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문형의 식물노마드] 숲이 뚫렸다!
[최문형의 식물노마드] 숲이 뚫렸다!
  • 최문형 성균관대학교 학부대학 겸임교수
  • 승인 2020.03.06
  • 호수 57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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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문형 성균관대학교 학부대학 겸임교수
최문형 성균관대학교 학부대학 겸임교수

[Landscape Times] 숲이 뚫렸다. 거센 바람에 큰 나무 가지가 무참히 꺾이고 작은 나무들은 쓰러졌다. 서로를 보듬고 의지하고 살던 나무들 세상에 혼란과 당혹이 밀려왔다. 친족과 이웃나무들의 아픔을 애도할 사이도 없이 바람은 매몰차게 몰아쳤고 툭, 후드득 소리와 함께 많은 나무들이 해를 입었다.

작년 9월 ‘뚜벅이 투어’로 충청남도 태안군 안면도에 갔었다. 뚜벅이들을 반기듯 가을비가 살며시 내리는 날이었다. 안면도 소나무 천연림은 선조들이 오래 전부터 국가차원에서 관리해온 귀중한 자원이고 현재는 자연휴양림이다.

입구에 다다르면 ‘송진채취목’이라는 팻말이 세워진 꽤 큰 나무가 보인다. 태평양전쟁 당시 일제가 큰 소나무에 V자 모양의 상처를 내어 비행기 연료용 송진을 앗아간 상흔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다. 한 그루 만이 아니다. 그런 상처를 지닌 나무들이 곳곳에 보인다. 하지만 안면송은 아픔을 지닌 채 꿋꿋이 살아왔다. 안면송은 안면도에서 자생하는 한국 대표 소나무다. 며칠 전 지나간 제13호 태풍 링링도 안면송이라고 봐주지 않았다.

무려 120그루가 뿌리째 뽑히거나 부러져 나갔다. 이 지역은 해발 최고 92.7미터로 인간에게는 구릉지대지만, 소나무에게는 나지막한 평지이다. 그래서인지 씨가 떨어지면 쉽게 발아되어 서로에게 기대고 의지하며 촘촘하게 살아간다. 이곳의 소나무들은 몸을 곧게 펴서 하늘바라기를 하고 친족과 이웃들에게 걸리적거리지 않도록 배려하면서 가지를 낸다. 옆의 나무가 자기 쪽으로 가지를 뻗으면 어떻게든 알아내어 자신은 반대쪽으로 가지를 벌린다.

안면도 소나무 천연림은 우리 민족과 닮았다. 살기 좋은 자연환경이 그렇고, 오밀조밀 가족과 친족들이 정답게 모여 사는 것이 그렇고, 나쁜 세력에 수탈당한 것은 더욱이 그러하다. 가을이 출렁대던 9월에 우리 뚜벅이들은 안면송을 대하며 모두들 그렇게 느꼈다. 불과 며칠 전 큰 바람에 꺾이고 뽑힌 나무들을 애도하듯 내리는 비를 맞으며 우리의 가슴에도 촉촉이 비가 내렸다. 산길 굽이굽이에 제 수명을 다하지 못한 나무들을 헤치고 넘으며 걸어가면서 식물을 사랑하는 조경인들의 가슴은 아렸으리라.

이 곳 구릉지대처럼 푸근하고 비옥한 우리 땅은 오랜 역사를 거치며 많은 침략과 아픔을 당했다. 대륙과 해양의 접점으로 지구의 노른자위 땅인데다 어떤 식물이든 그 속성을 최고로 뽐낼 수 있는 땅이라서 그랬을까? 아니면 이 땅 사람들의 순박함과 평화로움 때문이었을까? 소나무처럼 소박하고 꿋꿋한 이 땅 사람들은 이리 저리 치이면서도 서로를 보듬고 생명을 이어왔다.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식물로 늘 푸른 소나무가 꼽히는 것도 우연이 아닐 것이다.

해가 바뀌어 새 봄의 문턱에서 문득 안면도 안면송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그렇다! 숲이 뚫렸다. 서쪽에서 부는 바람에 숲이 아프다. 소나무 밑에서 여전히 올망졸망 작은 풀과 꽃들은 피어나겠지만 정작 나무들은 통곡하고 있다. 엄마를 떠나보내고 동생을 이별한 나무들의 응어리가 숲을 휘감고 돈다. 태풍 링링처럼 들이닥친 시련이 겨울 숲을 점령했고 숲의 가족들은 이제 할 말을 잃었다. 바람을 대비한 각자의 전략도 모두의 유대도 이 재앙을 막지 못했다.

연일 쓰러지고 뽑히는 나무들, 이웃과 친족과 가족들! 숲의 통곡이 들린다. 사철 푸르른 잎, 늘씬하고 든든한 둥치, 숲의 동물가족들을 품어주던 넉넉한 품, 햇빛과 이야기 나누던 잎들, 나무의 휘파람 소리를 이제 들을 수 없다. 나무는 다리가 있어 다른 곳으로 도망칠 수도 없고 다른 생명체에게 도움을 청하지도 못한다. 그저 태어난 곳에서 묵묵히 모든 일을 겪어내야 한다. 그게 나무의 운명이다. 소나무는 자작나무, 참나무처럼 환경에 적응하는 유연성이 뛰어나다. 하지만 숲에선 뜻대로 안 되는 일이 많다. 번개의 피해도 만만치 않게 크다. 번개가 심한 날에는 불이 날 수도 있다. 현재의 아픔을 무엇이라 표현할까?

나무는 적어도 150년은 걸려야 아름드리나무로 우뚝 설 수 있다. 인간보다 천천히, 인간보다 느긋하게 일생을 산다. 유년기 천적의 온갖 공격을 몸으로 막아내고 얼마 안 되는 햇빛을 아껴 먹으며 알차게 자라났던 나무들, 수관까지 기어오르는 담쟁이의 공격에서도 백년 이백년 살아냈던 나무들이 급사했다. 장수를 증명하는 길고 튼실한 줄기들이 꺾였다. 한 세대를 마감하고 다음 세대를 기약하던 나무들이 스러졌다.

뿌리와 둥치와 가지와 잎에 함께 지내던 작은 생명들도 갈 곳을 잃었다. 나무는 죽어서도 생명들을 보듬어 키우고 고향인 숲에 큰 유익을 준다. 그렇다손 쳐도 나무의 갑작스런 죽음은 그 무엇으로도 합리화할 수 없다. 작년 한 해 그렇게도 가물었던 하늘이 요즘은 큰 눈도 주고 봄비도 심심찮게 선사하고 있다. 이 땅의 생명들을 가련히 여기는 눈물인가! 지금 우리 앞에서 하나, 둘... 숫자로 매겨지며 스러져가는 나무들, 이 안타까운 희생이 뒷세대에 어떤 거름이 되어줄 것인가?

[한국조경신문]

태풍에 무참히 꺽인 안면송 ©최문형 교수
태풍에 무참히 꺽인 안면송 ©최문형 교수

 

최문형 성균관대학교 학부대학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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