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형근 박사
온형근 박사

해남 ‘삼산막걸리 구도’와 만나다

비 온다는 예보에도 감행한 전통건축 ‘수곡포럼’의 해남과 보길도 답사는 운 좋게도 우산 없이 2박3일을 마칠 수 있었다. 다녀오고 나니 물 폭탄 같은 비가 이틀을 내리 붓는다. ‘조원동 원림’의 저수지는 가득 찼다. 보에서 흘러내는 물소리가 폭포소리를 내며 급하게 흐른다. 호안에 식재된 버드나무는 물위에 공처럼 일정 간격으로 운율을 갖춘 채 줄기는 묻히고 수관만 떠있다.

이렇게 비 내린 후면 해남 수정동 원림과 금쇄동 원림이 떠오른다. 비 온 후가 아니면 만날 수 없는 게 수정동 원림의 폭포인 수정렴과 금쇄동 원림의 지일에서 바위절벽으로 떨어지는 두갈래 폭포이다. 지금쯤 장관이겠다. 훌쩍 달려가야 할 참이다.

해남과 보길도 답사를 마치고 돌아온 날, 나는 다시 지긋이 눈을 감고 세연정 원림 건너편에 앉았다. 꿈결같았던 2박3일을 주마등처럼 거닐며 읊조린다.

 

세연정 심사(心詞) - 임천한흥.200 / 온형근

 

 

수정동 병풍바위 수정렴에서 물 맞는 왁자함

금쇄동 골짜기에 비 머금는 소리

기어코 지일에서 휘수정으로 갈라지는 폭포되어

하루 한 번씩 날마다 가고 오고 했더랬는데

간척과 개간의 고됨을 굴거리나무 국활주로,

보길도에서는 경옥주로

하루를 열고 시작했더라는데

 

세연정에 들어와서야 조각배 띄워 노래하니

해남 삼산막걸리 구도와

해창막걸리 십이도는

바위를 들썩이며

지붕을 춤추게 한다.

 

동천석실의 방울소리로

날렵하게 석담에 비춘 희황교는 흔들리고

 

세연정의 굽이치는 유속은

물결 다닥뜨리며 도움닫기로 꺾인다.

부딪치며 차알싹 일 때마다

권커니 없이 들이킴세

 

오늘밤은 늦었으니 송간세로松間細路 사이로 뜬

둥근 달을 벗삼아

동천洞天의 이슬을 받아 마심세

-2022.06.27.

 

세연정 건너편에서(2022.6.25)
세연정 건너편에서(2022.6.25)

 

 

남들이 비웃는다는 띠집인 인소정과 신선의 계곡 바깥에 세운 휘수정에서 오늘은 막걸리 나누며 하지의 날들이 소서의 날들과 화해의 잔을 든다.

 

‘일일래日一來’로 바로 그 자리에서 시를 지어 읊다

그리고는 눈을 뜨고 ‘조원동 원림’의 비 온 후의 풍광이 든다. 비 온 다음날 원림 향유의 특징은 한결같이 눅눅하다. 케케묵은 흙먼지 쓸어낸 폭우는 숲 정원의 백골을 드러낸다. 다시 산들바람이 그리운 날이다. 숲 정원은 잎새 하나 흔들리지 않는 고요이다. 금방 온몸이 젖어 발걸음 옮길 때마다 옷은 착 달라붙어 몸이 둔하고 느려진다. 그럼에도 굴하지 않고 언덕을 내딛으며 읊조린다. 저만치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가면 불어난 계곡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암골 계곡의 이는 물결은 오늘 지나면 흰 포말을 볼 수 없다. 그러니 만사를 제쳐놓고 찾아간다.

한국 최고의 정원가 고산 윤선도는 머무는 곳마다 원림을 조영하고 이를 즐겼다. 만들고 즐기는 데에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겠는가. 고산의 경우에는 ‘일일래, 일왕래’로 압축된다. 우선 일일래를 먼저 살펴본다. 일일래日一來는 문소동을 읊은 ‘입문소동구점(入聞簫洞口占)’이란 시에 나온다.

 

一月聞簫日一來 / 한달 동안 문소동에 하루 한 번씩 오니

碧山紅樹錦千堆 / 푸른 산의 단풍은 나무 비단 천 겹 쌓아 논 듯

村翁只作營家客 / 촌 늙은이 오직 살림꾼이라

朝暮閑情豈識哉 / 아침 저녁 한가로운 뜻을 어찌 알겠는가?

-윤정하 편저, ‘문소동에 들어가 구점하다’ <고산 윤선도 시가집>, 홍익재, 2003, p.135.

 

‘구점口占’하다는 즉석에서 시를 지어 읊는 것을 말한다. 문소동에 들어가며 읊조리는 시의 첫 연이 한 달 동안 ‘하루 한 번씩’ 문소동에 왔다는 선언이다. 그리고 나서 푸른산 붉은단풍인 ‘벽산홍수’를 상찬한다. 그러면서 그저 집안일이나 챙기는 촌 늙은이라 해학적으로 자신을 낮춘다. 마지막 연에서 아침 저녁의 한가로운 정취인 ‘조모한정’을 어찌 알 턱이 있겠는가? 라며 불특정 다수를 향하여 우뚝 날선 의경(意境)을 던진다. 일이 뜻대로 이루어져 기쁜 표정이 가득한 ‘득의만면得意滿面’을 날린다. 그 반듯하고 알 수 없는 자신감을 배경으로 한 묘한 미소가 얼굴에 가득하다.

여기서 ‘일일래日一來’라는 행위는 고산 윤선도의 원림조영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키워드이다. 여기서의 일日은 '날'이다. ‘하루’를 말한다. 래來는 온다는 말이다. 그러니 문소동에 ‘하루에 한(一) 번씩 온다’는 것이다. 다른 곳에서 이곳으로 들리는 행위이다. 돌아갈 곳이 있다는 전제이다. 비로소 문소동은 출발의 거점이라는 공간의 장소성을 획득한다. 일단 문소동으로 왔다가 나선다는 것이다. 문소동 거점 공간에 하루에 한 번씩 들려 스틱과 등산화를 뜻하는 ‘죽장망혜’를 갖추고 원림으로 나선다.

 

‘일왕래日往來’로 얼핏 떠오르는 생각을 시로 읊다

그 다음이 일왕래日往來이다. 여기서의 일日은 하루가 아니라 ‘매일같이’ 또는 ‘날마다’의 뜻이다. 왕래往來는 ‘가고 오고 함’이라는 명사이다. ‘가다’와 ‘오다’의 두 동사가 합쳐져서 명사가 되었기에 ‘매일같이’는 부사가 되어 ‘매일같이 왕래한다’는 뜻이 된다. 그것도 준비를 철저히 하여 복장과 장비를 갖춘 ‘죽장망혜’로 마음을 새롭게 다진다. ‘일래’와 ‘왕래’의 용례를 파악해보면, 오늘날에는 ‘편도’와 ‘왕복’이란 말로 쓸 수 있겠다.

 

금쇄동 안에 꽃들이 활짝 피고 / 金鎖洞中花正開

수정암 아래 물소리 우레 같네 / 水晶巖下水如雷

유인의 신세 일 없다고 누가 말하는가 / 幽人誰謂身無事

죽장망혜로 날마다 왔다 갔다 하는걸 / 竹杖芒鞋日往來

-이상현(역), ‘우음’<고산유고> 제1권/시, 고전번역원, 2011

 

금쇄동의 활짝 핀 꽃에 들뜨고 수정렴의 물줄기 시원하다. 이런 풍광을 발견하기에도 날마다 바쁜데 누가 일 없는 신세라 말하겠느냐고 얼버무린다. 해학으로 너무 좋은 처신에 놓여 있음을 슬쩍 흘린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모르는 사람까지 알게 할 필요가 있겠는가 하는 저의를 돋운다. 문장의 명사는 ‘가고 오는 일’이고, 그것도 ‘매일같이’란 부사까지 덧붙였으니 고산이 거닐던 수정동 원림과 금쇄동 원림은 거미줄 칠 일도 분주하겠다. ‘매일같이 왕복하는’의 주어는 고산 윤선도이고 목적어는 수정동과 금쇄동이다.

이와같이 고산 윤선도는 원림을 만드는 일과 즐기는 일을 적극적으로 독실하게 수행한다. 행복하기 때문이다. 하루에 한 번씩 문소동에 들려 매일같이 수정동과 금쇄동 원림을 향유한다. 즐기는 방식은 낮게 읊조리며 천천히 걷는 미음완보이다. 궁극적인 원림 향유의 목표는 원림에서 노니는 한가로운 흥취인 ‘임천한흥林泉閑興’이다. 숲 정원에서 여유로운 흥을 체화하며 새기는 일이다. 그래서 최고의 정원가는 세심한 관찰과 알아차림의 정성으로 인이 박이는 ‘일일래 일왕래’의 목표를 실천으로 수행하는 달인으로 거듭나야 한다. 고산에게 배우는 실천의 덕목이다.

[한국조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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