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문형의 식물노마드] 식물과 빅데이터
[최문형의 식물노마드] 식물과 빅데이터
  • 성균관대 유학대학 겸임교수
  • 승인 2019.09.25
  • 호수 5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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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문형 성균관대 유학대학 겸임교수
최문형 성균관대 유학대학 겸임교수

[Landscape Times] 인간에게는 필요한 게 참으로 많다. 감정도 있어야 하고 이성도 있어야 하고 결단력도 느낌도 있어야 산다. 그게 다가 아니다. 권리장전도 필요하고 십계명 같은 계율도 있어야 하고 헌법과 상법, 민법 같은 법률체계가 갖추어져야 하고 양심과 삼강오륜과 사회윤리가 필요하다.

문명을 가진 이후부터 인간의 복잡함은 무섭게 늘어나서 이제는 거기에 눌려서 손 둘 곳 발 둘 곳 모를 지경이 돼버렸다. 인간의 신체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두뇌라는 작은 덩어리의 힘을 빌어서, 인류는 자신의 현재와 미래에 무거운 차꼬를 채워 놓았다. 그런데 법률도 윤리도 종교계율도 모르는 식물들은 단순하게(?) 잘도 산다. 우리들보다 오래, 우리들보다 멋지게! 식물들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숲을 들여다보자.

숲에는 엄마나무와 아가나무들, 자매와 사촌과 오촌, 육촌, 사돈의 팔촌이 함께 산다. 한 무리의 대가족이 있고 성이 다른 대가족들이 그 틈에 끼어 산다. 먼 곳으로 이주하지 못한 채 엄마나무 그늘 아래 사는 아가들을 위해 엄마들은 뿌리로 광합성을 위한 탄소를 공급해 준다. 젖을 먹이는 거다. 아직 한참 자라야 하는 아가들은 엄마의 그늘아래서 조금씩 탄탄하게 키와 몸뚱이를 늘려간다. 숲에서 고개를 휘휘 돌려보면 아직은 연약한 몸통을 지닌 아가들의 무리 사이로 든든하게 자리한 엄마나무들이 군데군데 우뚝하다. 코끼리 가족의 가모장처럼 엄마나무들은 위용을 자랑하며 아가들을 지킨다. 숲은 살뜰한 복합대가족이다.

먼 곳으로 이주하지 못한 채 엄마나무 그늘 아래 사는 아가들을 위해 엄마들은 뿌리로 광합성을 위한 탄소를 공급해 준다
먼 곳으로 이주하지 못한 채 엄마나무 그늘 아래 사는 아가들을 위해 엄마들은 뿌리로 광합성을 위한 탄소를 공급해 준다

엄마나무들은 탄탄하게 팀을 만들어 아가들을 공동 양육한다. 이스라엘의 키부츠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누구의 아이인지 구분하고 차별하지 않은 채 세심하게 아가들을 키운다. 이웃에 사는 다른 종의 아가들도 웬만하면 도와준다. 함께 건강해야 모두 살아남는다. 나무들은 땅위로 땅 속으로 서로서로 연결되어 있다. 적이 침입하면 특정한 화학물질(독)을 만들어서 물리친다. 직접 공격하기도 하고 지원군을 부르기도 한다. 물론 공중과 지하 모두에서. 공격당한 나무가 만든 독은 퍼져나가서 다른 가족들에게 경계경보로 울린다.

이런 네트워크 덕분에 모든 나무들은 자신을 방어할 준비를 마치고 전쟁에 임한다. 숲은 치밀한 네트워크다.

숲은 본성이 펼쳐지는 곳이다. 아이들은 직감적으로 자신들의 본성을 실현하는 법을 안다. 언제 싹을 틔우고 어떻게 잎을 내며 가지는 어디로 향할지를 말이다. 그래서 따로이 교장선생님의 훈화가 없다. 옹기종기 모여 사는 세상에서 남을 방해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가는 법을 저절로 안다. 도덕시간도 채플시간도 필요치 않다. 밀도 높게 빽빽이 함께하는 터전에선 부쩍부쩍 키를 키우고는 다른 이들에게 피해가 없도록 한 방향으로만 가지를 낸다. 그 옆의 아이들 또한 같은 마음이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그렇게 한다. 굳이 사회윤리를 가르칠 필요가 없다. 나무들은 어떻게 함께 지낼지 방법을 아니까. 숲은 멋진 학교이고 사회다.

꺾인 나무와 숲
꺾인 나무와 숲

숲에는 나타나고 사라지고 자라고 늙어가는 별들로 가득하다. 갖가지 별들은 자기만의 이야기를 가득 담고 자신 만의 세상을 가진다. 그래서 별들 하나하나가 바로 우주다. 나무가 우주다. 생멸과 성장과 쇠락이 교차하고 운행하는 우주다. 별 하나에 깃들어 사는 무수한 생명들, 그 안에서 사랑하고 아이를 낳고 양육하고 스러져가는 생명들의 서사가 펼쳐진다. 하나하나의 나무는 각기 가여운 생명들을 품고 산다. 어떤 때는 생명을 보듬다가 자신이 희생되기도 하지만 그런 거 개의치 않는다. 그렇게 하나의 우주, 하나의 별도 스러질 때가 온다. 하지만 나무는 죽지 않는다. 꺾이고 베여도 끈질기고 독하게 다시금 생명을 품고 키운다. 더 많은 생명들을! 그래서 숲은 우주다.

많은 일들이 숲에서 펼쳐진다. 정교하고 세심하게, 활발하고 그침 없이. 식물들의 순간의 판단이 그들 자신 뿐 아니라 다른 생명들의 삶까지 좌지우지한다. 언제 세상으로 나오고 언제 얼만큼 성장하고 언제 혼인을 하고 자식은 얼마나 생산할지, 이웃과 어떻게 지내고 적에겐 어떻게 대응할지, 때론 모습을 어떻게 바꾸어야 할지. 식물들은 시시각각 엄청난 정보력으로 예리한 결단을 내린다. 기특하다! 놀랍다! 뇌도 없는 식물이 어떻게 그렇게 살까?

아마 식물의 뇌는 각각의 세포 안에 탑재되어 있을 거다. 게다가 식물은 자신들의 정보를 무선 네트워크로 공유하기까지 하지 않는가? 지구에 있는 진짜 슈퍼컴퓨터, 빅데이터의 원조는 바로 식물이다!

[한국조경신문]

성균관대 유학대학 겸임교수
성균관대 유학대학 겸임교수 askmun@naver.com 성균관대 유학대학 겸임교수의 다른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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