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문형의 식물노마드] 식물과 행복나라
[최문형의 식물노마드] 식물과 행복나라
  • 최문형 성균관대 학부대학 겸임교수
  • 승인 2021.06.30
  • 호수 6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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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ndscape Times] 사람이 되고 싶은 곰이 있었다. 하늘왕자가 만든 이 땅의 나라에서 사람의 모습으로 살고 싶은 곰이 있었다. 하늘왕자에게 가서 그 소원을 말하니 동굴에서 햇빛을 보지 말고 거의 굶으며 지내라고 한다. 죽기를 각오하고 혹독한 통과제의를 거친 곰은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곰은 사랑스런 아들을 둔 엄마가 되고 싶었다. 곰여인(웅녀)은 이번에는 나무(신단수)를 찾아갔다. 하늘과 땅의 중간에 솟은 산, 그 산 위에서 하늘과 가장 가까운 이 나무는 바로 하늘왕자가 강림한 그 자리였다.

웅녀는 그 나무 아래에서 다시금 자신의 소원을 빌었다. 사람이 되고 싶은 소원은 하늘신에게 빌었지만 엄마가 되고 싶은 바람은 나무신에게 빌었다. 그녀는 성공했고 단군이라는 아들을 얻었다. 대한민국 최초의 건국신화에 나오는 나무 이야기이다. 나무의 신성성은 동양과 서양 가릴 것 없이 사람들의 기원의 대상이었다. 나무들은 신들이 거처하거나 드나드는 곳으로서 수호신들의 은신처로 신성화되었다. 나무를 자르거나 해치는 행위는 비난받았다.

성서에도 나무를 보호하는 금지사항들이 있다. 구약에 나오는 부족과 전쟁의 신 야훼는 다른 성읍을 정벌할 때 나무만은 건드리지 말라고 했다. 나무는 열매를 주기 때문에 남겨두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야훼 스스로도 자신을 푸른 잣나무라 지칭하며 자신의 풍요의 원리를 잣나무 열매로 표현했다. 동양의 성인 공자도 시(詩)를 통해 새와 짐승, 풀과 나무의 이름을 많이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제자들에게 말했다.

인간이 자연과 어울려 살던 그 시절에 동물과 식물을 챙기고 인식하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자연’이라고 불리는 동물과 식물들은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고 근간이었으므로 아끼고 보호해야 했다. 공자의 제자 맹자는 나라살림에서 중요한 원칙들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농사철을 어기지 말고 제 때에 각각 필요한 일을 할 수 있게 할 것, 산과 숲의 나무들을 아무 때나 베지 못하게 할 것, 촘촘한 그물로 어린 물고기를 잡지 못하게 할 것.”

현대적으로 보면 농업과 임업 정책이다. 이와 같은 기본사항을 지키지 않으면 가을에 거둘 곡식이 없고 산림은 헐벗고 물고기들은 씨가 마른다. 자연의 황폐화는 나라의 패망을 부른다. 그래서 옛 성군들은 겨울이 되어야 토목공사와 같은 부역을 시켰고 열매와 잎이 다 떨어진 늦가을이 되어야 나무를 베는 것을 허용했다. 먹고 입고 자는 모든 것을 나무와 식물에 의지해야 하므로 이 원칙은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제각각 다른 생명체들이 어울려 사는 것이 행복이다.
제각각 다른 생명체들이 어울려 사는 것이 행복이다.

동양의 오래된 역사책인 ‘서경’에는 풀과 나무가 태양을 향하여 자라나는 것을 ‘하늘의 뜻(천명)’이라고 했다. 하늘이 원하는 것은 땅 위의 사람들이 흐뭇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풀과 나무가 태양빛을 받아 쑥쑥 자라나듯이 사람들 또한 생명을 누리며 즐기고 살아야 한다. 백성들의 행복을 원하고 바라는 이 ‘하늘의 뜻’을 이해한 동양의 현자들은 나라의 패망을 나무뿌리가 끊긴 것에 비유했고,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쓰러진 나무에 싹이 나는 것으로 보았다.

인류가 만든 최적의 공동체인 국가의 생멸을 다름 아닌 나무의 생장과 죽음으로 본 것이다. 이러한 기록들은 나무와 식물이 생태계의 중심이 되고 인간과 동물에게 아낌없이 주는 존재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나무는 나라의 근간이 되고 식물은 일상의 필수요소가 된다. 과학과 기술을 자랑하는 현대인들도 식물과 자연의 소중함을 깨달아 전 지구적으로 ‘생물다양성협약’을 맺었다.

생물다양성(Biodiversity)이란 지구상의 생물종(Species)의 다양성, 생물이 서식하는 생태계(Ecosystem)의 다양성, 생물이 지닌 유전자(Gene)의 다양성을 총체적으로 지칭하는 용어이다. 1992년 리우의 지구정상회담에서는 150개 국가가 모여 머리를 맞대고 식물과 동물, 미생물, 생태계의 생물다양성이 인류와 식량 안전, 의약품, 대기, 수질, 거주지 및 건강한 환경에 필수적임을 합의했다.

이 합의의 기저에는 오존층 파괴, 기후온난화, 개발에 따른 서식환경의 악화, 남획·천적의 영향에 따른 생물종 및 생태계 파괴 등 지구환경문제에 대한 세계적 인식의 확산과, 모든 생명체는 인간과 무관하게 근원적으로 그 존엄성이 인정되어야 한다는 ‘UN 자연헌장’이 밑받침되었다. 생물다양성이 줄어든다는 것은 인류의 문화와 복지뿐 아니라 생존을 위협하는 요인이 된다는 것에 동의한 결과이다.

인류는 예로부터 의약품을 생물다양성의 구성요소로부터 얻어 왔다. 현재 미국의 경우 조제되는 약 처방의 25%가 식물로부터 추출된 성분을 포함하고 있고 3000종류 이상의 항생제를 미생물에서 얻는다. 동양 한약재도 5100여 종의 동식물을 사용하고 있다. 생물다양성의 소중함은 먹거리를 담당하는 농업에서 확연하다. 육종가와 농부들은 생산력을 늘리기 위해 유전적으로 우수한 품종들을 교배하여 유전적 다양성을 꾀하여 왔다.

공자가 제자들에게 조수(鳥獸)와 초목(草木)의 이름을 많이 알아야 한다고 가르친 것은 바로 이 ‘생물다양성’의 중대함을 깨우친 것이며, 맹자가 농업과 임업 정책을 국가의 근간으로 내세운 것도 나무와 식물이 행복국가의 기반임을 설파한 것이다. 우리 대한민국의 기원인 단군의 나라 또한 나무(신단수)의 가호 아래 시작되었다. 개인이든 국가든 인류공동체든 간에 행복은 나무와 식물에서 온다.

[한국조경신문]

최문형 성균관대 학부대학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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