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문형의 식물노마드] 시아노박테리아의 후손들
[최문형의 식물노마드] 시아노박테리아의 후손들
  • 최문형 성균관대 유학대학 겸임교수
  • 승인 2019.07.17
  • 호수 54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문형 성균관대 초빙교수
최문형 성균관대 초빙교수

[Landscape Times] 노르웨이에는 지구 최후의 날을 대비한 씨앗과 유전자의 저장고가 있다. 노르웨이 북극 스발바드 군도 깊숙한 산비탈에 있는 천연의 보관소가 그것이다. 이 ‘국제종자저장고’에는 ‘최후 심판의 날 금고’라는 별명이 붙었다. 2008년 완공된 이곳에는 무려 450만의 식물종자가 저장되어 있다. 인류가 멸종된 지구에서는 식물만이 유일하게 살아남을 거라는 과학자들의 보고가 있다. 하지만 만약 운 좋게 단 한 명의 인간이라도 살아남는다면 이 종자저장 창고를 열어서 다시금 새로운 세상과 문명을 열 수 있을 것이다. 식물의 생명력은 실로 엄청나니까.

식물은 광합성을 하면서 산소를 만들어 준다. 지구상에 생명체들이 활발하게 움직이기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은 산소와 광합성의 공이다. 인간은 산소가 없으면 생존할 수 없고 대부분 생명체도 마찬가지이다. 수많은 식물과 동물의 생명 원천인 산소는 어떻게 지구상에 출현한 것일까?

과거에 남조류로 불렀던 ‘시아노박테리아’는 지구에서 광합성을 하는 최초의 생명체였다. 30억 년 전쯤에 출현한 이 세균은 산소를 만드는 방식의 광합성을 했다. 하지만 바다에는 태양빛이 잘 들어오지 않아 광합성이 힘들어지니 그들은 어떻게든지 태양빛이 풍부한 육지로 가려고 기를 썼다. 약 10억 년 전쯤 시아노박테리아는 당시 단세포 생물이었던 진핵세포와 공생하면서 출구를 찾는다. 이러한 공생을 통해 이 진핵세포는 새로운 에너지원을 얻게 되었고, 단세포 생명체였던 이 세포는 진화를 거듭하여 현재 우리가 보는 식물(다세포 생명체)이 되었다.

그래서 식물의 잎에는 지금은 엽록체로 개명한 시아노박테리아로 가득하다. 그리고 시아노박테리아의 후손들은 강과 바다, 호수 속에 살면서 지금도 여전히 광합성을 하고 있다. 남의 몸 속으로 들어가 생존을 모색한 공생의 귀재 시아노박테리아의 이러한 속성은 식물들을 변신의 달인으로 만들었는지 모른다.

그럼 식물이 어떻게 변신하는지 보자. 우리가 익히 아는 선인장의 가시는 사막의 건조함을 견디려는 잎의 변신이고, 화려한 크리스마스꽃(포인세티아)의 꽃잎은 알고 보면 중앙의 작은 진짜 꽃을 지원하는 푸른 이파리들의 적화(赤化)이다. 살아남기 위해서 갖가지 변신을 시도하니 전문가가 아니면 식물들의 본모습을 파악하기 힘들 지경이다.

아프리카 칼라하리사막에 사는 어떤 식물은 더위와 건조함 때문에 온 몸을 땅 속에 묻어 버렸다. 하지만 광합성은 해야 사니까 두 장의 잎만 빼꼼히 땅위로 내었다. 모래에 온 몸을 잠그고 얼굴만 내놓은 해변의 피서객을 연상케 한다. 이 식물은 위로 올라온 이파리가 자갈처럼 보여서 돌식물로 불리기도 한다.

식물들 중에 곱지 않아 보이는 친구들은 바로 기생식물이나 식충식물이다. 하지만 그들의 생의 터전이 얼마나 척박한지 알게 되면 그러한 행태를 너그러이 이해해 주게 된다. 보루네오섬 석회암지대에 사는 네펜데스는 삶의 조건에 따라 가지가지 변신을 한다. 이 지역은 비가 많아 토양 속 영양분이 쓸려나가는 척박한 곳인데다 열대기후이다. 이곳에 사는 네펜데스는 줄기 끝에 뚜껑달린 통을 만들어 두고는 이 통의 크기와 모양을 다양하게 변화시켜 부족한 영양분을 보충한다. 통 입구에 개미 먹이용 띠를 만들어두고 장보러 나오는 개미들을 하룻밤 수백 마리씩 사냥하기도 하고, 박쥐가 많은 지역의 네펜데스는 박쥐의 배설물을 먹고 살려고 그들의 공중호텔이 되어 준다. 박쥐는 자면서 배설하는 습성이 있는데 그 배설물은 네펜데스의 훌륭한 아침식사가 된다. 나무두더쥐의 배설물을 먹으려고 아예 그 사이즈에 맞춘 튼튼한 변기가 되어 손님이 오기를 기다리는 네펜데스도 있다. 이렇게 동물성 먹이를 좋아하는 종이 있지만 채식을 하는 종도 있다. 이 경우는 큰 나무 아래에 옹기종기 모여서 통 뚜껑을 확 열어젖히고는 떨어지는 나뭇잎을 받아먹는다. 감나무 밑에서 감 떨어지기 기다리는 형국이다. 그런데 이런 채식주의자 네펜데스의 통 속에는 올챙이나 지렁이, 모기 유충이 팔팔하게 잘 살고 있다.

이렇게 식물은 어디서 살든지 간에 갖가지 방법을 고안하여 악착같이 살아남는다. 식물들은 모든 환경에 적응하느라 ‘무한변신’ 한다. 환경에 대응하는 식물들의 적응력은 놀랍다. 환경이 안 좋다고, 때가 안 맞는다고 툴툴대며 남 탓을 하고 사는 인간입장에서 보면 부끄러울 지경이다. 변화를 감지하고 적응하는 것은 인간에게도 최선의 방책이다.

인류는 식물을 경작하면서 정착민이 되었다. 농업혁명의 결과이다. 농경으로 먹을 것이 확보된 후 산업이 발달하면서 인간은 오랜 기간 정착생활을 했다. 이제는 4차 산업혁명이라 불리는 생명과학과 정보과학기술 시대가 되었다. 이 시대에는 가만히 정착해서는 안 된다. 실제 공간이든 가상공간이든 경계를 넘어 움직여야 살아남는다. 수십억 년 전 지구에 등장한 시아노박테리아는 여러 번의 변신을 거쳐 지구의 점령자가 되었다. 바다에서 살다가 식물과의 협력과 공생을 통해 육지까지 점령했다. 시아노박테리아의 변신 능력 덕택에, 식물의 활용능력 덕분에 인간과 동물도 지구상에 생겨났다. 인류 최후의 날을 막아내고 인류가 살아남기 위해, 안전과 행복을 누리기 위해, 시아노박테리아를 잘 변신시켜 지구의 조용한 점령자가 된 식물에게 그 방책을 물어보면 어떨까?

[한국조경신문]

최문형 성균관대 유학대학 겸임교수
최문형 성균관대 유학대학 겸임교수 askmun@naver.com 최문형 성균관대 유학대학 겸임교수의 다른기사 보기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