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희 써드스페이스 베를린 환경아카데미 대표
고정희 써드스페이스 베를린 환경아카데미 대표

[Landscape Times] 본래 꿀벌을 살리기 위해 시작된 움직임이었다. 그런데 엉뚱하게 그 불똥이 ‘잡석 정원’으로 튀었다. 생태 본좌로 널리 알려진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에서는 지금 자연보호법을 개정하는 중이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앞으로 잡석 정원 조성이 금지될 뿐 아니라 이미 조성된 잡석 정원도 철거해야 한다. 개인의 자유를 이런 식으로 억압할 수는 없다며 항의하는 잡석 정원 소유주들과 볼썽사나운 잡석 정원은 정원에 대한 모독일 뿐 아니라 생물종 다양성의 원칙을 무시한 ‘죽음의 정원’이라는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잡석 정원 금지는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 개인의 자유에 앞서 공익이 우선하기 때문이다. 잡석 정원이 공익을 해친다는 근거로 전 독일 대통령 라우의 연설문이 인용되고 있다.

“읽기 싫은 책은 덮으면 된다. 듣기 싫은 음악은 끄면 그만이고 보기 싫은 그림은 걸지 않으면 된다. 그런데 건축은 덮어 버릴 수도 꺼 버릴 수도 없다. 도시 풍경을 지배하는 건축의 미학은 공익에 속한다.” 건축문화의 날 행사에서 이렇게 얘기한 적이 있는데 이를 정원에도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원은 파라다이스의 대명사로서 그 아름다움을 여태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런데 잡석 정원이 나타나 드높은 정원문화의 상징성을 파괴했으니 문화유산을 폭파한 탈레반과 다를 바 없다는 폭언까지 등장했다.

드레스덴 라이프니츠 생태연구소 건물 앞의 잡석 정원. 물 빠짐과 도시 기후에 적합한 식생을 찾기 위한 '착한 잡석 정원' © 고정희
드레스덴 라이프니츠 생태연구소 건물 앞의 잡석 정원. 물 빠짐과 도시 기후에 적합한 식생을 찾기 위한 '착한 잡석 정원' © 고정희

잡석 정원은 말 그대로 잡석, 쇄석 내지는 자갈만 깔아 놓은 정원이다. 식물을 아예 심지 않거나 아니면 화분에 회양목 등을 심어 잡석 위에 올려놓는 정도에 그친다. 유럽에서 약 십여 년 전부터 유행하기 시작했는데 본래는 빗물 침투 정원에서 출발했다. 빗물 침투성을 높이기 위해 잡석을 깔고 그 위에 도시의 척박한 생육 조건을 견뎌내는 식물을 심은 일종의 생태 정원이었다. 말하자면 착한 정원이었는데 죽음의 정원, 탈레반 정원으로 흑화한 것이다. 식물로 이루어진 정원에 관리가 쉽다는 오해가 낳은 정원이다. 또한, 모던한 느낌의 예술가 정원으로 치부하기도 한다. 그건 취향의 문제이니 그렇다 쳐도 잡초가 나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하부에 비닐을 깔아 물순환 체계를 끊는 것으로부터 흑화가 시작되었다. 깔끔하게 자갈로만 이루어진 정원을 유지하기 위해 심지어는 제초제를 뿌리기도 한다. 완전한 흑화이다.

탈레반 정원, 죽음의 정원이라 불리는 교통용지의 잡석 정원 © 고정희
탈레반 정원, 죽음의 정원이라 불리는 교통용지의 잡석 정원 © 고정희

“꿀벌이 사라지면 4년 만에 인류가 멸망할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벌이 사라지면 수분이 안 되어 열매를 맺지 못하므로 식량이 사라진다. 먹을 것이 없으니 동물이나 가축이 먼저 멸종하고 인류가 그 뒤를 따른다는 것이다. 소위 ‘아인슈타인의 예언’으로 널리 알려졌으나 아인슈타인이 그런 말을 했다는 증거를 찾지 못했다. 소문이라는 것이 늘 그렇듯 언제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아무도 모른다. 다만 벌을 위시하여 곤충이 크게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예를 들어 여름에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자동차 전면 유리창에 새카맣게 벌레가 달라붙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볼 수 없는 현상이다. 야외 카페나 정원에 앉아 음료를 마시면 벌떼 들이 주변을 맴돌던 게 언제 적 일이었는지 기억이 가물거리는 것도 사실이다. 다른 곤충보다 벌의 죽음에 유난히 민감한 것은 물론 인간의 식량을 지키기 위해서이다.

베를린 나치스 다큐센터 '테러의 지형' © 고정희
베를린 나치스 다큐센터 '테러의 지형' © 고정희

특히 양봉가들에게는 생계가 달린 문제로 직접 손해를 보고 있다. 꿀벌의 개체수가 더욱 줄어드는 것을 막는 방법은 무엇일까.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의 양봉업 협회에서는 농업이 문제라고 주장한다. 농약 투입으로 인해 병해충뿐 아니라 착한 꿀벌도 함께 죽는 것을 더 보고 있을 수 없다고 한다. 자연보호법을 개정하여 농약 규제를 한층 강화하는 한편 곤충들이 좋아하는 야생화 면적을 늘려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청원을 넣기 위해 서명운동을 시작했는데 전국농가연맹에서 “왜 매번 우리만 못살게 구느냐” 며 들고 일어났다. 그들에게도 생계가 달린 문제다. 농가의 생계와 양봉가의 생계가 맞선 것이니 아이러니하다. 결국, 환경부 장관의 중재 하에 정치가, 농업연맹, 양봉가 협회, 각종 환경단체가 한자리에 모여 협상안을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가 “요즘 유행하고 있는 잡석 정원도 꿀벌 보호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흉물이니 금지하면 어떨까.”라고 발의한 것이다. 그것이 지금 일파만파 번지고 있는데……. 전국의 잡석 정원을 모두 합쳐도 그 면적이 얼마나 될까. 이를 모두 야생화 정원으로 바꾼다고 해도 꿀벌 보호에 큰 도움은 되지 않는다. 정작 문제의 핵심에 접근하지 못하고 또다시 변죽만 울리는 꼴이 될 것이다. 자동차 산업과 농업은 바덴 뷔르템베르크 주 경제의 두 기둥이다. 자타가 공인하는 생태 본좌의 가면을 쓴 채 가장 큰 두 가지 생태계 파괴원인을 애지중지 품에 안고 있다. 양봉가들 역시 경제에 타격을 받게 되니 들고 일어난 것이지 그들 자신이 여태 꿀벌 생태계 교란에 한몫해 온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뭐니 뭐니(머니머니) 해도 경제가 우선이기 때문이다. 바덴-뷔르템베르크 주뿐 아니라 인류 전체가 이 모순을 안고 앞으로도 뒤로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잡석정원 스캔들의 주인공 꿀벌 © 고정희
잡석정원 스캔들의 주인공 꿀벌 © 고정희

베를린에 ‘테러의 지형’이라는 이름의 매우 우울한 다큐멘터리센터가 있다. 나치스의 만행을 낱낱이 전시할 목적으로 만든 것이므로 건축과 조경 모두 의도적으로 우울하게 디자인했다. 2005년에 열린 국제 현상 공모에서 외부 공간 전체를 잿빛의 깨진 돌로 뒤덮은 할만 교수의 디자인이 당선되었다. 수천 제곱미터 규모이니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큰 잡석 정원일 것이다. 나치스의 만행이라는 주제와 부합되는 우수 디자인으로 칭송받았는데 2010년 오픈하고 몇 년이 지나지 않아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가 나타났다. 잡초가 매우 빠른 속도로 올라온 것이다. 단 하나의 풀포기도 없이 완전한 잿빛이어야 한다는 작가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한 민들레도 눈치 없이 예쁜 얼굴을 내밀었다. 박물관 측에서 디자이너에게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요청했다. 녹색 풀포기도 그렇고 예쁜 민들레도 너무 긍정적이기 때문에 이념에 맞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려 모두 제거했다. 면적이 넓어 일일이 손으로 뽑을 수 없으므로 제초제를 뿌려야 했다. ‘테러의 지형’을 유지하기 위해 자연에 대해 테러를 가한 셈이다. 이때 이 작업을 지시하고 지휘했던 조경가는 마음이 몹시 편치 않았다고 회고한다. 개념에 충실한 것 자체는 나쁠 것이 없다. 그러나 과연 자라나는 풀포기를 모두 제거해야 할 만큼 디자인 개념이 절대적이어야 하는지, 혹시 개념을 수정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토론함이 옳을 것이다.

잡석 정원 스캔들을 초래한 작은 꿀벌이 이모저모로 인간의 모순점을 아프게 지적하고 있다. 

[한국조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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