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문형 성균관대 초빙교수
최문형 성균관대 초빙교수

[Landscape Times] 크리스마스의 계절이다. 올해는 하얀 크리스마스일까? 적적한 겨울을 화사하게 빛내줄 눈송이가 기다려진다. 곳곳에 캐럴이 울리면 산타할아버지를 기다리는 어린이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듯 어쩐지 설렌다. 이제 어른이 되어 밤사이 양말 속에 선물을 두고 갈 산타는 어디에도 없다는 걸 아는 데도 말이다. 사실 크리스마스는 그리스도교의 명절이다. 세상을 구원할 신의 아들이 인간의 몸을 가지고 사람 사는 세상에 왔다는 바로 그 날이다. 하지만 크리스천이라면 이 날보다 더 귀한 날이 따로 있다는 걸 안다. 바로 부활절이다.

십자가라는 나무에서 무참하게 죽은 예수가 어두움의 세력을 삼일 만에 이기고 다시 살아났다는 부활절은 전 세계 그리스도교인에게 최고의 기념일이다. 부활절에 앞선 고난의 기간 동안 사람들은 예수의 고난에 동참하는 행사를 지구 곳곳에서 연다. 커다란 나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는 예수의 고난을 재현한다. 그리스도교는 나무가 상징이다. 카톨릭은 나무에 예수를 달아 놓은 채, 프로테스탄트는 예수가 없는 나무만으로 상징을 삼는다.

왜 하필 나무일까? 세 개의 나무가 성경을 관통한다. 창조주 신의 명령을 거역할 수밖에 없는 달콤한 유혹의 열매가 달린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불멸의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생명나무, 그리고 망가진 신과 인간 사이를 회복시키는 속죄와 화해의 십자가의 나무이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평화롭고 풍요한 낙원에서 인간이 쫓겨나게 만들었다. 생명나무만은 지키고 싶었던 창조주 신은 당장에 인간을 추방하고는 낙원을 지킨다. 신과 단절된 인간은 자연과도 불통하여 이제 자연은 노동의 대상이 된다.

작은 카페에도 인조나무에 장식된 크리스마스트리가 빛난다
작은 카페에도 인조나무에 장식된 크리스마스트리가 빛난다

자연이 노동의 대상이 된 덕분(?)에 농경과 조경 기술도 발달해 온 것이 사실이다. ‘경작하다’ 라는 뜻의 문화(culture)도 생겨났다. 그렇게 세월이 흐른 뒤 십자가라는 나무를 통해 신은 인간과의 화해를 청한다. 십자가 사건의 핵심은 부활이다. 그리고 부활은 식물의 속성이다! 지구상 생명체 중에 식물처럼 부활의 귀재인 것은 없다. 겨우내 언 땅 밑에 뿌리를 보존하고 있던 풀들은 땅이 풀리고 햇살이 따뜻해지면 부활을 알린다. 나무들도 마찬가지다. 봄의 신호가 오면 서둘러 앞 다투어 꽃을 피우고 잎을 낸다. 죽음의 잠을 끝내고 새 생명을 시작한다.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도 자신을 ‘밀알’에 비유했다. 한 알의 밀알이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했다.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식물에 빗댔다. 그래서 그런지 그리스도교는 전 세계적인 종교가 되고 수많은 제자를 배출했다. 그가 달려죽은 십자가라는 나무도 수많은 경이와 기적의 심벌이 되었다. 악마를 퇴치하고 불치병을 낫게 하고 마음의 병을 치유해 준다. 예수가 탄생한 날을 사람들이 기념하며, 나무를 크리스마스 트리로 장식하는 것도 우연은 아닌 것 같다. 크리스마스 트리가 생긴 유래는 몇 가지 설이 있는데 종교 개혁을 이끈 마틴 루터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전나무 숲을 거닐던 루터는 나무 위에 쌓인 눈이 달빛에 반사되어 빛나는 것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다. 그는 이 감동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하려고 한 그루 전나무를 집에 두고 다양한 장식으로 꾸며놓았다고 한다. 그래서 크리스마스트리는 전나무, 소나무 등의 상록수에 크리스마스를 기념하여 여러 가지 장식을 하는 것으로 이어져 왔다. 겨울에도 푸른 잎을 지니고 있는 상록수는 세계적으로 생명력의 상징으로 여겼는데, 그러다보니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는 장식 또한 상록수에 꾸미게 되었을 것이다.

상록수는 알고 보면 부활에 취약한 나무이다. 가진 자원과 에너지가 부족한 탓에 겨울에 잎을 떨어내지 못한 채 서리와 눈과 바람과 추위를 견뎌야 하는 나무이다. 하지만 그런 연약함이 지닌 인내와 꿋꿋함은 사람들로부터 감동을 자아내어 동양이든 서양이든 소나무나 전나무를 칭송하는 시인의 노랫소리가 울린다.

아이러니하게도 부활을 꿈꾸지만 그럴 수 없는 나무인 전나무와 소나무는 부활할 예수의 탄생을 기념하는 나무로 선택되었다. 겨울의 외로움을 견디는 그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듯, 여러 가지 장식과 함께 사람들의 사랑과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우리 인간도 부활을 꿈꾸지만 그럴 수 없는 존재이다. 생명나무로의 진입이 차단된 탓이다. 곧 크리스마스다. 앙상한 나목들, 예쁘게 장식된 상록수를 바라보며 봄나무들을 꿈꾸어 보자.

[한국조경신문]

크리스마스는 나무와 함께 전 세계적인 축제일이다. 옥외에 장식된 대형트리의 모습
크리스마스는 나무와 함께 전 세계적인 축제일이다. 옥외에 장식된 대형트리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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