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여름의 하늘은 가을하늘만큼이나 예쁘다. 생명을 온통 잠 깨우느라 바쁜 봄이 지나서일까, 초여름에 들면 하늘은 잔잔한 기운이 돈다. 땅은 어떤가? 땅도 봄에 새로운 시작을 도모하느라 몸살을 치르고 나서 안정기에 들어서는 계절이다. 바람도 할 일이 많다. 바람이 중매해 줄 식물들도 만만치 않은 탓에 봄바람도 거세고 여름바람도 드세다.

우리 인간은 이 사이에서 말이 많다. 봄볕은 왜 이리 따가운가. 바람은 변덕스럽다는 둥 하늘과 땅이 우리를 위해 일하는 양 착각을 한다. 올해는 인간도 분주한 해이다. 4월 한창 봄일 때 대통령을 뽑았고 6월 초여름에 전국 방방곡곡에서 일할 대표들을 선출했다. 일찌감치 투표해놓고 산천을 즐기러 떠난 사람들도 많지만 아무튼 이번 봄에서 여름까지는 식물에게나 우리에게나 다사다난한 때이다.

옛 조상들은 백성들을 위한 일꾼(왕)은 하늘이 정해준다고 생각했다. 가장 선한 사람을 골라서, 가장 덕이 많은 사람을 선택해서 일꾼으로, 대표로 삼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도자에 대한 믿음도 아주 컸다. 지도자는 하늘에 의해 뽑힌 사람이고 하늘의 뜻을 받들어서 백성을 돌본다. 그렇다면 ‘하늘’은 무엇인가? 하늘은 바로 ‘자연’이다. ‘저절로 그러한 것’이 자연이다.

지도자는 자연을 닮아 ‘저절로 그러한 사람’이다. 백성을 저절로 아끼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 사람이 변질되면 하늘은 그를 내친다고 옛 사람들은 믿었다. 그는 하늘이 아들로 삼은 천자(天子)인데 아버지(하늘)와 다른 짓을 하면 아버지의 아들 자격을 자동으로 상실한다. 친자가 아닌 양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맹자는 폭군은 이미 천자가 아니므로 그를 죽여 내친다고 해도 아무 상관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조선의 왕들은 가뭄이 들거나 홍수가 나면 베옷을 입고 거적 위에 앉아 폭우 속에서 또는 뙤약볕 속에서 하늘의 돌봄을 빌고 또 빌었다. 자신의 안위는 돌보지 않은 채로. 가뭄이나 홍수가 다름 아닌 자신의 잘못으로 인한 것이라 굳게 믿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악행으로 하늘이 자신을 버린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왕과 백성 모두가 공감하는 사실이었다.

도대체 하늘의 마음, 하늘의 뜻이 무엇 이길래? 그 답은 식물에 있다. 알고 보면 하늘의 뜻은 식물을 기르는 것이다. 봄의 강렬한 햇빛, 여름의 시원한 빗줄기, 가을의 따가운 햇볕과 겨울의 매서운 추위는 모두 다 식물을 위한 것이다. 식물이 싹을 내고 꽃을 피우고 잎을 키우고 씨앗을 만들고 종국에는 그 씨앗들을 세상에 내보내는 이 모든 과정을 관장하는 것이 하늘의 일이다.

사람의 일을 이야기하다가 왜 갑자기 식물인가 하고 의아할 수도 있지만, 그것이 하늘 본연의 임무이므로 이것은 변경될 수 없는 진리이다. 그렇게 식물을, 생명을 키우고 또 키우는 하늘의 넉넉한 배려와 땅의 푸근한 품은 우리 인간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인간 또한 생명임에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인간이 나고 자라고 죽는 전 과정은 식물과 다를 것이 없다.

그래서 하늘의 아들인 천자, 왕, 지도자는 하늘이 식물을 기르고 살리듯이 백성을 부족함 없이 양육해야 할 사명이 있다. 이 사명이 어그러지거나 부족하면 그는 하늘에게서 버림받는다. 가장 하늘을 닮은 자, 가장 자연스러운 자, 가장 식물다운 사람이 지도자가 되는 이유이다.

이것은 우리 개개인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 나는 바로 ‘나의 지도자’이기 때문이다. 내가 나의 삶을 잘 이끌려면 식물처럼 살면 된다. 식물처럼 풍성하고 식물처럼 단호하고 식물처럼 지혜롭고 식물처럼 아름답다면 나는 천명을 이룰 수 있다. 하늘과 하나가 되어 식물처럼 충족한 삶을 누릴 수 있다.

[한국조경신문]

저작권자 © Landscape Time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