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문형의 식물노마드] 사랑스런 나의 정원
[최문형의 식물노마드] 사랑스런 나의 정원
  • 최문형 성균관대 학부대학 겸임교수
  • 승인 2021.04.07
  • 호수 6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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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ndscape Times] 18세기 중반 영국에는 정원논쟁이 뜨거웠다. 자연주의자 루소가 정원에서 모든 인위적이고 예술적인 요소들을 추방하자는 주장을 한 데 대하여, 루트비히 운쩌는 정원의 기능을 이야기하며 곧바로 논박한다. 루소는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관점에서 자연과 예술을 조화시킨 중국풍 정원을 소박하지 않다고 못 마땅히 여겼다. 하지만 루트비히 운쩌는 ‘중국정원론(1773)’을 통해 정원이란 자연 전체를 보는 곳이 아니고 제한된 공간 안에서 세밀하게 자연의 아름다움을 향유하는 장소라고 응수했다.

사실 이러한 논변은 17세기 말에 이미 싹트고 있었다. 영국에서 중국 정원을 최초로 소개한 사람은 윌리엄 템플(William Temple,1628~1699)이었다. 그는 ‘에피쿠로스의 정원, 또는 조원에 관하여’(Upon the Gardens of Epicurus, or of Gardening, 1685)에서 중국식 조원론을 피력했다. 영국인들의 건물과 식목은 일정한 비례와 가지런한 대칭성에 있지만 중국인들은 불규칙적인 아름다움을 선호한다고 소개했다. 중국의 아름다움은 쉽사리 알아차릴 수 없는 신비로운 배열 속에 감추어져 있고 그 멋스러움은 굉장해서 한 눈에 척 알아보고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중국식 조원은 매우 고도의 기술을 요구하므로 섣불리 시도하다가 되레 정원을 망치지 말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 금지조항 때문에 후대의 야심적인 조원사들은 중국식 정원의 미감을 영국에 확산시키게 된다. 윌리엄 템플은 1660년대에 네덜란드에 외교관으로 있던 시절에 호프비크(Hofwijck)정원에서 중국식 아름다움을 감상한 적이 있었다. 그가 본 정원의 아름다움은 ‘비대칭의 대칭성’이며 ‘부조화의 조화성’이고 ‘불규칙의 규칙성’이었다.

이러한 중국식 조원의 대표작은 근대적 영국정원인 큐가든(Royal Botanic Garden, Kew)으로서, 이 안에 ‘공자의 인생’을 그린 패널과 10층 파고다로 꾸민 부속건물을 세웠다. 이후에 중국식 영국정원은 유럽에 퍼져나가 뮌헨의 엥을리셔 가르텐(영국식 정원)에 중국식 목재 탑(Chinesischer Turm)이 세워졌다. 독일 카셀의 빌헬름스회에(Wilhelmshӧhe)정원에는 아예 중국 마을을 꾸밀 정도였다.

중국정원에 대한 관심은 1750년대 내내 커져서 1757년 윌리엄 체임버스(William Chambers)의 ‘중국건물의 디자인(Designs of Chinese Buildings)’에서는 중국 정원의 풍경을 유형화하여 설명할 정도였다. 체임버스는 중국 광동에 가서 직접 중국의 디자인들을 배워왔다. 그는 중국 정원의 완벽성을 풍경의 다양성이라고 소개하면서 황홀한 풍경, 공포스러운 풍경, 즐거운 풍경으로 구분했다. ‘황홀한 풍경’은 인공기술을 활용하여 낭만적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이다. 급류, 여울, 동굴과 굉음을 활용하고 갖가지 나무와 풀과 꽃들을 도입한다. 복잡하고 희한한 메아리가 울려 퍼지고 특이한 동물과 새가 가득하다.

‘2019 중국베이징국제원예박람회’ 때 조성된 중국정원 ⓒ한국조경신문DB
‘2019 중국베이징국제원예박람회’ 때 조성된 중국정원 ⓒ한국조경신문DB

다음으로 ‘공포스런 풍경’은 전혀 다른 분위기이다. 무너져 내릴 듯한 바위들과 엄청난 속도의 폭포들을 설치한다. 나무들은 쓰러져 넘어졌거나 산산조각이 되었거나 벼락을 맞아 박살이 났다. 건물들도 있는데 불에 반쯤 탔거나 폐허이다. 그리고 몇 군데 초라한 오두막이 지어져 있다. 마지막으로 ‘즐거운 풍경’에 접어들면 이전 풍경과의 대비 효과를 만난다. 급작한 전이와 현저한 대립이 형태・색상・음영으로 표현된다. 사람들은 제한된 조망에서 탁트인 시야로, 공포스런 상황에서 즐거운 풍경으로, 어둡고 암울한 색채에서 찬연하게 빛나는 광경으로 갑작스럽게 옮겨진다.

단순하고 기하학적인 정원을 꾸미거나 아니면 루소식의 자연 그대로의 정원만 알았던 영국인들에게 이러한 중국 정원의 모습은 충격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정원의 문제만은 아니다. 인간의 역사와 문화를 단선적으로 보는 유럽인들의 방식과 순환적이고 복합적으로 보는 극동인들의 관점의 차이이다. 정원은 삶이기 때문이다. 중국과 한국이라는 극동 사람들은 자연을 정복하거나 대상화하려 들지 않았고 하늘과 땅과 인간의 조화를 사랑했다. 그들은 자연이 불규칙하듯 인간의 생 또한 평탄하지 않은 굴곡 투성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정원 또한 자연의 불규칙성을 아름답게 재현하는 것이고, 자연이 자신을 마음껏 펼치도록 그대로 두면서 동시에 인간의 천재성을 그 안에 ‘슬며시’ 감추어두는 예술 중 하나였다. 자연이 모나고 변화무쌍하고 예측할 수 없는 것처럼 정원도 그렇게 꾸몄다. 황홀한 풍경에서 무서운 광경으로, 그리고 다시 즐거운 풍경으로 옮아가는 과정은 인간이 삶에서 만나는 모든 것을 말해준다. 그 누구도 평생 즐겁게만 살 수 없고 그렇다고 늘상 공포스럽거나 황홀한 일만 있지는 않다. 극동 사람들은 이것을 알았고 자연의 축소판인 정원에 인생의 의미를 펼쳐 두었다.

정원이 주는 여러 가지 분위기의 다양한 연결고리 속에서 우리는 마음을 조율해주는 힘을 느끼고 찾을 수 있다. 정원의 사계절을 통하여 우리는 인생의 막과 장을 본다. 늘상 정원을 만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지만 그럴 수 없다면 대안이 있다. 아파트 베란다의 화분 속에서 사무실 책상 위 작은 식물들을 통해 우리는 정원을 보고 인생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매일매일 마음속에 ‘나만의 사랑스런 정원’을 가꾸어 간다.

[한국조경신문]

최문형 성균관대 학부대학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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