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희(써드스페이스 베를린 환경아카데미 대표)
고정희(써드스페이스 베를린 환경아카데미 대표)

[Landscape Times] 오늘은 원래 기후변화가 산업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에 관한 이야기를 할 예정이었다. 산업이 기후변화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다는 사실은 삼척동자도 다 알고 있다. 그런데 이제는 기후변화가 산업을 역공격하고 있다는 요지의 글을 쓸 작정이었다. 예를 들면 이상 기상 현상 등으로 인해 산업시설이 큰 피해를 볼 수 있다. 결국 누워서 침 뱉은 꼴이 된 것이다. 그래서 유럽연합 환경위원회에서는 기후변화가 산업에 미치는 피해의 유형과 정도 그리고 이에 대처하는 방법에 관한 포괄적인 매뉴얼을 발표한 바 있다.

이렇게 초안까지 써 놓았는데 <신천지>가 개벽했다.

이제 환경과 조경에 관한 얘기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자각이 든다. 신천지 교회 얘기는 큰 충격이어서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신천지 교회 측에서 드디어 신자 명단을 공개하겠다고 나섰다. 뭐 크게 선심 쓰듯 협조하겠다고 했단다. 사실 신도 중 첫 확진자가 나타난 시점에 이미 명단을 제공했어야 했다. 명단이 없다면 모를까 바코드까지 찍어 가며 출석체크를 하는 단체라고 한다.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협조를 요구했다고 들었다. 바이러스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즉 타인과 사회를 보호하기 위해 자진해서 제공했어야 할 명단을 끼고 있던 그 며칠 사이. 집회에 참석했던 수많은 보균자와 이들로부터 전염되었을 수 있는 사람들이 전국 어디를 돌아다녔는지 생각만 해도 모골이 송연해진다. 집단폐쇄성이 이 정도 되면 범법행위이다. 집회에 참석했던 사람들과 이들과 접촉한 사람들은 모두 자진 신고해야 했던 것이 아닌가. 아니 전 국민이 일단 모두 검사 받는 편이 낫지 않을지. 곧 개학이고 개강일 텐데 학교 문을 열어도 되는 건지, 회사에서는 어쩌고들 있는지, 매일 출퇴근해야 하는 사람들의 심정은 어떤 지. 마음 놓고 슈퍼에 가서 장은 볼 수 있는지, 이러다가 다를 코로나19 때문이 아니라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는 것은 아닌지, 의료시스템이 마비되지는 않았는지, 자원봉사 하러 가야 하는 건 아닌지 등등 수많은 생각이 오간다.

몇 주 전부터 고국에서 오는 전자편지가 모조리 <여긴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분위기가 어수선하다. 걱정이다> 등으로 일관되었다. 그래서 총인구 대비 감염 비율이 0.00001% 도 되지 않고 사망률은 극히 낮으며 한국 방역시스템이 잘 되어 있고 상황대처를 잘하고 있는 것 같으니 한국 의료진의 실력을 믿고 마음 편안히 계시라. 곧 지나갈 것이다. 코로나보다는 인플루엔자 감염률이 월등히 높다. 따위로 대답하곤 했다. 그러다 대구 신천지 사건이 터지면서 더는 그런 덕담을 하고 있을 수 없게 되었다.

마음이 몹시 어지럽다. 틈만 나면 인터넷에 들어가 한국 뉴스를 읽고 있다. 엊그제 신천지 교회가 집회에 참석한 신도 명단을 내주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떠오르는 문구가 하나 있었다. 김경일 교수의 저서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에서 읽은 것인데 그 책의 내용에 모두 공감하는 것은 아니지만 유교 문화의 폐해 중 하나로 언급한 “끼리끼리의 협잡을 부르는 혈연적 폐쇄성과 그로 인한 분열 본질 (7쪽)”에 크게 공감했었다. 이제는 혈연, 지연, 학연에 이어 교연敎緣이라는 개념을 첨가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김경일 교수 주장대로 혈연적 내지는 소집단적 폐쇄성이 유교에 기인하는 것인지에 대한 확신은 없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소집단의 폐쇄성이 사회성을 저해한다는 사실이다. 무슨 뜻인가 하면 전체의 이익보다는 혈연, 지연, 학연, 교연으로 얽힌 각종 ‘인연’을 우선시할 뿐 아니라 이것을 오히려 정당화한다. 한편으론 단일 민족을 외치지만 대한민국이 하나의 커다란 공동체라는 의식은 미흡하다. 그 결과 사회성은 부족하고 시민의식도 투철하지 못하다. 올림픽 메달 소식, 봉준호 감독의 수상 소식, 방탄소년단의 세계적 인기에 대한 소식을 마치 자신의 개인적 성공이라도 되는 듯 자랑스러워하는데 그 양상이 국가적 자긍심보다는 민족주의를 연상시킨다. 민족이 최대 공동체를 형성했던 시대는 이미 지나간 지 오래다. 국가라는 공동체, 핏줄이 아닌 헌법이라는 <사회적 약속>으로 엮인 인연은 고차원의 것이며 소중하다. 내가 속한 사회를 지키고 보호하는 것은 안보법이 아니다. 나와 혈연, 지연, 학연, 교연으로 얽히지 않은 낯선 타인이라도 충분히 배려하는 각 개인의 마음가짐에서 출발한다.

아무 데서나 침 뱉는 사람이 놀랍게 많은 것도 혹시 이에 기인하는 것이 아닌가는 생각을 해 보았다. 코로나바이러스의 감염경로를 알아보니 비말감염이라고 한다. 보균자의 기침이나 침 등에 섞여 미세한 액체 입자로 튀어나와 다른 사람에게 옮겨간다는 것이다. 문득 지난 12월 초 서울에 있을 때 관찰한 일이 떠올랐다. 겨울이라 공기가 건조해서 그랬는지 모르겠다. 거리를 걷고 있는데 마주 오던 젊은이 한 명이 도로변 녹지에 침을 퉤 하고 뱉는 것이 아닌가! 아직도 거리에서 침 뱉는 사람이 있나? 그것도 녹지에다? 당연히 내 눈꼬리가 치켜 올라갔다. 거리에서 침 뱉는 유형의 인간은 이미 오래전에 멸종되었다고 생각했었다. 그것도 신사복 슈트를 멋지게 입은 청년이 거리에서 침 뱉는 장면은 충격적이었다. 그러고 보니 공항에서도 목격한 것 같았다. 사람들이 옹기종기 줄 서서 공항버스를 기다리는 뒤편에서 침 뱉는 사람을 본 듯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실은 상당히 많은 사람이 거리나 공공장소에서 침을 뱉었다. 불결하고 타인을 불쾌하게 하는 건 둘째 치더라도 사회적으로 무책임한 행동이다. 건강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침 속에 뭐가 섞여 있을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생리현상이라 하더라도 침을 참을 수 없는 사람은 없다. 휴지를 가지고 다니며 싸서 버려야 한다는 것 정도는 상식이 아닌지. 생리현상이라고 소변을 아무 데나 보는 사람은 없다. 중국에서도 그렇겠지만 아무 데서나 침 뱉고 침 튀기고 옆 사람 밀치고 제치는 습관이 혹시 코로나19의 빠른 확산에 일조한 것이 아닌지 혼자 추론해 본다.

이번 기회에 거리에서 침 뱉지 않기 캠페인이라도 벌였으면 한다. [한국조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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