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ndscape Times ] 며칠 전 논산에서 농사하는 지인이 누렇게 물든 논을 찍어 보내주었다. 봄기운이 가물거리던 때 녹고 있는 땅을 보내준 때가 어제 같은데 어느덧 추수할 때가 된 것이다. 모내기하는 논의 모습과 푸릇하게 자라는 벼의 싱싱함도 기쁨이었다. 도시에 있는 나는 그 분의 땅에서 계절과 생명의 순환을 본다. 얼마 전 충청 지역에 태풍이 쓸고 지나갔을 때 염려하였으나 다행히 그 곳은 무사하다고 전해 주었다.

지인의 친절로 내게도 그 분의 송글한 땀방울을 보내주시니 그 땅의 안녕을 기원하는 것은 겸사겸사 당연하다. 그렇다! 이제 우리는 초봄부터 가을까지의 모든 바람과 수고와 인내와 마음졸임의 결실을 본다. 동양에서는 일찍이 세상만사가 세 가지 힘의 합작이라고 보았다. 하늘과 땅과 인간이다. 하늘을 이고 땅을 디디고 가운데 우뚝 선 인간은 하늘을 올려다보고 땅에 뿌리를 두고 가지는 옆으로 뻗는 나무(식물)와 닮았다.

식물이 꾸준히 천천히 제 할 일을 하듯 인간 또한 그렇게 살아간다. 하늘은 어떻고 땅은 또 어떠한가? 성실하기론 하늘을 따라갈 존재가 없다. 하늘의 운행과 하늘의 조화는 땅에 그대로 투영되기 때문이다. 하늘은 부지런히 자기 할 일을 한다. 땅에 사는 인간이 무어라 하늘을 원망하고 욕해도 끄떡하지 않는다. 인간은 가물면 가물다고 비가 오면 질척하다고 더우면 덥다고 추우면 춥다고 불평을 아끼지 않는다. 물론 땅도 하늘에 영향을 준다. 땅이 머금은 기운이 하늘까지 닿는다. 그렇다고 해도 하늘이라는 원인자의 능동적 행위가 우선이고 먼저다.

동양의 철학서이자 점서인 <역경>은 바로 이 하늘과 땅과 사람의 이야기를 풀어낸 책이다. 그 첫 번째 괘인 건괘는 하늘의 꾸준함을 선으로 여겨 찬양한다. 그것이 자강불식(自强不息)이다. 스스로 굳건히 하여 힘써 잠시도 쉬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하늘의 운행이고 자연의 원리이다. 우리는 밤에 잠이 들 때 태양을 찾지 않지만 다음 날 아침에 해가 떠오를 것을 믿는다. 창문을 뚫고 들어오는 햇살이 아침잠을 꺠울 것을 안다. 농부는 겨우 내 언 땅이 스르르 녹는 시절을 믿고 기다린다.

하늘이 주는 비가 온화하게 땅을 적셔 작은 벌레들이 꿈틀대는 시절이 온다는 걸 믿는다. 한 낮의 뜨거운 태양이 어느덧 따갑게 변하고 다시 따뜻해지면 겨울잠 동물들이 월동준비를 한다는 걸 안다. 사철이 있는 지역은 축복받은 곳이다. 양(陽)이 극에 달하면 음(陰)이 비집고 들어오고 음이 극성을 떨면 양이 움트는 자연의 이치가 인간에게 희망과 등불이 되는 지역이다. 변화가 살아감의 원리인 곳이고 그 원리는 변화하지 않음을 가르쳐 주는 곳이다. 그리고 그 모든 시작은 하늘에서 왔다.

변화가 변하지 않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다. 인간도 식물처럼 꾸준히 묵묵하게 하늘과 땅을 좇을 때 행복하고 성공한다.
변화가 변하지 않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다. 인간도 식물처럼 꾸준히 묵묵하게 하늘과 땅을 좇을 때 행복하고 성공한다.

하늘의 강건함, 하늘의 꾸준함, 하늘의 성실함, 하늘의 온전함이다. 이 원리를 역경에서는 자강불식(自强不息)이라고 했다. 《역경(易經)》 〈건괘(乾卦)·상전(象傳)〉에 나오는 말이다. “하늘의 운행이 굳세니, 군자가 이것을 따라서 스스로 힘쓰고 쉬지 않는다.” 하늘이 자강불식하니 땅도 따라서 자강불식한다. 하늘과 땅 사이의 식물과 인간도 그렇게 한다. 인간은 처음에는 어찌 살 줄 몰라 어리둥절하였는데 식물들, 나무들을 보면서 살아가는 원리를 깨닫게 되었다. 하늘과 땅 사이에서 인간은 식물을 따라한다.

그렇게 살아가는 인간은 살아 남는다. 자신의 생명과 사명을 완수하고 남들에게 기쁨과 열매를 준다. <역경>은 어려운 책이 아니다. 식물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살아 남는지를 기록한 책이다. 인간 중에 성공한 이들의 ‘식물처럼 살기’를 분석한 책이다. 이제 가을이다. 이 가을에 우리는 식물을 따라 해본다. 꾸준히 묵묵하게!  

[한국조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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