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문형의 식물노마드] 꽃처럼 살아남기
[최문형의 식물노마드] 꽃처럼 살아남기
  • 최문형 성균관대 유학대학 겸임교수
  • 승인 2019.12.24
  • 호수 56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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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문형 성균관대 초빙교수
최문형 성균관대 초빙교수

[Landscape Times] 겨울에도 장미가 핀다. 소담한 붉은 장미는 여름 장미보다 매혹적이다. 울긋불긋 단풍이 떨어져 도로며 계단을 모자이크로 장식할 무렵 풍만한 장미가 시선을 잡아당긴다. 삭막한 계절을 위무하려는 듯 장미는 화사하고 도도하게 피었다. 신성한 꽃들은 고대부터 인간의 눈을 사로잡았다. 고대인들은 신의 사원을 말린꽃으로 장식하기도 했다. 말린꽃이 더 이상 지지 않듯이 신 또한 영원함을 기리는 것이리라.

이렇게 신비한 꽃의 정체를 만천하에 적나라하게 밝혀 욕을 먹은 사람이 있다. 독일의 고등학교 교장이었던 크리스티안 슈프렝겔(1750~1816)은 호기심이 퍽이나 많은 사람이었나 보다. 벌이나 나비가 꽃을 찾는 것을 보고 우리 인간들처럼 꽃을 그저 좋아하는 걸로 생각하던 그 시절에 그는 곤충들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했다. 그 결과 나비와 벌이 그저 즐기려고 꽃을 찾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꽃 속의 암술과 수술을 수분하고 수정해주기 위한 중매쟁이가 바로 곤충임을 알아차렸다. 곤충들은 화밀에서 양분과 식량을 얻어가지만 그 과정에서 꽃은 수분을 할 수 있다.

후손을 두어 살아남으려는 식물의 욕망이 곤충들을 끌어당긴 것이다. 슈프렝겔이 처음 이 사실을 발표했을 때 세상은 떠들썩했다. 신성함과 신비로움의 대명사인 꽃이 번식을 위한 식물의 생식기라니! 사람들의 실망과 허탈함은 참으로 컸으리라.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충격은 지나갔고 꽃들은 여전히 인간들의 사랑을 받았다. 지금 원예전문가들은 앞 다투어 자신이 꽃들의 중매쟁이 노릇을 하기도 한다. 사실 지구에 꽃이 나타나고 나서 자연은 확 바뀌었다.

초겨울 뜨락에 소담하게 피어난 붉은 장미
초겨울 뜨락에 소담하게 피어난 붉은 장미

인간에게 농업혁명이 있듯이 자연에는 꽃의 혁명이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꽃이 피고부터 식물들의 번식에는 에너지 낭비가 줄었다. 자신들을 짝짓기해줄 동물들 입맛에 맞는 양분만 만들면 살아남아 자손을 퍼뜨릴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움직이지 못하는 식물들은 그렇게 특이한 방식으로 자신을 보존한다. 동물은 평소에 생식기를 드러내고 살지 않는 구조를 지녔다. 민감하고 중요한 기관이므로 적당한 곳에 감추어져 있다.

하지만 식물의 경우는 다르다. 동물처럼 했다가는 짝짓기를 하지 못해 후손을 퍼뜨리지 못하고 멸종할 것이다. 그래서 식물은 획기적인 방식을 선택했다. 생식기를 크고 화려하고 아름답게 만드는 데 노력과 자원을 쏟아 부은 것이다. 바로 각양각색의 꽃들이다. 식물생식기인 꽃들의 향기와 모양과 빛깔에 끌려 인간이고 동물이고 아주 정신을 잃을 지경이다. 그런데 인간이나 동물이 우생학적으로 근친상간을 피하는 것처럼 식물도 자가수분은 딱 질색이다.

그래서 어떻게든 그것만은 피하려고 한다. 만약 식물이 자가수분을 좋아했다면 굳이 꽃을 피워 그 안에 있는 암술과 수술을 노출시킬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되도록 눈에 띄는 꽃을 피워 여러 중매쟁이들의 방문을 받고 그들과 사귀는 꽃의 전략은 무엇인가? 그렇다. 바로 이질적인 유전자들의 조합이다.

되도록 멀리 있는 유전자를 끌어당기려고 엄청난 방식을 택한 식물이 있다. 시체꽃이라는 별명을 가진 타이탄 아룸은 7년간 양분을 비축하고 4개월을 기다려 무려 3미터의 기둥을 키운다. 이 기둥 전체가 꽃이다. 어마어마한 악취를 만들어 섭씨 36도의 열로 뿜어낸다. 그 결과 1킬로미터 반경의 파리들이 몰려온다. 파리가 수분매개자인 탓이다. 상당한 에너지가 들어가므로 딱 이틀간 핀다. 일대의 파리들을 무진장 불러 모은 이 거대한 꽃은 이틀 뒤에는 허무하게 스러진다. 타이탄아룸의 짝짓기 전략은 통 크다.

보라색 꽃이 소담한 가을꽃 국화과 아스터
보라색 꽃이 소담한 가을꽃 국화과 아스터

우리 인간도 중매쟁이가 필요하다. 결혼하기 위한 중매쟁이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인생의 고비 고비에서 가능성의 씨앗이 싹트고 자라고 꽃피우고 열매 맺는 것을 도울 사람들을 말한다. 부모일수도 친척일수도 친구일수도 스승일수도 선배일수도 후배일수도 있다. 마음 속 정과 공감과 애틋함과 관심이 그들에게 줄 수 있는 화밀과 영양분일 것이다.

우리는 서로에게 꽃이 된다. 내 마음의 정수(精髓)를 상대에게 열어 보이고 그것을 나누면서 우리 서로는 수분매개자가 된다. 크게 피우고 자신 있게 많이 열어 줄 때 우리는 좋은 친구를 얻을 수 있다. 우리는 서로의 씨앗, 서로의 꿈을 중매해 주는 소중한 존재가 된다. 되도록 먼 곳에 있는, 되도록 이질적인 친구들은 우리가 전혀 상상하지 못할 가슴 설레는 곳으로 안내해 주기도 한다. 꿈의 실현에도 동종교배, 자가수분이 큰 도움이 못되기 때문에 먼 곳의 친구가 좋다. 양분을 온축해서 필생의 의지로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일, 꽃처럼 살아남기는 우리 모두의 과제이다.

. 멀리서 가까이서 온 소중한 벗들과 조우한다. 향기와 화밀로, 아름다움과 양분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꽃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

[한국조경신문]

최문형 성균관대 유학대학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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