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ndscape Times] 봄을 알리며 피어나는 꽃들을 보면 하늘로 쏘아 올리는 폭죽이 떠오른다. 식물을 사람보다 더 좋아하는 지인들 덕분에 수줍은 깽깽이꽃부터 시작해서 복수초, 바람꽃, 제비꽃, 동강할미꽃 등 봉오리시절부터 만개한 모습까지 생생한 현장 중계로 받아보는 행운을 누린다. 어느새 부지런한 식물들의 구애철이 되었다. 사람들은 봄꽃이 한창 피어오르기 직전에 졸업식과 입학식을 연다. 이 날 인생의 마디를 장식하는 가장 살가운 친구는 다름 아닌 ‘꽃’이다.

그 날의 주인공 가슴에는 엄마도 아니고 애인도 아닌, 화려하고 향기로운 꽃다발이 안긴다. (가족과 친구들은 옆에 서는 것만 허용된다) 꽃을 꼬옥 껴안고 사진을 찍는 기회는 날이면 날마다 오는 게 아니다. 인생의 단 몇 번! 특별한 순간들이다. 개인적으로 생각해 보면 꽃을 안고 찍은 사진이 많을수록 그 사람은 성공한 행운아일 것 같다. 졸업식에 왜 하필 꽃다발을 선사하는가 하는 이유를 적은 글을 읽었다. 꽃이 팡! 하고 자신을 열어 피워 올리려면 폭발적인 에너지가 들어간다고 한다. 에너지 뿐 아니라 수많은 공력도 함께할 것이다.

그렇게 피는 꽃처럼 졸업하는 학생도 그간 수고 많았다고, 노력의 대가를 칭찬해주는 의미라고 한다. 뿐만 아니라 앞으로의 인생도 꽃처럼 활짝 피어나기를 바라는 염원이 담긴 것이라고 한다. 설득력 있고 감동적인 이유이다. 나도 많은 졸업을 했는데 당시에는 그저 화사한 꽃을 안고 사진을 찍으면 예쁠 거라고 가볍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꽃을 피우는 기제는 단순한 에너지의 폭발만은 아니다. 과학적으로는 더 복잡하다. 식물들은 각자의 수분 방식에 따라서 자신만의 방식을 갖는다.

꽃을 피우는 순간을 결정하는 데 온도가 중요한 식물이 있고 빛이 결정적인 식물이 있고 밤의 길이 또는 습도가 기준인 식물도 있다. 어찌 되었건 자신을 중매해 줄 중매쟁이가 활동을 하는 시기가 관건이기 때문이다. 씨앗이 싹을 틔우는 데 신중한 것처럼 꽃 또한 자신을 여는 데 조심한다. 신호를 잘못 판단해서 중매쟁이가 없을 때 꽃을 피웠다간 낭패를 보니까 말이다. 씨앗이 발아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주는 피토크롬은 꽃의 개화에도 가장 중요한 첩보원이다.

조심스럽게 개화를 준비하며 기다리는 동강할미꽃 ⓒ윤인호 광릉수목원 숲해설가 제공
조심스럽게 개화를 준비하며 기다리는 동강할미꽃 ⓒ윤인호 광릉수목원 숲해설가 제공
수줍게 활짝 핀 올개불나무꽃 ⓒ윤인호 광릉수목원 숲해설가 제공
수줍게 활짝 핀 올개불나무꽃 ⓒ윤인호 광릉수목원 숲해설가 제공

식물의 단백질 색소인 피토크롬은 빛이 얼마나 있는지, 어떤 빛인지, 얼마나 오래 머무는지를 착착 조사해서 식물의 생장을 조절하게 해준다. 피토크롬은 성실하게 태양빛을 감지해서는 식물 생존에 필요한 갖가지 기능을 계절에 맞추어 지시한다. 발아와 개화 뿐 아니라 성장과 재생산, 겨울 휴면 등 모든 것이 이 첩보조직의 사령탑에서 결정된다. 꽃잎의 구조 자체에 꽃을 피우는 독자적인 시스템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닫혀있는 꽃부리가 열리는 비밀은 꽃잎의 형태와 성분에 있다. 거의 모든 식물은 꽃부리의 굴곡을 역동적으로 변화시킴으로써 개화한다. 꽃잎들은 가장자리 부분과 가운데 부분의 성장 속도를 달리해서 불균형 상태를 만들기도 한다. 꽃잎 안쪽이 바깥쪽보다 커지면 안쪽에서 부풀어 오르는 힘이 커진다. 며칠이 지나면 이 속도와 힘이 커지면서 가장자리 부분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열린다. 이렇게 하여 꽃은 활짝 핀다. 또 하나는 꽃잎의 성분이다. 용해 물질 농도에 변화가 오면서 인접한 세포들 사이에 삼투현상이 일어난다. 아미노산과 소금, 단당류의 움직임이 꽃잎을 여는 데 작용한다.

식물이 언제 어떻게 꽃을 피우는지 궁금해서 안달이 난 사람이 있었다. 그는 무려 30년 동안 한 해도 빠지지 않고 1월 1일 마다 자신의 정원을 사진으로 남겼다. 1913년에서 1942년까지의 기록이다. 이 사람은 존 윌리스라는 영국인인데 식물 10여종의 개화를 연구하는 프로젝트에 자원해서 참여했었다. 그는 설강화와 나팔수선화의 일대기를 찍었는데 나중에 사진들을 모아서 ‘날씨에 관하여, 지난 30년의 영국 날씨 Weatherwise, England’s weather through the past thirthy years(1944)‘라는 책으로 출간했다. 사실 이러한 프로젝트의 목적은 식물의 적응력을 알아내어 각각의 식물들을 어디에 심는 것이 최상일지, 그리고 식물들의 성장을 예측하는 것이다.

자신의 공력이 쌓여 학교를 졸업하는 시기를 맞는 것처럼, 우리 개개인도 인생의 마디마디 마다 어디서 무슨 일을 하면 딱 좋은지 그리고 언제가 쉬는 기간이고 언제가 점프할 시기인지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 몸속의 피토크롬이 주변 환경을 스캐닝하여 시시각각 어떻게 살라고 알려준다면?

*이탈리아 파르마대학의 식물학 교수 레나토 브루니(Renato Bruni)는 꽃잎이 열리는 메커니즘을 친절하고 쉽게 소개해준다. 영국의 식물개화 프로젝트 이야기도 그의 책을 참고했다. (‘식물학자의 정원 산책’, 레나토 브루니 지음, 장헤경 옮김, 초사흘달 펴냄, 2020.)

[한국조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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