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형근 박사
온형근 박사

명승의 미디어 콘텐츠 노출에 따른 신화 탄생

중부 지방으로 물 폭탄 쏟아지면서 침수와 수해에 예측 어려운 피해가 속출했다. 장마철 대비 배수로와 하수로, 하천 점검은 어김없이 제 때에 실시되어야 한다. 해마다 배수관 교체 등의 정비 사업이 꾸준히 거듭되어야 한다. 공공과 개인 모두 동참하는 거국적 일상의 루틴이어야 한다. 마을만들기 사업이나 정원박람회, 가든쇼 등의 보여주기식 조성비용에 진심이기보다, 만들어진 것의 유지관리에 집중하여야 한다. 잘 드러나지 않지만 시행으로 공공의 가치를 끌어올릴 수 있는 세심한 관찰이 수반되자는 관점이다.

 

의이신위호, 인이구위호

衣以新爲好, 人以舊爲好

- 홍만종, <순오지(旬五志)>

 

조선 후기 홍만종이 보름만에 완성시킨 여러 말과 속담의 기록인 ‘순오지(旬五志)’에 나오는 ‘옷은 새 옷이 좋고 사람은 오래된 사람이 더 좋다.’는 의미의 속담이다. 새 것 좋아하는 것보다 오래된 것에 더 깊은 속정이 있음이다. 그러나 오래된 것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니 선출직 정치와 행정, 재정은 보이지 않는 행위에 투여하기보다 누구나 쉽게 파악되는 새옷의 추구에 매진한다. ‘순오지’에는 영웅적 힘을 기르기 위한 신선수련법을 소개하는데, 단전호흡을 비롯한 여러 비법을 기록하였다. 도교를 ‘단학(丹學)’이라고도 하였으며 이 분야의 인물 40명을 수록하고 그 인명과 출전을 밝히기도 하였다. 이처럼 조경의 가치는 오래되고 먼 길을 나서는 출발점의 세심한 계획에서 시작된다.

속수무책 짧은 시간 퍼붓는 국부 지역 폭우를 대할 때마다 구례의 명승인 오산 사성암이 떠오른다. 급경사를 한참 올라가는 그 길로 일군의 소 떼가 절 안마당까지 안착하여 큰비를 대피하였다는 뚜렷한 사실이다. 2020년의 여름이다. 섬진강 범람으로 이어지는 구례의 피해는 걷잡기 어려울 정도로 컸다. 특히 많은 동물이 떠내려간 그 여름의 TV를 포함한 각종 미디어의 뉴스는 전국적으로 전파되며 절실한 상황을 다급하게 노출하였다. 축사가 침수되자 이를 피해 피난 행렬을 한 것인데, 얌전하게 절에서 쉬다가 떠났다고 한다. 2년 지나 찾아가니 그 당시 찍은 사진이 벽면에 있고, 이를 벽화로 그려 다른 벽면에 기념하였다. 선(禪)의 수행을 소와 동자에 비유한 심우도(尋牛圖)가 떠오른다. 사성암 심우도는 실제 일어났던 사건이다. 살아있는 신화를 친견하듯 동시대의 사건을 영접하느라 내심 전율한다.

 

섬진강 홍수 피해 해발 531m 사성암에 대피 소떼 사진(사성암, 2020.08.09.) / 벽화로 그려서 심우도를 대신한 소떼 그림(사성암, 2022.08.09.)
섬진강 홍수 피해 해발 531m 사성암에 대피 소떼 사진(사성암, 2020.08.09.) / 벽화로 그려서 심우도를 대신한 소떼 그림(사성암, 2022.08.09.)

 

열린원림문화의 향유는 리추얼 라이프의 실행으로 가능하다.

남쪽으로 내려간 폭우가 다시 올라온다는 예보 사이에 ‘리추얼 라이프(Ritual Life)’의 실행으로 조원동 원림을 소요한다. ‘리추얼 라이프’는 규칙적으로 행하는 의식을 뜻하는 리추얼(Ritual)과 일상을 뜻하는 라이프(Life)의 합성어이다. ‘일상에 활력을 불어넣는 규칙적인 습관’을 말한다. 무의식이 아닌 의식적인 개입, 저절로 생긴 습관이 아닌 만들어낸 습관이다. 자신의 삶에 긍정적 변화를 주기 위해 본인의 의지로 직접 만들어가는 게 ‘리추얼 라이프’의 특징이다. 무엇보다도 일상에서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실천 활동이어야 한다. 여기에는 심리적 만족감과 실천 이후에 확 쏟아지는 성취감이 최고조이다.

원림은 예기치 않은 곳으로 물길이 흘러 새로운 길도 열리고 곳곳이 파였다. 눅눅한 임천으로 모기 극성이다. 그러니 부채를 치면서 오르내린다. 한껏 푸르게 자란 광교 정수장 흉한 철조망 따라 오솔길 가로 식재한 일본목련의 한껏 커진 가지 끝 총생한 잎새와 만난다. 저 잎새가 바람에 흔들리며 잎 뒷면의 은백의 시원함을 슬쩍슬쩍 보여줄 때는 얼마나 열락이었던가. 어느 이른 봄 떨어진 잎새가 말리어 뒤집힌 채 여기저기 움크려 있는 모습에 놀란 적 있었다. 그때 나는 이른 봄부터 멧비둘기가 산상회의를 하는 줄 알고 경이로웠던 것이다. 그게 떨어진 일본목련 낙엽이었다니. 아직도 그날의 경이로움의 떠올리면 순간으로 주저앉듯 다리가 떨린다.

 

새의 정물 - 임천한흥.136 / 온형근

 

산상회의처럼 숲의 명암에 갈려 들쭉날쭉

두 손 모아 거듭 읍하며 정지한 채로

생멸 끊긴 영원의 시간을 통촉하소서

 

뒤집혀 볼록하거나 그대로 오목하게 말린

일본목련의 낙엽이 만들어 낸 환생의 군락

 

세상 다 산 듯 햇살에 멍때리며 삼매에 든

열락의 아우라로 손가락 하나 찌를 수 없다.

 

눈부신 정물 앞에 생의조차 멈췄다.

 

다시 한국정원문화의 진정한 콘텐츠는 무엇인가를 되묻는다.

여러 의미와 사건을 제시할 수 있다. 시로 풍광을 읊는 시경이고 산수화로 표현한 화경이며, 풍수지리, 도교/신선/상상환경, 향교와 서원, 원시신앙과 종교, 차 문화, 부의 과시 등으로 나열할 수 있겠다. 그러나 열린원림문화 향유의 실천으로 보았을 때, 가장 적합한 콘텐츠의 내용은 규칙적으로 ‘하루에 한번씩’인 일일래(日一來)와 ‘매일같이 왕래하는’ 일왕래(日往來)에 기초한다. 기반이 일일래, 일왕래이고 여기에 ‘리추얼 라이프’의 의미를 루틴(Routine)화된 원림의 관행으로 이끌어야 한다. 그런 연후에 시경, 화경, 풍수, 종교, 문화, 경제 등의 콘텐츠가 살아있는 ‘사건’으로 의미를 획득한다.

 

평일에도 사고가 있지 않으면 세연정에 나와 있지 않은 적이 없었다.

- 윤위, <보길도지>

 

고산 윤선도는 무슨 특별한 일이 생기지 않는 한 보길도 세연정을 하루에 한번씩, 매일같이 왕래하였다. 앞서 말한 해남의 문소동, 수정도, 금쇄동 원림에서도 일일래, 일왕래로 일관한 고산의 원림 경영 방식을 보길도 원림에서도 충분히 발견한다. 물론 다음 기회에 다룰 예정이지만 보길도 세연정에서는 고산이 부러운 산신령의 장난질도 묘사되었다. 어느 날 우연히 세연정에 나가지 않았는데 거기서 바둑 놓는 소리가 매우 분명하게 들렸다는 것이다.

그러니 한국정원문화에 있어 ‘원림’의 정의는 경계, 규모, 풍광 등의 많은 방법이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매일같이 왕래하는 리추얼 라이프의 루틴에 가장 큰 열락의 비밀 열쇠를 지녔음을 새삼 확인한다. 만들기만 하고 유지관리가 안되는 외국의 많은 한국 정원의 실상이 그렇고, 지자체의 공원과 공공의 정원박람회, 가든 쇼 등이 그렇다. 잘 만든다. 만들어 놓고 끝이다.

[한국조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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