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형근 박사
온형근 박사

 

학문과 수양의 장소가 한국정원문화의 원형

다시 살만한 곳에 대하여 생각한다. 「택리지」에서는 지리, 생리, 인심, 산수 네 가지를 살만한 곳인 가거지(可居之)라 한다. 지리와 산수는 지형, 생리는 경제, 인심은 사회적 조건이다. 지리는 풍수와 긴밀하여 배산임수, 단단한 지반, 질 좋은 물, 햇볕 양명한 탁 트인 지세와 만난다. 병풍처럼 둘러싼 산은 아늑하고 집 앞으로 물을 두면 두루 생명 유지에 더할 나위 없다. 뒷산을 주산으로 좌우 산줄기가 둘러싸고 계류가 좌우로 흘러 앞의 하천과 합류한다. 하천 너머 다시 안산이 있어 전후좌우의 산이 사신사(四神砂)를 이룬다. 이중환(1690~1756)이 말하는 계거(溪居)의 입지이다. ‘평온한 아름다움과 풍류의 운치인 맑은 경치가 있다. 또한 관개(물댐)가 좋아 경작하는 이익이 있는 곳이다’(惟溪居 有平穩之美 簫酒之致 又有灌漑耕耘之利).

 

초간정 맞은편 송림(2023.02.06.) / 초간정 주변 송림(2023.02.06)
초간정 맞은편 송림(2023.02.06.) / 초간정 주변 송림(2023.02.06)

 

번다한 세상으로부터 물러나와 깊은 계곡의 뛰어난 풍광을 즐긴다. 맑은 계류의 운치와 자신의 사유와 성찰을 도모한다. 그러면서 계류를 이용한 농업경영을 통해 경제적 기반을 확보한다. 정신을 맑게 하고 감정을 화평하게 하는 것은 한국정원문화의 요체이다. 초간정(草澗亭) 원림은 이중환이 말한 ‘계거’의 전형적인 입지이다. 권문해(1534~1591)의 초간정은 긴 벌판과 넓은 구릉지의 물가가 휘어서 굽어 들어가 매우 깊은 곳에 조영된 정자이다. 초간정 양쪽 기슭으로 계류가 흐른다. ‘운암지’와 ‘내지저수지’에서 흘러들어오는 계류이다. 우뚝솟은 양쪽의 거대한 암반이 도드라지게 자연 호안을 형성한다. 그래서 깊숙한 골짜기의 여운을 고스란히 형용한다. 그 암반 한쪽 위에 초간정이 위치한다. 때로는 여울소리로 화답하고 그윽한 소(沼)를 이룬다. 세월의 뜰녹 입은 이끼 낀 바위의 암벽을 마주보며 앉아 있자면 별유천지에 와 있는 듯 빼어난 경관을 한참 동안 만끽한다.

사람의 마음은 ‘선(善)’이지만 ‘기(氣)’로 인하여 욕망에 휩싸인다. 그래서 자연 본연의 순수한 ‘선’을 규범으로 삼아 본심을 잃지 않도록 착한 성품을 기르는 대상으로 자연을 매개로 삼아야 한다. 이황(1501~1570)의 자연을 바라보는 태도에 대한 빼어난 논지이다. 그러니 원림의 경영은 ‘성정의 올바름(性情之正)’을 회복하는 실천이다. 원림을 미음완보(微吟緩步)하면서 세밀한 관찰과 소통으로 도를 깨우치는 학문과 수양의 장소인 ‘장수지소(藏修之所)’가 한국정원문화의 원형이다. 초간정 원림은 계곡과 주변 송림과 잘 어울린다. 자연을 벗삼는 자기 수양의 심성을 경관으로 표출한 생활 공간이다. 함께 어울리는 공공장소로도 손색이 없다. 그윽하고 한가한 정경을 안겨준다.

 

최초의 백과사전 「대동운부군옥」의 집필 공간인 초간정사

초간정 원림은 본채인 ‘예천권씨 초간종택’에서 약 2㎞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초간정 원림이 위치한 계류는 매봉과 국사봉의 산줄기를 사이에 두고 만난 계곡의 수량이다. ‘운암지’와 ‘내지저수지’를 거쳐서 초간정 암반 앞에 흐르는 금곡천이다. 암벽 위에 축대를 조성하여 세운 초간정의 입지는 주변 산수의 영향보다는 스스로 계곡과 숲을 이루었다. 외부에 대하여 고요하여 세상일을 잊어버릴 만한 개별성을 지녔다. 독자적이고 주체적이며 자립적인 장소의 영역성을 확보한 정원이다. 초간정 난간에서 계류를 향해 앉으면 왼쪽에서 흘러들어 맞은편 절벽을 들이친 후 오른쪽 계류로 차분히 흘러나간다. 뒤를 돌아보지 않고 한참을 앉아 있으면 마치 섬처럼 느껴져 절해고도에 놓인 듯 하다.

 

예천 초간정과 초간종택은 2㎞ 떨어졌으며 운암지와 내지저수지에서 초간정 계류로 물이 흘러든다.① 초간정 원림 ② 예천권씨 초간종택 ③ 외원길 ④ 금곡천 ⑤ 용문산 자락 ⑥ 용문사 ⑦ 매봉 자락 ⑧ 국사봉 자락  ⓒ구글어스
예천 초간정과 초간종택은 2㎞ 떨어졌으며 운암지와 내지저수지에서 초간정 계류로 물이 흘러든다.① 초간정 원림 ② 예천권씨 초간종택 ③ 외원길 ④ 금곡천 ⑤ 용문산 자락 ⑥ 용문사 ⑦ 매봉 자락 ⑧ 국사봉 자락 ⓒ구글어스

 

권문해가 세운 초간정사(草澗精舍)는 본가와 떨어진 별서 원림이다. 그러나 성격은 강학과 집필의 공간에 더 비중을 두었다. 이곳에서 이수광(1563~1628)의 「지봉유설(1614)」보다 더 최초인 백과사전 「대동운부군옥(1589)」의 집필을 마무리하였다. 방대한 분량의 번역본이 420여년 만에 20권으로 완역되었다(남명학연구소 경상한문학연구회 번역). 중국 역사는 잘 알면서 정작 우리 역사에 문외한인 조선의 선비를 위하여 단군부터 조선 중기까지 역사와 문물을 집대성하였다. 그만큼 참고한 서적이 많아 서고를 갖추어 보유하고 있었다. 서고로 추정되는 백승각(百承閣)은 복원되지 않았다. 담을 경계로 현재 살림집으로 쓰고 있는 강학 장소인 광영대(光影臺)는 글 읽는 소리로 낭랑했겠다.

초간정 서북쪽 정면 3칸, 측면 2칸에서 4칸은 난간을 설치한 대청이고 2칸은 온돌방이다. 초간정 대청에서 ‘이웃한 풍광을 빌려’오는 인차(隣借), ‘우러러보는 경치’인 앙차(仰借), ‘구부려보는 경치를 조망’하는 부차(俯借)의 경관은 내원(內苑) 권역이다. 초간정 원림의 외원(外苑) 권역은 초간종택에서 초간정 사이의 동선에 놓인다. 죽림마을, 남티고개, 사시나무골 등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경관을 빌려서 향유하는 ‘응시이차(應時而借)’의 경관이다. 초간정에서 멀리 있는 경치를 빌려서 조망하는 계곡과 용문산 자락, 농경지 등의 ‘원차(遠借)’의 공간도 초간정 원림의 외원에 해당한다.

권문해의 ‘초간집연보’, 49세 2월에 ‘초간정사 완성’이라는 기록을 보면 다음과 같다. 

 

〇二月。草澗精舍成。先生雅好林泉。常有藏修終老之計。久縻州紱。非其志也。至是。愛汶水之下溪山明媚幽絶。卜築三間屋子。又於東畔巖下。鑿池養魚。種以松竹
2월, 초간정사가 완성되었다. 선생은 임천을 좋아하는 아취가 있어 늘 ‘책을 읽고 학문에 힘쓴다는’ ‘장수(藏修)’로 노년을 지낼 계획이었다. 오래도록 고을 원님으로 매여 있는 ‘구미주불(久縻州紱)’은 그의 뜻이 아니었다. 이에 이르러 문수(汶水) 아래 계류가 밝고 예쁘며 그윽하여 세 칸을 지었다. 또 동쪽 물가 바위 아래 못을 만들어 물고기를 기르고 소나무와 대나무를 심었다.
-권문해, 「초간집연보」 「초간집」, 한국고전종합DB

 

48세 12월에 공주목사를 사임하여 두 달만인 2월에 초간정사를 지었으니 예전부터 미리 작정하고 도모하였음을 추정할 수 있다. 감추어 닦는다는 ‘장수(藏修)’가 책 읽고 학문에 힘쓴다는 면학의 의미이며, 고을 수령으로 오래 매이는 ‘구미주불(久縻州紱)’에는 뜻이 없었다. 책 읽고 학문에 힘쓰는 면학의 ‘장수(藏修)’를 위하여 계류가 밝고 아름다운 ‘명미유절(明媚幽絶)’의 장소를 찾는다. 그리하여 별서 원림을 조영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곳에서의 면학과 집필로 최초의 백과사전인 「대동운부군옥」이 탄생한다.

 

계류에 우뚝 심겨진 충적암의 암벽과 거목의 맑은 송림

겨울 한 복판의 취재 답사인 초간정 원림의 풍치는 다소 경직된 소박함으로 가득하다. 초간정에서 바라보이는 건너편 사면은 푸른 솔잎으로 선명하다. 오래된 거목의 소나무가 군식 형태로 송림을 이룬다. 소나무 외에도 느티나무, 팽나무, 단풍나무, 때죽나무, 참나무류가 주요 식생이지만 겨울이라 송백의 푸르름만 돋보인다. 주변 식생 중 소나무와 느티나무가 우세 식생인데, 조영 초기부터 축대를 쌓고 소나무를 식재하였으며 느티나무를 심는 등 적극적인 조경공사에 대한 기록이 권문해의 개인 일기인 「초간 일기」 곳곳에 등장한다.

 

초간정 겨울 풍광(남에서 북, 2023.02.06) / 초간정 겨울 풍광(북에서 남, 2023.02.06)
초간정 겨울 풍광(남에서 북, 2023.02.06) / 초간정 겨울 풍광(북에서 남, 2023.02.06)

 

그렇게 찾은 예천은 초간정 원림을 비롯하여 선몽대, 회룡포 등 명승이 많다. 천연기념물 예천 천향리 석송령과 예천 근남리 황목근이 있다. 소나무인 석송령은 1927년, 팽나무인 황목근은 1939년에 등기를 마쳐 토지대장이 있고 세금을 납부한다. 둘 다 아들나무가 있어서 자라고 있다. 황목근의 아들나무는 오래 살라고 ‘황만수’로 작명하였다. 그리고 삼강주막 등 문화콘텐츠가 즐비하다. 좋은 계절을 찾아 오간다면 찬란한 풍광과 감동을 시의 풍경으로 읊을 수 있다. 겨울 초간정 원림의 계류는 콸콸 넘치는 물의 현란을 감추었으나, 꽝광 얼은 소(沼) 아래로 흐르는 물소리는 명랑하고 산뜻하다. 계류의 빙질이 단단하고 깨끗하여 오랜만에 올라서서 발 미끄럼을 타본다.

 

초간정사 호위 / 온형근


먼 길 쉬엄쉬엄 나르던 금곡천, 찬찬한 비탈로 접어들더니
물에 씻긴 매끈한 바위로  곡 긋고 폭포 소리로 흐른다.
매봉과 국사봉이 그려 낸 산골 물이라 긴 여정에도 울창

융기하여 비틀며 흘려내렸을 암반은 
마주한 거리만큼 떨어져 시내로 흐르는데 
정월 대보름 즈음한 얼음 바닥으로
햇살 반짝이는, 은빛 정지된 투영을 환호한다.

앞서 얼음 밑으로 빛나는 물방울 몸부림치더니 
암반 두들겨 차고 명징한 빠른 징소리  
돌로 입 헹구고 흐르는 물을 베개 삼아 한참을 소요하더니
석조헌夕釣軒 건너편 단애 밑으로 순순해져 흐른다. 

초간정사 난간에서 글 읽는 소리는 
담장에 걸려 넘어오지 못하고 
한 바퀴 휘돌며 콸콸 물 읽는 소리는 
망연히 바라보는 시간의 거처로 옮겨 다닌다.
세상의 시끄러움을 고요의 깊은 속내에 가둔다.

산 너머로 햇살, 기를 쓰고 얼음을 내리 쫀다. 
단단하고 빛나는 빙질의  얼음 위를 요동 없이
이쪽과 저쪽의 겨울 바위, 호안을 번갈아 누린다. 
맑은 솔바람 쓸어내는 호위, 그가 일어나 걷는다.

(2023.02.06.)

 

시골 조용한 들판으로 낮게 기울며 흐르는 시냇물은 움직임새가 없다. 눈 녹은 물로 생기를 회복하기에도 역부족이다. 그럼에도 초간정 계류에 접어드는 원림 입구 콘크리트 교량을 지나면서 굽이친다. 부딪히면서 내는 소리가 고요를 깨운다. 또박또박 걷는 구두 소리처럼 똑똑하다. 낮은 기울기임에도 어슷비슷 좌우로 그어 나가면서 높낮이를 달리한다. 그때마다 또렷하게 소리가 커진다. 커진 소리 앞에 참외에서 수박 크기의 시냇돌을 두들겨 찰싹댄다. 어느덧 초간정 아래 깊은 소(沼)에 이르러 꽁꽁 언 얼음 밑으로 사라진다. 그럼에도 차고 명징한 징소리로 몸을 부린다. 글 읽는 소리도 물 읽는 소리도 시간의 거처로 옮아간다. 세상의 모든 시끄러움을 고요의 깊은 속내에 가둔다. 맑은 솔바람을 쓸어내는 우뚝 솟은 양안(兩岸)의 암반의 호위가 초간정 원림의 시그니처이자 개성이고 대표하는 상징임을 겨울이라 더욱 뚜렷하게 헤아린다.
 
[한국조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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