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문경 주암정 원림 – 뱃머리 닮은 바위가 막 출항하려는 발진의 형국

정자 난간 마루에 백발의 채훈식 노옹

온형근 문화유산조경 박사
온형근 문화유산조경 박사

정자 난간 마루에 백발 채훈식(蔡勛植) 노옹, 오른쪽 무릎을 괴고 앉아 책을 뒤적거린다. 문경의 문화 관련 잡지와 책들이 한 단 정도 쌓였다. 뜯은 박카스 D 박스가 열지어 쌓여 있다. 연못 건너에서 정자를 바라보매 막 출항하려는 뱃머리가 꿈틀대며 발진의 형국이다. 그나저나 배를 띄워야 할 선장은 여전히 책의 한 귀절에 꽂혀 눈을 떼지 못한다. 한 척의 돛단배가 곧 떠날 채비에 놓인 이곳 정자는 문경의 주암정(舟巖亭)이다. 주암정은 나재(懶齋) 채수(蔡壽, 1449~1515)의 6세손인 주암(舟巖) 채익하(蔡翊夏, 1633~1676)를 추모하기 위해 1944년 후손들이 세운 정자이다.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았고 주인도 널리 알려지지 않았으나 우리나라 누정에 이처럼 아름다운 정자는 일찍이 없었다. 주암은 ‘바위 배’이니 보기에도 묵직하다. 배의 몸체를 살펴보면 선수(船首)와 선미(船尾)로 뚜렷하게 구분된다. 바위 선박의 선실 위치에 주암정이 자리한다. 선실의 지붕은 기와이니 정자에 오른 순간 배를 타고 연꽃 천지인 천상을 유람하는 것과 다름 없다.

주암정 배의 몸체는 선수와 선미를 깆춘 암반이고 선실의 지붕은 기와로 된 천상의 뱃놀이 (2023.06.18.) ⓒ온형근
주암정 배의 몸체는 선수와 선미를 깆춘 암반이고 선실의 지붕은 기와로 된 천상의 뱃놀이 (2023.06.18.) ⓒ온형근

 

계절은 아직 연꽃 피기 전이다. 연못에는 푸르고 억센 연잎이 무성하다. 빗소리에 속세를 잠시 잊을 수있는 녹하우(綠荷雨)의 계절이다. 덕계(德溪) 오건(吳健, 1521~1574)은 관직을 버리고 지금의 함청 산음 덕계리로 낙향하였다. 연못을 만들고 소나무와 국화를 심으며 지리산과 경호강을 즐기면서 쓴 시에 ‘연못의 푸른 연잎으로 빗소리가 길게 들린다’는. 녹하지상우성장(綠荷池上雨聲長)을 시경으로 읊었다.1)  ‘녹하우’는 그렇게 푸른 연잎에 떨어지는 빗소리인 것이다. 한밤중 멀리 계신 님을 그리워하다 깨었는데, 푸른 연잎에 빗소리가 길게 이어지는 시경(詩境)에 든다. 이 계절의 주암정은 길게 이어지는 여름비가 푸른 연잎에 떨어져 내는 ‘녹하우’에 마냥 빠져들었다. 한 계절의 정적을 온전하게 품을만한 적요의 공간이다.

주암정에서 연못을 바라볼 때 오른쪽 왕벚나무가 우람하다. 왕벚나무 피었을 때, 주암정의 풍광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그칠 수 없게 한다. 한 계절의 환장할 정도로 탄복할 은세계를 펼쳤을게다. 왕벚나무 만개하여 휘날리는 광경을 상상한다. '주암정의 봄'이라는 박진균 화백의 한국화가 그렇다. 박 화백은 사람의 자연을 그리더니 어느새 신선의 자연을 묘사한다. 주암정의 왕벚나무 만개한 풍경을 사진으로 찍어 상금까지 거머쥔 작가가 있다. 채옹은 들릴 듯 말 듯 지나가는 우스개 소리로 한마디 남긴다.

"주암정을 아침저녁으로 쓸고 닦고 빛나게 한 사람은 난데, 왜 상금은 그이에게 가는거냐고?"

오래된 왕벚나무 한 주가 주암정 원림을 아침 안개속에서 더욱 하앟게 환하게 펼친다. 그러면 멧비둘기가 구슬프게 울어대며 채옹의 심사를 툭툭 건드린다. 세월의 무상한 아픔은 구슬픈 곡조를 만나야 정화한다. 흩날리며 원림으로 비산하는 벚꽃 난무한 선계는 어쩌면 순식간이고 잠깐이었겠다. 좋은 것은 늘 곁에 나란하지 않다. 따로 나서거나 홀로 떠돈다.

1) 「외집 행장」, 덕계집 제7권, 한국고전종합 DB 

비 온 후의 선명한 능소화 자태를 다시 찾는다

다시 찾은 주암정은 능소화가 한창이고 연꽃 봉우리가 언뜻언뜻 터지고 있다. (2023.06.28.) ⓒ온형근
다시 찾은 주암정은 능소화가 한창이고 연꽃 봉우리가 언뜻언뜻 터지고 있다. (2023.06.28.) ⓒ온형근

 

그래도 봄은 다시 다가온다. 채옹에게는 겨울 지나 주암정 뒷산 기운 몰고 달려 온 암반 틈에서 피어난 진달래보다 반가운 건 없다. 봄이 임박하여 진달래 피기 시작하면 비로소 한 해를 넘긴 안도의 숨이 저절로 나온다. 그렇게 원림의 계절은 시작한다. 내가 주암정을 찾은 그날은 진달래 지고 왕벚나무 벚꽃도 다 떨어져 흔적도 없었다. 이미 성록의 푸른 잎이 나무를 짙푸르게 채색하였다. 뱃머리 빼다 닮은 ‘주암(舟巖)’의 뱃머리로 능소화 끝눈이 폭주하듯 욕망을 드러낸다. 금방이라도 바위를 뒤덮을 기세이다. 좌우상하 없이 내달린다. 능소화 꽃눈 피어오를 때 연꽃은 곰곰이 가만히 있겠는가. 능소화 꽃 터질 때쯤이면 주암정 주인은 잠시 한 눈 팔 듯 무심하게 푸른 하늘을 쳐다볼 것이다. 연못의 연꽃은 펄펄 끓어오르며 더이상 참을 수 없다고 속내를 내세운다. 언제라도 터지겠건만 채옹의 비우고 또 비운 무심의 언저리에 기별조차 어렵다. 내가 들끓어 다시 주암정을 찾았다. 비 온 후의 경건함이 깃든 주암정 '바위 배'의 선수에 능소화가 크게 명랑하다. 주암정 원림 전체가 비 개인 산뜻함으로 재잘대듯 푸르고 곱다.

정자는 네가 있고 내가 있어서 활기를 띤다. 너도 없고 나도 없으면 곰팡이와 세균만 살맛 난다. 신발 벗고 올라 신체발부로 쓰다듬을 일이다. 마루가 반짝대며 빛날 때 바람의 속도는 빠르게 미끄러진다. 바람의 속도는 시원함을 담보한다. 아침이면 금천(錦川)의 냇바람 당차게 치고 오르며 한낮에는 솔향 머금은 산바람 강물로 내리꽂는다. 살면서 서로 소통되지 않아 한참을 괴이하다 여길 때가 있다. ‘그러니 어쩌겠어’ 하면서 삶의 문장에 꽤 많은 요철이 있음을 안다. 어쩌다 긴 문장 한 편을 읽거나 읽다 말았으면서도 읽은 테를 내는 게 인생이다. 읽지 않고 읽은 것처럼 한마디 거든다. 그럴 수 있다. 얼마든지 그래도 된다. 그러나 정자는 마루 바닥을 신체발부로 부비지 않고 함부로 말할 수 없다. 선배의 시선이 머물렀던 앙각(仰角)과 부감(俯瞰)을 통해 나의 시선이 머문다. 선배가 아파했던 가슴을 나의 심회로 환치한다. 그러니 정자 마루에 오르지 않고 부벼 보지 않았으면 본 것을 말하지 않는다. 그래라고 뻐꾸기는 선배의 그날처럼 운다. 금천에서 연못으로 들어오고 나가는 물길은 쉼없이 맴돌고 일렁이며 부지런하다. 주암정에 앉으니 선계로 출항하기 위해 정박한 배가 곧바로 출발을 알린다.

금천에서 연못으로 들어오고 나가는 물길은 쉼없이 맴돌고 일렁이며 부지런하다. (2023.06.28.) ⓒ온형근
금천에서 연못으로 들어오고 나가는 물길은 쉼없이 맴돌고 일렁이며 부지런하다. (2023.06.28.) ⓒ온형근

 

주암정의 아름다움은 사람의 온기와 훈기로 채워진다

주암정을 다시 찾았다. 현재의 주인인 채훈식 옹은 나재 채수의 10세손이다.

‘주인이 업서도 차 한 잔 드시고 가세요’

는 채훈식 옹이 써서 붙인 대한민국 누정에서 가장 아름다운 주련이다. 문경의 인심과 손님을 접대하는 접빈의 격조를 느낀다. 채수는 경북 상주에 쾌재정(快哉亭)을 경영하였다. 채수는 이 쾌재정에서 홍길동전보다 100년 앞선 최초의 국문 번역본 소설인 설공찬전을 지었다. 채수가 직접 쓴 시인 「쾌재정기」를 읽는다.

 

쾌재정이라 제목을 붙이고 <題快哉亭 제쾌재정>

 

늙은 내 나이 지금 예순여섯                                     老我年今六十六노아년금육십육

인하여 지난 일을 생각하니 뜻은 아득하네.         因思往事意茫然인사왕사의망연

소년의 재주와 기예는 적이 없음을 기약하고      少年才藝期無敵소년재예기무적

중년의 공명으로 또한 홀로 현명하였네.              中歲功名亦獨賢중세공명역독현

세월은 흘러 줄로 매기 어렵고                                光陰衮衮繩難繫광음곤곤승난계

청운의 길 아득한데 말은 앞으로 가지 않네.        雲路悠悠馬不前운로유유마불전

어찌 세상의 일을 다 던짐과 같겠는가                  何似盡抛塵世事하사진포진세사

봉래산 정상의 신선과 짝이 되려하네.                  蓬萊頂上伴神仙봉래정상반신선

 

-채수, 「제쾌재정」, '나재집'

 

집 근처 시냇가 옆 산봉우리에 쾌재정을 짓고 풍광과 함께 과거의 시절을 되뇌인다. 동쪽으로 학가산, 서쪽으로 속리산, 남쪽은 갑장산, 북쪽은 대승산을 바라보며 강과 산이 울창하게 둘러싸인 쾌재정에서의 생활이 신선과 친구하고자는 나재의 심정에 녹아있다. 주암정은 쾌재정에서 16㎞ 정도 떨어졌다. 「주암정기」를 보면 채수의 6세손인 주암공이 웅연(熊淵) 남쪽 큰 바위 주변 언덕을 손질하며 가꾼다. 매일같이 풍광을 감상하면서 시를 쓰고 소요음영(逍遙吟詠)한다. 그래서 후손들이 모여 의논한다. 맨날 지팡이 짚고 아침 되면 산책하던 길인데, 이걸 그냥 두면 나중에 없어질 것이다. 주위에서도 왜 이 좋은 자리를 그냥 두느냐 힐책한다. 이 뜻을 후손들이 추진하려 할 때, 때마침 관청 빈 것이 나온 참에 이를 취하여 정자를 지었다. 난간에 앉으면 멀리 천주봉(天柱峯)이 북쪽에 우뚝하여 걸렸고 금천이 남으로 흘러 비단처럼 나타나 정자가 되었다고 9세손 채홍탁(蔡鴻鐸)의 기문이 전한다. 채훈식 옹의 고증에 따르면 정자는 채종진(蔡宗鎭)이 건립하였고, 과거에는 주암정 바위 바로 앞으로 강이 흘렀는데, 홍수로 물길이 바뀌고 제방 공사로 금천 밖으로 밀려났다고 한다. 물 없는 주암(바위 배)이 안타까워 채훈식 옹이 불편한 몸으로 연못을 조성하고 금천으로 물길이 이어지고 있다.

주암정에 오르고 답사 동인과 둘러 앉아 차담을 나누다.(2023.06.18.) ⓒ온형근
주암정에 오르고 답사 동인과 둘러 앉아 차담을 나누다.(2023.06.18.) ⓒ온형근

 

1차 답사에서 직접 인터뷰를 하였고, 다시 2차 답사에서 보완한 주암정의 온기와 훈기는 사람이 사람답다고 일컫는 인정 깊은 마음씀이다. 채훈식 옹은 주암정을 가꾸고 보존하는 일에 매달리게 된 계기를 문장대 바위에서의 ‘득도시’로 전한다. 천천히 읊어주셨다. 전문은 다음과 같다.

 

문장대 바위 / 채훈식

 

세월은 흘러서 백발이 되었는데

문장대 바위

너는 무슨 약을 먹고 늙지 않았느냐

 

늙지는 않았으나 발이 없어서

보고 싶은 사람을 찾아가지 못하는데

 

너는 발이 있어서

보고 싶은 나를 찾아왔으니

나보다는 낫지 않느냐

 

남은 인생 즐겁게 살다 가거라

 

즐겁게 살라하니

평생을 투병 생활로

고통과 괴로움, 슬픔으로 살아왔는데

 

남은 인생도 허송 세월로 살다 가려하니

너무 억울하구나

 

지금 너와 헤어지면

언제 다시 만나볼지 모르겠구나.

 

잘 있거라 나는 간다.

 

-채훈식, 「문장대 바위」, 인터뷰에서 시를 읊은 것을 전문을 기록하고, 2차 인터뷰에서 확인을 거쳐 정리함(2023.06.23.)

 

지금으로부터 47년 전인 1976년의 일이니, 30대 초반이다. 몸이 불편하여 투병 생활로 사람 노릇 못한다고, 나쁜 마음을 먹고 속리산 문장대 바위를 찾았다. 거기서 문장대 바위와 말문이 트여 대화를 한다. 문장대 바위가 너는 그래도 가고 싶은 곳을 찾아다니는 처지이니, 나보다 나은 것이라 한다. 그러니 죽지 말라고 문장대 바위가 말한다. 그제서야 대오각성(大悟覺醒)하여 저절로 나오는 눈물로 크게 울고 집으로 돌아온다. 그 후로 문장대 바위의 공덕을 갚는다는 생각으로 주암정 바위에 공을 쏟는다. 그때까지만 해도 정자고 뭐고 형편 없었다고 말한다. 채옹은 이렇게 말한다.

"정자는 있어도 찾아온 이도 없었고 아무 것도 없었어요. 참 관리가 이래 못됐어요."

아침저녁으로 나와서 쓸고 닦고 계속 관리한다. 정원수를 심고 연못을 만들고 하니까 외지에서 손님도 많이 찾는다. 친구들도 찾아오고 그 기쁨으로 지금 살고 있다. 내가 찾은 두 번째 주암정 방문에는 채훈식 옹의 초등학교 동기들 모여 정자와 한몸으로 세월을 나누고 있었다. 혼자 보내는 세월을 여럿이 나누어 보내면 세월은 또 얼마나 흥미로워질까.

주암정에 모인 채훈식 옹의 초등학교 동기의 따뜻한 온기 (2023.06.28.) ⓒ온형근
주암정에 모인 채훈식 옹의 초등학교 동기의 따뜻한 온기 (2023.06.28.) ⓒ온형근

 

선조에 대한 애정으로 가득한 주암정 기둥의 주련(柱聯)

 

주암은 금천에 만고토록 떠 있고                    舟巖萬古認錦川(주암만고법금천)

소나무는 절벽 위에 넘어 질 듯 서있네.        絶壁橫松倒立奇(절벽횡송도립기)

훌륭한 선조가 달에 취해 노닐던 이곳에      顯祖醉月遊常處(현조취월유상처)

어진 후손들이 작은 정자를· 지었네.              賢孫羹墻築小亭(현손갱장축소정)

버들언덕에 깃든 꽃은 봄빛에 어여쁘고       柳岸樓花媚春輝(유안루화미춘휘)

안개와 노을이 깎은 벼랑을 안고 도네.         煙霞依然包削壁(연하의연포삭벽)

 

-주암정 기둥에 달린 주련

 

주암정 원림 주변, 맞은편에 경체정, 북서에 우암정, 서쪽으로 근암서원이 위치한다. ⓒ온형근
주암정 원림 주변, 맞은편에 경체정, 북서에 우암정, 서쪽으로 근암서원이 위치한다. ⓒ온형근

 

주암정 앞에는 바단같이 흐르는 금천이 있다. 주암(舟巖)은 석문구곡(石門九曲)2)의 제2곡이기도 하다. 주암정 앞 둑방으로 나서면 보에 채워진 꽤 수량이 많은 금천이 흐르고 금천 건너 부벽(浮碧)에 경체정(景棣亭)이 자리한다. 경체는 ‘형제 사이가 좋아서 집인이 번성한다’는 말이다. 채성우(蔡成禹) 7형제를 기리기 위해 세운 정자이다. 국회의장을 지낸 채문식(蔡汶植, 1925~2010)의 집안이다. 경체정 앞 금천의 두 바위가 형제암인데, 이는 산양구곡(山陽九曲)3)에서 제4곡이 된다. 산양구곡의 제5곡이 암대(巖臺)인데 지금의 우암정 자리이다. 석문구곡에서는 우암대(友巖臺)로 제2곡 주암에 이어 제3곡에 해당한다. 더군다나 이곳은 청대구곡(淸臺九曲)4)의 제1곡인 우암(愚巖)이다. 주암정 뒷산의 소나무가 끊어진 암반에 위태롭게 자란다. 주암 채익하 공께서 이 주암에서 달에 취하고 거닐던 것을 정자를 지어 되살렸으니 선조에 대한 순수한 공경의 예가 주련에 잘 나타난다. 봄이면 꽃이 아름답고 안개와 노을이 깎아진 벼랑으로 스치운다는 주변 풍광을 정자의 주련으로 표현하였다.

2) 석문구곡(石門九曲) : 문경 산양면과 산북면 일대의 금천과 대하천을 따라 8.8에 걸쳐 전개한다. 근품재(近品齋) 채헌(蔡瀗, 1715~1795)이 경영하였다. 농청대-주암-우암대-벽입암-구룡판-반정-광탄-아천-석문정으로 설정되었다.

3) 산양구곡(山陽九曲) : 근품재 채헌이 석문구곡에 이어 산양구곡도 설정하고 경영하였다. 창주-존도봉-창병-형제암-암대-상주-금품산-구룡판-반정이 산양구곡이다.

4) 청대구곡(淸臺九曲) : 문경시 산양면과 산북면, 예천군 용궁면을 걸쳐 설정하였다. 청대(淸臺) 권상일(權相一, 1679~1759)이 경영하였으며, 우암-벽정-죽림-가암-청대-구잔-관암-벌암-소호로 이루어졌다.
 
 

주암정 뒷산에는 도천사(道川寺) 터가 있다. 1970년 1월 13일자 한국일보에는 문경에서 통일신라시대 석탑 3기가 발굴되었다는 기사가 실렸다. 복원하면 8m가 넘는 국보급 석탑이다. 지금 이 석탑이 김천 직지사에 가 있다. 2기는 대웅전 앞에, 1기는 비로전 앞에 세워졌다. 직지사 안내판에 문경 도천사지에서 옮겨온 것이라 적혔다. 이 도천사지가 주암정 뒷산으로 이어진다. 문경시는 불교문화재연구소에 의뢰하여 이곳을 시굴 조사하여 석탑 3기가 있던 장소를 확정하였다. 지상의 탑은 모두 옮겨졌으나 지하에서 탑을 세우기 위해 설치한 적심시설(摘心施設)을 확인한 것이다.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3기의 거대한 석탑이 나란히 있었던 사지로 확인된 조사였다. 신라 시대의 탑이 3기나 나왔다는 뒷산은 주암정으로 길게 뻗어 나왔다. 산에서 이어져 달려오는 상서로운 기운이 임연부의 암반을 두툼하게 채운다. 깎아지른 암반의 벼랑으로 기운을 감춘다. 그리고는 집 한 채 들일만큼의 면적을 건너뛰어 뱃머리를 닮은 주암이 두둥 뱃고동을 울리며 정박의 위용을 뿜어낸다. 그 집 한 채 면적에 주암정이 들어앉았다.

또 다시 연꽃 활짝 핀 날 다녀올 생각으로 달력을 자주 본다. 여태 내가 만난 그 어떤 정자보다 따뜻한 온기로 가득한 곳이다. 누정 답사에서 사람의 훈기를 느낀다는 것이 왜 그리 생소할까. 당연한 이야기를 매우 어색하고 낯설게 받아들인다. 속리산 문장대 바위에 말을 트고 생의 새로운 의지를 펼친 채옹의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감동이다. 주암정 채훈식 옹을 떠올리며 시 한 편 남긴다.

 

주암정舟巖亭 채훈식옹 / 온형근

 

문장대 바위와 살고 죽는 오도송을 나눈

청년은 백발 성성한 주암정 난간 오롯이

며칠을 흩날렸을까 벚꽃 바다 머리에 인 채

배 띄워 놓은 연꽃 바다는 배바위로 뻗은 능소화 필 때까지

폭발을 멈춘 채 일제히 숨죽이고 채옹蔡翁만 바라본다.

 

그러거나 말거나 찾은 손님 위해 박카스-디는 나란히

몇 개 빠진 치열을 드러내며 뚜껑 열렸다.

연못 저쪽에서 사진 찍던 이가 신선 같다 하니

수줍고 활짝 웃으셨음에도 애써 ‘무슨!’ 을

매일 본가에서 주암에 이르러 쓸고 닦고

 

사람의 훈기 사라진 누정으로 그대는

곰팡이, 균류, 새의 분비물로 삭고 녹아

육신의 꺼풀 누더기 걸친 욕심 득시글할 터인데

주암정 난간마루에 앉아 계절을 맞고 보내는 채옹만이

아픈 몸 안쪽에서 맑고 은은한 영혼

암반처럼 굳은 심지로 하늘로 파안대소

주암정에서 채훈식 옹과 조경문화답사동인 '다랑쉬'와 기념사진(2023.06.18.) ⓒ온형근
주암정에서 채훈식 옹과 조경문화답사동인 '다랑쉬'와 기념사진(2023.06.18.) ⓒ온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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