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형근 박사
온형근 박사

 

높은 산 흐르는 물, 풍경은 그대로이고 초목은 다정하다

시인 조지훈은 「한국사상의 근거」(<한국사상>, 1959)라는 글에서 “최제우는 한국사상사에 있어서 최대의 인물이라 할 것이니, 그 사상은 이 민족정신문화 수천 년에 걸쳐 형성된 주체를 발양한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김용옥, 동경대전1, p65.에서 재인용). 수운 최제우(1824-1864)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 공을 세운 최진립(1568-1636)의 후손이다. 경주 최부자로 일컬어지는 가계가 최진립의 3남으로 이어지고, 최제우는 최진립의 4남으로 이어진다.

최제우는 21세에 활을 감추고 행상에 드는 ‘장궁귀상(藏弓歸商)’을 떠나 전국을 떠도는 주류팔로(周流八路)의 10년으로 조선의 운명과 세상의 흐름을 인식하는 안목을 기른다. 이후 다시 용담으로 36세인 1859년 10월에 돌아온다. 그리고 37세인 1860년 4월에 ‘무극대도’ 깨달음을 얻어 득도에 이른다. 유명한 ‘내 마음이 곧 너의 마음’인 ‘오심즉여심(吾心卽汝心)’으로 ‘동학론(논학문)’에 표현되었다(김용옥, 동경대전2, pp.118-119). 그 이전에 큰 마음 먹고 두 번이나 49일 수련을 양산 천성산 내원암과 적멸굴에서 했으나, 결국 용담으로 돌아와 득도하였다. 최제우는 <용담유사>의 ‘용담가’에서 이곳 경주의 경관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였다.

 

(1-2)

(......)

어화세상(世上) 사람들아 고도강산(古都江山) 구경ᄒᆞ소

인걸(人傑)은 디령(地靈)이라 명현달ᄉᆞ(名賢達士) 아니ᄂᆞᆯ가

ᄒᆞ물며 구미산(龜尾山)은 동도지(東都之) 쥬산(主山)일세

곤륜산(崑崙山) 일지ᄆᆡᆨ(一支脈)은 즁화(中華)로 버려잇고

(......)

-「용담가」, <용담유사>, 도올김용옥 역, 통나무

 

태어난 고도 경주의 강산을 극찬한다. 걸출한 인물은 영험스러운 지세에서 아니 나올 수 없다며 구미산으로 이어지는 산세를 기이하고 장쾌하다고 말한다. 이는 신라의 경주가 아니라 고려, 조선, 대한민국으로 이어지는 현재의 경주를 포함한다. ‘인걸지령(人傑地靈)’이나 ‘주산(主山)’, ‘곤륜산(崑崙山)’ 등이 풍수 용어를 사용하며 매우 뛰어난 ‘승지’라고 높이 세운다.

 

(1-6)

긔장(奇壯)ᄒᆞ다 긔장(奇壯)ᄒᆞ다 이ᄂᆡ운수(運數) 긔장(奇壯)ᄒᆞ다

귀미산수(龜尾山水) 죠흔승디(勝地) 무극ᄃᆡ도(無極大道) 닥가ᄂᆡ니

오만년지(五萬年之) 운수(運數)로다 만세일지(萬世一之) 장부(丈夫)로셔

조흘시고 조흘시고 이ᄂᆡ신명 조흘시고

귀미산수(龜尾山水) 죠흔풍경(風景) 물형(物形)으로 ᄉᆡᆼ겨ᄯᆞ가

이ᄂᆡ운수(運數) 마쳣도다 지지엽엽(枝枝葉葉) 조흔풍경(風景)

군ᄌᆞ낙지(君子樂之) 안일넌가 일텬지하(一天地下) 명승디(名勝地)로

만ᄒᆞᆨ쳔봉(萬壑千峰) 긔암괴석(奇巖怪石) 산(山)마다 이러ᄒᆞ며

(......)

-「용담가」, <용담유사>, 도올김용옥 역, 통나무

 

그리고 용담 일대 공간을 오만년의 운수를 지닌 곳이라고 한다. 최제우에게 ‘구미용담’, ‘구미’, ‘용담’은 ‘일천지하 명승지’로 최고의 승지이다. 계곡과 산봉우리가 기암괴석을 이룬다. 동학의 발상지라는 공간적인 지위는 현재진행형이고 영원하다. 최제우 사상의 대두는 이곳 용담 일대 공간의 인식 체계와 함께 이루어졌고, 전통적인 공간 인식 체계는 ‘풍수’에 기반한 뛰어난 장소성을 구현하는 지식으로 발현되었다. 1859년 울산살이에서 돌아와 자신의 이름 제선(濟宣)을 어리석은 백성을 구한다는 뜻으로 제우(濟愚)로 고친다. 깨치지 않으면 세상에 나가지 않겠다는 ‘불출산외(不出山外)’의 각오로 정진하고 다음해 1860년에 이곳 용담에서 득도한다.

 

부친 근암 최옥의 용담구곡가의 시경(詩境)

지금의 용담정은 ‘용담 위 다섯 칸 집터’에서 조금 위쪽에 위치한다. 부친인 근암(近庵) 최옥(1762~1840)이 네 칸 짜리 서당인 ‘용담서사(龍潭書社)’를 지어 성리학을 연구하고 제자를 교육한 곳이다. 부친에게 학문에 전념할 용담 일대의 공간을 마련해 준 인문지리적 안목은 조부의 탁월한 예지력에 기인한다. 이를 새로운 관점과 시경으로 승화시키며 원림으로 경영한 것은 부친의 산수 편력에서 비롯된다. 산수 원림을 좋아하여 명산대천을 유람하며 시문 짓기를 즐겨하였던 부친에 의해 용담정 일대는 주자의 구곡에 버금가는 공간으로 재탄생한다.

그제서야 비로소 부친인 최옥의 삶에 윤기가 서린다. 용담 일대를 원림으로 삼아 미음완보하며 시경을 창작하는 정성스런 세밀한 알아차림의 연속이다. 생명의 생동감을 몸소 체득하며 풍경을 분벌하는 시를 짓는다. 일일래 일왕래의 루틴으로 모든 것을 가능하게끔 이끈다. 용담서사를 거점 공간으로 캠프 삼아 매일같이 들리는 일일래를 실천한다. 거점 공간에서 오늘 가고 오고 할 일왕래의 시경의 장소를 선택한다. 일왕래의 리듬으로 노닐고 즐길 유완遊翫의 공간을 떠올리며 매일이 수행이다. 어느새 몸의 기억이 공간의 학습 경험과 맞물려 물아일체의 시경으로 자리한다.

실제로 부친인 최옥은 용담 일대를 ‘용담구곡가’를 지어 시경으로 남겼다. 강석근(2011)은 용담구곡가는 출판 문집에 없고 초본인 필사본에만 있는데, 후의 ‘용담이십육영’의 초고에 해당한다고 하였다. 용담 일대의 구곡은 백화담(1곡)-징심연(2곡)-풍대(3곡)-한설담(4곡)-와룡담(5곡)-백석뢰(6곡)-불노암(7곡)-단암(8곡)-선대폭포(9곡)이다. 이는 용담정 원림에 장소적 의미를 부여하여 경관의 체계를 확립한 시도이다. ‘용담구곡가’는 용담 일대의 시경을 읊었기에 경관의 원형으로 비정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그중 6곡인 백석뢰를 보면 다음과 같다.

 

6곡이라 남산의 백석(白石) 가지런하고 맑은 여울 흐르는데 (六曲南山白石齒齒澆淸瀨)

껍질 갈라진 푸른 등나무 고목은 상쾌한 자연의 소리 듣고 있네 (蒼藤古木披襟聽爽籟)

기꺼이 이 계곡과 산 이야기를 인간 세상에 전해 주고자 (肯向人間傳說此溪山)

노루, 사슴, 원숭이, 두루미 함께 모이기로 약속하네 (誓與麏䴥猿鶴來相會一)

-최옥, 용담구곡가, 6곡

 

흰 바위 사이로 흘러가는 여울인 백석뢰(白石瀨)가 6곡의 대상 공간이다. 구미산 정상에서 산줄기 타고 내려오며 발원한 물이 이곳 넓고 편평한 반석의 중층으로 물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멀지 않은 곳에 불노암이란 병풍바위가 있고 비류폭포를 이룬다. 그 한쪽을 돌아 푸른 늙은 바위와 맑은 시내가 조용히 흐르는데 이곳의 둥근 바위돌이 가지런하여 백석뢰라고 한다.

 

용담정 / 온형근

구미산 명산 산줄기 급하게 내려와 이룬 협곡조차

깊이를 알 수 없게 물밑 물소리로 대신할 뿐

드러난 물결마저 안개 속

천 개의 봉우리로 만 개의 계곡은

흐르는 물소리로 용담정 일대를 일깨운다.

 

​오를 때 숙였던 고개로

용담교에서 사방을 몇 바퀴나 뺑그르르 돌았을까

사방으로 놓칠 수 없는 크고 작은 빙폭氷瀑의 시선

다리 아래로 시원의 아득한 협곡이더니

​고개 들어 안산에서도 오래된 물줄기 멈춰 있다.

용담정에서 북쪽 방위 집터를 볼라 치니

숲가장자리 반듯하게 편 둔덕으로 안온하다.

 

용추각 올려 보니 층층으로 너른 판석 쌓은 듯

구미산 높은 줄기마다 내놓은 물줄기 반석 위로 흐르는데

높이를 달리하는 반석 한켠으로 흐르는 물소리

영롱한 소리 방울방울 돌탑 되어 지상을 수놓는다.

 

소쇄원 광풍각 계곡 물소리 울타리 허문다.

용담정 계곡과 만나더니

찌릿찌릿 몸의 기억을 더듬는다.

-(2023.01.02.)

 

새해를 맞이하여 수운 최제우의 동경대전과 용담유사를 읽다가 훌쩍 당일치기로 용담정 일대 취재 답사를 다녀왔다. 용담구곡가의 위치를 비정하기 위하여는 좀 더 협동연구가 필요하다. 그러나 내가 가장 끌렸던 이 겨울의 풍광이 용추각(과거 사각정)과 용담정 사이의 층층으로 펼쳐진 반석 공간이다. 구미산의 기운을 습합하기에 좋은 곳이다. 반석의 높고 낮은 층층으로 이어 떨어지는 물소리가 너무 맑고 영롱하다. 바위를 타고 흐르면서 바위로 떨어지는 물소리는 수량이 적더라도 아름다운 자연의 악기이다. 이곳을 조심스럽게 용담구곡가의 6곡의 풍광으로 비정한다. 물이 구미산 산줄기를 타고 선유대 아래 활원담에서 점차 넓어지고 반석으로 층층 내려와 우뚝하고 명랑하게 연단암과 운영담으로 떨어진다는 ‘용담이십육영병서’의 기술과 맞아떨어진다.

 

한국종합조경공사의 사적지 종합정비 개발계획

동학의 발상지인 용담정 일대는 1974년 경주국립공원으로 편입되었다. 이를 계기로 천도교에서 구미산 일대 유적지 및 주변 문화재를 ‘한국종합조경공사’에 의뢰하여 그해 10월에 종합정비 개발계획을 수립하였다. 이에 따라 1975년 4월 8일, 용담정을 포함하여 사각정(현재 용추각), 성화문, 포덕문, 다리 등을 신축하였고, 용담정에 이르기까지 2차선 포장도로를 마련하였다. 용담정은 당시 대통령 휘호를 받아 ‘용담수도원’이라는 편액을 달았다. 이를 1978년 떼내고 사각정에 걸었던 용담정 현판을 바꿔 달아 지금에 이른다.

 

와룡담의 겨울, 성화문과 함께(2023.01.02) / 용담정과 그 위 용추각 (2023.01.02)
와룡담의 겨울, 성화문과 함께(2023.01.02) / 용담정과 그 위 용추각 (2023.01.02)

 

사적지 종합정비 계획에 따라 헤아려 만든 용담정 등의 건축물과 구조물이 벌써 48년의 세월을 먹었다. 진입공간의 문이나 건축물, 교량 등의 어디서 본 듯한 기시감은 어쩔 수 없다. 현충사 등으로 이어진 전국의 사적지 종합정비 개발의 분위기와 기법이 몹시 닮았다. 종합정비 계발계획에 참여한 당시 ‘한국종합조경공사’ 설계주임이었던 심우경 교수는 전국의 사적지 조경에 대하여 새로운 시각과 설계 개념으로 다시 접근하여야 한다는 자괴감 섞인 반성적 사고를 자주 주장한다. 그는 서면 인터뷰에서 “1970년대 사적지 정비사업에 국적없는 조경을 시행하였다. 잔디밭에 구름향나무 군식 등등, 거의 비슷한 경관이다. 현충사, 오죽헌, 칠백의총, 불국사, 제승당 등등 많은 곳이 그러하다.”고 하였다. 이러한 견해를 긍정적이고 발전적으로 경청하여 조경계에서 국가 정책에 반영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산세를 보면 용담정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는 뚜렷하다. 구미산 정상에서 왼쪽으로 내려와 방향을 꺾어 고도를 낮추면서 이어진다. 그 기운을 용담정 뒤 암반이 강하게 품고 있다. 용담정에서 산줄기를 살피면 좌청룡, 우백호가 중첩되어 내·외를 중층으로 이룬다. 안산과 수구 또한 뚜렷하게 드러난다. 그러나 바람이 많고 일조의 부족과 강한 기운의 암반 등으로 일상생활의 영위보다는 구도의 수련터이다. 겨울이라 더욱 그늘지고 습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적지인 용담정은 학문 수양보다는 심산유곡의 대표적인 정자의 입지 여건을 지녔다. 이곳 용담 일대는 더위를 식히거나 오솔길을 걷거나 바위와 폭포, 계곡물 소리 등의 자연 에너지로 가득하다.

[한국조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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