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ndscape Times] 아프리카 케냐와 탄자니아를 관통하는 세렝게티 초원은 태곳적 야생이 남아있는 곳이다. 초식동물과 육식동물이 어울려 살아가는 이곳은 긴장과 전운이 가득하다. 순간의 방심은 생명 의 끝을 부른다. 우리는 초식동물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는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들 입장에서는 생명유지를 위한 중요한 활동이다. 게다가 그들은 결코 ‘한가롭지’ 못하다. 떼 지은 무리가 식사하는 그 시간을 호시탐탐 노리는 육식동물들이 있기 때문이다. 바람의 방향을 감지하면서 냄새를 피우 지 않으려 최대한 몸을 낮추고 소리를 죽이며 다가오는 살육자가 있다.

연약한 초식동물들은 일초라도 긴장을 놓을 수 없다. 사냥자의 표적이 되는 순간 목숨을 부지하려는 사투가 시작되고 무리를 지어 사냥감을 노리는 암사자들이라도 만나는 날은 생의 마지막 순간이 될 수도 있다. 먹을 것을 찾아 이동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아프리카 초원의 생명의 현장을 보다 보면 인간의 삶 또한 크게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육식동물의 삶은 또 어떤가? 최상위 포식자 군에 들어가는 사자도 살아가기 힘든 것은 마찬가지이다.

세렝게티 초원에 홍수가 나면서 새 끼의 행방을 알 수 없는 암사자 한 마리가 새끼를 찾으러 정처 없이 떠돌다가 물소떼와 마주쳤다. 멋진 뿔이 일품인 소들은 암사자를 위협했다. 암사자는 얼른 몸을 피했지만 소들로부터 안전할 수 없었다. 궁여지책으로 그녀가 선택한 것은 중간 크기의 나무였다. 어렵사리 나무 위에 올랐지만 사자가 나무를 타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게다가 그다지 크지 않은 나무라서 몸을 의탁하기 힘들고 발이 미 끄러져 여차하면 아래로 떨어질 판이었다.

나무를 포위한 당당한 뿔의 소들은 암사자가 떨어질 시간만 기다리며 위협하며 맴돌고 있다. 아, 사자도 이렇게 볼품없는 모양새가 될 수 있구나! 게다가 이 사자는 새끼들을 찾으러 황망하게 길을 재촉하는 중이 아니었던가. 너무도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는 데 몸을 지탱하기 힘든 사자가 필사적으로 다른 가지로 발을 옮겼다. 작은 가지였다. 이제 가지와 함께 떨어져 소들에 의해 처참한 죽음을 당하게 생겼다.

그런데 이 아찔한 순간에 기적이 일어났다. 사자가 발을 디딘 가지가 뚝 꺾이며 땅으로 풀썩 떨어졌다. 가지가 떨어지자 나무 아래 집결했던 소들이 놀라 한순간에 달아났다. 잠깐 동안 의 일이다. 다행히 사자는 원래 있던 가지로 몸을 옮겼고 아슬아슬했던 사자의 시간은 종료되었다. 화면을 보던 나도 휴우 하며 가슴을 쓸었다. 어느 새 손은 꽉 쥐어져 있었고 땀이 배어 있었다. 덩치 큰 소들이 왜 나뭇가지 에 놀라 달아났을까? 궁금했지만 내레이터도 그 이유는 설명해주지 않았다.

혼자 마음속으로 내레이션을 해 보았다. “나무가 쓰러질 때 피해를 입고 놀란 경험이 있는 소들은 황급히 자리를 피합니다.” 이렇게 말이다. 이번 설맞이 5부작 ‘세렝게티2’의 한 장면이다.

나는 항상 식물의 의인화를 꿈꾼다. 내가 준비한 진짜 설명은 이런 것이다. “나무가 자식을 찾아 떠도는 배고프고 지친 암사자를 도왔습니다. 나무 는 사자를 도울 궁리를 하다가 이내 자신을 희생하기로 한 겁니다. 자신의 가지를 내어주고 사자를 살렸습니다. 하기야, 나무가 동물들을 돕고 희생하는 일이 어디 이번 한 번 뿐일까요?”

그렇다. 나무는 무수한 생명을 품고 산다. 세렝게티에 홍수가 닥칠 때 개 코원숭이 무리도 나무 위에 올라가 위험을 피했다. 홍수로 초원이 군데군데 잠겨 이동이 어려워지자 대장부터 서열대로 나무를 도약대로 삼아 점프하여 뭍으로 나가는 장면도 있었다. 원숭이나 침팬지는 안전을 위해 꼭 나무 위에서 잔다. 나뭇가지를 잘 구부리고 위에 이파리를 덮어서 침대를 만들고는 거기서 잔다. 물이라면 딱 질색인 표범에게도 나무는 좋은 은신처이다. 나무 아래 먹잇감이 드글대도 물이 싫어서 내려가지 않는 표범 가족은 나무 가지에서 비에 젖은 발을 탈탈 털어낸다.

그렇게 나무는 삶의 은신처이고 갑자기 닥친 행운이고 든든한 의지처이다. 나무에 기대어 사는 동물종은 수천가지이다. 호기심 많은 동물학자들 이 600년 된 고목에 독한 살충제를 뿌린 후에 죽어 떨어진 곤충들을 살펴보니 무려 257종의 2041마리나 되었다는 보고가 있다. 심지어 나무는 죽어서도 생명을 키우고 살린다. 식물 및 동물종의 약 1/5이 죽은 나무에 의지해 살아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알려진 종만 해도 6000여 종이나 된다.

문득 ‘나의 나무’를 생각해 보았다. 나는 ‘누구’ 또는 ‘무엇’에 기대고 피하고 마음을 둘까? 내가 코너에 몰릴 때 삶의 어려움에 닥칠 때 생사의 갈림길에 있을 때 실패했을 때 쉬고 싶을 때 행운을 바랄 때 누구 또는 무엇이 나를 지탱해줄까? 누군가의 나무는 가족이기도 친구이기도 연인이기 도 스승이기도 할 것이다. 어쩌면 자신만의 신념과 꿈과 일이 나무가 되어주기도 한다.

당신의 나무는 누구 또는 무엇인가? 당신의 의지처인 그 나무를 당신은 어떻게 가꾸고 보호하는지? 야생의 초원에서 벌어지는 생명의 안타까움을 보면서 문득 그런 생각에 잠겼다.

[한국조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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