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ndscape Times] 농부의 손길이 분주해지는 가을이다. 어느 때인들 바쁘지 않았겠냐마는 가을 일손은 설렘과 뿌듯함에 가득하다. 봄부터 여름까지 호흡을 맞추어 애지중지 키워온 식물들의 소중한 씨앗들을 받아내는 때이다. 하늘과 땅의 합작품인 식물의 씨앗과 열매는 온 세상을 신나게 한다. 하늘과 땅 사이에 사는 사람들은 자연이 제공한 조건 속에서 최선의 것들을 만들어내기 위해 예로부터 지금까지 땀을 흘려왔다.

그래서 동양에서는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라는 표현을 썼다. <역경(易經)> 은 삼재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하늘의 길이 있고 사람의 길이 있고 땅의 길이 있으니 세 바탕이 어우러져 모두 동등하다.” <설문해자>에서는 왕(王)의 어원에 대하여 천지인을 꿰뚫어 연결하는 사람으로 언급했다. 모름지기 남의 리더인 왕이 되려면 자연과 인간에 통달해야 함을 말했던 것이다.

하늘과 대지 사이에 식물이 있다면 그 식물을 지켜보고 키우고 즐기는 사람이 있다. 사람들은 식물의 비위를 맞추고 식물과 교감하고 식물을 살리며 자신들의 삶을 영위해 왔다. 식물이 사계절의 사이클을 한 번 돌 때 사람들도 인생의 주기를 생각했다. 꽃피고 잎이 돋는 봄에 인생의 활력과 생기를 느꼈고 푸르른 여름에는 무성한 잎들의 노동처럼 부지런히 일했다. 가을은 어떨까?

정말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시절이다. 새 생명이 완성되는 바로 그 자리에 죽음과 희생이 따른다.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현장이다. 열매와 씨앗이 익어가는 와중에 식물은 다음 사이클을 고심한다. 그래서 잎을 떨구고 심지어는 가지도 잘라낸다. 일종의 구조조정이다. 가을에 이 일을 하지 않으면 다음 생을 기획할 때 식물은 곤란해 질 것이다. 탄탄하고 건강하게 겨울을 나고 새 봄을 맞으려면 꼭 해야 할 일이다.

식물처럼 하늘과 땅 사이에 사는, 식물처럼 다리는 땅에 붙이고 머리는 하늘을 향해 사는 우리 인간들은 어떨까? 무엇을 수확하고 무엇을 버려야 하는가? 한 해라는 주기도 있고 일생이라는 주기도 존재하는데 우리 각자는 이 가을에 무엇을 해야 할까? 열심히 일해서 만든 열매가 생각보다 부실할 수도 있고 원치 않은 태풍에 채 익기도 전에 떨어져 버렸을 수도 있다. 기껏 애썼는데 별 수확이 없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그저 낙심하고 주저앉아야 할까?

식물은 가을에 극심한 이별을 한다. 잘 키워놓은 씨앗과도 이별하고 수고롭게 일한 잎들과도 이별한다. 끈적한 애정과 집착인 수분을 줄이면서 수많은 헤어짐에 직면한다. 그렇게 홀로 겨울을 준비한다. 이 냉정한 별리(別離)는 그들의 몫이다. 이 순간 만큼은 그 무엇과도 그 누구와도 타협하지 않는다. 사실 그들의 성적표는 잘 익은 열매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기준일 뿐. 그들의 성공한 가을은 얼마나 멋진 나신(裸身)이 되느냐에 달렸다.

세상이 찬사를 보냈던 외모와 업적과 명예와 부를 떨구고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계절이 가을이다. 나목(裸木)은 외적인 것을 배제한 나무 본래의 능력을 상징한다. 사람으로 치면 순수한 그 사람 그 자체이다. 인생의 사이클에서 우리는 무수한 존재들과 만난다, 나무처럼. 스치는 바람도 있고 둥지 틀고 사는 새들도 있다. 가지에 매달려 탈피하는 곤충도 있고 달려와 둥치에 상처를 내는 동물들도 있다. 뿐만 아니다. 나의 가지들, 나의 잎들, 나의 꽃과 열매들과도 만나고 헤어진다.

파란 하늘 아래 추수의 손길이 바쁜 농부의 마음은 부자이다. 안홍석
파란 하늘 아래 추수의 손길이 바쁜 농부의 마음은 부자이다. ⓒ안홍석

인생은 쉴 사이 없이 만나고 또 만나고 헤어지고 또 헤어진다. 부질없이 아픔만 준 사연도 있고 하릴없이 즐겁기만 했던 인연도 있다. 상처주고 기쁨주고 도움주고 아픔을 준 그 모든 만남들,... 그들로 하여 세계 역사는 만들어지고 인류 문명은 발전해 갔다. 거창하고 거대한 사건과 사실(史實)들도 인간과 인간이 만나고 헤어짐에 다를 것이 없다. 나무처럼 식물처럼 우리는 그렇게 수많은 만남을 계속해 왔다. 무겁다면 무거운 생의 한 가운데서 이 가을 속에서 우리는 나목을 꿈꾼다. 그리고 땅 속 깊이 내린 뿌리를 기억한다.

조선 중기의 시인 신흠의 시 <야언(野言)>을 되새겨 본다. “오동은 천년을 살아도 항상 노래를 품고, 매화는 평생 추워도 향기를 팔아먹지 않는다. 달이 천만번 이지러져도 본바탕은 그대로이고, 버들은 수없는 이별을 겪어도 다시 새 가지를 만난다.” 식물과 자연의 변화하는 일상으로부터 인간의 삶을 노래했다. 식물의 변화는 변화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식물은, 나무는 다음 봄의 꽃과 잎을 피울 순과 눈을 기획한다. 가을에 이파리를 들쳐보면 새로 생긴 눈을 볼 수 있다.

버리는 그 순간에 식물은 채운다. 헤어지는 바로 그 때에 식물은 다시금 만난다. 이 가을에 우리는 변함없이 ‘야누스 식물’을 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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