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문형의 식물노마드] 쌍산재 코드
[최문형의 식물노마드] 쌍산재 코드
  • 최문형 성균관대 유학대학 겸임교수
  • 승인 2019.06.19
  • 호수 54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문형 성균관대 초빙교수

[Landscape Times] 외로움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자연의 품에서 떨어져 나간 인간의 분리감. 최초의 인간은 탯줄에서 잘리듯이 낙원에서 쫓겨났다. 땅은 땀을 흘려야 하는 대상이 되었다. 하루하루를 염려하며 인간은 땅을 일구었지만 동시에 보란 듯이 땅을 정돈해 즐겨왔다. 텃밭과 정원이 그것이다. 텃밭에서 땀을 흘리고 정원에서 위안을 얻고, 텃밭에서 분리를 경험하고 정원에서 일체를 누려왔다. 그렇게 땅은 인간에게 유위(有爲)와 무위(無爲)를 선사했다. 헬레니즘 시대 에피쿠로스학파는 바로 땅에서 최고선을 탐구했다. 에피쿠로스는 행복을 마음에서 찾았고 아타락시아(ataraxia, 동요되지 않는 상태)를 추구했다. 인간은 불안하고 걱정하고 동요하는 존재이다.

그래서 천성적으로 평온할 수 없다. 아타락시아, 마음의 평화는 저절로 되는 게 아니다. 체계적인 교육과 훈련을 거쳐서 도달하는, 고도로 가꾸어진 마음의 상태이다. 이것을 연마하는 장이 바로 정원이었다. 에피쿠로스의 정원학파(Garden School)는 식재료를 심은 채원(Kitchen Garden)을 가꾸면서 태어나서 자라고 죽는 모든 것들의 숙명을 깨달았다. 잘 가꾸어진 고요한 정원에는 제어된 긴장이 동반되고 이 안에서 그들은 자기연마의 기술을 터득한다. 정원은 평온하고 아름답지만 그 안에는 욕망과 절제와 투쟁이 번뜩인다.

그래서 정원은 그냥 삶이다. 땅에 뿌려진 씨는 인내와 감사와 희망을 먹고 자란다. 유한하고 근심 가득한 인간에게 땅은 동서를 막론하고 모든 게 되어 주었다. 약 천 년 전에 해주 오 씨가 한반도의 아랫녘 전남 구례까지 내려왔다. 기품 있는 후손이 사도리 상사마을에 물과 흙과 바람과 나무로 집을 지었다. 쌍산재다. 사도리는 손꼽히는 장수마을이고 집 앞 당몰샘은 고려 이전부터 있어온, 가뭄과 장마에도 끄떡 않는 군자의 샘이다. 쌍산재의 ‘쌍산(雙山)’은 집을 지은 분의 아호로, 사람사이의 원만한 인연을 의미한다. 계급사회였지만 상하에 층을 두지 않고 자연을 벗 삼아 글읽기로 유유자적한 삶을 사셨던, 조선 후기 선비의 마음과 만날 수 있다.

구부러진 소나무, 올곧은 대나무, 탁 트인 텃밭, 아늑한 연못… 울타리 안 마르지 않는 전설의 샘이었던 당몰샘은 이웃들과 나누려 담 밖으로 내어놓고, 앞마당에는 비웠다가 채우고 채웠다가 비우는 뒤주를 챙겨 두어 어려운 이웃들을 보듬었다. 초입에는 최소한의 터전과 사당을 살포시 앉혀 뒀다. 돌계단 오르며 대나무 숲 새들과 인사하면 신비의 문이 하나씩 열린다. 한 꺼풀씩 펼쳐지는 자연과 사람의 조우는 정(靜)과 동(動)의 조화이다.

건(乾)과 곤(坤), 하늘과 땅이 이곳의 주제이다. 하늘과 땅 사이의 사람, 그러니까 군자는, 그 사이에서 그저 즐겁고 배우고 닦는다. 굳이 ‘논어’를 펼치지 않아도 쌍산재 안 군자의 마음에는 아름다움과 올바름과 꿋꿋함이 가득하다. 겸손과 그침과 머무름이 있다. 따로 ‘도덕경’을 떠올리지 않아도 군자는 물의 유약한 도가 어떤 힘을 지녔는지 절로 느낀다. 변화하고 꿈틀대고 멈추지 않는다. 쌍산재 울타리 안에서라면 그게 가능하다.

쌍산재의 매력은 겸손이다. 자연 한 모퉁이에 폐를 끼치지 않을 마음으로 배치한 건물들이다. 너른 들과 깊은 산 흐르는 물 곁에 살포시 들어앉은 수줍은 작은 집들이다. 또 하나의 매력은 오묘함이다. 무위인 듯 유위인 듯, 꾸민 듯 안 꾸민 듯, 초승달 눈썹에 발그레 수줍은 처녀를 만난 듯하다. 마지막 매력은 반전이다. 음(陰)이 극에 달하면 양(陽)이 되고 양이 극이 되면 음이 되듯 모퉁이 모퉁이 우리의 상상을 따돌리는 경탄이 있다.

굳이 애쓰지 않아도 고금(古今)이 하나가 되고 인지(仁智)가 모이고 수양과 풍류가 합쳐진다. 나무와 함께라면 풀과 함께라면 흙과 함께라면 그게 저절로 된다. 그래서 동백나무, 치자나무, 산수유나무의 응원을 받으며 글을 읽었을 서당채에는 후대들을 위한 글귀가 남아 있다. 쌍산재를 읽는 ‘코드’이다. “어짊과 지혜로움이 마음에 익숙해져 저절로 천심에 요달하고” “군자는 그윽이 닦아 자연의 깊은 경지에 노닐게 되리라”

한국의 정원에는 분리가 없다. 외로움은 당연히 없다. 애초에 우리는 자연에서 떨어져 나오지 않았고 자연은 우리에게 모든 것이다. 텃밭과 정원을 땀 흘려 가꾸며 연마와 수양을 거듭한 것은 에피쿠로스의 정원과 통하지만, 꽃과 돌과 흙과 바람을 마음속에 담아버린 그 원대함은 하늘과 땅을 가로지르는 군자의 일상이다. 삶의 터전은 나눔과 양보와 넉넉함으로 버무려졌다. 이 땅에 사랑의 씨앗을 심고 가꾸고 거두었다. 고물고물 어린 자녀와 함께 온 젊은 부부는 툇마루 속 흐뭇한 미소 안에 모든 걸 챙겨 담았다. 어진이의 산사랑(仁山)과 지혜자의 물사랑(智水)을 넌지시 들려주는 곳, 정원은 자연이고 인생이다. 한국의 정원은 한국인의 마음이고 삶이다.

최문형 성균관대 유학대학 겸임교수
최문형 성균관대 유학대학 겸임교수 askmun@naver.com 최문형 성균관대 유학대학 겸임교수의 다른기사 보기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