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의 공간, 원림에서의 명상과 미음완보
풍류의 공간, 원림에서의 명상과 미음완보
  • 온형근 월백조경문화/문화유산조경박사
  • 승인 2022.05.11
  • 호수 68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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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형근 박사
온형근 박사

도시의 공간과 임천한흥(林泉閑興)의 원림 공간

원림을 미음완보한다. 원림의 출발지를 ‘내원재(內苑岾)’로 삼는다. 내원재는 경사가 있어 처음부터 고도를 높인다. ‘백두고원(白頭高原)길’에 이르러 잠시 평탄해진 틈에 늘 걸쳤던 겉옷을 벗는다. 백두고원길 지나 ‘원로분지(元老盆地)’에 이른다. 원로분지에서 몸의 유연성을 즐기는 이들에게 내 모습은 뻣뻣하기만 하다. 겉옷을 팔목에 감고 지나는 과객인지라 머뭇대지 않고 스치듯 지난다. 이곳 원로분지는 원림을 향유하는 시민에게 순환점이다. 제법 높이를 갖춘 넓은 체력단련장이다. 운동기구는 오래되었으나 다정다감한 손때로 반짝인다. 아직 나는 애송이라 원로분지에 섞이지 못한다.

계속 나아가면서 미음완보하다보면 곧바로 ‘완락재(玩樂岾)’와 만난다. 나는 이 고개의 이름을 갔다가 되돌아 올라오는 왕복 산행 시절에 지었다. 제법 지쳐서 힘이 드는 언덕이다. 고비를 맞이하는 상황 자체를 즐기면서 자유자재로 헤아리라고 완락재라 한 것이다. 요즘은 원림을 내원과 외원으로 나누어 크게 돌아 ‘외원출구’로 통과하니 완락재는 처음과 달리 내려가는 고갯길이 되고 만다.

‘오솔길원형’에서 내려 보는 길 건너 교정에는 개나리, 백목련, 매실나무, 산수유 등이 한꺼번에 난장이다. 오늘은 식목일 하루 전인 4월 4일이다. 임천한흥을 안겨주는 원림은 개암나무와 물오리나무가 피었다 졌고, 생강나무와 올괴불나무는 지는 중이며 진달래는 지금 한창이다. 사람이 만든 공간의 매화는 마지막 짙은 향을 흩날리면서 꽃 지고 열매 맺는다. 그러니 사람이 만든 공간과 임천이 꾸려나가는 원림의 공간이 달라도 참 많이 다르다. 피는 꽃의 차례만으로 아주 확실하게 알 수 있다. 하기야 같은 임천에서도 고도와 방향과 이에 따른 일조량의 차이에 따라 개화 순서가 다름을 눈여겨 귀 기울일 수 있다.

 

한국정원문화에서 풍류의 내면화가 지닌 콘텐츠 가치

풍류는 명상과 산책, 시 짓기와 낭송, 그림과 글씨, 화초를 즐기는 데서 나온다. 자연에서 물고기와 새와 더불어 노니는 즐거움을 지녀서 마음이 순조로운 상태가 된다. 벗과 함께 산천을 유람하면서 깊어진다. 경관이 뛰어난 산과 내를 보면서 감탄을 연발하고 거닐면서 마음을 소통하고 성정을 기른다.

누와 정자와 대가 있는 공간이 풍류공간이며 당연하게 시와 문장이 발현된다. 김창흡(金昌翕, 1653~1722)의 <삼연집(三淵集)> <남유일기(南遊日記)>에 수록된 소쇄원(瀟灑園) 원림에 대한 묘사 중 풍류의 미적 범주에 대한 부분이 있다.

 

21일 맑음. 소쇄원(瀟灑園)을 방문하였다. 작은 시냇물이 졸졸 흐르고 굽이굽이 흘러 몇 길이나 되는 폭포를 이루었다. 그 위에는 조담(槽潭)이 있는데 좌우에 무성한 대나무와 늙은 매화가 있었다. 폭포 맞은편에 초가집을 짓고 있었는데,(......) 또한 나그네를 좋아하는 풍류를 볼 수 있다.

-출처 : 박경자, <조선시대 정원>, 학연문화사, 2010, p.231.

 

김창흡은 전날 환벽당에 들렸다가 다음날 소쇄원을 찾았다. 소쇄원 원림을 빨리 조성하여 나그네를 모시겠다는 주인의 마음이 풍류로 표상되었다. 원림이 풍류의 산실인 것은 조성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고, 사람이 교류하고 모이고 시회를 하면서 격식과 품격을 나누는 일상의 행위에서 비롯됨을 시사하는 내용이다. 조담(槽潭)은 나무통으로 된 작은 연못이다.

 

소쇄원의 풍류(사진 좌측, 2020.01.12)과 옥산서원 무변루 앞 계류인 자계, 저 아래로 용추와 세심대가 위치함(2020.11.25)
소쇄원의 풍류(사진 좌측, 2020.01.12)과 옥산서원 무변루 앞 계류인 자계, 저 아래로 용추와 세심대가 위치함(2020.11.25)

 

 

퇴계 이황(李滉, 1501~1570)은 도산서당의 완락재(玩樂齋)에서 독서하며 「도산십이곡」을 짓고 풍류를 즐긴다. ‘절우사(節友社)’라는 화단에 매화를 비롯하여 벗이 되는 대나무, 소나무, 국화 등을 애정하였다. 특히 매화의 풍류를 지고지순의 형이상학으로 삼아 시로 짓고, 삶의 끈을 고귀하게 추켜세운다. 매화시로 삼은 풍류의 특징은 운치, 낭만, 자유, 배려의 키워드로 전개된다. 퇴계의 재는 ‘삼가할 재(齋)’라 서재를 말하고 이곳 원림의 재는 고개를 말함이어서 ‘고개 재岾’라고 표기한다. 명명할 때 퇴계의 완락재가 떠올랐다면 그 숨차고 힘 들어가는 고개의 이름으로 선정하지 않았으리라. 고개의 이름을 완락재라 명명한 것은 우연일 뿐이다.

 

‘열린원림문화’ 향유는 풍류의 내면화이다.

한국정원문화에서 풍류가 지닌 콘텐츠는 이루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다. 나무와 숲이, 새와 꽃이, 폭포와 계곡이 하나같이 풍류를 이루는 원천이다. 심지어는 돌에 새겨 지워지지 않는 풍류의 현장인 암각 장기판 입지가 풍류 공간으로 작동되었다. 기원이 오래된 왕희지의 「난정기」에 기록된 ‘유상곡수연’은 대표적인 풍류의 현장이고 포석정을 비롯하여 남양주 가오별업, 강진 백운동 별서, 아산 외암마을 송화댁, 보길도 낭음 계곡 등 많은 문화유산을 확인할 수 있다. 한결같이 풍류의 콘텐츠를 바탕으로 전개되는 정원문화인 것이다.

시냇가 계곡을 바라보는 곳에서의 풍류 또한 주목할 만하다. 옥산서원 무변루(無邊樓) 앞 시냇가가 그러하다. 연못, 폭포, 계류는 풍류의 공간으로 중요하게 활용되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계곡 풍류의 사례는 거의 전국적으로 분포되어 부임한 관리가 경승지를 찾아 풍류를 즐긴 문화경관의 의미가 곳곳에 스며있다. 양동마을의 관가정(觀稼亭)은 확 트인 산과 들 내를 바라보도록 담장을 치지 않는 조치를 통하여 풍광이 보전되는 풍류에 들었다.

 

풍류로 퇴고하다 – 임천한흥.057 / 온형근

 

백두고원 쯤 뻐꾸기 풍류에 화답하듯 나뭇잎 뒤집어 바람이 냅다 뛰는 방향으로 손 내민다.

따라가려는 걸까 이어달리기 손뼉일까

 

따가운 햇빛 원림으로 쏟아져 날리려나

나비 저공비행 허리춤으로 쌍쌍 따라 붙고

섹소폰 블루스 연주에 한 바퀴 돌고 나더니

나 혼자 임천으로 퇴거한 채 미음완보하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퇴고는 매일이고

절명의 임계치에 마음 편히 안정은

은둔의 잎새 흔들리며 마르는 소리

수풀 아래서 쫑쫑쫑 뛰는 약동의 까치발

 

-2021.05.24.

 

「풍류를 퇴고하다」는 학위논문을 퇴고할 즈음에 지었다. 절체절명의 임계치 수위가 높았다. 절박함의 정도가 몸의 순환 계통을 가득 채웠다. 아무도 어찌하지 못하는 경계에 들어 하라는 대로 ‘따라가려는’ 것일지, 아니면 ‘손뼉’을 치면서 얼른 이어받으며 화답하여야 할지를 판단하는 순간이 연속적으로 계속되고 있을 때이다. 이때 역설적으로 원림에서의 미음완보와 임천한흥은 ‘석양이 좋다마는 황혼이 가깝거다’의 미묘한 차이를 일깨웠다. 석양이 그윽하고 볼만한 풍경이라고 마냥 넋 놓고 즐길 수만 없는 것이다. 곧이어 황혼이 깔리면서 어떤 것도 안 보이는 순간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이토록 절박한 퇴고의 순간에 이루어진 ‘원림 향유’는 절명을 탄생으로 되돌린다. 이렇게 손뼉을 치면서 화답할 수 있도록 이끈 것은 놀랍게도 ‘벽수앵성(碧樹鶯聲)’, 푸른 숲에서 울어대는 꾀꼬리 소리였다. ‘벽수앵성’이 윤선도의 <어부사시사> 「하사.7」 종장의 시경이라면, ‘석양이 좋다마는 황혼이 가깝거다’는 같은 시의 초장의 풍경이다. 5월이 오면 원림에서의 ‘벽수앵성’ 풍류를 다시 음미하고자 한다.

[한국조경신문]

 

온형근 월백조경문화/문화유산조경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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