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ndscape Times]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단편집 ‘나무’에는 나무와 소녀의 애틋한 우정 이야기가 실려 있다. 소녀는 어릴 적부터 나무를 찾아가 자기 마음을 속삭인다. 기쁠 때나 슬플 때, 특별한 날에도 나무와 아픔과 즐거움을 함께 하며 살아간다. 여기까지 보면 마치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한 장면 같다. 하지만 베르베르의 단편집에 나오는 나무 이야기는 분위기의 급변이 있다.어느덧 숙녀로 자란 소녀가 이 나무 앞에서 그만 친구에게 살해당하고 만다. 소녀는 나무가 알아주기를 바랐는
[Landscape Times] 얼마 전 광릉국립수목원에 근무하는 지인으로부터 첩보가 날아들었다. 빅토리아수련이 곧 대관식을 앞두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평소 이 여왕님을 가까이에서 알현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이게 웬 떡인가 싶었다. 게다가 이 수련의 개화가 올해 들어 최초라서 몇몇 방송국에서 카메라를 설치했다고 하니 바짝 긴장이 되었다. 이틀에서 사흘만 개화하는 꽃! 흰 봉우리를 유유히 피워 올려 순백의 청량함을 선사하고는 다음날 변신하는 꽃! 빅토리아수련은 처음에 피운 흰빛의 청아한 숙녀의 모습을 벗고 핑크를 거쳐 요염한 진보
[Landscape Times] 코로나 바이러스의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 세계 각국이 백신을 접종하고 있지만 예상대로 변이 바이러스가 나타났다. 작년 코로나의 시작과 전개는 지구촌 사람들의 삶을 확 바꾸어 버렸다. 대면에서 비대면으로, 오프라인 생활에서 온라인 생활로 사람들은 이동했다. 지난날에는 활동적이고 사교적인 사람들이 여러모로 유리했지만 코로나로 인해 오히려 내성적이고 참을성 있는 사람들의 생존이 안정적이 되었다.코로나가 바꾸어 놓은 삶의 패턴이 코로나 이후에도 지속될 거라는 생각에서 ‘포스트 코로나(Post-Co
[Landscape Times] 사람이 되고 싶은 곰이 있었다. 하늘왕자가 만든 이 땅의 나라에서 사람의 모습으로 살고 싶은 곰이 있었다. 하늘왕자에게 가서 그 소원을 말하니 동굴에서 햇빛을 보지 말고 거의 굶으며 지내라고 한다. 죽기를 각오하고 혹독한 통과제의를 거친 곰은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곰은 사랑스런 아들을 둔 엄마가 되고 싶었다. 곰여인(웅녀)은 이번에는 나무(신단수)를 찾아갔다. 하늘과 땅의 중간에 솟은 산, 그 산 위에서 하늘과 가장 가까운 이 나무는 바로 하늘왕자가 강림한 그 자리였다.웅녀는
[Landscape Times]“모란이 피기까지는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5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 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모란이 피기까지는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일본 제국주의 강점기를 살다간 김영랑(1903~1950) 시인의 유명한
[Landscape Times] 늦봄부터 초여름의 꽃밭은 식물들의 욕망의 경연장이다. 그들의 진한 욕망은 수분매개자인 곤충과 동물뿐 아니라 우리 인간들의 발길도 잡아 끈다. 꽃이 피어있는 동안 결혼을 해야 아기를 만들 수 있으니 식물들의 마음은 급하다. 짝에게 다가갈 수 없는 그들은 중매쟁이의 도움이 절실하다. 중매쟁이를 끌어들이는 전략과 스타일도 가지가지이다.점잖게 곤충들을 초대해서 티타임을 갖거나 점심이나 저녁식사를 함께하는 식물들도 있지만, 강압적으로 곤충들을 납치하여 하룻밤 가두어 두곤 임무를 확실하게 완수해야 풀어주는 식물
[Landscape Times] ‘인간(人間)’을 한자로 보면 ‘사람 사이의 간격’이다. ‘인(人)’이란 글자가 ‘두 사람’을 의미하므로 두 사람 사이의 이슈가 인간이다. 따라서 두 사람 사이에 어느 정도의 간격을 유지하는가가 인간관계의 핵심이 된다. 5월은 관계의 달이다. 가장 소중하고 가까운 사람들을 다시금 돌아보는 달이다. 5일 어린이날에서 시작하여 8일 어버이날. 15일 스승의 날, 21일 부부의 날까지. 만나고 밥 먹고 선물을 주고받고 마
[Landscape Times] “할머니, 가지 말아요, 우리랑 같이 살아요!” 심장병 때문에 한 번도 마음껏 뛰어보지 못한 꼬마가 정신을 잃은 채 걸어가는 할머니에게 전력으로 달려가 앞을 가로막고 한 말이다. 뇌졸중으로 몸이 성치 않은 할머니가 창고에 낸 불로 힘들여 수확한 농작물들이 모두 다 재가 되었다. 허망하게 걸음을 옮기는 할머니와 길을 막아선 아이들, 뒤돌아 아이들의 손을 잡고 휘적휘적 걸음을 옮기는 할머니의 모습이 감동적이다. 하지만 타버린 작물창고는 이혼에 직면한 부부가 다시 결합하는 계기가 되었
[Landscape Times] 널따란 플라타너스 푸른 잎이 바람을 타고 천천히 땅으로 떨어지는 장면이 잊혀 지지 않는 영화가 있다. 잎이 내려앉은 곳은 잎처럼 푸르른 젊은이들이 가득한 교정이었다. 바로 직전 장면에서는 잘생긴 청년이 스스로 세상을 하직하면서 부모와 연인과 이별한다. 그의 이른 죽음을 푸른 잎의 하강으로 묘사한 이 영화는 ‘미 비포 유 (Me before you, 2016)’이다. 안락사를 진지하게 다룬 이 영화는 소설 원작을 바탕으로 했기에 구도가 탄탄하고 감동도 크다.이 작품은 여름처럼 파란
[Landscape Times] 18세기 중반 영국에는 정원논쟁이 뜨거웠다. 자연주의자 루소가 정원에서 모든 인위적이고 예술적인 요소들을 추방하자는 주장을 한 데 대하여, 루트비히 운쩌는 정원의 기능을 이야기하며 곧바로 논박한다. 루소는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관점에서 자연과 예술을 조화시킨 중국풍 정원을 소박하지 않다고 못 마땅히 여겼다. 하지만 루트비히 운쩌는 ‘중국정원론(1773)’을 통해 정원이란 자연 전체를 보는 곳이 아니고 제한된 공간 안에서 세밀하게 자연의 아름다움을 향유하는
[Landscape Times] 봄을 알리며 피어나는 꽃들을 보면 하늘로 쏘아 올리는 폭죽이 떠오른다. 식물을 사람보다 더 좋아하는 지인들 덕분에 수줍은 깽깽이꽃부터 시작해서 복수초, 바람꽃, 제비꽃, 동강할미꽃 등 봉오리시절부터 만개한 모습까지 생생한 현장 중계로 받아보는 행운을 누린다. 어느새 부지런한 식물들의 구애철이 되었다. 사람들은 봄꽃이 한창 피어오르기 직전에 졸업식과 입학식을 연다. 이 날 인생의 마디를 장식하는 가장 살가운 친구는 다름 아닌 ‘꽃’이다.그 날의 주인공 가슴에는 엄마도 아니고 애인도
[Landscape Times] 집에만 박혀있는 코로나 습관으로 단골 음식점을 오랜만에 찾았다. 늘 손님으로 북적였는데 뜻밖에도 문이 닫혀 있었다. 가격도 싸고 솜씨도 좋은 집이라 발길을 돌리며 아쉬워했다. 이런저런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아마도 장사가 잘 안되어 폐업한 것은 아닐 것이다. 다른 사정이 있어 잠시 문을 닫았으리라 위안하며 자리를 떴다. 2년 째 지속되는 코로나 상황에 거리두기 단계가 격상되면서 가장 타격을 받은 업종은 서비스업이다.식당이나 카페는 물론이고 헬스장이나 노래방 같은 시설들도 제한적으로 문을 열거나 아예
[Landscape Times] 엊그제 머리를 잘랐다. 코로나 상황 덕분(?)에 머리를 방치했더니 어느새 삐쭉삐쭉 길어졌다. 모처럼 긴 머리가 되니 반가워서 다시 짧은 머리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단골 헤어디자이너의 손에서 어느새 머리칼은 절반이 잘리고 없어졌다. 사실 자르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조금 산뜻해지고 싶었는데 가위 든 사람이 임자다. 머리가 잘리니 섭섭하기도 하고 개운하기도 하다.사회적 거리두기 등으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아들 녀석의 성화가 심해졌다. 이것저것 살림이 많아 집이 아니고 물류센
[Landscape Times] 발랄한 한 미국 청년이 허름한 버스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이 인상적인 영화 를 보았다. 지인의 추천 덕분이다.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하고 다음 단계로 진입할 인생의 전기에서 청년 크리스는 야생으로 들어갈 결심을 한다. 모아 놓은 전 재산은 기부하고 신분증과 돈도 불태워버리고는 자연의 일부가 되려고 자연으로 향한다. 패기와 순수로 무장한 청년은 도중에 몇몇 사람들을 만나 도움을 받고 그들과 우정을 나눈다.그의 발목을 잡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는 혼자의 야생으로
[Landscape Times] 새로운 밀레니엄이라며 들떠있던 2000년대 초반, 자연 속에 자리한 국가출연 연구기관에 근무할 때였다. 출근하여 연구실로 들어가는 데 계단에 평범한 거미가 길을 가로막고 있었다. 방안에 들어왔다면 호들갑을 떨었겠지만 밖에 있으니 그럴 일은 없었다. 거미는 나를 피하지 않았고 우리는 짧은 순간 대치했다. 그때 어떤 생각이 휙 지나갔다. ‘이 건물이 있는 땅은 본래 거미의 것이었구나!’ 자연과 생태에 별 느낌이 없던 철없는 시절이었다.어쩌면 거미가 나한테 그 말을 해주었는지 모른다.
[Landscape Times] 유럽에 중국 열풍이 불던 시절이 있었다. 17세기에서 18세기에 걸쳐 영국, 프랑스, 독일, 스위스 사람들은 중국문화에 열렬한 지지를 보냈다. 그들은 공자의 민본 사상에 도취되었을 뿐 아니라 비단과 도자기 같은 고급스런 중국 물건들을 애호했다. 유럽인들이 지금은 아닌 척 시치미를 떼고 있다 해도 당시 중국 열풍의 큼직하고 엄연한 증거로 남은 것이 바로 정원이다.근대적 영국정원은 중국으로부터 기원했다. 대표적인 중국풍 건축정원은 영국의 큐 가든으로, 체임버스가 ‘공자의 일생’을 그
[Landscape Times] 늦은 듯 하지만 기다렸던 첫눈이 왔다. 사람들만 첫눈을 기다린 게 아니었다. 나무들도 눈을 만나려 가을부터 서둘러 옷을 훌훌 벗었다. 사람들이 잔뜩 껴입고 눈을 만난다면 나무들은 모두 벗고 눈과 만난다. 눈과의 만남 또한 나무 생의 재미이다. 빗물은 서둘러 땅으로 향하지만 눈송이는 얼마간 둥치와 가지에 머무른다. 얼마 전 잎들을 떠나보낸 가지들이 허허로운 마음을 달래고 있던 중 기다리던 손님들이 찾아왔다. 가지를 떠난 잎들은 땅위에 내려 앉아 눈과 비벼가며 다음 세대를 위한 거름이 되어갈 것이다.가지
[Landscape Times] 마지막 달력의 시기, 12월이다. 어쩐지 허전해도 거리의 나무들을 보면 그렇구나, 하는 마음이 든다. 나무들에게는 이제 이별의 순간도 지나갔다. 발밑에서 수다 떨던 잎들도 모두 자기 길을 찾아 떠났다. 혼자 남은 나무는 본연의 시간을 헤아린다. 바람과 별과 눈, 가끔 놀러올 새들과 지내는 때가 되었다. 홀로 있어야 하는 계절, 외롭지만 휴식의 기간일 수 있다. 버리고 비우지 않으면 갖지 못할 나날이다. 이때를 위해서 식물은 분주하게 살아왔다. 하지만 이제는 평온하게 쉴 수 있다. 가을 낙엽의 세포자살
[Landscape Times] 솨!~ 우수수~ 부는 바람에 잎들이 나뭇가지를 떠난다. 짧은 비행을 하고 나면 새로운 여행길에 오른다. 작은 나무들 머리에 내려앉기도 하고 이끼와 풀들이 빼곡한 땅위로 돌아오기도 하고 때로는 사람들이 닦아 놓은 단단한 길 위에 떨어지기도 한다. 가을은 식물의 여행시즌이다. 공들여 만든 씨앗들도 새로운 터전을 찾아 떠난다. 되도록 멀리 가려고 새들에게 유혹의 눈짓을 보낸다.물론 공짜는 없다. 엄마가 만들어 준 향기 좋고 영양 넘치는 과육이 뇌물이다. 비교적 가벼운 열매와 씨앗들은 바람의 손길을 기다린다
[Landscape Times] 아내가 죽었는데 북치고 노래하는 사내가 있었다. 조문하러 온 친구가 기가 막혀 물었다. “자네, 해도 너무 하는 것 아닌가? 함께 슬픔과 기쁨을 나누며 긴 세월 살아온 자네 아내가 저세상으로 갔는데 통곡은 못할지언정 노래를 부르다니!” 친구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사내는 그 말에 싱긋 웃으며 말했다. “친구, 사랑하는 아내가 죽었는데 내가 왜 슬프지 않겠나? 나도 처음에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네. 그러다 문득 생각해 보았지, 아내는 어디로 갔는지, 그리고 그녀는 어디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