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문형의 식물노마드] 식물, 지구의 동인(動因)
[최문형의 식물노마드] 식물, 지구의 동인(動因)
  • 최문형 성균관대 유학대학 겸임교수
  • 승인 2019.04.17
  • 호수 5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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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문형 교수
최문형 성균관대 초빙교수

아니나 다를까? 가만가만 봄비가 조심히 내려오더니 나무들과 풀들이 살며시 봉오리를 들이 밀었다. 이제 막 아기봉오리를 만든 것, 성미가 좀 급해서 활짝 피어난 것, 수줍어서 필까말까 망설이는 것, 단풍나무도 아기 손가락 같은 야들하고 여린 잎을 살며시 펴는 중이다. 나른한 오후에 여기저기서 꽃들과 잎들이 피어오르니 다들 정신이 아찔해지는 모양이다. 흐드러지게 벌어진 철쭉 사이로 반짝이는 투명한 먼지 같은 것들이 바쁘게 오간다. 어릴 적 보았던 ‘피터팬’의 팅커벨 같은 옷을 입었다. 환상적이다. 자세히 살펴보니 나비는 아니고 철쭉을 반기는 나방이다. 시선을 돌려보니 여기저기 야들한 연초록 잎들 천지이다. 재잘대는 이파리들! 바로 엄마 아빠랑 봄 구경 나온 아가들이다. 주인과 산책 나온 강아지들도 봄기운이 설레는 모양이다. 온 세상이 다 활기차다.

따뜻하고 축축해진 땅에서 양분과 수분을 쭉쭉 끌어올려 가지 끝 꽃을 만들어내는 식물들의 힘찬 노동, 영차영차, 으쌰으쌰, 그들의 함성이 작은 도시를 메운다. 본성에 따른 일이기는 하지만 하얗고 노랗고 빨간, 싱싱하고 화사한 꽃들을 피워내려면 얼마나 많은 에너지와 노력이 필요하겠는가? 뿌리는 쉬지 않고 땅 속에서 일하고 줄기와 가지는 잎이나 꽃을 만들어내느라 애를 쓰고 몸부림칠 것이다. 게으름 떨 사이 없고 쉴 새도 없이 식물들은 신성한 노동을 벌인다. 그들의 삶의 메아리가 온 지구를 휘도는 계절, 봄이다!

고대인들도 꽃들 때문에 정신을 못 가누었다. 자신들에게 가장 존귀한 존재였던 신들에게 바치느라 신전을 온통 꽃으로 장식했다. 불교의 상징으로 알려진 연꽃은 그리스에서도 흔한 꽃이어서 신전의 기둥에는 연꽃이 새겨져 있다. 어느 지역에 살든 사람들은 정원을 가꾸고 싶어서 안달이었다. 이집트인들의 정원은 수련, 양귀비, 석류나무, 돌무화과나무, 올리브나무, 카모마일로 가득 찼으며, 중국인의 정원에는 동백, 진달래, 뽕나무, 감, 차 등이 심겨져 있었다. 어릴 적 집 마당에는 채송화, 봉숭아, 맨드라미 들이 함께 했다. 붉고 두툼한 맨드라미꽃을 따서 소꿉놀이했던 기억이 난다.

이렇게 신성시한 꽃의 정체가 종족 보존을 위한 생식의 도구란 걸 처음으로 밝혀낸 사람은 크리스티안 슈프렝겔이었다. 독일 브란덴부르크 출생으로 신학과 언어학을 공부하고 베를린에서 교사로 일하다가 1780년에 고향의 그로센 학교 교장이 된 그는, 곤충이 꽃의 수분에 기여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아내었다. 그때까지 사람들은 꽃을 신성시했을 뿐 꽃의 생식 기능은 전혀 알지 못했기 때문에 굉장한 충격을 받았고, 슈프렝겔은 오히려 사람들의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꽃을 모독한 불경죄(?)로 말이다.

식물의 수분에 도움을 주는 생명체는 상당히 많다. 지구상의 꽃가루 매개체들은 수 십 만종인데 이제까지 밝혀진 종류는 6퍼센트도 안된다고 한다. 대표주자인 꿀벌은 말할 것도 없고, 나비, 나방, 딱정벌레, 벌새도 가담한다. 사람들이 딱 질색으로 여기는 파리와 모기도 대열에서 빠지지 않는다. 좀 덩치가 큰 동물로는, 넥타박쥐, 꿀주머니쥐나 도마뱀 등도 이 일을 거들고, 포유류도 300여종이나 동원된다. 어쩌면 식물들의 수분에 가장 열심인 것은 꽃이라면 팔 걷어 부치고 달려드는 ‘우아한’인간이 아닐까? 주로 봄에 이루어지는 식물들의 혼인은 이렇게 수많은 생명체들을 온통 흥분시키고 지구를 통째로 뒤흔든다.

예술의 도시 프랑스 파리의 주말 구경거리 중 하나는 막 결혼한 신혼부부의 카퍼레이드이다. 멋진 오픈카를 탄 그들은 자신들의 행복을 시민들에게 공개하며 다사로운 축하를 받는다. 거리를 오가는 차량에서, 세느강의 달콤한 공기를 즐기는 행인들에게서, 진심어린 축복의 미소를 느낀다. 여유롭고 신선한 광경으로 기억한다. 세기를 풍미한 영국 왕세자의 화려한 결혼식이나 조선 왕실의 길고 복잡한 혼례의 엄숙함도 있지만, 인간의 결혼식은 식물의 그것에는 따르지 못하는 것 같다. 식물들은 자신들의 혼인에, 그 웨딩마치에, 지구의 거의 모든 존재를 떠들썩하게 만들어 놓으니 말이다. 그들의 혼인에 동원되는 수많은 종들은 차치하고라도 우리 인간들은 왜 식물의 혼인을 반길까? 꽃이라면 왜 그렇게 사족을 못 쓸까? 문득 떠오르는 답이 있다, 그다지 낭만적인 것은 아니지만. 식물의 수분(受粉)에 우리 생명이 걸려있지 않은가? 꽃이 없으면 먹을 것도 없다.

최문형 성균관대 유학대학 겸임교수
최문형 성균관대 유학대학 겸임교수 askmun@naver.com 최문형 성균관대 유학대학 겸임교수의 다른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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