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문형의 식물노마드] ‘나의 정원’을 위하여
[최문형의 식물노마드] ‘나의 정원’을 위하여
  • 최문형 성균관대 유학대학 겸임교수
  • 승인 2021.01.12
  • 호수 6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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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문형 성균관대 유학대학 겸임교수
최문형 성균관대 유학대학 겸임교수

[Landscape Times] 유럽에 중국 열풍이 불던 시절이 있었다. 17세기에서 18세기에 걸쳐 영국, 프랑스, 독일, 스위스 사람들은 중국문화에 열렬한 지지를 보냈다. 그들은 공자의 민본 사상에 도취되었을 뿐 아니라 비단과 도자기 같은 고급스런 중국 물건들을 애호했다. 유럽인들이 지금은 아닌 척 시치미를 떼고 있다 해도 당시 중국 열풍의 큼직하고 엄연한 증거로 남은 것이 바로 정원이다.

근대적 영국정원은 중국으로부터 기원했다. 대표적인 중국풍 건축정원은 영국의 큐 가든으로, 체임버스가 ‘공자의 일생’을 그린 패널 및 10층 파고다 부속건물을 만들었다. 이후 이 파고다는 유럽 전역으로 퍼졌다. 네덜란드의 헤트 루 가든의 탑, 남프랑스 루아르 주의 샹텔루 가든의 탑, 독일 뮌헨의 영국식 정원(Englischer Garten)의 목제탑 등이다. 특히 독일의 영국식 정원(Englischer Garten)은 중국의 원명원을 모델로 했고 약 2년여의 공사를 거쳐 만들어져 1792년에 개방되었다.

이 정원은 현재 카페로 운영되는 5층의 중국식 목조 파고다가 남아있는데, 전체적으로 기하학적 정원개념이 아닌 자연을 살린 중국적 양식으로 만들어졌다. 중국정원 양식은 이처럼 18세기 영국정원과 유럽정원의 발전을 이끌었다. 중국정원 이론서의 고전은 1634년에 발간된 계성(計成)이 집필한 <원야(園冶)>이다. 명나라 때 건축 및 정원설계사였던 계성의 이 책은 세계 최초의 정원 이론서로 명성이 높다. 1993년 김성우, 안대회 두 학자의 공들인 번역으로 한국에 소개되었다.

<원야>에 나타난 정원 조성의 4대 원칙을 보면 정원설계사 우위 원칙, 자연모방 원칙, 차경의 원칙, 산수화의 원칙이다. 이 중 첫 번째 원칙에 집중하여 보자. 정원설계사 우위 원칙은 설계사의 역할이 강조된다. 집을 지을 때는 7할의 책임이 있지만 정원은 9할이 설계사의 몫이다. 그 이유는 설계사만이 인차(因借)에 능숙하기 때문이다.

인차(因借)의 인(因)은 주어진 지형의 변혁과 개조를 최소한으로 하여 생긴 그대로 정원의 일부로 만드는 활용법으로 인지(因地), 즉 땅(지형)에 기인함을 말한다. 차(借)는 주변 경관을 차용하여 정원의 풍경을 아름답게 하는 차경(借景)이다. 이 두 가지 기본적인 원리를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는 설계사(조원사)의 기량이 요구된다. <원야>가 말하는 조원사의 능력은 ‘인생정원’에도 가장 중요하다.

자연지형을 그대로 살려 꾸민 한국의 정원(왼쪽), 바깥 풍경을 고스란히 들여 온 차경의 미학이 돋보인다.  ⓒ최문형
자연지형을 그대로 살려 꾸민 한국의 정원(왼쪽), 바깥 풍경을 고스란히 들여 온 차경의 미학이 돋보인다. ⓒ최문형

인차(因借)의 첫 번째 요소인 인지(因地)는 내가 지닌 성향과 특성이다. 그 안에는 심성, 적성, 취향, 능력 등이 있다. 다른 것으로 대체될 수 없는 바로 식물의 씨앗과 같은 것이다. 사람들을 살피면, 누구는 평평한 대지이고 누구는 협곡이다. 어떤 이는 마른 땅이고 어떤 이는 질척거리는 땅이다. 사람마다 마음 밭이 다르니 자신의 정원을 설계할 때 그 특성을 잘 알아차려야 한다. 그것이 주체성이고 자기 확신이다. 평야가 좋아 보인다고 높은 언덕을 깎아 내릴 필요가 없고 축축한 땅이 부럽다고 물을 길어 붓는 것은 어리석음이다.

대다수의 심리학자들과 성공학 전문가들은 사람마다 ‘자기 확신’이 성공의 열쇠라는 데 동의한다. 이 자기 확신은 매일 경험하는 일상에서 온다. 누구나 자신이 매일 하는 일이나 집에 가는 길은 확실하게 안다. 여기서 한 단계만 더 나아가면 이 확신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시도가 가능하다. 첫 발자국이 중요하다. 예측할 수 없어서 실패가 두려우면 자신의 땅, 마음 밭(땅, 지형)을 들여다보고 한 번 더 자신을 믿어야 한다.

인차(因借)의 두 번째 요소인 차경(借景)은 아름다운 정원을 만들기 위한 주변 풍경 탐색이다. 조화와 어울림은 동양의 지혜인 ‘중용’과 ‘중화’와도 통한다. 그래서 중국과 한국은 차경을 정원 조성의 최고 원칙으로 활용한다. 억지로 꾸미거나 정해진 격식이 없는 이 원칙은 정원이 처해있는 주변 풍경을 최대로 따르고 수용함으로써 가장 자연스러운 ‘자연’이 된다. 식물이 자라날 때 처해진 환경에 어우러져 사는 것과 같다. 식물이나 동물이나 인간이나 주변 풍광(환경)에서 자유롭지 못함이 현실이므로.

그래서 그 현실에서 ‘현재’를 산다. 그런데 인간은 좀 다르다. 두뇌가 발달한 인간은 감각이나 촉보다는 기억의 저장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잘 살아남으려면 ‘지금’ ‘현재’에 투철해야 하는데 두뇌 덕분에 과거와 미래에 더 집중해 버린다. 현재 지닌 것의 소중함과 귀함을 모른 채, 없거나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고 상상한다. 그렇게 우리는 차경을 무시하는 어리석음을 보인다. 인생정원의 차경법은 기억을 약화하고 하루하루 시시각각의 새로움에 집중하는 것이다. 상상력을 눌러 미래를 걱정하거나 꿈꾸지 않는 것이 비결이다.

유럽인들은 왜 중국정원에 심취했을까? 자연을 살린 자연스러운 정원 속에서 자연처럼 평안하게 지내고 싶은 마음이 아니었을까? 누구나 자신의 정원을 가지고 평생 그 정원을 가꾼다. 가장 화사하고 아름답고 귀한 것들로만 꾸미고 싶은 그 정원은 치밀한 계획과 설계가 필요하다.우리 각자는 인생정원의 설계사이다. 9할은 우리 몫이고 1할은 행운의 몫이다. 인차(因借)의 대원칙을 새기며 2021년의 인생정원을 꾸며보면 좋겠다.

※ 유럽의 중국풍 정원과 <원야(園冶)>에 관한 내용은 황태연 교수의 역작 <17-18세기 영국의 공자 숭배와 모럴리스트들> 상권 1장 2절에 상세하다.

[한국조경신문]

최문형 성균관대 유학대학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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