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양구곡 금사담 암석 위에 세워진 암서재  ⓒ지재호 기자
화양구곡 금사담 암석 위에 세워진 암서재 ⓒ지재호 기자

 

[Landscape Times 지재호 기자] 구비 구비 속리산 국립공원 계곡을 따라 오르면 만나게 되는 ‘화양구곡’.

수려한 자연 경관과 조선시대 유교 관련 유적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명승지로 역사적, 환경적 가치가 높아 지난 2014년 8월 대한민국 명승 제110호로 지정된 곳이다.

화양동이라 불리기도 하는 이곳에는 9개의 계곡을 의미하는 화양구곡(華陽九曲)을 만나게 된다. 여기서 곡(曲)의 개념을 쉽게 설명한다면 경(景)에 속한다 할 수 있다.

하류에서 시작되는 제1곡 경천벽은 기암괴석으로 기세가 가파르고 웅장함에 기가 눌릴 정도다. 제2곡 운영담은 한자 뜻대로 맑은 날 구름의 그림자가 비친다는 뜻으로 거대한 바위가 바닥에서 솟구쳐 오른 게 아니라 하늘에서 내리꽂고 그 위에 한 층 한 층 쌓아 올린 듯한 느낌이다. 여기에 하늘이 반사된 빛 그림자는 자연경관의 풍요로움을 더 해준다.

제3곡은 읍궁암으로 효종의 승하를 슬퍼하며 통곡했다는 이야기기 전해지고 있고, 제4곡 금사담은 지금은 많이 남지 않았으나 금싸라기 같은 모래가 많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외 제5곡 첨성대는 큐브를 쌓은 형태의 바위에서 성운을 관측했다 해서 붙여졌고, 제6곡 능운대는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솟은 장군의 능을 닮았다.

제7곡은 용의 누워 있는 형상이라 와룡암, 제8곡은 백학이 바위에 둥지를 짓고 새끼를 낳아 길렀다는 전설이 있는 학소대, 끝으로 제9곡 파천은 ‘파곶’이라고 불리는데 흰색 바위로 형성돼 있고 많은 사람들이 쉬어가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서 필자는 제1곡부터 제4곡과 그 안에 우암 송시열이 벼슬을 그만두고 학문과 후학을 양성하던 서실 암서재를 둘러봤다.

숙종과의 정치적 견해차만 아니었다면 서인들의 정신적 지주였던 송시열이라는 이름은 <조선왕조실록>에 3천 번의 이름이 등장하는 것보다 더욱 두텁게 역사를 이어갔을 것이다. 결국 숙종에 의해 제거됐지만 그에 대한 평가는 아직도 이견이 분분하다.

 

화양동 계곡에는 다양한 기이한 암석들이 많고 물길이 힘차면서 에메랄드 빛이 아름답다.   ⓒ지재호 기자
화양동 계곡에는 다양한 기이한 암석들이 많고 물길이 힘차면서 에메랄드 빛이 아름답다. ⓒ지재호 기자

 

충북 유형 문화재 제17호로 지정된 암서재는 절벽 큰 암반위에 세워져 있다. 노송이 울창하고 앞에는 잔잔하면서도 수심이 깊어 에메랄드빛이 보일 정도로 아름다운 금사담이 압권이다. 특히 암서재에서 바라보는 것 보다 외부에서 바라보는 절경이 한 폭의 수채화가 눈 가득 채워지는 느낌이다.

암서재를 받치고 있는 중앙 암벽에는 민지원의 전서체로 금사담이 각자돼 있고 오른쪽 바위에는 명나라 태조가 쓴 충효절의, 그 옆에 송시열이 쓴 ‘창오운단 무이산공(蒼梧雲斷 武夷山空)’ 글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뜻을 굳이 풀어보자면 청나라 보다는 그래도 명나라가 낫지만 기울고 있는 명나라의 모습 등 정세를 안타까워하는 내용이다.

송시열이 임진왜란 때 구원병을 보내 준 중국 명나라의 신종과 의종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하라는 지금의 유언을 남김에 따라 만동묘정비(충북 시도기념물 제25호)를 세우고 제를 지낸 것을 보면 명나라에 대한 애틋함이 남달랐음을 잘 보여준다.

[한국조경신문]

 

우암 송시열 유적에 자리하고 성공문과 만동묘정비각 ⓒ지재호 기자
우암 송시열 유적에 자리하고 성공문과 만동묘정비각 ⓒ지재호 기자

 

 

 

제2곡 운영담은 맑은 날 구름의 그림자가 비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바위 하단에 운영담 글자가 선명하다.  ⓒ지재호 기자
제2곡 운영담은 맑은 날 구름의 그림자가 비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바위 하단에 운영담 글자가 선명하다. ⓒ지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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