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문형의 식물노마드] 개운해야 개운한다
[최문형의 식물노마드] 개운해야 개운한다
  • 최문형 성균관대 학부대학 겸임교수
  • 승인 2021.02.23
  • 호수 6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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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ndscape Times] 엊그제 머리를 잘랐다. 코로나 상황 덕분(?)에 머리를 방치했더니 어느새 삐쭉삐쭉 길어졌다. 모처럼 긴 머리가 되니 반가워서 다시 짧은 머리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단골 헤어디자이너의 손에서 어느새 머리칼은 절반이 잘리고 없어졌다. 사실 자르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조금 산뜻해지고 싶었는데 가위 든 사람이 임자다. 머리가 잘리니 섭섭하기도 하고 개운하기도 하다.

사회적 거리두기 등으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아들 녀석의 성화가 심해졌다. 이것저것 살림이 많아 집이 아니고 물류센터란다. 좁은 집에 가장 많은 것이 책이고 다음으로 옷, 학용품 등이다. 보채는 통에 책을 정리했다. 이미 다 본 책, 보려고 샀는데 안보고 있는 책을 주로 버렸다. 한 권 한 권이 아쉬울 때마다 도서관을 떠올리며 책들과 이별했다. 다음으로 옷을 정리했다. 너무 오래 입어서 지겨워진 것과 ‘언젠가는 꼭 입어야지' 하고 희망을 걸어둔 것들과 헤어졌다. 옷 하나에 담긴 기억과 사연과 시간과 공간이 어찌 그리 많은지 내심 놀랐다.

그들을 정리하고 나니 마음이 아주 개운해졌다. 과거와의 결별이 이루어진 것이다. 없어도 되는 물건들을 빼버리고 나니 집이 넓어졌다. 마음의 방도 시원해졌다. 마음의 방 안에는 함께 했던 물건들에 묻어있는 추억들이 가득했다. 여러 가지 염원들도 있었다. 예전의 어느 순간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 앞으로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소망… 과거와 미래가 배어있는 책과 옷가지를 치우고 난 순간 마음이 산뜻하고 개운해짐을 느꼈다.

‘개운(開運)이란 게 이거구나!’ 조금 있으면 꽃들이 피어날 것이다. 잎들도 고개를 내밀 것이다. 새 봄의 꽃과 잎은 식물의 생에 있어 개운이다. 식물들은 현재를 산다. 현재가 과거이고 현재가 미래이다. 겨울의 나목을 바라보며 많은 생각을 해왔고 그 생각들은 해마다 달랐다. 지난겨울에는 ‘버리고 텅 비우는’ 식물의 모습에 감탄했었다. 하지만 정작 나 자신은 모든 것을 움켜쥐고 집착했다. 식물이 지닌 ‘무소유’ 정신을 제대로 깨닫지 못한 탓이다. 식물은 소유도 잘하고 무소유도 잘한다.

올 봄에 피어난 서울 봉은사의 홍매화. 지난 겨울 식물의 ‘버리기’가 없었다면 이 아름다운 꽃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 윤인호 광릉수목원 숲해설가
올 봄에 피어난 서울 봉은사의 홍매화. 지난 겨울 식물의 ‘버리기’가 없었다면 이 아름다운 꽃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 윤인호 광릉수목원 숲해설가

고등식물은 물, 공기, 태양 에너지 및 토양에서 흡수된 필수 원소들이 있는 조건 하에서 정상적인 생장에 필요한 유기화합물 및 기타화합물을 합성할 수 있는 ‘독립영양체’이다. 이 독립영양체인 식물은 시시각각 자신들이 합성하거나 저장한 것들을 밖으로 내보낼 줄도 안다. 예를 들면 뿌리로 열심히 흡수한 물의 97%는 증발시킨다. 식물이 애써 모은 물을 버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물을 증발하는 과정에서 이산화탄수의 흡수가 촉진되면서 광합성이 용이해지기 때문이다.

나머지 3%의 물 중 2%는 식물에 잔류되어 활용되고 1% 정도는 대사에 이용한다. 식물은 이렇게 저장만큼 버리기도 잘한다. 식물의 기관들은 좁은 나의 집처럼 한정된 공간을 가지므로 쌓아두면 안되기 때문이다. 그들은 무소유를 꿈꾸는 것일까? ‘무소유’하면 법정 스님이 떠오른다.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인 〈무소유〉는 독자들에게 어디에도 없는 ‘무하유(無何有)’의 세상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사람들은 저자인 법정 스님에게 “무소유를 실천하면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가난뱅이로 사는 것 아니냐?”고 묻기도 했다. 무소유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질문이다. 이에 대한 저자의 답은 이랬다.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가난뱅이가 되라는 말이 아닙니다. ‘무소유’란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머리카락을 자르고 물건들을 버리면서 내가 느낀 잠시의 ‘개운함’은 바로 불필요한 것들을 덜어낸 즐거움이 아니었을까? 식물은 ‘무소유’의 표본이다. 겨울의 나목은 무소유의 바코드이다. 하지만 나머지 계절도 식물은 무소유 정신으로 산다. 노화되어 떨어질 이파리 등을 활용하여 과잉이거나 불필요한 화합물들을 틈틈이 부지런히 내보낸다.

올 봄에 피어난 서울 봉은사의 홍매화. 지난 겨울 식물의 ‘버리기’가 없었다면 이 아름다운 꽃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 윤인호 광릉수목원 숲해설가
올 봄에 피어난 서울 봉은사의 홍매화. 지난 겨울 식물의 ‘버리기’가 없었다면 이 아름다운 꽃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 윤인호 광릉수목원 숲해설가

그렇게 자신과 자신의 터전을 정화한다. 고등동물이라 자랑하는 인간은 어떤가? 무엇이 되었든 몸에 쌓아두고 마음에 쌓아두고 뇌에 쌓아두고 공간에 쌓아둔다. 인간이 자신에게 저장한 것들은 모두 다 병이 된다. 몸의 병, 마음의 병, 뇌의 병이다. 공간에 저장한 것도 마찬가지이다. 인간은 자신의 터전인 지구조차 환자로 만들었다. 버리지 않으니 순환하지 못하고 순환하지 못하니 고이고 정체되어 문제가 생긴다.

어두운 코로나를 뚫고 봄날의 꽃들이 우리를 찾는다. 찬란한 봄꽃들은 식물적 무소유의 화신이다. 겨울의 정해진 이별[定離]이 꽃으로 돌아온 것이다. 우리는 그들을 꺾어들고 소유하려 안달이지만 그들은 ‘개운하게’ 자연의 순환으로 사라진다. 그렇게 봄이 가고 여름과 가을, 겨울이 돌아든다. 식물의 삶은 개운(開運)의 연속이다.

[한국조경신문]

최문형 성균관대 학부대학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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