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문형의 식물노마드] 엄마랑 아기랑
[최문형의 식물노마드] 엄마랑 아기랑
  • 최문형 성균관대 학부대학 겸임교수
  • 승인 2021.05.20
  • 호수 63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Landscape Times] ‘인간(人間)’을 한자로 보면 ‘사람 사이의 간격’이다. ‘인(人)’이란 글자가 ‘두 사람’을 의미하므로 두 사람 사이의 이슈가 인간이다. 따라서 두 사람 사이에 어느 정도의 간격을 유지하는가가 인간관계의 핵심이 된다. 5월은 관계의 달이다. 가장 소중하고 가까운 사람들을 다시금 돌아보는 달이다. 5일 어린이날에서 시작하여 8일 어버이날. 15일 스승의 날, 21일 부부의 날까지. 만나고 밥 먹고 선물을 주고받고 마음을 점검하는 분주하고 정다운 시간들이다. 부모님은 나의 몸을 낳아 기르시고 스승은 나의 정신을 키워주시고 부부는 서로의 마음을 보듬어 준다.

이 세 가지 관계가 원활하면 행복한 사람이 된다. 게다가 이 관계들은 긴 여정으로서, 인생길에서 수십년을 함께 하는 사이이다. 따라서 최적의 거리와 간격을 찾아서 그것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 전통사회에서 부부 사이는 명확한 거리가 있었다. 한옥에서 안채와 사랑채가 분리되어 있는 것만큼 부부의 역할은 분명하게 정해져 있었다. 서로 존중하고 공경했으며 절도 있는 부부관계를 영위했다.

현대사회의 환경은 전통사회와 크게 다르다. 가족은 다양해지고 개인화되고 파편화되었다. 관계의 간격을 어떻게 두어야 건강하게 살 수 있을지 식물에게 물어 보았다. 식물의 부부관계(?)는 제한적이고 한정적이다. 속씨식물은 암술과 수술의 2차에 걸친 중복수정이 일어나는데 이를 통해 배와 배젖이 만들어진다. 배와 배젖은 씨가 되고, 밑씨를 둘러싸고 있던 씨방은 열매가 된다. 식물의 경우는 2세대가 만들어지면 부부의 소임이 끝난다.

꽃은 수분과 수정이라는 생식의 필수적인 임무를 마치면 자연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인간의 경우는 복잡하다. 부부의 만남 또한 생물학적으로는 자손 번식이 일차적 목적이지만 인간은 매우 만숙성인 종이기 때문에 그 과정이 길고 지루하다. 따라서 관계의 양상은 자연스럽게 부모-자녀 관계로 옮아간다. 효(孝)와 자(慈)로 정의되는 부모-자녀사이는 가장 가까운 사이의 규범을 보여준다. 세상에서 가장 친한 두 분, 양친(兩親)에 대한 자녀의 도리는 단단한 가족 결속의 기초가 되었다.

고양이 가족. 동물이나 식물이나 인간이나 가족은 정겹다.
고양이 가족. 동물이나 식물이나 인간이나 가족은 정겹다.
고슴도치는 우리에게 서로의 적당한 간격과 거리의 필요성 보여준다.
고슴도치는 우리에게 서로의 적당한 간격과 거리의 필요성 보여준다.

가족의 사이클은 순환해야 한다. 자녀는 부모로부터 독립해야 한다. 또 다른 가족이 만들어지는 조건이기도 하다. 자녀가 홀로서기를 두려워하거나 부모가 홀로세우기를 꺼린다면 부모-자녀관계의 간격은 적당하지 않고 건강하지 못한 관계가 된다. 식물을 보자. 나무 씨앗들은 엄마 나무 바로 아래에 떨어질 확률이 높다. 그래서 엄마나무들은 아이들을 먼 곳으로 보내려고 갖은 애를 쓴다. 동물들의 털에 붙여 보내는 방법을 쓰기도 하고 새들의 먹이로 주어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서 배설되어 부활하기를 꿈꾸기도 한다.

그래서 동물들이 좋아할 법한 과육으로 잘 포장하고 어떤 시련을 겪어도 죽지 않도록 갖가지 장치로 씨앗을 보호한다. 새들과 각종 동물들은 엄마가 준비한 선물에 혹하여 충실한 배달부 노릇을 수행한다. 어떤 식물은 바람과 물에 의지하여 미지의 세계로 옮겨 가는데 이때 바람과 물은 스승의 존재로 생각할 수 있다. 엄마의 노력 덕분에 이주에 성공하는 아기들도 있지만 그러지 못하고 엄마나무 아래서 새 삶을 시작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 경우 아기나무의 성장은 어떨까? 사람들은 결혼해서도 부모님 근처에 살면서 이런저런 도움과 혜택을 누리지만 나무들은 엄마 그늘 아래서 제다로 자라기 힘들다. 생존과 성장에 가장 중요한 햇빛을 보기가 어렵다. 높이 치솟은 엄마나무에 가려서 겨우 3% 정도의 햇빛 밖에 받지 못한다. 이 정도면 겨우 죽지 않고 생명이나 보존할 수준이다. 물론 엄마나무가 아기들의 딱한 처지를 모른 체 하지는 않는다.

엄마나무들은 땅 속을 통해 광합성에 필요한 탄소를 아기들에게 나누어 준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널찍하고 시원한 터에 자리 잡은 형제들과는 비교가 안 된다. 그들은 새로운 곳에서 좀 외롭겠지만 폭풍성장을 하는 중이다. 엄마를 떠나 일찍이 독립하면 자주성과 자생력이 급속하게 늘어간다. 가족과 친척들이 함께 살면 특정 병해충이나 세균에 모두가 노출되어 몰살될 위험이 있지만 떨어져 지내면 그런 재난을 면할 수 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식물들은 자녀들을 되도록 멀리 내보내려 한다. 식물들에게 있어서 부모-자녀 간격은 멀어질수록 좋은 것이다. 우리들은 어떤가? 가정마다 사람마다 서로 다르겠지만 하늘이 내려준 관계인 천륜(天倫)이라 그런지 헤어짐을 매우 애달프게 여긴다. 부모와 떨어지기를 힘들어하는 자녀도 있고 자녀를 떼어내기를 아쉬워하는 부모도 많다. 특히 어머니의 경우는 아이를 몸속에 지니고 있는 기간을 기억하며 이제는 자녀가 몸속에 없다는 것을 실감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기도 한다. 결국 자녀는 몸조차도 독립하지 못하거나 몸은 떨어져도 마음과 정신은 여전히 부모에게 머물러 있기도 한다.

떨어져 나오지 못한 씨앗은 자신의 터전과 영역을 개척하지 못하고 부모의 그늘에 머물러 있는 답답한 현상을 보인다. 부모-자녀간의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지 못하는 폐해는 간섭과 집착과 불화라는 고질병으로 이어진다. 엄마나무와 아기나무처럼 부모와 자녀의 적절한 간격, 독립과 성장을 위한 거리는 확보되어야 한다.

[한국조경신문]

최문형 성균관대 학부대학 겸임교수
최문형 성균관대 학부대학 겸임교수 askmun@naver.com 최문형 성균관대 학부대학 겸임교수의 다른기사 보기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