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양구곡 암서재 원림의 하루암서재는 우암 송시열(宋時烈, 1607~1689)이 학문에 정진하고 나라를 위해 고민했던 곳이다. 그의 정신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암서재 주변을 감싼다. 암서재는 고요한 어둠 속에서 천천히 눈을 뜬다. 암서재 주변의 반석군은 밤새도록 쌓였던 이슬을 머금고 촉촉하게 반짝인다. 맑은 계곡물은 새벽 공기를 깨우는 노래를 부른다. 동녘에서 붉은 태양이 서서히 떠오르며 곳곳의 구곡원림을 따스한 빛으로 감싼다. 암서재는 그 빛을 받아 더욱 뜻이 높고 고상하다.우암은 일찍 일어나 얼굴 부위의 혈을 주무르며 하루를 연다.
찬바람에 스치는 온기와 고독칼날처럼 매서운 찬바람이 강물을 휘감고 옷깃을 파고든다. 뼈마디가 욱신댄다. 까마귀의 울음소리만이 겨울 한탄강의 고요를 이따금 깨뜨린다. 차가운 골바람이 계류의 흐름을 걷어차면서 연어처럼 거슬러 오른다. 거센 물살을 일으킨다. 강물은 깊숙한 곳에서 끊임없이 웅크리고, 그 울림은 마치 사연 많은 시댁에 시집온 맏며느리의 한숨처럼 잽싸게 움직인다. 끊이지 않고 치대며 갈구고 좌우 잽을 날린다. 때로는 단타처럼 급격하게, 때로는 장타처럼 여유롭게 강물을 휘두르며 장외를 타진한다. 찬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 쓸
주변 풍광이 영혼을 맑게 하는 수운정(水雲亭)제천, 청풍, 단양, 영춘의 사군산수(四郡山水) 중 단양필경은 조선의 시공간을 넘어 근·현대의 질곡에서 여전히 명승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삶의 억척스러움과 경망스러움, 산업 발전에 따른 자본의 천박함 같은 것, 주변으로 내모는 진솔함이 있다. 단양 산수는 여전히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한다. 원형 그대로의 자연 경물로 질박한 원림 미학을 구가한다. 뿜어내는 풍광의 중심과 주변은 보편의 경관 미학으로 가득하다. 과대포장하거나 자본의 논리에 침식당하지 않으면서 특정 풍경의 틀 속에 안온하다.
조용하고 한적한 효심의 공간 미학시의 경지는 사람의 마음을 잡는 매력의 공간에서 떨치고 일어난다. 한국정원문화에서 수없이 싹트고 반복 재생되는 시의 창작 또한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공간에서 비롯한다. 한국정원문화는 규모와 지형지물에 따라 감동의 결이 다르다. 공간의 규모와 분위기가 웅장하여 감복하기도 하지만, 아주 조용하고 한적하여 소박한 미학을 보여주어도 감읍한다. 웅장보다 소박이 주는 아름다움에 더 크게 감동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번 정원문화답사는 그러한 소박한 아름다움이 주는 누정을 찾았다. 아주 화려하거나 규모의 웅장함보
사군산수(四郡山水)라는 버킷리스트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한 번 다녀와야 하는데….”를 연발하였다는 것이다. 영남이나 호남의 사대부에게 ‘사군산수(四郡山水)’ 또는 ‘사군강산(四郡江山)’은 더욱 특별하였다. 탐승지로서의 신비한 풍모를 보고 싶어 한시바삐 나서고 싶었던 곳이다. 사군(四郡)은 제천, 청풍, 단양, 영춘을 말한다. 서로 인접하여 대부분 암벽 산으로 이루어진 궁벽한 곳이어서 함부로 찾아들기도 쉽지 않았던 시절이다. 암벽 산 주변으로 남한강의 비경이 곳곳에서 넘실댄다. 암벽에서 뿜어나오는 화기(火氣)를 강물의 수기(水氣)가
내면 조사(照射)의 명랑함이 깃든 무기연당내면을 비춘다. ‘내면 조사(照射)’의 시간이다. 다습은 햇빛의 부드러운 기운이 마음을 덥힌다. 따듯하여 훈훈해진 온도로 내 안을 들여다본다. 곧잘 다정한 햇빛을 불러 마음 다독거리는 ‘조사’의 명상을 즐긴다. 나의 내면을 되돌아보는 일은 잦을수록 환하다. ‘내면 조사’는 내가 보이는 외양(外樣)의 성품이다. 외양은 내면에 축적된 따사로운 기운을 바깥으로 드러나는 인간미이다. 외양에서 느끼는 고상하고 독특한 분위기나 품격이 있다. ‘내면 조사’의 명랑함이 만든 기장(氣場)이다. 무기연당(舞沂
국가 지정 문화유산인 붉은빛 ‘화순적벽’ 일대를 주유하다. 화순적벽은 하나의 적벽이 아니라 화순군 이서면 창랑리와 장항리 일대를 포함한 동복천 상류 창랑천과 영신천 유역에 솟아 있다. 조선시대 신재(新齋) 최산두(崔山斗, 1483~1536)가 이곳의 자연 공간인 절벽을 인문 공간의 ‘적벽(赤壁)’이라 부른 이후 많은 시인 묵객이 응답한다. 석천(石川) 임억령(林億齡, 1496~1568), 제봉(霽峰) 고경명(高敬命, 1533~1592)의 시는 적벽의 아름다운 경관을 표상한다. 고경명의 「유서석록」이나 학봉(鶴峰) 김성일(金誠一, 1
산수유 마을은 알겠는데, 육괴정(六槐亭)은 처음이천을 떠올리면 가슴이 떨린다. 꽤 많은 ‘첫’이 탄생한 잊을 수 없는 장소이다. 첫 발령지이다. 결혼과 함께 사회생활을 시작한 사연 많은 곳이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옛이야기는 접자. 4년 6개월을 근무하였을 뿐인데 기억의 회로에는 46년의 추억거리로 뭉쳐 맴돈다. 오래도록 꺼내지 못한 탓이다. 꺼내지 못한 옛 추억은 묻어 둔 채, 새롭게 이천을 떠올렸다. 이천 백사에 있는 ‘육괴정(六槐亭)’을 취재 답사하기 위해서다. 제법 이천에 대하여 알고, 백사의 산수유 축제도 잘 안다. 남
탁사정 기억이 누정 원림의 이미지를 재생산한다.제천 후배 영태에게 물었다. 탁사정(濯斯亭)을 가고 싶은데 근래 가 본 적이 있냐고 했더니, "탁사정은 유지 보수가 안돼 관리 상태가 안 좋을 것"이란다. "그래도 정자까지 올라가 보겠다."라고 말한 내게 "그러면 탁사정 주차장에서 만나자"라고 합을 맞춘다. 만나기로 정한 시간에 맞춰 출발 시각을 조정한다. 옛 생각이 절로 난다. 흰 모래톱이 길게 늘어서 해안가를 연상시키는 인상적인 과거의 풍경이 새삼 떠오른다. 친구들이 하도 멋진 곳이라고 가 보자 하여 따라나섰다. 한 떼의 청소년들이
나는 거기 안 낄래, 큰 소리 내어 시나 읊으며 호기롭게 살래광주(光州)의 호가정(浩歌亭)을 찾았다. 누정 원림을 꽤 알고 있다 생각하였으나, 호가정이라는 누정은 이름부터 생소하다. 호가정은 처음 명종 13년(1558년)에 세상과 해후한다. 이때가 유사(柳泗, 1503~1571)의 나이 56세이다. 명종 때의 윤원형, 심통원과 함께 삼흉 중 한 사람, 왕족인 이량(李樑, 1519~1582)이 있다. 이량이 유사에게 넌지시 회유하였다. 함께 너른 세상을 휘젓고 놀자고. 그때 ‘나는 거기 끼지 않겠다’고 노골적으로 선언한다. 벼슬을 내
학문과 수양의 장소가 한국정원문화의 원형다시 살만한 곳에 대하여 생각한다. 「택리지」에서는 지리, 생리, 인심, 산수 네 가지를 살만한 곳인 가거지(可居之)라 한다. 지리와 산수는 지형, 생리는 경제, 인심은 사회적 조건이다. 지리는 풍수와 긴밀하여 배산임수, 단단한 지반, 질 좋은 물, 햇볕 양명한 탁 트인 지세와 만난다. 병풍처럼 둘러싼 산은 아늑하고 집 앞으로 물을 두면 두루 생명 유지에 더할 나위 없다. 뒷산을 주산으로 좌우 산줄기가 둘러싸고 계류가 좌우로 흘러 앞의 하천과 합류한다. 하천 너머 다시 안산이 있어 전후좌우의
높은 산 흐르는 물, 풍경은 그대로이고 초목은 다정하다시인 조지훈은 「한국사상의 근거」(, 1959)라는 글에서 “최제우는 한국사상사에 있어서 최대의 인물이라 할 것이니, 그 사상은 이 민족정신문화 수천 년에 걸쳐 형성된 주체를 발양한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김용옥, 동경대전1, p65.에서 재인용). 수운 최제우(1824-1864)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 공을 세운 최진립(1568-1636)의 후손이다. 경주 최부자로 일컬어지는 가계가 최진립의 3남으로 이어지고, 최제우는 최진립의 4남으로
원림문화의 현대적 향유한국의 원림문화는 약동하는 문화일까, 망실되는 문화일까? 아니면 한국전통조경학회나 문화재청, 학교나 연구기관에서 다루는 향상되는 고급 연구 주제일까? 아니면, 고루하고 한물간 구태의연한 소외의 지대를 보존하는 영역일까? 나는 항상 궁금했다. 이를 대표하는 학회는 ‘한국전통조경학회’이다. 그러니 학계에서는 일반적으로 ‘전통조경’이란 용어로 통용하고 있다. 이러할 때, 그 ‘전통’이라는 용어와 ‘조경’이라는 용어가 합쳐진 애매함이
시경(詩境)과 화경(畫境)의 만남서석지 원림의 시경을 살피기 전에 겸재 정선(1676~1759)의 진경산수인 '쌍계입암'을 먼저 관람한다. 영양의 입암면에 있는 입암(선바위) 주변을 그린 것이다. 바위의 골기가 하늘을 찌를 듯하다. 입암 앞의 파문이 이는 격류는 기운생동하는 봄 풍광을 그대로 느끼게 한다. 물 건너편 둔치에서 선바위와 암벽을 올려다보는 앉은 사람과 서 있는 사람이 보인다. 화중 인물이 올려다본 선바위와 암벽을 그렸으니 앙관(仰觀)의 시선 풍광이다. 또 하나의 시선이 있다. 화중 인물을 내려다본 둔치 뒤
숲길이 있어 미음완보(微吟緩步)의 소요유(逍遙遊) 가능열린원림문화의 향유는 숲길로 성립한다. 숲길이 있기에 미음완보의 거닐기를 통한 소요유가 가능하다. 소요유는 원림이어서 행세한다. 그래서 윤선도(1587-1671)의 산중신곡에 나오는 임천한흥(林泉閑興)은 우주적 직관이다. 전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원림을 거닐면서 여유롭고 한가한 흥취에 접어드는 임천한흥의 묘사는 찾기 힘들다. 간단하면서도 명료한 생명의 약동인 엘랑비탈(élan vital)의 생기발랄한 행위와 임천한흥은 교접한다. 숲길 / 온형근 오지 않을 너를 기다리
고산 윤선도의 ‘산수지벽’고산 윤선도(1587~1671)의 ‘산수지벽’은 시경, 성과 경, 출처관으로 나누어 고찰할 수 있다. 산수지벽(山水之癖)이 있어 재물을 속바치며 원림을 조성하고 경영한 고산이다. 무엇이 고산을 고치기 어려울 정도로 굳어진 버릇이며, 지나치게 즐기는 병을 의미하는 ‘벽(癖)’에 빠지게 하였을까. 우선 원림을 나지막이 읊조리며 천천히 완만하게 걷는 미음완보(微吟緩步)로 거닐면서 시경(詩境)의 세계에 드는 행위를 먼저 떠올릴 수 있겠다. 고산에게 시
고산 윤선도의 ‘상우(尙友)’에서 배우는 원림 행위옛 것을 가져온다. 옛사람을 배운다. 과거를 복기하고 즐기는 취향을 레트로(retro)라 한다. 회상, 추억 등을 뜻하는 레트로스펙트(Retrospect)를 줄여서 쓰는 말이다. 인류의 어떤 순간마다 복고는 물결처럼 파고를 탄다. 이내 잠잠하였다가 어느 계제에 일렁인다. 그래서 복고주의는 항상 명맥을 유지한다. 파도처럼 높낮이가 있고 물결처럼 길고 짧음이 있을 뿐이다. 옛 것에 새로운 현대적 재해석이 더해지는 것을 ‘뉴트로(Newtro)’라
포화용수량의 원림을 수용하는 증폭된 호수면갈수기의 폭우는 급하다. 유속도 빠르다. 줄어든 저수지의 빗금을 금세 채운다. 새로운 호수풍광에 놓인다. 산비탈까지 증폭된 수면 안에 갈수기의 빗금을 간직한 채 남실거리며 찰랑찰랑한다. 원림의 열음정(悅音亭)에서 호수를 굽어본다. 숲의 나무 사이사이로 푸른 수면이 번뜩이며 일렁거린다. 원림 바깥에서 갈급한 기별 하나 접속한다. 먼발치에서 참나리 붉게 타올라 주변 사람의 얼굴이 화끈화끈 볼 발간 새악시란다.사실 갈수기를 채웠던 폭우의 며칠 동안은 몰랐다. 이후부터 원림은 계속 땡볕이었다. 바람
해남 ‘삼산막걸리 구도’와 만나다비 온다는 예보에도 감행한 전통건축 ‘수곡포럼’의 해남과 보길도 답사는 운 좋게도 우산 없이 2박3일을 마칠 수 있었다. 다녀오고 나니 물 폭탄 같은 비가 이틀을 내리 붓는다. ‘조원동 원림’의 저수지는 가득 찼다. 보에서 흘러내는 물소리가 폭포소리를 내며 급하게 흐른다. 호안에 식재된 버드나무는 물위에 공처럼 일정 간격으로 운율을 갖춘 채 줄기는 묻히고 수관만 떠있다.이렇게 비 내린 후면 해남 수정동 원림과 금쇄동 원림이 떠오른다. 비
‘열린원림문화’ 향유는 우아한 거닐기새벽 일찍 어둠이 채 가시기 전 원림에 다가설 때가 있다. 아뿔싸! 벌써 내려오는 사람을 본다. 이런 기시감은 처음이 아니다. 나는 이를 불가사의라고 일컫는다. 새벽에만 생기지 않는다. 밤늦게 내가 마지막 야간 산행이라 여기고 올라서는데 부스럭 하산의 인기척을 만나면서 급하게 ‘아! 이건 정말...’라면서 혼자 중얼대는 방언. 이때의 언어는 외계어였을 것이다. 동틀 무렵 – 임천한흥.178 / 온형근 임천으로 어둑한 발걸음 헛디디지 않아방금 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