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븐시즌스 가든의 11월 풍경 
세븐시즌스 가든의 11월 풍경 

“정원에 안 들어오셔도 좋으니, 아무것도 없다고 화내지 마세요”

며칠 전 세븐시즌스 SNS에는 이렇게 시작되는 글과 사진 몇 장이 올라왔다. 11월 늦가을 정원에는 과연 아무것도 없는 걸까?

체코를 대표하는 작가인 카렐 차페크의 정원 에세이 ‘정원가의 열두 달’을 참 재미나게 읽었다. 위트 넘치는 문장과 삽화를 보며, 책이 아닌 실제 정원과 정원사를 매달 살펴보고 싶었다. 한국의 정원사는 이 계절에 무엇을 할까? 궁금증을 가지고 퇴촌의 세븐시즌스를 찾았다.

정원에서 만난 김재용 정원사는 카렐 차페크의 글과 삽화가 묘사하는 정원가의 모습과 너무나도 닮았다.  늦가을의 정원은 멈춰있는듯 하나 여전히 생동하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새로운 시작을 위한 준비가 한창임을 알 수 있었다.

세븐시즌스에서 만난 김재용 정원사
세븐시즌스에서 만난 김재용 정원사

오! 브라운

11월 정원에 아무것도 없다고? 느긋한 자만이 발견할 수 있는 정원의 아름다움을 느끼기에 이때가 제격이다. 이렇게 다양한 스펙트럼의 브라운을 어디서 볼 수 있을까? 짙은 흙색의 씨앗만 남기고 모두 떨군 루드베키아와 부드러운 크림색의 억새 꽃까지... 늦가을의 정원은 다양한 채도와 명도, 질감을 가진 브라운으로 가득하다.

정원을 바라보면 고요함과 겸손, 차분하고 쓸쓸한 감정이 불쑥 올라온다. 화려하게 눈길을 끌던 꽃, 가지를 가리던 잎이 지고 식물의 본연의 모습을 가장 잘 관찰 할 수 있는 시간이다.  천천히 정원을 서성이며 다양한 색감을 감상하자. 여유 있는 자만이 더 많은 브라운을 발견할 것이니!

꽃눈과 잎눈을 관찰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올해 새로 올라온 가지도 살펴보자. 정원사라면 관찰로 그치지 않는다. 가지치기를 위해 장갑을 끼고 전지가위를 든다. 사다리를 타고 나무에 오르는 것은 위험하니 고지가위를 이용해 안전하게 전정하자. 이때 바깥 방향으로 난 잎눈 위를 전지해야 내년에 새로운 가지가 안쪽으로 자라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아차! 내년 봄에 피어날 꽃눈 남기는 것을 잊지 말자. 벚나무와 목련 등 여름에 꽃눈을 만드는 나무의 꽃눈을 모두 잘라버리면 2년 후에나 꽃을 볼 수 있으니 말이다.

11월의 정원은 다양한 스펙트럼의 브라운 색상을 감상할 기회다.
11월의 정원은 다양한 스펙트럼의 브라운 색상을 감상할 기회다.
정원에서 가지치기를 배우는 실습생들의 모습
정원에서 가지치기를 배우는 실습생들의 모습

흙의 달

11월은 어쩌면 정원의 시작이다. 정원 식물을 옮기려면 지금이 제격이다. 겨울이면 식물들은 땅 위의 일을 쉬고 땅 아래 일을 시작한다. 뿌리를 더 깊숙이 내리기 전에 옮겨 심지 않으면 뿌리와의 전쟁이 벌어질 것이다. 또 곧 평균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면 땅이 얼기 때문에 땅을 파다가 삽이 부러지거나 손목이 부러질 수도 있다.

여름철 고온 다습으로 맥을 못 추는 식물이 있었다면 배수관을 묻거나 흙의 물 빠짐을 좋게 하는 재정비도 지금 해야 한다. 올해 여름 세븐시즌스의 정원에는 폭우와 폭염 속에서 힘들어하는 식물이 많았다. 김재용 가드너는 정원에 배수관을 묻고, 물 빠짐이 좋은 흙을 만들기 위해 고가의 난석을 섞는 등 정원 전체를 뒤집는 작업을 했다고 한다.

이렇게나 흙을 많이 만졌는데 또 흙을 만질 일이 남았다. 바로 추식구근 심기다. 수선화, 히아신스, 무스카리, 크로커스, 튤립 등의 구근은 적어도 11월 말 전까지 심어야 한다. 운이 좋게도 지난 10월 정원 교육 실습생들이 심었던 샤프란을 볼 수 있었다. 샤프란은 겨울 내내 피고 진다고 하니 겨울 정원의 감초 같은 역할을 한다.

아직 흙이 얼기전 구근을 심어야 한다. 알리움 구근을 심는 모습
아직 흙이 얼기전 구근을 심어야 한다. 알리움 구근을 심는 모습

 

김재용 정원사가 구근 심는 법을 알려주고 있다.
김재용 정원사가 구근 심는 법을 알려주고 있다.
기온이 영하로 떨어진 날에도 꽃을 피운 샤프란
기온이 영하로 떨어진 날에도 꽃을 피운 샤프란

11월의 정원은 찬란한 계절과 비교하면 멈춰있는 것 같다. 사실은 새봄을 맞을 준비로 분주하다. 정원사의 눈에는 벌써 쑥 하고 올라올 새싹과 피어날 꽃이 아른거린다. 우리가 보지 못하는 정원의 아름다움을 그는 먼저 본다. 지금은 보이지 않지만, 미래를 보는 눈으로 정원을 가꾼다. 그것이 늦가을 정원사의 일이다.

 

[한국조경신문]

 

김재용 정원사의 가든 팁  <월동준비>

1. 월동이 되는 식물도 야외 화분에 심겼다면 냉해를 입을 수 있습니다.
화분을 보온하거나 실내로 옮겨주어야 하는데요,
이 때 햇빛의 양이 갑자기 줄어들면 식물은 움츠려 듭니다.
일주일 정도에 걸쳐 서서히 안으로 옮기는 것이 좋습니다.

2. 잠복소 설치는 입동전에 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수목의 상부에 있던 벌레가 아래로 내려가다 잠복소에 자리잡아야 하기 때문이죠.
입동이 지나면 벌써 벌래들은 땅을 파고들어 뿌리 아래로 내려갔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물론 잠복소 제거도 벌레들이 깨어나기 전인 입춘에 해주시는게 좋겠죠.

3. 올해  중부지방으로 이식한 배롱나무 같은 남부지방 수종의 경우적응기간이 필요합니다.
2년 정도는 뿌리 부분까지 볏짚을 덮어 보온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4. 식물은 겨울 추위뿐만 아니라 염화칼슘에도 힘들어합니다.
도로에 심긴 식물과 나무에도 보호대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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