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지정 문화유산인 붉은빛 ‘화순적벽’ 일대를 주유하다.

적벽의 옛사진 '설렘화순 버스투어' ⓒ화순군청
적벽의 옛사진 '설렘화순 버스투어' ⓒ화순군청

 

온형근 문화유산조경 박사
온형근 문화유산조경 박사

화순적벽은 하나의 적벽이 아니라 화순군 이서면 창랑리와 장항리 일대를 포함한 동복천 상류 창랑천과 영신천 유역에 솟아 있다. 조선시대 신재(新齋) 최산두(崔山斗, 1483~1536)가 이곳의 자연 공간인 절벽을 인문 공간의 ‘적벽(赤壁)’이라 부른 이후 많은 시인 묵객이 응답한다. 석천(石川) 임억령(林億齡, 1496~1568), 제봉(霽峰) 고경명(高敬命, 1533~1592)의 시는 적벽의 아름다운 경관을 표상한다. 고경명의 「유서석록」이나 학봉(鶴峰) 김성일(金誠一, 1538~1593)의 「유적벽기」 또한 이곳의 경관을 잘 드러내는 글을 남긴다. 여지도서와 대동지지에도 이곳 적벽을 따라 우후죽순 세워진 한국정원문화의 흔적을 기록한다. 적벽을 기록한 임억령의 「달천석탄(獺川石灘)」이라는 시를 읽는다.

임자가 석전을 지내려고                            林子將釋奠임자장석전

중추에 학사에서 묵었다.                           中秋學舍宿중추학사숙

조각달이 정원에 비치는데                        缺月可庭院결월가정원

좌선하는 것처럼 홀로 의자에 앉았네    枿坐南床獨얼좌남상독

(……)

아침에 일어나 멀리 바라보니                   朝起遠望之조기원망지

아래로 맑은 강이 흐르고 있다                  下有澄江淥하유징강록

무등산이 근원이 되어                                 源于無等山원우무등산

백 리를 흘러 동복에 이른다.                     百里至同福백리지동복

(……)

육년 동안 이 여울을 대하였으니             六年對此灘육년대차탄

장량이라도 또한 족하다고 말하겠지     於良亦云足어량역운족

비록 십 실의 현감이지만                           雖云十室監수운십실감

구주의 수령과도 바꾸지 않겠다.            不換九州牧불환구주목

 

-「달천석탄」, 석천선생시집 권1, 한국고전종합DB

달천은 지금의 적벽을 말한다. 「달천석탄」은 ‘적벽의 돌 여울’에 대한 시이다. 임억령이 1533년 동복 현감으로 부임하여 1538년 6년 동안 근무한다. 최산두와 임억령은 그렇게 만나 화순적벽을 함께 시경(詩境)의 공간으로 공유한다. 16세기 적벽 주변에는 물염정, 환학당, 창랑정 등이 있어서 적벽 관련 시를 읊을 수 있는 근거지로 역할 하였음을 고경명의 「환학당(喚鶴堂)」, 「창랑육영(滄浪六詠)」 등 적벽 관련 시로 알 수 있다. 창랑의 여섯 가지 경치를 읊은 ‘창랑육영’은 적벽의 새벽안개인 적벽신하(赤壁晨霞)로 시작하여 저녁 짓는 연기, 눈 내린 겨울 낚시, 물에 가득 찬 달, 떨어지는 저녁놀, 가을 붉은 단풍으로 묘사하였다.

고경명의 적벽 유람 내용인 「유서석록」은 적벽의 자연경관을 그리고 인문 문화 경관을 다룬다. 소동파가 중국의 무창 적벽을 세상에 알린 것처럼 최산두, 임억령 등의 작품으로 남국의 명승지가 되었다고 한다.1) 김성일의 「유적벽기」는 화순적벽을 다룬 독립적인 글이다. 고경명의 「유서석록」보다 12년 후인 1586년에 기록한 글이다. “동복(同福)은 호남에서 풍광이 아름다운 곳으로 손꼽히는데, 기이하면서도 아주 뛰어나 온 경내에서 으뜸가는 명승지로는 적벽(赤壁)이 있을 뿐이다.”라고 하였다.2)

1) 김대현 외역, 「유서석록」 국역 무등산유산기, 광주민속박물관, 2010.

2) 김성일, 「유적벽기」, 학봉전집 학봉속집 제5권 기, 한국고전종합DB.

대한민국 명승인 ‘화순적벽’ 주변에 현존하는 누정 원림

동복호에서 옹성산을 향하여 바라본 송석정 풍광, 「송석정 바로 알기」, 광산김씨 석정공 문중 자료에 있는 송석정 사진(왼쪽), 송석정에서 보산리 산줄기 바라보다(오른쪽)
동복호에서 옹성산을 향하여 바라본 송석정 풍광, 「송석정 바로 알기」, 광산김씨 석정공 문중 자료에 있는 송석정 사진(왼쪽), 송석정에서 보산리 산줄기 바라보다(오른쪽)

 

화순의 누정 원림에서 송석정(松石亭)을 사진으로 보았다. 화순적벽 일대에서 동복호를 끼고 주변을 운치로 다독이는 풍광이다. 일반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정자이다. 1997년에 발간한 화순누정집에 송석정은 「현존하지 않는 누정」편에 소개한다.3) 조선 숙종 대 광산김씨 31대손 석정처사(石亭處士) 김한명(金漢鳴, 1651~1718)이 건립한 정자이다. 17세기인 1687년에 건립하여 1880년대에 중건하였다고 한국전쟁으로 소실된 것을 후손의 노력으로 2003년에 복원하였다.4) 동복지(同福誌) 누정 조에 ‘화순적벽’ 주변에는 크고 작은 70여 개의 누정이 세워졌다고 기록하였는데, 현재 물염정, 망미정, 송석정이 남아 있다. 나머지는 소실되어 기록으로만 남았다.

3) “동복읍지 및 화순군지 등에 보인다. 이양면의 송석정과는 동명이정이다. 이서면 석정리에 있으면 처사 김한명의 소축이라고 한다.”, 「송석정」, 화순누정집, 화순문화원, 1997, 627쪽.

4) 송석정, 전남 화순군 이서면 보산리 194-3, 광산김씨 문정공파 석정공 문중에서 세운 안내문 참고함.

송석정의 위치, 전남 화순군 이서면 적벽로 630-50(보산리 194-3) ⓒ구글어스
송석정의 위치, 전남 화순군 이서면 적벽로 630-50(보산리 194-3) ⓒ구글어스

송석정은 호숫가의 거대한 응회암 암반 위에 맑은 바람 머금고 나룻배를 접안(接岸)한다. 요즘은 주로 성묘하기 위해 배를 띄운다고 했다. 함께 찾은 광산 김씨 문중의 대학 후배에게 이곳은 남다르다. 동복호로 이름 불리는 이곳은 광주광역시의 식수원 공급을 위해 수몰된 몇 개의 마을이다. 청동기 시대 고인돌이 있었던 유서 깊은 오래된 마을이다. 송석정에서 넓게 펼친 호수 저편은 옹성산에서 길게 굽이쳐 뻗은 보산리 일대이다.

화순은 누정 원림의 보고이다. 국가 지정 명승인 화순적벽 일대에 물염정, 망향정, 망미정, 송석정이 각각의 위치에서 물염적벽, 창랑적벽, 보산적벽, 화순적벽, 이서적벽, 노루목적벽이 이어진다. 물염정과 김삿갓 시비 공원은 여러 차례 들렸다. 그러나 망향정, 망미정 송석정은 아무 때나 들릴 수 없다. 통제에 따라 허가받거나 ‘적벽버스투어’ 운영 안내에 따라 온라인 또는 현장 탑승으로 가능하다. 입장하여 전망대 등을 통하여 기막힌 풍광을 만난다. 수몰로 잃은 마을 사람을 위한 망향정 일대에 이르면 숙연해진다. 누군가의 추억과 아픔 그리움이 가득하다.

김대중 대통령의 편액이 있는 망미정(왼쪽), 화순적벽, 예전에는 소풍과 뱃놀이의 적벽 유람 장소이다.(2023.06.19.)(오른쪽)
김대중 대통령의 편액이 있는 망미정(왼쪽), 화순적벽, 예전에는 소풍과 뱃놀이의 적벽 유람 장소이다.(2023.06.19.)(오른쪽)

잘 관리되고 있는 망향정에서 호안으로 더 내려가면 김대중 대통령의 글씨 편액을 만난다. 망미정이다. 이곳은 일찌감치 시인 묵객들이 일부러 찾던 명소이다. 주고받은 시문만 해도 장강 대하이다. 특히 망미정의 운치는 소박하면서 유현하다. 보이지 않는 그윽한 분위기에 이끌린다. 끝 모를 고요함과 구름 위에 뜬 듯 무중력의 아득함이 주변을 맴돈다. 오랜만에 세속을 씻어내는 기감(氣感)이다.

만경창파 뱃머리에서 풍경의 기품을 갖추는 송석정

망미정을 뒤로하고 오늘 보려고 작정한, 사진에서 본 송석정을 향하여 나선다. 나서는 길이 사람의 발길 닿지 않는 길이다. 수몰 지역 마을이 하천을 사이에 두고 마주한 평지 마을이었다면 이곳은 배산임수의 뒷산 높은 자락의 산골 마을이었을 게다. 옛길 따라 대숲으로 변한 사이사이로 돌담을 비롯한 마을 골목길이 보인다. 이곳은 그냥 두었어도 괜찮을 마을인데 일시에 비운 게 아닌가 하는 의아함이 앞선다. 좀 더 세밀하게 호수 마을로 남길 방안도 있었을 것이다. 배를 타고 접안하여 송석정에 이르는 방법에 비하여 이곳 사람의 흔적을 더듬고 이르는 길은 갈수록 대숲으로 울울창창하다. 한참을 오르고 한 고개에 이르러 다시 동북호 방향으로 내려가면서 골이 터져 넓게 펼쳐진 송석정이 입지한 「석정처사유거도(石亭處士幽居圖)」의 원림이 펼쳐진다. 지금 이곳은 대숲의 빽빽함이 다하여 환하게 열린 공간이다. 자손의 조상에 대한 존숭이 빛나는 잘 관리된 문중 산소이다.

석정처사유거도(왼쪽), 석정처사유거도 A 부분, 배가 있고 교량이 놓여 있음, 유거지 입구 역할(오른쪽)
석정처사유거도(왼쪽), 석정처사유거도 A 부분, 배가 있고 교량이 놓여 있음, 유거지 입구 역할(오른쪽)
석정처사유거지 B 부분, 송석정 위치로 비정한다, 입구 ‘A’에서 가까움(왼쪽), 석정처사유거도 C 부분의 바깥 언덕 주거지(오른쪽)
석정처사유거지 B 부분, 송석정 위치로 비정한다, 입구 ‘A’에서 가까움(왼쪽), 석정처사유거도 C 부분의 바깥 언덕 주거지(오른쪽)

김한명(金漢鳴, 1651~1718)의 유거지를 그린 「석정처사유거도」는 족자 형식의 그림이다. 17세기 중후반에 호남지역에서 활동한 화가인 전충효(全忠孝)는 김한명의 집을 풍수 명당으로 표현하였다. 화면 중앙의 집을 중심으로 주산, 좌청룡과 우백호, 안산, 물길의 형세를 원형 구도로 겹겹이 표현한 것은 양택풍수陽宅風水의 회화식 지도 기법이다. 화면 위쪽에 붉은 선을 긋고 전서체로 쓴 제목은 그림에 권위를 부여하는 장치이다. ‘우러르기’를 위한 기본 형식으로 볼 수 있다. 「석정처사유거도」에 나오는 건물은 없어지고 이곳은 이제 음택풍수의 입지로 후손이 잘 활용하고 있다. 송석정은 골짜기 맨 아래에 동복호를 바라보고 단정하다. 후배가 보내준 석정처사유집을 펼친다. 송석정의 시경이 잘 나타난 석양의 풍경을 읽는다.

우연히 이 정자에 이르러 천천히 산보하니

석양의 산색이 강물에 거꾸로 비치(는)구나.

곡조 소리 언덕 위에 군아(群兒)의 피리요

채찍 그림자 다리 위에 나그네 나귀로다.

버드나무 언덕에는 때를 아는 꾀꼬리가 날고

안개 낀 물가에는 타고난 성품(대로) 유어(遊魚)가 헤엄치네.

속절없이 동자따라 강촌을 향하니

돌이켜 내가 쓸쓸하여 옛 마을을 바라보네.

 

-「정하석양(亭下夕陽, 정자 아래 석양)」, 석정처사유집 전편, 2006, 80쪽.

석정공은 수시로 송석정으로 나가 미음완보(微吟緩步) 한다. 특히 저녁놀이 앞산의 물을 거꾸로 비추게 하는 풍광을 놓치지 않는다. 피리를 부는 언덕 위의 아이들, 물을 건너오는 나귀를 탄 나그네의 채찍 그림자에 상념 일어난다. 낮은 언덕으로 늘어진 버드나무 숲에서 때맞춰 꾀꼬리 운다. 안개 자욱한 물가에서 물고기 노니는 게 더 잘 보인다. 지는 노을에 속절없이 쓸쓸해진다. 누정 원림을 경영하는 ‘일일래 일왕래’의 루틴이 ‘리추얼라이프(ritual life, 誠과 敬)가 되었다. 하루에 한 번 들리는 ’일일래(日一來)‘와 매일 같이 가고 오는 ’일왕래(日往來)‘를 일상의 활력으로 삼는다. 이 모든 게 생명의 약동을 감지하는 생태적 감수성에 기인한다는 것을 안다.

송석정의 후경(後景)(왼쪽), 송석정의 전경(前景)(오른쪽)
송석정의 후경(後景)(왼쪽), 송석정의 전경(前景)(오른쪽)

 

송석정 앞 동복호에 배를 띄우면 풍류는 마땅히 완전체를 이룰 것이다. 지금은 접안 시설이 미비하지만, 가뭄 지점과 만수 지점, 그리고 평상시 지점을 표시하여 나룻배 정도 다닐 수 있는 나루터를 다듬어 덱 등으로 호안과 연결한다면 전통 수공간의 경관을 조성할 수 있다. 식수로 사용하는 동복호이기에 수질을 개선할 수 있는 송석정 안쪽으로의 지당 공간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석정공이 천수(天壽)를 누려 91세까지 사신 문정공(文正公)을 모셨듯이 석정공의 후손들은 여전히 선조에 대한 존숭의 예가 깊다. 송석정이 화순적벽에서 새로운 누정 원림으로 재확인되고, 특히 「석정처사유거도」를 탁월하게 해석하여 복원하는 꿈을 이룰 수 있기를 특별히 기대한다. 송석정 소나무를 제재로 하여 시경을 남긴다.

송석정 소나무 / 온형근

 

망미정望美亭에서 화순적벽을 보았으니 발길 대숲으로 돌려 마을 돌담길 따라나선다.

 

창랑리 물염정 여기저기에서 옹성산 우뚝하니

동복호 내리꽂으며

창랑, 보산, 노루목 적벽 모두가 화순적벽이다.

 

보성강 상류 동복천 주변 고인돌이

장학리, 보산리, 월산리와 함께 하였다는 수몰의 기억

오래된 마을은 배산임수의 높은 구릉지 마을

대숲 걷어낸 문중 산소 찾는 성묘 때,

나룻배만 분주하다.

 

동복호 물결 일렁일 때

노 저어 이 산 저 산 들락대다 보면

거북바위 닮은 암반을 널찌감치 띄운 채

기둥 높여 얕은 누처럼

하늘로 나는 기와지붕 얹은

송석정松石亭은

만경창파萬頃蒼波의 동북 호수 나룻배에서 절경이다.

 

송석정 두른 소나무 푸른 기개 닮은

석공처사 기리는 자손의 존숭이 빛난다.

 

-2023.06.23.

저작권자 © Landscape Time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