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문형의 식물노마드] 가이아(Gaia)의 효자
[최문형의 식물노마드] 가이아(Gaia)의 효자
  • 최문형 성균관대 유학대학 겸임교수
  • 승인 2019.05.16
  • 호수 5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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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문형 성균관대 초빙교수
최문형 성균관대 초빙교수

다들 엄마 때문에 난리다. 그저 낳아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한 어머니가 요즘엔 원망의 대상이 되었다. 공부 못하는 것도 엄마 탓, 결혼 못한 것도 엄마 탓, 취직 못한 것도 엄마 탓! 심지어 자녀에게 매 맞는 엄마가 있다는 보고도 있다. ‘왜 나를 낳아서 이 고생을 시키세요?’ 먹고 살기 어려웠던 시절에는 생명을 주신 부모님이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는데…풍요로운 3만 불 국민소득시대에 이게 웬일일까? 하긴 옛말에 ‘부모가 죄인’ 이란 말도 있으니 다 이유가 있을 거다. 뒤집어보면 한국의 어머니 파워가 세계 최강급이라 모든 원망을 뒤집어쓰는지도 모른다. 어머니로서의 위상을 존중한 오랜 세월의 조선시대 문화가 있었고,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치르면서 아버지 부재의 시대에 어머니들의 어깨가 무거워지면서 동시에 우뚝 세워지기도 하였으니.

한국 어머니들의 파워라면 태모신에 비할 만 하지 않을까? 청동기 시대 하늘에서 지상으로 하강한 남성신, 천신들의 세상이 펼쳐지기 이전의 세상은 위대한 어머니(the Great Mother), 태모신이 다스리던 세상이었다. 어머니신, 여성신은 땅신이었다. 고대인들은 풍성한 먹거리를 낳아주는 땅에다가 동남동녀의 피를 바쳐 제사를 지내면서, 여성이 아이를 많이 낳는 것처럼 어머니인 대지의 신도 많은 소출을 내어주길 빌었다. 이 위대한 어머니신은 생산을 담당했지만 때로는 자신의 아이들을 다시 거두어 갈 수도 있는 위압적인 신이었다. 하지만 신석기 시대까지 이렇게 권력을 누리던 대지신은 남성신들의 하강과 정복이 시작되면서 신화와 역사의 무대 뒤로 사라진다. 그렇다! 어머니는, 대지는 그렇게 한동안 힘을 잃었다. 그 자신, 지구상 무수한 생명들을 먹이고 키우고 살려왔지만 말이다. 땅이 잊히고 나서는, 인류는 하늘바라기를 하며 만족하게 사는 듯 했다.

파헤쳐진 어머니의 살점이 이제 더 남아있지 않게 된 이즈음, 다시금 대지로 눈을 돌리게 된 것은 자연스런 일이 아닐까? 그렇게 태모신, 위대한 어머니는 가이아(Gaia)로 부활한다. 가이아는 그리스신화의 ‘대지’의 여신으로, 만물의 어머니, 모든 생명체의 어머니인 ‘땅’, ‘지구’를 상징한다. 제임스 러브록(James Ephraim Lovelock)의 ‘가이아(Gaia) 이론’에 따르면 지구는 이제까지 혼자서 잘 버텨왔고 인간들이 헤집은 갖가지 상처를 스스로 잘 치유해왔다고 한다. 하지만 가이아의 자기치유 능력도 한계에 온 듯하다. 인류는 이제 다른 행성을 알아보고 이사할 준비를 해야 할 판이다. 인간은 그렇다 치고 터전을 바꾸기 힘든 식물들은 어떻게 하나?

수분이 질척대는 땅에서 숨쉬기 힘들고, 뿌리를 내려야 하는데 단단한 바위가 버티고 있고, 흙성분이 독해서 몸에 유해물질이 쌓이고…이렇게 식물의 삶의 터전은 녹녹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낳아준 엄마를 원망해 봤자 소용없고, 키워준 엄마(땅)를 떠날 수도 없고 참으로 막막하다. 사실 식물들의 터전에 문제가 많다면 그건 자연보다는 인간 탓일 거다. 각종 화학물질과 도구들로 무장한 인간들이 어머니인 땅에다가 온갖 나쁜 짓을 해댔으니 말이다. 중요한 건, 식물은 어머니를 탓하지 않는다는 거다. 어머니가 전지전능한 존재는 아니지 않는가? 어머니가 만능도 아니고! 그녀조차도 스스로를 지키며 살아가는 게 결코 쉽지 않았다. 그래서 누구보다 효자(?)인 현명한 식물은 자신의 지혜를 쥐어짠다. ‘어머니도 살리고 나도 살자!’ 땅도 살리고 자신(식물)도 살리는 방책을 강구한다. 온갖 생명을 낳고 키우는 땅, 다시 어머니 품으로 돌아온 생명들을 보듬는 땅, 새도 동물도 곤충도 식물도 인간까지도 다독이고 품어주는 땅을 조용히 묵묵히 돋우고 살린다.

어머니와의 살가운 공조가, 다른 존재들과의 두터운 협업과 상생이 식물에게는 가능하니까. 진정한 노마드인 식물은 그렇게 씩씩하게 자신도 세우고 어머니에게 보은(報恩)한다. 식물은 흙을 건강하게 만드는 작업에 들어간다. 싹을 틔울 때 유익한 박테리아를 초대해서는 병원성 박테리아의 침투를 막고, 균근(유익한 균류와의 공생체)을 만들어 항생물질을 분비하고 땅 속 중금속을 걸러낸다. 콩과 식물들은 리조비움(Rhizobium)이란 질소고정 박테리아와 공생하면서 아주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데, 이 박테리아는 식물이 죽고 나면 질소를 남겨 토양을 비옥하게 해준다. 어머니 가이아의 효자인 식물은 이렇게 자기 임무를 톡톡히 해낸다. 교류와 상생을 멋지게 구현하면서 토양계를 낙원으로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동양고전 ‘주역(周易’의 곤괘(坤卦)는 땅의 속성을 자세히 설명하는 괘이다. 그런데 여기에 식물이야기가 끼어든다. ‘본래 땅에서 기운을 받은 것은 식물이니 아래로 가까이 붙는 것이다’ 라고 하여, 식물을 땅기운에 감응한 존재로 본다. 생명체들과 공생하면서 가이아를 살리고 자기 생을 완수하는 식물의 꿋꿋함에 우리 인류의 희망을 걸어 본다.

치유와 평화의 가이아 여신을 연상케 하는 작품. ‘시간의 연속성-붉은 꽃’, 리정, 2018
치유와 평화의 가이아 여신을 연상케 하는 작품. ‘시간의 연속성-붉은 꽃’, 리정, 2018

 

최문형 성균관대 유학대학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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