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형근 박사
온형근 박사

 

풍류는 행위를 포함하고 멋지고 시원하다

제주 방선문(訪仙門)을 찾았다. 제주에서 25년을 살았다는 골프광인 후배 종덕이는 “이런 곳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어요!”라며 놀라워한다. 난대림 특유의 끈적대는 느낌이 있는가 하면, 신선하고 청량한 공기와 녹음이 편안하고 안정감 있는 분위기를 자아낸다. 방선문은 국가 지정 명승¹으로 한라산에서 발원하여 용담동 용연(龍淵)까지 제주에서 제일 긴 하천인 한천(漢川)에 위치한다. 한천은 『탐라지』²와 『탐라지도병서』³에는 ‘대천(大川)’으로 기록되었고 우기에만 물이 흐르고 대부분 건천이다. 그러나 곳곳의 지표면의 단단한 정도가 달라 차별침식(差別浸蝕)으로 늘 물이 괴어 있는 소(沼)가 존재한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기쁜 마음에 다가간다. 어쩌랴. 통행 금지 줄이 쳐졌다. 방선문 암반 균열을 염려한 탓이다. 계곡 위 데크로 만든 관람 동선 계단 곳곳이 부서져 들어갈 수 없다. 길가 끝에서 망원렌즈를 사용하여 방선문의 아치형 형태를 촬영하며 요모조모 살핀다. 대체 언제부터 출입금지였을까 궁금하였더니 “국가문화재 ‘방선문’ 낙석 위험으로 출입 통제”한다는 2014년 11월 07일 제주일보 기사를 찾을 수 있다.

 

1) 명승이란 자연유산 중 역사적, 경관적, 학술적 가치가 인정되어 문화재청장이 지정하고 고시한 것을 말한다.(자연유산법 제23)

2) 제주목사 이원진이 전라도 제주목, 정의현, 대정현(현 서귀포시 대정읍)의 연혁과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효종 4(1653)에 편찬한 지방지, 읍지이다. 이 해에 네덜란드인 핸드릭 하멜이 제주에 표류하여 이원진이 임금에게 급하게 서면으로 말씀을 올리는 치계(馳啟)가 있었다.

3) 숙종 36(1709) 전후 제주목사 이규성이 제주도의 사정과 풍속 등을 기록하여 목판본으로 제작한 지도로 24방위를 표시하였음

 

 

(좌) 방선문 (우) 출입 통제 빗장 (2023.05.16.)
(좌) 방선문 (우) 출입 통제 빗장 (2023.05.16.)

 

 

내친김에 방선문 관련 기사를 살펴본다. 제주일보 2002년~2023년 방선문 관련 기사를 보면, 2004년부터 방선문에서 「옛 선비들의 풍류를 재현」한다는 취지의 계곡 음악회를 시작하였다. 풍류는 행위를 포함하고 시각적으로 멋지고 심리적 느낌으로는 시원함을 이룬다. 최치원(857~미상)은 “나라에 현묘(玄妙)한 도가 있으니 ‘풍류(風流)’라 한다. 그 가르침의 근원은 ‘선사(仙史)’에 자세하기 실렸으니, 실로 (풍류는) 유·불·선을 포함하면서 접화군생(接化群生)한다.”라고 ‘난랑비서’에서 말한다. 그 가르침의 증좌는 다음과 같다.

 

나라에 玄妙의 道가 있으니, 風流라 한다. 設敎의 根源은 仙史에 詳細히 具備되어 있다. 참으로 三敎를 包含하고 있어 羣生을 接化한다. 그뿐 아니라, 집에 들어와서는 효(孝)를 다하고 나가서는 나라에 충(忠)하니 노사구(魯司寇 : 공자)의 가르침과 같다. 억지로 일을 시키지 않는 무위지사(無爲之事)에 처하며, 말없이 행동을 통해 가르치는 불언지교(不言之敎)를 행하니 주주사(周柱史 : 노자)의 종지(宗旨)이다. 모든 악을 짓지 아니하며 착한 일을 모두 봉행하니 축건태자(竺乾太子 : 부처)의 교화이다.

-『삼국사기』 권 제4, 신라본기 제4, 24 진흥왕 37년조 난랑비서⁴

 

최치원은 그 시대 최고의 지식인이다. 공자를 ‘노사구’라 낮춰 부르고 노자를 ‘주주사’라 불렀으며 석가모니를 ‘축건태자’라고 아래로 깔았다. 웃기지 마라! 그대들이 높여 우러르는 공자, 노자, 석가의 사상이 이미 우리에게 다 있다는 말이다. ‘실로 포함삼교(實內包含三敎)’하고 있으니 접화군생(接化群生)한다는 말이다. ‘포함’은 배우는 것이 아니라 이미 애시당초 갖고 있다는 것이니 그것이 접화군생이라는 말이다. 접화군생은 생명과 무생물, 무기물까지 마음이 있다고 보고 그 마음과 인간의 마음이 같이 어우러지는 우주적 진화이다. 동물, 식물, 무기물까지 인간과 만나 서로 헤아려주고 감화하면서 완성되고 해방되는 과정이다.

 

4) 「國有玄妙之道 曰風流 設敎之源 備詳仙史 實內包含三敎 接化羣生 且如入則孝於家 出則忠於國 魯司寇之旨也 處無爲之事 行不言之敎 周柱史之宗也 諸惡莫作 諸善奉行 竺乾太子之化也三國史記 卷4 眞興王紀 37年條

 

방선문(訪仙門)의 풍류는 접화군생의 계곡 음악회로 시작하였다

최치원의 ‘접화군생’을 마음으로 훈습(薰習)한다면 방선문 계곡 음악회 또한 접화군생의 현묘한 분위기를 자아낼 수 있다. 우주에 함께 놓여 있는 모든 군생이 진화를 거듭하며 서로 사귀고 사랑하며 화합하고자는 취지 아나겠는가. 처음에는 방선문 계곡의 울림에 착안한 성악 축제였다가 점차 다양한 소리로 발전하였다. 언제부턴가 마을 축제이자 제주를 대표하는 축제로 자리잡았다. 그에 따라 주로 5월에 펼쳐졌던 행사가 가을 축제 기간으로 옮겼던 적도 있었다. 2023년, 올해는 제 20회로 5월이었다. 스스로 전통이 되어 명분과 실리를 갖춘 청년의 싱그럽고 각 잡힌 심지를 지녔다. 이대로 선 굵은 방선문 축제로 오래도록 이어질 것이다. 꼭 방선문이 아니라 주변 숲 속 공간으로 확장하였기에 가능한 예측이다.

 

방선문 계곡 음악회 (2005.05.17.)  / 방선문 계곡 음악회  (2008.06.09.)  ⓒ제주일보
방선문 계곡 음악회 (2005.05.17.) / 방선문 계곡 음악회 (2008.06.09.) ⓒ제주일보

 

 

국가 지정 명승인 방선문의 지나온 4반세기인 25년을 살펴보았다. 근사하고 긍정적인 이용 행태도 있었지만 낯부끄럽고 아찔한 순간도 있었다. 계곡 음악회를 시작으로 제주 최고의 풍류처인 방선문을 축제의 장으로 자리매김힌 것은 멋진 과정이고 수확이다. 여름 피서철 행락 문화의 쓰레기 문제는 여전히 낯부끄러운 난맥상이다. 해마다 자치협의체에서 환경 정화 활동을 펼친다. 한동안은 계곡에서의 무속 행위와 불법 사냥의 진원지라는 오명도 심심찮게 거론된다. 알려지지 않은 크고 작은 일은 덮더라도 그 긴 한천의 중상류를 품고 있는 오라골프장의 초기 제초제 사용이 중앙지에도 기사화된 아찔한 시절도 보인다. 적정량을 사용하고 수용하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국립공원에서도 1일 최대 수용 인원을 정하여 출입을 통제한다.

 

‘방선문’ 키워드로 살펴본 2002년~2023년의 자료 발췌     ⓒ제주일보
‘방선문’ 키워드로 살펴본 2002년~2023년의 자료 발췌 ⓒ제주일보

 

 

방선문은 제주시 오라동에서 도지정문화재로 지정하기 위한 추진협의회를 구성하였다는 2011년 7월 22일 기사 내용 이후, 1년 여만에 지정 예고와 주변 토지주의 지정 반대 움직임을 거쳐 2013년 1월 4일 대한민국 명승 제92호로 지정되었다. 격이 달라진 것이다. 지정되고 나서 안전 문제로 이듬해 2014년 11월에 출입 통제의 빗장을 내건다. 문화재에 대한 안전 진단은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년이 지난 오늘까지 저 빗장을 걷어치우지 못한다. 방선문 아래 약간 솟아난 소(沼)에 흰뺨검둥오리 한 쌍이 노닌다. 냅다 꼬리를 씰룩이며 맴돌기를 거듭한다. 나 보란 듯이 계곡을 차지한다. 계곡 양 언덕이 벼랑처럼 높은 편이어서 내려다보는 부감(俯瞰)으로 손 뻗으면 잡힐 듯 심리적 거리감이 코앞이다.

 

인간이 다가갈 선계의 입구이고 신선이 궁금해하는 속계의 경계선

사람이 오래전부터 들락대며 오가던 좁은 길이 있으니 이를 ‘곡(谷)’이라 한다. 언덕 사이에 흐르는 물을 ‘계(溪)’라고 한다. 물이 있는 것이다. ‘방선문 계곡’은 굽이치고 가려지거나 비치고 끊어진다. 다시 이어지며 숨었다가 또 보인다. 방선문 바위 위에 흙이 많이 실려 있다. 이를 ‘최외(崔嵬)’라 부른다. 가까운 산 옆의 언덕을 ‘취미(翠微)’라고 한다. 방선문 가까운 산 옆의 언덕에 ‘골프존카운티 오라’가 있다. 홈페이지에서 클럽 소개를 보면 “영주십경 중의 하나인 한라산 영구춘화의 계곡을 따라 지형적인 레이아웃을 그대로 살린 대자연의 골프장입니다.”라는 문구가 나온다. 영구춘화(瀛丘春花)5의 승경을 지닌 계곡이 한천이고 한천 물줄기에 ‘신선이 방문하는 문’인 방선문이 위치한다. 한천의 상류인 ‘골프존가운티 오라’의 품을 거쳐 방선문 계곡으로 내려온다. 그 물이 하구(河口)인 용연으로 나아간다. 못내 방선문을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야속함을 뒤로 하고 시 하나 읊는다.

 

5) 영구춘화 : 영주 10경의 하나이며 들렁귀라 일컬음. 봄에 암벽 사이로 철쭉이 필 때는 아름다운 절경을 이루어 예부터 목사가 관기를 거느리고 나와 주연을 베풀었다. 시인묵객이 모여 시회를 열었다. 신선이 드나들던 방선문이 있고, 홍중징 등 많은 목사와 최익현 등 유배인의 제명을 볼 수 있다. 제주도 내에서 바위글씨가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곳이 방선문이다.(제주시 안내판 설명글)

 

가까이 하기에, 방선문 / 온형근

보고 싶다고 꼬박 밤을 새워 달려왔다고

만날 생각에 애써 태연한 척 옛 사진을 훔쳐보았을까 갸웃대며

 

오월을 기다려 통째로 피었다 진 진달래와 참꽃은

씩씩한 이파리로 푸르게 반짝반짝 반기고

빗금 그은 금줄에 멈춰 물끄러미 찾는다.

늘어진 나뭇가지 사이에서 얼핏 잠깐씩

네 모습 메마른 건천 닮아 수척하구나

 

봄꽃 만발하여 현무의 계곡 등불이었을

곱다는 수작 몇 동이를 들이켰을까

거문고로 뽐내다 가야금 곡조 때쯤

불그레한 웃음을 끔벅거리며

선경에 다가서려 취흥 도도한 하루를 즐기더니

그날의 시와 곡조는 계곡 골바람에 씻겼다.

 

-2023.05.26.

 

​방선문에서의 시간은 신선의 시간이다. 신선의 시간이 흐르면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 방선문 바위 위에도 소나무가 자란다. 하물며 진달래, 참꽃이야 말할 것도 없다. 진달래는 ‘두견화’라고도 하며 잎보다 꽃이 먼저 피고, 참꽃(Rhododendron weyrichii)은 ‘제주참꽃’이라고도 하며 잎과 동시에 꽃이 핀다. 늦은 오월이니 진달래도 철쭉도 꽃보다 잎으로 이슬로 세안한 듯 반짝이며 마주한다. 한라산의 바람이 한천으로 달린다. 신선이 방선문 계곡에서 선녀가 목욕하는 것을 몰래 지켜 보았다. 옥황상제가 노여움으로 흰 사슴인 백록(白鹿)으로 만들어 홀로 백록담을 지키게 하였다. 신선과 선녀와 옥황상제가 들락대는 방선문은 차안(此岸)과 피안(彼岸)을 공유한다. 그래서 인간이 다가갈 선계의 입구이고 신선이 궁금해하는 속계의 경계선이다. 보고 싶다고 달려왔으나 기웃대기만 한다. 그래도 곱고 고운 선계의 수작은 느낀다. 계곡을 울림통으로 삼아 봄꽃으로 노래하는 현무의 계곡으로 골바람이 시원하였겠다.

한라의 바람이 한천 계곡으로 흘러들 때 쌓인 진세의 흙먼지가 방선문 바위 위에 안착한다. 쌓인 흙먼지를 계곡의 물보라가 다진다. 안개 피어올라 수분으로 촉촉하다. 새도 날아든다. 물 한 모금 마시고 날아올라 신선의 경치를 즐긴다. 새가 전파한 푸나무의 씨앗이 용케 살아남는다. 그냥 그렇게 살아가는 게 눈치 볼 일은 아니다. 신선이 산다는 삼신산(三神山)은 봉래-방장-영주이다. 봉래산을 금강산, 방장산을 지리산, 영주산을 한라산으로 일컬어 왔다. 봄이 되어 언덕 가득 봄꽃이니 신선이 사는 영주산 언덕배기의 봄꽃이다. 그래서 영주십경에서는 영구춘화로 이곳 방선문을 노래한다. 그 언덕배기는 방선문 바위 위 언덕만으로 감당하는 게 아니라 그 너머 골프장까지일 것이다. 그 정도 돼야 영구춘화의 거대한 규모에 적합할 것이다.

[한국조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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