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문형 성균관대 초빙교수
최문형 성균관대 초빙교수

[Landscape Times] 변하지 않는 가장 든든한 보석으로 인정받는 황금은 부귀와 권력의 상징이기도 하다. 수 천년전 유물로 발굴된 왕족과 귀족들의 금장신구나 현대인들이 좋아하는 금거북이나 금열쇠 등을 보면 인류의 변치 않는 황금사랑을 알 수 있다. 그리스신화에도 황금을 사랑한 왕이야기가 있다. 마이더스라고도 불리는 미다스(Midas)왕이다. 그는 술의 신 디오니소스의 스승 실레노스를 잘 대접한 공을 인정받아, 자신의 손으로 만지는 것은 무엇이든 황금으로 변하게 해달라는 소원을 디오니소스로부터 허락받는다. 미다스왕의 손이 닿는 모든 것이 황금이 되었으니 그가 거부가 된 것은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부작용도 컸다. 그가 만지는 생명있는 것들이 다 황금이 되었을 뿐 아니라, 음식조차 황금으로 변해버려 문제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심지어는 가장 사랑하는 딸조차도 황금이 되어버린다. 결국 미다스왕은 자신의 소원이 얼마나 어리석었는가를 깨닫고는 디오니소스에게 찾아가 이 소원을 거두어 달라고 애원한다. 그를 안타깝게 여긴 디오니소스는 파크톨로스강에 몸을 씻으면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알려주었고, 결국 미다스왕은 강물에 목욕함으로써 자신의 욕심을 씻어내게 된다.

이러한 미다스왕의 신화에서 ‘미다스의 손’ 또는 ‘마이더스의 손’이라는 용어가 생겨났다. 무엇이든 황금으로 변하게 하는 손, 그러니까 무엇이든 척척 성공으로 이끄는 손이란 뜻이다. 원하는 것을 모두 이루고 싶은 인간의 욕망과 특히 부귀에 대한 갈망을 잘 보여주는 이야기다. 우리 보통사람들도 그렇다. 미디스왕 만큼은 아니어도 자신이 바라는 것이 다 착착 진행되면 좋겠다. 어떠한 방해도 없이, 손해도 없이 그저 인생이란 게 성공만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가다가 어려움과 갈등 상황에 처하면 힘들어 한다. 우리가 자연을 바라보는 심정도 그렇다.

식물들은 겨울을 준비하며 세포들을 자살시키는 과정에서 붉은 잎과 낙엽을 만든다. 자연은 자연 그대로일 뿐, 식물은 잎이 떨어지는 가을과 꽁꽁 언땅 속에서 지내야 하는 겨울을 하나도 우울해 하거나 슬퍼하지 않는다. 동양의 현인들은 자연의 이러한 변화를 역(易)으로 이해했다.
식물들은 겨울을 준비하며 세포들을 자살시키는 과정에서 붉은 잎과 낙엽을 만든다. 자연은 자연 그대로일 뿐, 식물은 잎이 떨어지는 가을과 꽁꽁 언땅 속에서 지내야 하는 겨울을 하나도 우울해 하거나 슬퍼하지 않는다. 동양의 현인들은 자연의 이러한 변화를 역(易)으로 이해했다.

우리들의 마음을 투사해서는 꽃들이 피어나는 화사한 봄을 선호한다. 일이 잘 풀릴 때는 ‘인생이 꽃핀다’ 고 한다. 반면에 푸른 잎이 누래지고 말라가면서 낙엽으로 지는 가을은 대체로 쓸쓸한 상념에 잠긴다. 봄과 여름은 청춘이고 가을과 겨울은 노년인 듯 나누어 생각한다. 청춘은 생동하는 발랄함이고 노년은 사그러져 가는 외로움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을 모든 것에 투사하기를 좋아한다. 자연에게도 예외가 아닌 거다. 하지만 자연은 자연 그대로일 뿐, 식물은 잎이 떨어지는 가을과 꽁꽁 언 땅 속에서 지내야 하는 겨울을 하나도 우울해 하거나 슬퍼하지 않는다. 동양의 현인들은 자연의 이러한 변화를 역(易)으로 이해했다.

역(易)은 해[日]와 달[月]이 합성된 글자이고 또는 도마뱀을 형상화한 글자이기도 하다. 해가 가고 달이 오고 달이 가고 해가 오는 것은 낮과 밤의 변화이다. 그래서 ‘변한다’는 뜻이 역(易)이다. 도마뱀은 위기가 오면 꼬리를 재빨리 끊어버리고 도망간다. 하지만 그 꼬리는 다시 자란다. 그래서 변화란 불가피하고 또 필요한 것으로 보았을 것이다. 우리가 보통 점치는 책으로 알고 있는 <역경(易經)>은 중국의 대표적인 고전 중의 하나인데, 공자도 이 책을 곁에 두고 가장 즐겨 보았다는 기록이 있다.

<역경>의 ‘역’은 변화의 역, 불변의 역의 뜻을 동시에 갖는다. 자연에서의 변화는 변함없다는, 그러니까 변화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자연의 생명체들은 변화를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식물도 동물도 자연물들도 변화는 자연스러운 것이고 필요한 것으로 안다. 유독 인간만 그걸 힘들어 한다. 왜일까? 낮은 좋지만 밤은 싫고 봄은 좋지만 가을은 싫어하는 편향성 때문이리라. 인간에게 편향성이 있다면 자연에는 항상성이 있다. 생명을 유지하고 존속하게 하는 거대한 힘이다. 항상성은 생명체가 생명을 유지할 수 있도록 작용하는 힘이다. 추우면 떨면서 체온을 올리고 더우면 땀을 내서 몸을 식히는 것 따위가 항상성의 한 예이다.

식물이 가을에 잎들을 세포자살 시키면서 앙상하게 변하는 것 또한 항상성의 작용이다. 지구 생태계 차원에서 보면 생명체들이 나고 자라고 번성하고 그러다가 병들거나 잡혀 먹거나 죽거나 사라지는 것, 모두 생명의 항상성을 유지하는 사이클일 뿐이다. 여기에 무엇을 보태고 뺄 것이 있는가! 자연의 이 거대한 그림책에 어떤 장면을 삽입하거나 제거하거나 주석을 달고 설명할 것이 있는가! 이성이 발달한 인간은 이러한 자연의 항상성이 자신의 신체 내에서 작용하면서 자신을 살리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어떻게든 이 자연의 원칙으로부터 일탈하려고 기를 쓴다.

그게 편향성이다. 지구의 여신 가이아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만큼 귀여운 존재도 없으리라. 디오니소스에게 야심찬 소원을 말해놓고 그 결과를 보고는 아차! 해서는, 다시금 그걸 되돌린 미다스왕은 그나마 지혜로운 이가 아니었을까? 변화하는, 아니 변해야 하는 모든 것을 변하지 않는 황금으로 바꾸고 싶어 했던 그가, 자연의 원리를 거스르기 원했던 그가, 자신의 우둔함을 깨닫고는 황금으로 변한 모든 것을 자연으로, 다시금 자연의 방식으로 되돌린 일은 우리 모두에게 교훈을 준다. 가을이 올 때마다 낙엽을 바라보며 변화를 느끼고, 자연의 원리를 되새기면서 담담하고 겸허해지는 교훈을!

[한국조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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