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문형의 식물노마드] 천년의 열매
[최문형의 식물노마드] 천년의 열매
  • 최문형 성균관대 유학대학 겸임교수
  • 승인 2019.11.27
  • 호수 56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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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문형 성균관대 초빙교수
최문형 성균관대 초빙교수

[Landscape Times] 마이산과 용담호의 아름다움을 품은 진안고원 치유숲에서 특강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오랫동안 살아남은 나무를 만나고 오기로 했다. 금산 보석사의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은행나무이다. 보석사 울타리 밖 숲에서 일천일백년 남짓 살아가는 은행나무는 몸에 줄을 동이고 있었다. 몇 겹의 줄에는 나무의 백분지 일도 살지 못하는 사람들의 작은 염원들이 줄줄이 걸려 있었다. 누군가는 소박한 제사 음식도 놓아두었다.

얼마 전 전국적인 입학자격시험이 있었던 여파도 있었겠지. 겨우 백년도 살지 못하는 인간이 일천년 이상 숨쉬는 ‘살아있는 신’과도 같은 나무에게 그 정도 부탁은 할 수 있지 않은가. 신라 헌강왕 때 조구대사가 제자들과 함께 심은 이 나무는 그간 나라와 마을의 수호신이 되어 큰 일이 있을 때마다 소리 내어 울어 주었다고 한다. 광복과 전쟁 때도 그랬고 가장 최근의 일은 1992년의 가뭄이었다.

나무는 노란 잎을 다 떨구어 우아한 나신을 자랑하고 있다. 세월과 환경이 만들어낸 마디마디가 그 자체로 예술이다. 사방으로 뻗은 가지가 혹시라도 상할까 염려한 사람들은 높은 사다리를 만들어 군데군데 받쳐주었다. 가지 잘린 자리에 생긴 큼직하고 단단한 옹이에 가만히 손을 대어 보았다. 거의 화석화된 둥치도 손바닥을 대어 교감해 보았다. 천년을 거친 생명의 울림이 전해오는 듯 순간 눈물이 핑 돈다.

긴 세월 삶을 영위하느라 나무는 얼마나 애를 썼을까? 키를 키우고 가지를 내고 열매를 내는 반복적이지만 창의적인 과정들. 적들도 많았고 자식들도 무수했고 만나고 지나친 인간과 사건들은 또 얼마나 많았을까? 우여곡절 속에 살아내고 있는 나무의 시간들이 전해졌다. 생명이란 얼마나 슬픈 것인가! 그리고 생명은 얼마나 귀한 것인가!

고대로부터 인류는 나무를 신성시하여 신들이 거처하거나 드나드는 곳으로 믿었다. 우주목에 대한 믿음도 있었다. 우주목은 우주의 축으로서 천상, 지상, 지하의 세 개의 세상을 연결해 준다. 덕분에 우주가 영원히 재생될 수 있다고 믿었다. 우주목은 그래서 생명의 나무이다. 북유럽신화에 나오는 위그드라실(Yggdrasil)은 북유럽인들이 신성시했던 거대한 물푸레나무로서 온갖 짐승들을 품어 주었고 신과 인간과 거인이 사는 세계에 생명을 주었다. 거대하고 웅장한 은행나무 밑에 서니 고대인들의 심정이 백분 공감이 간다.

금산 보석사 은행나무 전경(천연기념물 제365호)
금산 보석사 은행나무 전경(천연기념물 제365호)

우리 조상들도 마찬가지였다. 동네 어귀마다 친근한 서낭당은 인간이 자연물 중 가장 친근하고 가장 덕스런 나무와 교감한 장소였다. 마을 사람들은 토지와 마을을 수호하는 신수(神樹)에 여러 가지 돌로 무더기를 쌓았고, 나무에는 자신의 갖가지 소원을 적어 매달아 놓았다. 살아가면서 겪는 어려움을 도와달라는 현실적인 염원이다.

그런 오랜 전통과 염원이 있어서일까?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나무지만 몸에 줄을 두르고 소원을 매달게 한 보석사 스님들의 넉넉함이 정겨웠다. 우리 생명들은 어떻게든 서로를 보듬고 안아주고 위안하며 살아가는 게 아닐까. 그 중에 유난히 품이 넓고 키가 커서 든든한 나무에는 우리 사람들뿐 아니라 수천종의 생명체들이 깃든다. 나무는 우주이고 신화이다. 나무는 역사이고 생명이다. 그 무엇도 이 지구에서 나무를 대신할 존재가 없다.

이 가을에도 나무는 수많은 생명들을 생산해냈다. 땅으로 돌아간 잎들과 함께 엄마나무 밑에 자리한 셀 수 없이 빼곡한 은행열매들은 보는 이들의 감탄을 자아낸다. 동네 사람들은 이 나무만 유독 올해도 많은 열매를 맺었다고 칭찬하느라 바쁘다. 천년을 넘게 해마다 자손을 보는 나무를 보며 인류사의 성인들을 떠올렸다. 진리를 위해 사사로움을 포기하고 사람들에게 빛을 던진, 아니 자신이 그대로 빛이 된 성인들 말이다. 그들은 빛이 되고 나무가 되어 끊이지 않는 열매를 매순간 만들어내고 있다.

당시에는 작고 초라한 나무로 보였을 수도 있다. 그래서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세월을 이겨내고 변화와 함께 변신하며 살아낸 그들의 사상과 사랑은 키를 키우고 품을 늘려 많은 생명을 품었다. 성인들의 나무에 달린 열매들은 바람과 물을 타고 끝없이 이동하여 지구를 수십 바퀴 돌았다. 그렇게 여기저기에 씨앗이 떨어져 그들의 가르침과 연민의 메시지들이 열매를 맺었다. 천년을 거치면서 자식을 두는 은행나무처럼 성인들의 마음도 쉼 없이 제자들을 키워낸다.

십자가라는 나무에서 고난을 당해 죽고는 부활한 예수는 자신을 ‘땅에 떨어져 썩어야 하는 밀알’에 비유했다. 그의 예언대로 세상에는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밀알들(제자들)이 태어났다. 거대한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깨우침을 얻은 석가는 무소의 뿔처럼 당당한 삶을 낙엽에 비유했다. 때가 되면 담담하게 잎을 떠나보내는 나무의 심정을 알았던 것일까? 나무는 성인이다. 큰 스승이다. 그 나무 아래에서 이런 저런 생각에 잠겨 보았다.

[한국조경신문]

 

최문형 성균관대 유학대학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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