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덕문을 열면 정면으로 양성당과 송시열의 돈암서원 원정비가 한 눈에 들어 온다. ⓒ지재호 기자
입덕문을 열면 정면으로 양성당과 송시열의 돈암서원 원정비가 한 눈에 들어 온다. ⓒ지재호 기자

 

[Landscape Times 지재호 기자] 사적 제383호로 지난 93년 10월 문화재로 지정된 후 26년이 지난 2019년 7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충남 논산의 돈암서원.

‘예학의 대가’ 사계 김장생 문인들이 스승을 추모해 사우를 건립한 뒤 위패를 봉안하고 제를 지내오다 사당 앞에 강당을 건립하면서 서원의 단초를 이루었다.

고종 8년인 1871년에 서원 훼철령(흥선대원군은 고종 1년부터 8년에 걸쳐 전국의 서원과 사우에 대한 철폐를 단행했다) 시기에도 잘 보존됐지만 고종 18년인 1881년에 지대가 낮은 관계로 홍수 때마다 위기를 맞으면서 현재의 충남 연산현 임리로 이전했다.

이곳은 주 교육시설을 중심으로 배향공간과 부속 건물로 구성돼 있다. 출입문인 입덕문을 중앙에 양성당과 동재인 거경재와 서재 정의재가 나란히 배치돼 있다.

양성당 앞에는 제자인 송시열이 쓴 ‘돈암서원 원정비’가 중심을 잡고 있고 그 옆에 장판각이 자리해 있다.

쉽게 설명해 보자면 양성당은 유생들이 모여 강학하던 서재로 응도당을 이전하지 못한 관계로 양성당을 강당으로 활용했다. 거경재는 유생들의 학습공간으로 쓰여 졌고 정의재는 유생들이 모여 경전의 의의를 강론하던 곳이다.

송시열이 쓴 원정비에는 돈암서원 건립 배경과 구조, 김장생의 행적 등이 기록돼 있다.

인조 11년인 1633년에 건립된 응도당은 입덕문을 지나 좌측에 자리하고 있는데 지난 1971년 이곳으로 이전됐다.

 

장판각과 양성당 사이로 보이는 숭례사   ⓒ지재호 기자
장판각과 양성당 사이로 보이는 숭례사 ⓒ지재호 기자

 

 

 

제사를 지내는 공간인 숭례사   ⓒ지재호 기자
제사를 지내는 공간인 숭례사 ⓒ지재호 기자

 

양성당 뒤로는 각종제사를 준비하는 공간으로 이용된 전사청과 제를 지낸 숭례사가 자리해 있다. 숭례사 주변은 궁궐 같은 공간에 연출되던 전통담장인 꽃담으로 둘러 이곳이 얼마나 특별한 공간이었는지를 되새기게 한다.

돈암서원은 호서는 물론 기호 전체에서 존숭 받는 곳으로 김장생을 제향한 서원 중 가장 비중있고 영향력 있는 서원으로 기호사림 전체의 구심체이다.

서원이 이전되기 이전에는 양성당 앞에 거경재와 정의재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응도당 앞에 배치됐었다는 기록도 있다.

기록으로 유추해 볼 때 응도당 앞에 거경재와 정의재가 나란히 있었다면 분명 권위와 위엄이 현재보다 더 크게 느껴졌을 것으로 보인다.

엄격한 질서와 정교한 형식을 중시하고 연구하는 예학의 공간인 돈암서원은 무료입장이기 때문에 언제든 방문이 가능하다. 다만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와 관련된 내용을 어느 곳에서도 접할 수 없어 아쉬움으로 남는다.

[한국조경신문]

 

중앙의 양성당을 중심으로 좌측에는 정의재, 우측에는 거경재가 배치돼 있다  ⓒ지재호 기자
중앙의 양성당을 중심으로 좌측에는 정의재, 우측에는 거경재가 배치돼 있다 ⓒ지재호 기자

 

 

 

강당으로 사용된 응도당  ⓒ지재호 기자
강당으로 사용된 응도당 ⓒ지재호 기자

 

 

 

돈암서원 입구인 입덕문 앞에 자리하고 있는 산앙루   ⓒ지재호 기자
돈암서원 입구인 입덕문 앞에 자리하고 있는 산앙루 ⓒ지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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