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ndscape Times] 지인들이 보내주는 봄꽃 사진이 핸드폰에 넘쳐난다. 경주, 지리산, 아산, 서울의 봉은사에 피어오른 홍매화, 미선나무, 진달래, 벚꽃, 복사꽃이 자신만의 매력으로 우리들의 마음을 훔친다. 상록수들도 새로운 잎을 연다. 연두색과 노란색, 분홍색과 자주색, 화려한 흰색이 어우러져 무채색이었던 대지에 생기를 준다. 봄이다! 겨울이 되면 언젠가 봄이 오겠지, 하고 해마다 기다리는 봄이다.

그렇게 식물들은 겨우내 잠자다가 깨어날 때를 잊지 않는다. 그들의 정확한 시계 덕분에 우리도 계절을 느끼고 시간을 헤아린다. 식목일이 들어있는 4월은 식물이 세상에 다시금 태어나는 때이다. 그에 비하면 3월은 엄마 뱃속에 있는 때라고 하겠다. 식물은 4월부터 7월까지 영양생장을 한다. 키를 쑥쑥 키운다. 그러다가 8월 이후부터는 비대성장을 한다. 식물의 4계절을 인간의 일생에 비한다면 어떻게 될까?

성글게 본다면 봄은 어린이, 여름은 청년, 가을은 중년 또는 장년, 겨울로 접어들면 노년이 될 것이다. 4월에 피어오르는 꽃과 잎은 생명력을 뿜어낸다. 긴 기다림 끝에 세상에 나온 작은 아기처럼 바라보기만 해도 흐뭇한 미소를 부른다. 약동하는 그들의 용틀임은 지쳐 기운이 빠진 인간들에게 보약이다. 4월의 식물은 태어나서 10살까지의 아이로 볼 수 있겠다. 이 시기 아이들에게 무엇을 해 주어야 할까?

정원에 있는 나무는 잎이 나오기 전인 2월에서 3월 중에, 분에 심은 식물은 4월부터 거름을 준다. 뿌리생장이 극대화되는 5월 중순에는 거름을 많이 준다. 물을 주는 빈도도 조절해야 한다. 3월에는 2~3일 간격으로 한 번 주면 족하지만 4월이 되면 매일 물을 주어야 한다. 갓 태어난 아이에게 충분한 젖을 주고 폭풍 성장하는 유년기 아이들에게 양질의 영양을 제대로 공급해 주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사람이 성장하면서 갖은 시련을 겪듯이 식물도 자라나면서 병충해와 싸운다. 섭씨 27도가 고비이다. 이때부터 식물을 괴롭히는 병충해들이 기승을 떤다. 싸워 이기면 살아남고 그렇지 못하면 병이 나고 심지어 죽는다. 영양생장을 끝내는 7월은 인간의 30대 쯤 되지만, 인간의 20대에 해당하는 기간인 6월이 되면 식물은 다음 해 봄에 피워 올릴 꽃을 준비하기 시작한다. 사람으로 치면 다음 세대를 준비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지리산 둘레길 복사꽃. 산과 길과 마을과 나무가 어우러진 정경은 인간과 식물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한재희
지리산 둘레길 복사꽃. 산과 길과 마을과 나무가 어우러진 정경은 인간과 식물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한재희

대부분의 식물은 유년성을 지닌다. 유년성이란 식물이 발아 후 일정기간 성장을 하여 일정한 크기가 될 때까지 다음 세대를 준비하지 않는 것이다. 6월쯤 되면 화아분화가 일어나는데, 화아분화란 식물이 생육도중에 식물체의 영양조건, 생육년수 또는 일수, 기온 및 일조 시간 등 필요한 조건이 충족되었을 때 화아를 달게 되는 일이다. 종류에 따라 또는 동일 작물이라도 품종에 따라 그 시기가 다르지만, 대개는 기온이 높은 여름철에 분화하는 일이 많다.

과채류의 경우에는 과실 생산이 주목적이므로 충실한 화아 형성이 매우 중요하다. 화아분화란 인간에게는 가정 꾸리기 또는 평생 자신이 일할 터전 잡기 등에 해당할 것이다. 학교생활을 하면서 부지런히 양분과 거름과 물을 먹고 생장하는 청소년기를 지나 청년기에 하는 일이 화아분화이다. 반면 단풍이 드는 10월 중순에서 11월 중순은 인생의 노년기이다. 노년기는 이제까지 보여주지 않았던 모습을 선보이는 시기이다.

엽록소에 가려 보여주지 못한 노랗고 붉은 색을 자랑하며 평생을 걸친 노고를 치하하는 화려한 은퇴식을 거행한다. 인간도 식물도 겨울, 노년이 되면 모습이 변한다. 그런데 우리는 식물의 노년은 아름답다고 하고 인간의 노년은 추하다는 편견으로 대한다. 백발과 주름, 구부정한 외모를 극도로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 봄부터 꽃과 잎을 피워올려 결국에는 씨앗을 만들어낸 식물의 노년은 가정과 일에서 자신의 할 일을 완수한 인간의 노년과 같다.

겨울나무의 앙상한 가지, 나목의 모습은 인간의 정신, 본질이다. 우리는 우리를 평생 감싸고 있던 이름들, 허명, 겉치레, 욕망 등을 훌훌 벗어던지고 자신 앞에 선다. 꽃과 잎과 열매에 가려 누구의 자식, 누구의 제자, 누구의 아내 또는 남편, 누구의 부모, 어느 회사의 누구로 불렸던 모든 것들을 담담하게 내리고 삶을 관조한다.

그렇게 식물과 우리는 같은 계절을 살아간다. 그 계절, 그 달, 그 절기, 그 시기에 해야할 일들을 마음 졸이며 수행하면서. 피워 올린 꽃의 낙화와 내내 고생한 잎들과의 이별과 풍성하거나 조촐한 열매의 수확과 부대끼면서 우리는 산다. 식물처럼!

[한국조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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