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형근 박사
온형근 박사

원림문화의 현대적 향유

한국의 원림문화는 약동하는 문화일까, 망실되는 문화일까? 아니면 한국전통조경학회나 문화재청, 학교나 연구기관에서 다루는 향상되는 고급 연구 주제일까? 아니면, 고루하고 한물간 구태의연한 소외의 지대를 보존하는 영역일까? 나는 항상 궁금했다. 이를 대표하는 학회는 ‘한국전통조경학회’이다. 그러니 학계에서는 일반적으로 ‘전통조경’이란 용어로 통용하고 있다. 이러할 때, 그 ‘전통’이라는 용어와 ‘조경’이라는 용어가 합쳐진 애매함이 자꾸 등뒤를 붙잡는다. 그 와중에 문화재청에서는 ‘원림’이라는 용어를 중심으로 ‘역사문화경관’에 해당하는 영역을 통칭하고 있다. 아직 용어조차 마땅하지 않아 서로 다르게 사용하고 있고, 그러한 이유 또한 충분하여 고개를 끄덕일만하다.

일찌감치 ‘한국정원문화(韓國庭苑文化)’로 개념을 전개한 백촌 민경현(1933-2005)은 뜰(庭)과 들(苑)의 어의로 한국적인 정원문화를 풀어냈다. 한국정원학회 초대 회장을 역임한 백촌은 ‘庭’을 건물이나 울타리에 둘러싸인 뜰의 개념으로 기능에 따라 구분하고, ‘苑’은 동산이나 넓은 들과 산림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확장하였다. 따라서 ‘한국정원문화’는 ‘전통조경’과 ‘원림’과 현대적 의미의 ‘조경’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다. 과거, 현재와 미래를 관통한다. 공간적으로는 픽처레스크(picturesque)한 ‘정원(庭苑)’이, 행위의 관점으로는 자연과 인간이 만들어내는 ‘문화(文化)’가 중심어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뜰과 들’의 개념을 확장하여 고려대학교 심우경 교수는, 최근 ‘한국전통조경학회’에서 중국의 원림, 미국의 조경, 일본의 조원을 벗어난 우리 용어 정립이 필요한 시기라 인식하고 「뜰들뫼 가꾸기」로 용어를 대체하여 연속적으로 학술발표를 하였다.(2019년 한국전통조경학회 추계학술대회, 「한국전통 뜰들뫼 문화의 본질 2: 물의 쓰임」)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의 연재 제목을 <열린 원림 문화 향유>로 삼았다. ‘조경’과 ‘전통조경’과 ‘원림(園林)’이 안고 있는 용어의 한계를 연재의 주제인 ‘노닐고 즐기는’ 향유에 맞게끔 하다 보니 일차적으로 ‘원림(苑林)’으로 사용하는 것이 연재 취지에 마땅하다고 보았다. 2022년 ‘제8회 대한민국 한옥건축 박람회’에서 발표한 「시경으로 본 남도원림문화의 향유」의 마무리는 이렇다.

 

모쪼록 한국의 원림문화(苑林文化)가 지리적으로 가까운 접근성으로 인식되어, 열린 시민 공간으로 거듭나기 바라며, 당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생태적 상상력과 생명의 약동으로 '정성스러운 알아차림'의 리추얼라이프(ritual life, 誠과 敬)가 되는 일상이기를 희망합니다.

-온형근, 「시경으로 본 남도원림문화의 향유」 2022. 10.30.

 

원림문화의 향유를 의식을 치루는 ‘리추얼라이프’의 경지에 두었다. 그리고 이를 유교의 실천 수행인 정성스러움이 전제되는 성(誠)과 공경하고 삼가는 도덕적 정신인 경(敬)의 심성으로 접근하였다. 처음 연재를 시도할 때 ‘전통조경’이든 ‘원림’이든 학술로 행세하지 않는 방향이어야 한다고 여겼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가까운 삶의 근거에서 실천의 영역으로 시민의 품에서 생태 문명을 향한 열린 시민운동으로 번지기를 기대하였다. 고산 윤선도(1587-1671)의 원림 경영의 모범을 따랐다. 고산은 사는 곳마다 그곳이 유배지일지언정 원림을 구상하고 실행하였다. 그리고 시경으로 원림을 노래하였다. 대체 그런 실행력은 어디에서 근거하는가를 매일같이 되새기며 상상하였다.

 

노닐고 즐기는 한국정원문화로 다가서다

첫 번째 연재는 ‘송간세로(松間細路)’로 시작하였다. 원림의 어느 곳이나 만날 수 있는 소나무가 만들어내는 좁은 길이다. 물론 진달래가 필 때면 놀라운 풍광을 완성한다. 이때부터 노닐고 즐기는 한국정원문화를 떠올렸다. ‘거닐기 풍류’라는 매우 훌륭한 콘텐츠와 만난다. 거닐기 풍류’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를 궁구하였다. 그때 흐뭇하게 미음완보(微吟緩步)가 찾아왔다. 「송간세로」라는 자작시에서 ‘능선을 따라 가늘고 긴 길에는/ 가지 말라고 손 내미는/ 꽃 진 국수나무 길/ 미음완보 않는다면/ 금세 달라붙어 하나의 덤불로 꽉 막힐 난감’으로 거닐 수 있었다. 낮게 읊조리며 천천히 완만하게 걷는 ‘미음완보’의 경지를 터득한 것이다.

그리하여 ‘미음완보’는 ‘노닐고 즐기는 한국정원문화(韓國庭苑文化 遊翫錄)’의 핵심 키워드로 빈번하게 등장한다. 원림을 노래한 자작시에도 수차례 등장하고, 원림 문화 향유의 방법을 기술하는데에도 지속적으로 나타난다. 그 근원이 가사문학의 첫 장을 열었다는 정극인(1401-1481)의 「상춘곡(賞春曲)」이다. ‘송간세로’와 ‘미음완보’가 모두 상춘곡에서 나왔다.

상춘곡에는 한국정원문화의 정수가 모두 들어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옛사람 풍류’는 옛사람을 사귀는 ‘상우(尙友)’와 통하고, ‘산림에 묻혀’ ‘수간모옥을 벽계수 앞에 두고’ ‘송죽 울울리에 풍월주인’되어 ‘도화앵화는 석양리에 피고’ ‘녹양방초는 세우 중에 푸르다’ ‘수풀에 우는 새는’ ‘소리마다 교태로다’ ‘물아일체이 흥인들 다를쏘냐’ ‘정자에 앉아 보니’......이루 다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로 「상춘곡」 자체가 한국정원문화의 헌장이나 다름없다. 한국정원문화는 「상춘곡」으로 서론 삼아 전개하여야 하는 당위를 밝힌 셈이다.

 

27행-미음완보(微吟緩步)ᄒᆞ야 시냇ᄀᆞ의 호자 안자

28행-명사(明沙) 조ᄒᆞᆫ 믈에 잔 시어 부어 들고

29행-청류(淸流)ᄅᆞᆯ 굽어보니 ᄯᅥ오ᄂᆞ니 도화(桃花)ㅣ로다

30행-무릉(武陵)이 갓갑도다 져 ᄆᆡ이 긘 거인고

31행-송간(松間) 세로(細路)에 두견화(杜鵑花)ᄅᆞᆯ 부치 들고

32행-봉두(峰頭)에 급피 올나 구름 소긔 안자보니

33행-천촌 만락(千村萬落)이 곳곳이 버러 잇ᄂᆡ

34행-연하일휘(煙霞日輝)ᄂᆞᆫ 금수(錦繡)ᄅᆞᆯ 재폇ᄂᆞᆫ ᄃᆞᆺ

-정극인, 「상춘곡」 일부

 

「상춘곡」 27행에서 34행 사이에 <열림 원림 문화>의 현대적 적용의 키워드인 ‘미음완보’가 등장한다. 어김없이 ‘송간세로’도 따라 나온다. 지금 가까운 도시의 숲을 원림으로 삼아 원림문화를 당장 향유하고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이다. 미음완보를 근간으로 삼아 다음과 같이 원림문화의 현대적 향유 기법을 적용하였다.

 

가까운 ‘원림문화향유’-조원동 원림 구성도(2021.09.04.)
가까운 ‘원림문화향유’-조원동 원림 구성도(2021.09.04.)

 

 

그렇게 탄생한 것이 ‘미음완보’로 송간세로를 노닐기, 벽수앵성길 노닐기, 일일래, 일왕래로 죽장망혜를 갖추어 즐기기, 신명으로 바라보는 풍경, 원림에서의 닭울음소리(계명성)가 주는 의미, 일상회복 가치와 치유 기반, 단애취벽의 재발견, 시흥으로 만나는 토포필리아, 원림조영의 쉐입 그래머, 원림의 소박과 검소, 원림에서의 명상과 풍류, 계절의 순간적 풍광 즐기기, 우아한 거닐기 루틴, 알아차림의 정성스런 체험, 현장 즉석시 창작, 여름 계곡 삼매, 원림 향유 유전자로서의 한거, 살아있는 명승 신화, 생명의 약동인 엘랑비탈과 괄목상대, 일시적 경관, 곱고 평온한 풍광으로 원림문화의 현대적 향유 방법을 쉼 없이 제시하였다. 이 모든 게 2022년 1년을 한국조경신문에 연재한 내용이다.

 

시경으로 본 한국정원문화 톺아보기

이제 2023년에는 새로운 기획 취재 답사를 도모한다. 한국정원문화를 톺아보기 위하여 시경(詩境)에 주목하는 방편을 사용한다. ‘시경(詩境)으로 본 한국정원문화’를 기획한다. 이미 들어가는 말인 시경의 개념과 소쇄원 원림, 서석지 원림, 보길도 원림, 백운동 원림은 21회(2022.10.19.)부터 25회(2022.12.14.)에 걸쳐 기획 취재의 막을 올렸다. 철저하게 원고 마감 직전 주에 한국정원문화 현장의 취재 답사를 원칙으로 삼는다. 직접 원림 답사를 통하여 당대의 시문을 통해 경관과 풍광을 파악한다. 아울러 이러한 역사문화경관 현장에서 이 시대의 시경으로 시를 창작하고 한국정원문화의 중심 향유 방법으로 제시한다. 현장에서 계절마다 다르게 느껴지는 특유의 관점을 감성적 직관으로 접근하여 살핀다. 한국정원문화를 옛사람의 시경으로 느끼고 이해하며 지금의 시경으로 창작하여 시대를 뛰어넘는 정원문화의 교감을 시도한다. 조경 분야에서 감성적 직관의 공감대를 공유하는 차원을 환대하기 위함이다.

루·정·대의 민가 정원을 몇 개의 구분 방법으로 나누어 다루고, 전통마을의 공동 정원, 서원 정원, 사찰 정원, 공공 정원, 능묘 정원, 궁궐 정원으로 확대한다. 민가 정원의 경우 저택 정원과 별당 정원, 별서 정원으로 구분하고 공공 정원은 산성과 성곽, 제단, 사당의 뜰, 읍성의 뜰, 관가의 루·정·대로 구분하여 취재 답사의 틀을 구성한다.

이 연재는 2주에 1회씩 장소를 정해 특정 장소 하나를 여러 번, 긴 시간을 느껴보고 취재 답사하여 진행한다. 회를 거듭할수록 전국 취재 답사로 점진적으로 나아갈 것이다. 연재 계획은 격주 1회 이상이다. 주제, 공간과 장소, 담기는 미학적 의미, 원림의 향유 방법, 계절의 변화와 낭만을 공유할 수 있도록 연재 분량을 구성한다. 시 창작품과 작품 해설을 함께 시경으로 구성하여 「한국정원문화」가 시경詩境과 만날 수 있는 맥락화를 시도한다. 정연하게 비교하고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로 연결되는 ‘시경으로 본 한국정원문화’의 이론과 실제를 실질적으로 구현하고자는 집필 방향이다.

[한국조경신문]

 

저작권자 © Landscape Time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