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시대] 나는 어디에 서 있는가?
[조경시대] 나는 어디에 서 있는가?
  • 노환기 객원 논설위원
  • 승인 2019.04.10
  • 호수 5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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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환기 (사)한국조경협회장/ (주)조경설계 비욘드 대표
노환기 (사)한국조경협회장/ (주)조경설계 비욘드 대표

한 달이란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의 기간이었다. 한국조경협회 회장 직을 올 해부터 맡고서 “조경의 날”을 중심으로 여러 상황의 변화가 있었고, 그에 대처하기 위한 조경계의 몸부림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빠른 시간 내 결론이 나지 않으리라는 건 자명한 사실이지만 우리에겐 시간이 많이 남아 있지 않은 상황에 협상에서 가장 중요한 요건인 여유를 잃어버리게 되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도 든다.

도시공원 일몰제도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 제도를 들여다보면 얼마나 심각한 문제가 내재되어 있는지를 조경계는 파악하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공식대응을 하지 않았다. 다행히 서울시 경우처럼 조경을 전공한 담당공무원들이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환경운동연합과 같은 민간단체에서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 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가?

도시공원이 도시계획수립에 따른 지정 및 해제에 따라 움직이는 주체가 도시계획법이므로 중앙정부에서 이를 다루는 관리자가 행정이나 토목, 도시계획 분야에서 주관하고 있다는 것을 조경계에서는 인지하고 있고 관심 없는 분들은 모를 수도 있다.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공원녹지법)을 접하면서 작업을 해왔던 우리 조경인들에게 우리가 이 법에 대한 최소한의 법제적 권한이 없다는 것을 인지하고나 있을까 하는 자조감이 든다.

왜 모범적 조경인이라고 생각하는 우리 각자가 희대의 조경방조자가 되어 있는가?

지나친 비유가 될지 모르지만 나치독일시대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Adolf Eichmann, 1906 ~ 1962)의 예를 들어보자. 그는 히틀러 치하의 독일에서 홀로코스트의 견인역할을 한 유대인 수송계획을 입안한 친위대 장교이다. 인간의 탈을 쓰고 일부 독일인들은 어찌 그런 학살을 저지를 수 있었을까? 이런 의문과 관련해 자주 논의되는 인물인데 그는 독일이 패망할 때 독일을 떠나 아르헨티나에 정착해서 약 15년간 숨어 지내다가 1960년 이스라엘 비밀조직에 체포되어 이스라엘로 압송되었다. 그는 1961년 4월 11일부터 예루살렘 법정에서 재판을 받았으며, 그해 12월 사형판결을 받고 1962년 5월 교수형에 처해졌다.

미국 정치학자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1906 ~ 1975)는 특파원 자격으로 재판 과정을 취재한 후 출간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Eichmann in Jerusalem: A Report on the Banality of Evil)'(1963)이라는 책에서 '악의 평범성(the banality of evil)'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아이히만이 유대인 말살이라는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른 것은 그의 타고난 악마적 성격 때문이 아니라 아무런 생각 없이 자신의 직무를 수행하는 '사고력의 결여' 때문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아렌트가 송고한 기사는 엄청난 논쟁을 불러일으켰고 우리가 생각한 악의 화신으로 여겼던 인물의 '악마성'을 부정하고 악의 근원이 평범한 곳에 있다는 주장은 아이히만이 평범한 가장이며 자신의 직무에 충실한 모범적 시민이었다는 사실로 많은 사람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아이히만은 학살을 저지를 당시 법적 효력을 가지고 있었던 히틀러의 명령을 성실히 수행한 사람에 불과했다. 그는 평소엔 매우 '착한' 사람이었으며, 개인적인 인간관계에서도 매우 '도덕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이 저지른 일의 수행 과정에서 어떤 잘못도 느끼지 못했고, 자신이 받은 명령을 수행하지 않았다면 아마 양심의 가책을 느꼈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인간의 사유(thinking)란 무엇이고, 그것이 지능과는 어떻게 다르며, 나아가 사유가 어떠한 정치적 함의를 갖는가 하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제기하게 만들었다.

아이히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규칙을 준수하는 것이었다. 그는 규칙을 어겼을 때에만 죄의식을 느꼈다. 그는 단지 두 가지 경우에만, 즉 “어릴 때 게으름 피웠던 것과 공습 때 대피하라는 명령을 어겼던 것에 대해서만 죄의식을 느꼈다고 진술했다." 아이히만의 죄는 '생각하지 않은 죄'였다.

이삼성의 이론에 따르면 우리 조경인들도 현실에서 스스로 '심리적 불감(psychic numbing)' 상태를 불러일으키며 정신적 공황을 메우려고 하지 않나 생각한다. 자신들의 현실을 비현실화(derealization)하는 심리적 과정과 연결되어 있으며, 이 과정엔 크고 작은 이데올로기와 도구들이 동원된다고 말한다. 자신만의 깊은 지식과 심미적(審美的) 행위도 불가피하게 따르는 부담을 초월해 더 효과적이고 냉혹하게 자신들을 적응시키는 데 중요한 수단이라는 것이다.

조경계의 화두가 각자도생이란 얘기를 듣는다. 사회적 지지가 취약해서 연대 가능성이 낮아 각자도생 할 수 밖에 없다는 뜻이다. 선택의 자유가 좁다는 건, 개개인의 몸부림에도 불구하고 실제 삶을 주도적으로 영위하는 사람은 드물다는 의미다.

본인의 능력이 뛰어나도 사회 시스템을 뜯어고치지 않는 한 각자도생은 백전백패이다. 내부에서의 불안과 질투를 동력삼아 피라미드를 한 계단씩 오르는 동안 경쟁에서 탈락한 동일업종의 누군가는 바닥에서 신음해야 하고 승리를 쟁취했다고 해도 꼭대기에 이를 수 없다. 압도적 자원을 보유한 거대세력이 이미 꼭대기를 차지한 채 내려다보고 있기 때문이다. 서로 치고받고 상처 주며 피라미드를 기어오르는 ‘각자도생의 무한 루프’는 끊어야 한다. 피라미드를 깨부수고 항아리 구조로 바꿔야 한다. 개개인이 할 수 없다. 단체의 몫이다. 그러기 위해선 모든 조경인이 참여해야 한다.

조경관련 산학단체의 주도로 구조를 바꿔야 한다. 구조를 바꾸려면 담대한 상상력과 강한 추진력이 필수다. 오카시오-코르테스는 타임지 인터뷰에서 “변화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가깝다”고 말했다.

조경계의 화두가 ‘각자도생’이라는 대세에서 ‘공존공생’ 쪽으로 방향타를 돌려놓기 위해서는 참여하는, 행동하는 조경인이 되어야만 한다. 나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를 우리 모두 생각해야 할 것이다.

벌써 4월하고도 중순이다. 길 건너 벚꽃 터널로 유명한 이웃단지의 봄철 호사스러움도 올해가 마지막이다. 재건축을 위해 연말까지 이주와 철거가 진행될 예정이다. 내년에 내가 서 있는 이 자리에서 다시는 저렇게 아름다운 풍광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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