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희(써드스페이스 베를린 환경아카데미 대표)
고정희(써드스페이스 베를린 환경아카데미 대표)

지금쯤이면 행장을 꾸려서 정원박람회 구경하러 길을 떠날 때다. 그런데 갈 곳이 없다. 올해는 BUGA가 없고 주 정원박람회 LAGA/LGS만 열릴 예정이었다. 남쪽의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의 위벨링겐, 바이에른 주의 잉골슈타트 그리고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의 캄프-린트포르트라는 세 도시에서 준비했다. 물론 모두 연기되었다.

그런데 연방주의 성격에 따라 연기하는 양상이 각각 다르다. 화끈한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는 5월 5일로 연기했고, 느긋한 바이에른 주는 5월 29일에 오픈하겠다고 했다가 아주 내년으로 연기한다는 소식이 방금 들어왔다.

반면에 손익을 꼼꼼히 따지는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에서는 아직도 주판알을 튕기고 있는지 결정을 못 하고 있다. 여기서도 내년으로 연기할 것을 고려중이라고 하지만 내년에는 이미 에핑겐이라는 도시에서 개최될 예정이어서 이미 준비가 한참 진행되었기에 쉽지 않은 상황이다.

문을 연다고 해도 멀리서 오는 방문객은 거의 없을 것이므로 동네잔치가 될 것이 손바닥 보듯 하다. 콘서트 등 많은 사람이 모이는 행사는 포기해야 한다. 방문객들도 서로 최소 1.5m 간격을 두고 멀찍이 떨어져서 다녀야 하므로 몹시 조용한 잔치가 될 것이다.

그중 캄프-린트포르트 시는 좀 안타깝다. 5월 5일에 문을 열기는 했지만 원했던 성과를 얻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며 내심 응원했던 곳이기 때문이다. 캄프-린트포르트라는 도시 이름을 누가 들어 보기나 했나. 수도 뒤셀도르프에서 약 40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지만, 관광객들이 별로 찾지 않는 도시라서 자동차로 30분 거리를 나와 같은 자동차 기피증 환자는 기차를 여러 번 갈아타면서 힘들게 가야 한다. 그러나 알고 보면 꽤 흥미로운 곳이다.

고풍스러운 수도원의 정원풍경과 광산촌이 극명하게 양극을 이루고 있는 도시. 독일 중서부, 네덜란드와 인접한 곳에 자리 잡았다. 라인강 서쪽 늪지의 석탄층 위에 형성된 도시며 그 이름이 말해 주듯 캄프와 린트포르트라는 두 지역이 통합된 곳이다. 1950년에 이르러 통합하여 도시권을 얻었는데 캄프라는 곳은 수도원과 성당, 정원풍경이 지배하는 곳이며 린트포르트는 광산촌이었다. 인구는 약 3만 7천. 두 곳의 성격이 그리도 다른데 어떻게 함께 살아왔을까 궁금해지는 도시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이번 정원박람회의 요지는 당연히 “녹색의 힘으로 유서 깊은 정원풍경과 폐광지를 결속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캄프-린트포르트가 중세의 수도원 영지도 아니고 20세기의 광산촌도 아니며 21세기의 녹색도시로 거듭나게 하자는 것이다. 2009년 라인발 대학의 캠퍼스가 폐광지에 들어선 이후 ‘대학도시’라는 간판을 높이 걸었으니 도시 이미지 쇄신을 향한 염원이 얼마나 큰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캄프 수도원 정원풍경 © laga 2020 kamp-lintfort
캄프 수도원 정원풍경 © laga 2020 kamp-lintfort

 

캄프는 1123년 독일어권에서는 최초로 시토 수도회가 들어와 자리 잡은 곳이며 이곳을 기점으로 하여 전 독일어권을 넘어 저 멀리 발트 3국에까지 수많은 계열 수도원을 건설한 중심지였다. 그리고 수백 년에 걸쳐 가꾸었다가 파괴되었다가 다시 복구하기를 여러 차례 반복한 결과 형성된 정원풍경이 매우 유명한 곳이다.

늪지에서 견디다 못해 인근에 있는 언덕으로 수도원을 옮기고 나서 언덕의 지형을 이용하여 이탈리아풍의 테라스 정원을 짓고 장엄한 중앙 계단을 만들었으며 그 아래 넓은 평지까지 축을 연결하여 바로크풍의 정원을 이어 붙였다. 언덕 한쪽을 할애하여 포도밭을, 수도원 뒤편으로는 약초원과 유실수원을 만들어 가꾸었고 사분원은 물론 기본이었으니 가히 정원풍경이라 할만 했다. 수도원치고는 매우 사치스러운 정원이다. 프리드리히 대왕이 아직 황태자였던 시절에 우연히 지나가다가 이 정원풍경을 보고 영감을 얻어 포츠담에 상쑤시 정원을 만들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물론 상쑤시 측에서는 이에 대해 일체 함구하고 있다.

 

폐광지 공원 © laga 2020 kamp-lintfort
폐광지 공원 © laga 2020 kamp-lintfort

 

반면 린트포르트 광산촌은 20세기 초에 건설되었다. 본래 노르트라인과 베스트팔렌 지역에 석탄이 많아 산업 혁명의 주체가 되었는데 탄광이 서쪽으로, 서쪽으로 전진하다가 마침내 린트포르트라는 마을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우리의 강원도와는 다르게 이 지역은 대부분 노천광이다. 땅을 파면 석탄이 나왔다.

1912년에 캐기 시작하여 2012년에 비로소 폐광되었으니 꼭 백 년 동안 석탄을 캐서 먹고 살던 곳이다. 1925년경 채굴량 백만 톤을 넘기고 광산근로자의 숫자가 5천을 넘기면서 주택문제가 시급해졌다. 이에 프리드리히-하인리히라 일컬었던 광산회사에서 당시의 이념에 따라 근로자들에게 정원도시(Garden city)를 만들어 주었다. 회사 이름을 따서 프리드리히-하인리히 신도시라 칭했는데 지금도 남아서 도시 문화재가 되었다. 심하게 경사진 지붕을 얹고 작은 정원도 딸린 단독 주택을 지어주었다. 시커먼 석탄 먼지만 아니었으면 예쁜 마을이었을 것이다.

수도원 언덕과 광산촌 사이의 거리는 약 3.5km. 그 사이 공간에 1960년대부터 중심가가 형성되었다. 당시의 건축개념에 지은 흉한 고층건물들이 지금도 스카이라인을 지배하고 있다. 이런 상반된 도시 구역들을 연결하는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예로부터 늪지 배수를 위해 수로를 파 둔 것이 있었다. 골리천이라 불리는 이 수로는 마치 팽팽히 당긴 활시위와 같은 모양으로 도시 구역을 모두 감싸며 돌고 있다. 그러니 골리천을 통한 연결이라는 해법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아닌 게 아니라 이미 천을 따라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었다.

2016년 가을, 정원박람회 개최를 위한 조경설계 현상공모를 실시했고 BBZL이라는 조경-도시설계 그룹의 출품작이 만장일치로 당선되었다(그림 참조).

 

공모 당선작. 픽토그램. © bbzl böhm benfer zahir
공모 당선작. 픽토그램. © bbzl böhm benfer zahir

 

당선작의 디자인 콘셉트는 “파라다이스 정원에서 센트럴파크로”였다. 중세에서 20세기로 껑충 뛰었던 도시의 양극을 서로 얼버무리지 않고 오히려 극명하게 대비시킴으로써 도시적 특성을 강조했다. 그리고 “녹색 척추”로서의 골리천의 역할을 명확하게 드러냈다는 점이 칭찬을 받았다. 또 하나 관건이 되었던 것은 물론 폐광지를 재생하여 공원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대개는 공원 디자인에 관심이 집중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심사위원들은 이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사실 폐광지 공원 디자인 자체는 오십보백보일 것이다. 잔디밭과 수목과 산책로와 여러 시설물을 이렇게 배치하건 저렇게 배치하건 공모에 참여한 조경가들의 수준이면 모두 적절한 디자인을 제시했을 것이다.

시간의 흘러 공원이 자리 잡으면 녹색 풍경으로서의 가치는 모두 흡사해진다. 그것보다는 새로 탄생할 공원과 기존의 도시 구역들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연계되었는가를 중점적으로 살폈다. 그것이 이 도시의 최대 관심사이기 때문이다.

이번 정원박람회가 그들만의 잔치가 아니길 바란다.

[한국조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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