬리가 우습게 여겼었다. 의상은 또 어떠한가. 갈색이 뭐람. 칙칙하게. 쪼끄만 주제에 노래도 못하면서 자기들 이 새 중 왕이래. 무슨 왕. 꼴찌 왕? 이렇게 무시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게다가 꾀꼬리며 종달새는 여름새라서 겨울이면 잠잠해지는데 굴뚝새는 날이 추워질수록 목소리가 청아해진다. 크리스마스이브가 되면 최고조에 달해 목젖을 울려가며 높고 청명한 소리를 쭉쭉 뽑아낸다. 굴뚝새는 위의 독수리 사건에서도 볼 수 있는 것처럼 영리하다. 명랑하고 낯가림이 없어 사람들이 사는 도시의 공원이나 집 울타리, 굴뚝 등에서 즐겨 산다. 울타리에 앉아 이리저리 둘러보는 모양새가 마치 “안녕하세요.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라고 깍듯이 인사하는 듯하여 많은 사랑을 받는다.

아주 옛날, 정확히 말하면 2020년 전 외양간에서 사는 굴뚝새 부부가 있었다. 어느 겨울 저녁 부부는 외양간 울타리에 앉아 잠을 자고 있었다. 그러다가 뭔가 기척이 느껴져 아내가 먼저 눈을 떴다. 보니 외양간에 눈부시게 흰옷을 입고 금빛 날개를 단 천사가 서 있었다.

“에구머니나 이게 웬일이래. 여보 일어나 봐요~” 아내는 남편을 깨웠다. 굴뚝새 부부는 외양간에 나타난 천사의 모습에 넋을 잃었다. 곧 다른 천사들도 나타났다. 그들은 나타나자마자 무릎을 꿇고 더러운 외양간 바닥에 입을 맞췄다. 그리고서 열심히 뭔가 의논하기 시작했다. 굴뚝새 부부는 천사들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듣고 보니 현장 답사를 하러 내려온 것 같았다. 며칠 후에 이 외양간에서 아기가 태어날 것이라고 했다. 새로 태어난 아기를 먹이통에 눕힐 것이라고도 했다.

“왜 하필이면 천사가 외양간에서 아기를 낳는데~ .” 남편이 이렇게 물었다.

“아니, 그게 아니고~ 천사가 아니라 어떤 여인이 여기서 아기를 낳는다는 것 같은데? 어떤 아기이기에 천사들이 내려와서 현장 답사를 한대?” 아내가 이렇게 소곤거렸다.

천사들은 영롱한 목소리로 합창을 한 뒤 밤하늘로 날아 올라갔다. 굴뚝새 부부는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한 채 멍하니 있다가 문득 정신이 들었다.

“그런데 집안 꼴이 영 엉망이네~ 귀한 아기가 태어난다는데…….” 둘러보니 외양간이 지저분하기 이를 데 없었다. 부부는 부지런히 손님 맞을 준비를 했다. 거미줄도 치우고 쓰레기도 물어다 버렸다. 먹이통에 아기를 눕힐 것이라는데 이 추운 날씨에 어쩌지? 

우왕좌왕하다가 볏짚을 물어다 먹이통에 깔기 시작했다. 아기가 폭신하게 누울 수 있을 만큼 볏짚을 물어 나르다 보니 며칠이 걸렸다. 대청소를 마친 굴뚝새 부부는 피곤한 나머지 울타리에 앉은 채로 꼬박 잠이 들었다.

심상치 않은 기척에 다시 잠이 깼다. 외양간을 내려다보니 이미 일이 벌어져 있었다. 정말 갓난아기가 구유에 누워 있는 것이 아닌가. 아기 어머니인 듯한 아름다운 여인이 행복한 표정으로 아기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사방에는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 있었다. 낯익은 목동도 있었고 이상한 옷을 입은 낯선 외국인도 있었다. 굴뚝새 부부는 조심스럽게 구유에 다가가 내려앉았다. 그때 아기가 눈을 뜨고 바라보며 방긋이 웃었다. 볏짚 고마워~ 라는 표정이었다. 순간 목구멍이 간질거리더니 꽉 막혔던 목청이 뚫리는 것 같았다. 입을 벌려 보니 청아한 목소리가 하늘 높이 가득 퍼졌다.

그때부터 굴뚝새는 명창 반열에 들게 되었고 다른 새들이 침묵하는 겨울이 오고 크리스마스가 되면 깊은 숲에서도, 강가에서도 도시의 공원에서도, 어디서나 굴뚝새의 예쁜 노랫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한국조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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