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젊은 학자들이 주희의 무이구곡 경영에 주목한 사실

온형근 박사
온형근 박사

 

국내에 순수하게 조경문화답사를 이끌어온 단체가 있다. 1999년 여름 원주 판부면의 치악산 자연휴양림에서 창립총회를 열었으니 24년의 농익은 답사 동인이다. 동인의 숫자는 들락날락하여 연인원 스무 명에 육박하였고, 지금은 8명의 동인이 이끈다. 답사보고서 작성이 동인의 조건이며 몇 권의 답사 동인지를 꾸렸다.1) 조경문화답사 동인 『다랑쉬』의 이야기다. 이제 친목은 가족이 되었고 답사는 춘분, 하지, 추분, 동지로 삼육구십이월 연 4회이다. 답사 주제를 정하고 장소, 식당, 숙소까지 전문여행사 못지않게 손발이 착착 맞는다. 다랑쉬 동인과 함께 대전권 답사를 하였다. 남간정사와 유회당, 국립대전현충원, 대전시립미술관의 1박 2일 일정이다.

혼자 취재 답사하는 것은 임의롭다. 현장에서 임장감 있는 시를 쓰거나 글을 남길 수 있는 순간의 소중한 선택이 있어 자유롭다. 동행과 함께 하는 답사는 좀 더 여유롭고 정서적 교감이 충만하여 값지다. 남간정사 답사는 그러한 측면에서 동인끼리 서로 느끼는 감흥을 엿볼 수 있었다. 특정한 곳에 서로 몰리기도 하고 흩어지기도 한다. 가령 남간정사에서는 오랫동안 머물렀고 인함각 누마루에서 한동안 쉼처럼 편안하게 어울렸다. 반면에 우암 송시열의 유물관에서는 흩어져 나누어 서성였다.

속칭 ‘우리 주자 선생’으로 흠모 되었던 주희(1130~1200)는 무이산 계곡에서 배를 띄우고 읊은 노래인 「무이도가」 10수로 조선의 젊은 학자들의 뇌리에 강력한 원림 문화를 선사한다. 퇴계의 도산구곡과 용운정사, 율곡의 고산구곡과 은병정사, 우암의 화양구곡과 남간정사는 그러한 맥락에서 무이구곡을 잇고, 무이정사처럼 강학, 독서, 서재, 제사, 은둔, 수련, 음풍농월의 특징이 뚜렷해지는 계기를 이룬다. 남간정사의 낮은 정문은 머리를 숙이게 한다. 머리를 숙인다는 것은 순간 자신을 살피는 계기를 남긴다. 곧바로 짙은 수면의 연못이 펼친다. 연못을 내려다보는 건물이 남간정사이다. 연못에 비치는 건물과 왕버들, 왕벚나무, 배롱나무, 말채나무 등의 수목은 북쪽 언덕 사당 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으로 물결을 내며 일렁인다. 반영이 아름다운 곳이다. 연못 호안 석축과 연못 동쪽 암반이 잘 어울린다. 남간정사에 앉은 사람과 암반에 기대앉은 사람이 서로 운을 띄우며 시를 짓거나 암송하기에 딱 좋은 인지 거리이다. 이 거리는 흥취를 나누기에 더할 나위 없어 서먹한 사람과 격식을 따져 인품을 살피기에 참 좋은 간격을 두었다.

 

부끄러울 치(恥)자 한 글자에 담긴 우암의 성의와 정심과 수신

남간정사(南澗精舍)의 ‘남간’은 햇볕 잘 드는 남쪽으로 흐르는 시내를 말한다. 정사는 주자학을 신봉한 조선의 성리학자가 ‘무이구곡도’의 5곡인 ‘무이정사’를 모방하면서 정착한다. 정사는 나의 본성이 곧 우주의 이치라는 ‘성리(性理)’의 학문을 공부하고 연구하며 토론하는 장소이다. 동쪽 계곡으로 흘러오는 물은 연못으로 떨어지고 대청 아래 홈을 통하는 다른 물줄기와 연못에서 합친다. 이러한 구성은 남간정사 입지의 독특한 성격을 가감없이 잘 드러낸다. 샘이 솟으니 물길을 만들고 이를 담는 연못을 이루었다. 한여름 대청마루에 앉으면 비 온 뒤 콸콸 솟아 흐르는 계곡물로 시원타 할 감탄사가 들린다. 현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구체화한 형상이나 이념으로 구현하고자는 우암 송시열(1607~1689)의 사상과 철학을 엿볼 수 있다.

「송자대전」의 우암의 연보를 보면 29세에 회덕 비래동의 천석泉石(산수풍경, 조경 경관)을 구경하고 이어 서재를 지었다고 한다. 여기서 글을 읽고 가르쳤으며 나가지 않았으며 못을 파 연을 심고 축대를 쌓아 대나무를 심었다. 그러던 중 말년에 다시 이곳을 찾았다. 화양구곡과 암서재를 버리고 남간정사로 되돌아온 것이다. 우암의 8대손 송달수의 「남간정사중수기」에는 남간정사의 그 당시 풍광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산기슭에 가까우므로 높은 곳을 점유하여 멀리 보면 동북쪽으로 숲과 산이 있고 서남쪽으로 들이 있어 푸르고 짙은 정경이 사면을 에워싼다. 밖에서 바라보면 얕은 골짜기가 되는데 그 가운데로 들어가면 저절로 하나의 구획을 이루어 너럭바위가 있다. 조그만 시내가 기울어져 그 면을 덮고 흐르니 청량함은 마실 만하고 물소리는 들을 만하다. 큰 가뭄에도 역시 마르지 않아 물줄기가 끊기지 않고 비가 오면 격렬한 여울이 볼만하다. 대개 또한 이 지역이 상쾌한 곳이다.

-송달수, 「남간정사중수기」, 『수종재집』 9권-기, 한국고전종합DB.

 

지금 남간정사는 들이 있던 서남쪽은 도시화 되었고, 주변 구릉지에서 맑은 바람이 시원하게 내려온다. 연못의 반석 위로 시냇물이 좋은 소리로 흐르는 데에 착안하여 정사의 이름을 남간이라 하였다. 청량한 물소리와 여울이 볼만한 이곳의 풍광은 한마디로 위치가 높아서 앞을 내려다보기 좋으며 시원하고 산뜻한 그야말로 상쾌(爽快)한 곳(盖亦一區爽塏地也)이라 하였다. 남간정사를 두루 살피고 올라가니 우암사적공원의 유물관이 있어 들린다.

몇은 그냥 지나쳤지만, 유물관에서 한 시대의 거목인 우암 송시열의 숨결을 고스란히 느껴보기로 한다. 늘 우암의 초상을 보면 간결하면서 묵직한 인품에 감화되곤 한다. 초상화에 스스로 경계하는 ‘주린 배 참으면서 책을’ 보았고, 볼품없고 학문이 텅 빈 ‘너는 단언하건대 책벌레구나’라는 자찬을 남겼다. 책을 보고 또 보면서 평생을 학문의 깊은 정심(正心)공부를 한 대학자의 면모를 초상의 깊은 눈매에서 발견한다. 그러나 유물관에서 가장 오래 머물며 자리를 뜨지 못한 것은 부끄러울 치(恥)자 한 글자 편액 앞이다. 도저히 지나칠 수 없다. 부끄럽다는 그 무엇인가가 온몸을 회오리치면서 소름 돋듯 전율을 일으킨다.

17세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은 새로운 국제 질서를 구축한다. 조선은 강력한 국가 건설에 필요한 이념의 구현이 필요하였다. 이 역할을 견지한 인물이 송시열이다. 남간정사는 송시열의 만년인 1683년에 제자들에게 강력한 국가 이념 구축을 요구한 교육의 건물이다. 후학을 양성하며 병자호란의 치욕을 씻기 위한 북벌정책을 마련하였다. 부끄러울 치(恥), 한 글자를 이렇게 온몸에 새기듯 눌러 쓰다니, 보는 사람이 절로 부끄러워지는 것은 왜일까. 그러고 보니 살아내는 일이 부끄러움투성이다. 꽤 떳떳하다고 애쓰고 살았지만, 점점 부끄러운 일만 는다.

 

남간정사와 우암사적공원 (자료 : 구글어스)  /  부끄러울 치(유물관, 2023.03.11)
남간정사와 우암사적공원 (자료 : 구글어스) / 부끄러울 치(유물관, 2023.03.11)

 

 

인함각 누마루에서 만난 오후 2시50분의 매화 핀 천상의 풍광

토요일의 남간정사는 친구와 함께 나들이 나온 맑은 영혼 여기저기 자리했다. 정확하게는 우암사적공원이다. 조성된 한옥 건물의 누마루마다 사람과 누정이 기막히게 어우러진다. 우측 인함각 누마루는 마침 하얀 매화가 눈부시다. 그곳 계자난간에 걸터앉은 앳된 여대생 둘이 다정한 눈길로 서로를 마주 본다. 아까부터 이야기는 장강 대하이다. 가끔씩 흰 치아를 드러내면서 고개를 하늘로 들어 올린다. 왼쪽 명숙각 누마루는 나이 그윽한 노부 둘이 마주하여 서로를 쳐다본다. 산수유 노오란 물감 쥐어짜듯 앉은자리 배경이 막 그린 수채화이다. 보온병에 담아 온 차를 나눠 마시며 멀찌감치 찻자리를 띄워 앉았다.

야트막한 언덕 구릉으로 이어진 누마루에서 남간정사를 바라본다. 남간정사는 정면의 시선을 의식한다. 내려다보는 따가운 시선을 비켜 단정하다. 고풍스럽고 세월의 풍파를 건너와 이제 모든 게 용서가 되는 듯 고즈넉하다. 지금은 매화와 산수유가 선명하다. 곧이어 개울 따라 개나리 만개하면 또 한 번 풍경가절에 들겠다. 동춘당을 들리지 못했으니 개나리 피는 풍경가절에 나도 껴볼 참이다.

 

인함각 누마루에서 바라본 매화 (2023.03.11.)  /  명숙각을 향해 피는 산수유(2023.03.11.)
인함각 누마루에서 바라본 매화 (2023.03.11.) / 명숙각을 향해 피는 산수유(2023.03.11.)

 

남간정사를 다녀와 시 한 편 남긴다.

 

남간정사 왕버들 / 온형근

계족산에서 내려온 시냇물 연못에서 멈췄다.

 

드러난 너럭바위 수위의 연못가, 잠시 걸터 앉아

소리쟁이 날 듯 날렵하게 바쁜 한낮을 가까이한다.

 

남쪽 향한 계곡 시내는 어디서부터 끊겨 말랐을까

남간정사 주초 올린 누 아래 흐르던 물은 물길로만 남아

누마루 좌정한 엉덩이 시원할 여름 한철 기다렸을까

 

왕버들, 용트림 몇 번일지 더 이상 늘어질 근력 없어

매달린 몸체는 새까맣게 타들어 푸른 기운 잃었으나

우암이 심었다는 정사 뒤 언덕 배롱나무,

지원 없이 거듭 새 줄기로 복원되었으니 장한 일

 

우암도 뒷짐지고 왕버들 그늘을 거닐었을,

아직 그대로인 왕버들 팔각정 양쪽에서 위용 갖춘다.

굵직한 새싹의 눈을 틔워 짙어진 연두 터질락 말락

만개한 매화와 산수유 하나도 부럽지 않은

우암의 부끄러울 恥 한 글자만 남간정사 가득 맴돈다.

-2023.03.12.

 

남간정사 동쪽 계곡에서 출입하는 시냇물이 연못 반석으로 만나는 장면을 떠올린다. 남간정사의 원형 경관인 물 풍경이다. 짙은 그림자로 깊어진 연못에는 소리쟁이가 날 듯이 논다. 정사의 누마루에 앉을 수는 있을까? 오래된 왕버들 한참을 바라보며, 새까맣게 타들어 푸른 기운 잃은 마른 줄기를 떠올린다. 수상한 시절에 저 타들어 간 줄기처럼 부끄러움도 바짝 졸아들지 모른다. 반면에 남간정사에서 조금 나오면 산행 가는 길목에 새로 지은 팔각정에 눈길이 멈춘다. 봄의 기운으로 양옆의 왕버들은 매우 건강하고 우람하다. 부끄러울 치(恥)자, 한 글자에 한없이 왜소해지다가 저 왕버들의 푸른 기개를 보고 기운을 차린다.

[한국조경신문]

 

1)식물원의 발전 방향(2000), 한국의 정자 문화(2001), 한국의 천연기념물_식물(2002), 한국의 팔경 문화(2003), 현대조경 비평(2004), 계간 조경문화답사동인 다랑쉬1-생명력(2005), 2-생명력(2005), 3-생명력(2005), 4-한국의 국립공원(2006) 등의 책과 E-Book이 발간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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