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문형의 식물노마드] 식물적 영웅신화 : 겨울왕국2에 대한
[최문형의 식물노마드] 식물적 영웅신화 : 겨울왕국2에 대한
  • 최문형 성균관대 유학대학 겸임교수
  • 승인 2020.01.09
  • 호수 57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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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문형 성균관대 초빙교수
최문형 성균관대 초빙교수

[Landscape Times] 겉옷을 벗어젖히고 머리를 질끈 동인 젊은 여왕이 가을 바다를 향해 심호흡을 하고 달려든다. 파도는 집채만 한데 여왕은 파도에 쓸리기도 하고 바다 밑에 잠기기도 하면서 자신의 운명을 향해 돌진한다. 입을 앙다물고 자신의 본성을 찾아 뛰어드는 엘사 여왕의 의지가 멋지다! 최근 개봉한 영화 ‘겨울왕국2’의 중반부 장면이다.

나는 이 장면에서 심호흡을 하고 바다로 뛰어드는 씨앗을 생각했다. 전편에서 엘사는 신이한 능력을 지녔지만 오히려 그로 인해 괴로움을 당한다. 자신의 능력이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겨울왕국2’의 엘사는 다르다. 그녀는 이제 씨앗처럼 운명과 본성으로 거침없이 직진한다. 씨앗이 바람을 타고 바다로 뛰어들어 죽으면 죽으리라 하는 것처럼 엘사 또한 본성과 운명의 실현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럼으로써 그녀가 얻은 것은 무엇인가?

씨앗이 바다를 건너 도달한 곳에서 큰 나무로 자라 군락을 이루고 많은 생명들을 보듬듯, 엘사 또한 정령으로 변신하여 비밀의 숲과 자신의 왕국 모두를 아우르고 수호하는 존재가 된다. 그녀의 본성은 실현되었고 운명은 잠재워졌다. 그리고 그녀의 영토는 확장되었다. 엘사의 고난과 극복, 변신으로 인해 적이 되었던 아렌델 왕국과 비밀의 숲에 사는 부족은 화해했고 분노했던 자연의 정령들은 평안을 얻었고 사람도 동물도 식물도 모두 안식을 찾았다.

가능성의 싹을 틔우는 새싹의 모습  ⓒ‘소명-새싹’, 황경숙 작가, 2018년
가능성의 싹을 틔우는 새싹의 모습 ⓒ‘소명-새싹’, 황경숙 작가, 2018년

‘겨울왕국2’는 식물적이다. 겨울왕국 시리즈이지만 이번 2편은 배경을 겨울이 아닌 가을로 했다. 왜 가을일까? 영화 곳곳에서 쓴 소리 바른 소리 우스운 소리를 쏟아내는 올라프의 말을 들어보면 알 수 있다. 올라프는 빨간 단풍잎이 떨어지는 정원에서 ‘변화’를 말한다. 변화와 변신, 어른이 되는 것과 성장에 관한 말들이다. 가을은 필연적으로 변화와 변신의 계절이다. 푸른 잎이 울긋불긋 색을 변화시키고 나무들이 앙상해지는 시기이다.

그래서일까? 가을을 배경으로 엘사 여왕은 진정한 여왕이 된다. 물의 모습을 가진 가을바다를 겨울의 얼음으로 변화시키면서 운명이 부르는 소리를 따라간다. 그녀는 불편하고 힘든 진실과 마주하지만, 결국에는 자신의 본모습인 다섯 번째 정령으로 변신한다. 이제 그녀는 고민하지도 괴로워하지도 않는다. 더 이상 외롭지도 않다. 오랫동안 자신 안에 잠재해 있던 힘을 끌어올려 세상을 구원하는 과업을 이룩한다.

‘겨울왕국2’는 영웅의 이야기이다. 식물적 영웅의 이야기이다. 식물 또한 그렇지 않은가? 바람이건 물이건 새의 뱃속이건 간에 마다하지 않고 용감하게 미지의 세상으로 나가서 자신의 꿈을 본성을 실현한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진정한 영웅은 식물이다! 올라프가 궁금해 하는 어른이 된다는 건 무엇일까? 그저 나이만 먹으면 어른이 되는가?

자신 안의 본성과 마주하는 것, 자신의 운명과 조우하는 것, 운명이 부르는 높이에 도달하려고 어떤 고난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 변화와 변신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엘사 뿐만이 아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존재들(안나, 크리스토프, 올라프)도 성숙하고 변신한다. 앞으로 나아가는 일에는 용기가 필요하지만 그들 모두는 두려움과 죽음을 불사하고 그저 앞으로 나간다. 그렇게 하여 세상은 평화와 사랑으로 충만하다. 말의 형체를 한 물의 정령을 타고 망망한 바다로 달려 나가는 정령 엘사는 태초의 어머니 여신을 떠올린다.

새해가 되었다. 계절은 가을을 지나 겨울 한복판이다. 우리는 삶의 한 모퉁이를 돈다. 어떤 변화와 변신과 본성 실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가? 나는 어떤 삶의 바다에 심호흡을 하고 뛰어들 것인가? 어느 곳에서 어떤 싹을 틔우게 될까? 생각이 드는 때이다.

프랑스 학자 파브르 돌리베는 ‘인류의 철학역사’(1910)라는 책에서 ‘사람은 생각을 품은 식물’이라 하였고, 인간의 능력을 다음과 같이 칭송했다. “사람은 의심할 것 없이 능력 있는 존재이다. 그러나 씨앗의 능력으로서 말이다. 자신의 특성을 실현하고 자신의 운명이 부르는 높이에 도달하기 위해서, 그는 외적인 행동으로 내적인 행동에 전력을 기울이려는 욕구를 가진다. 대지에 박힌 뿌리가 초보적인 힘을 빨아올려서 특별한 노동으로 그것을 정성스럽게 가꾸는, 인간은 천상의 나무이다.”

그렇다. 우리는 모두 초능력의 존재이다. 우리 모두는 천상의 나무이다. 씨앗의 능력을 자각하고 운명의 높이를 오르는, 우리는 모두 식물적 영웅이다!

[한국조경신문]

최문형 성균관대 유학대학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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