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시대] 식목(植木)의 시기에 즈음하여
[조경시대] 식목(植木)의 시기에 즈음하여
  • 문길동 객원 논설위원
  • 승인 2019.04.03
  • 호수 5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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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길동 서울시 조경과장
문길동 서울시 조경과장

이제 곧 식목일이 다가온다. 올해로 74회째가 된다고 하니 기념일로서의 역사도 꽤 긴 편이다. 법으로 정한 공휴일이었다가 이제 공휴일이 아닌 기념일이 되어버린 지도 몇 해가 되었지만, 아직도 식목일이 기념일인지 쉬는 날인지 헷갈리는 때가 있다.

해마다 이맘때쯤 되면 그동안 심어 놓았던 그 많은 나무들의 안부가 궁금하다. 서울시 같이 복잡한 도심지에서 심어 놓은 나무는 땅을 마음껏 골라서 심기도 어렵다. 어렵사리 땅을 찾아 한 그루 한 그루 심혈을 기울여서 심은 나무가 잘 자라지 못하고 있으면 마음이 착잡하기까지 하다.

기후변화의 경고는 이제 경고로 그치지 않고 실제로 우리 삶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심지어 경고를 받는 단계는 이미 지났고 어떻게 하면 좀 더 안심하고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궁리를 하게 되는 방어적인 단계가 되었다. 그런 이유 때문에 이제는 비록 시들시들하더라도 생명을 지탱하고 있는 나무 한 그루가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도시에 심는 나무는, 길가에 심던지 아니면 주택가 깊은 곳 자투리땅을 찾아서 심던지 간에, 여러 조건을 잘 파악해서 심어야 된다.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는 더욱 그러할 것 같다. 사람은 미세먼지의 독한 따가움에 눈물을 흘리고 코를 틀어막고 다니는데 우리의 나무는 어느 정도 제법 커야 그 구실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주 어린 나무는, 그조차도 살아남기에 버겁다. 척박한 도시의 환경을 이겨내고 살아남은 나무는, 그때에 가서야 비로소 사람을 보호해 줄 수가 있는 것이다.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미세먼지는 나무에게도 해로울 것이다. 나무도 살아있는 유기체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우리는 나무의 생물학적 특성에 대해서 자세하게 알아둘 필요가 있다. 잎사귀가 복잡다단하게 돋아나 있는 전체 구조, 곧 수관(樹冠)에 대해서도 공부해야 한다. 개개의 잎사귀가 단순한 홑잎인지 보다 복잡한 구조인지, 크기는 어떠한지, 표면의 특징은 어떤지도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나무가 끝까지 살아남아서 우리를 보호해 준다는 일종의 믿음을, 그 나무를 잘 살려서 증명해 보일 수 있다.

녹색 잎사귀가 우리를 미세먼지로부터 보호해 줄 수 있다는 믿음의 기저(基底)에는, 아직도 우리를 강력하게 지배하고 있는 녹화사업(綠化事業)의 기적이 자리 잡고 있다. 경제적으로 윤택해지고 삶이 점점 풍요로워지던 시기에는 나무를 베는 것조차 죄의식으로 작용할 때가 있었다. 사실 나무는 적절한 밀도와 개체수를 유지해 주어야 잘 자랄 수 있다. 무조건적이고 맹신에 가까운 나무사랑은 어쩌면 오히려 우리에게 이점(利點)으로 작용하지 못 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화사한 봄날의 햇빛이 이렇게 소중한 것이었다는 것을, 미세먼지로 고통 받았던 지난 몇 주간의 끝에서 다들 느끼고 계실 거다. 서울시는 3,000만 그루의 나무를 심어서 이런 문제들을 극복해 보려고 한다. 할 수만 있다면 여기에 몇 백만 그루를 더 심어보려는 계획도 가지고 있다. 참으로 기념비적인 작업이고 원대한 실험이다. 아마 이런 일에 세금이 들어가는 것을 기어코 반대하시는 분들은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우리는 나무의 생리에 대해서 알아야 하고 생육이 온전하도록 세심히 관리해야 하는 것이다.

계산을 해보자. 한 그루의 나무가 살기 위해서 아주 간단히 산술적으로 1㎡의 면적이 필요하다고 해보자. 3000만 그루라면 3000만㎡의 면적이 필요하다. 3000만㎡면 907만 5000평이다. 이 계산은 나무가 정말 다닥다닥 붙어서도 모두가 살아남는다고 해도, 적어도 907만 평은 필요하다는 말이다. 907만 평이면 구로구보다 훨씬 넓은 면적이다. 몇 년 전 기준으로 금천구, 양천구, 서대문구 등 서울의 웬만한 구(區) 보다도 넓은 면적이다.

장차 서울시에서 심으려고 하는 나무는 이렇게나 최소한으로 면적을 잡아도 어떤 구의 면적쯤은 쉽게 넘겨버린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심을 장소를 잘 찾아야 한다. 다행히도 최근에 서울시에서 진행한 ‘미세먼지 먹는 나무 심을 땅 찾기 공모’에는 수많은 시민 여러분들이 참여해 주셨다. 이런 때에는 ‘네 땅 내 땅’이 없는 것이다. 얼마 되지 않는 작은 보상을 내걸었다지만, 정말 많은 분들이 참여해 주셨다. 이렇게 했어도 아쉽지만 907만평 까지는 찾아내지 못했다. 땅은 많이 찾지 못했지만, 그래도 시민 여러분들의 희망은 찾아내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할 일은 명확해졌다. 나무는 대기오염 물질을 흡착하는 능력이 좋아야 한다는 전통적 기준도, 가뭄이나 조명공해나 병해충을 잘 견뎌야 한다는 생태적 측면도, 경관적으로 우수하고 이식이나 유지관리가 용이해야 한다는 경제적 논리도, 이제는 나무심기를 방해하지 못한다. 나무 한 그루를 베어내는 것에 일종의 죄의식을 느꼈던 시절은 지났지만, 이제는 벨 때 베더라도 또다시 나무를 심어야 한다는 절박한 목적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작년 이맘때보다도 봄철이 빨리 찾아오고 또 겨울이 짧고 따뜻했다는 사실은, 이제 과학자들이 경고로만 끝냈던 기후변화의 모습이 바로 코앞에 들이닥쳐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예전에는 공해로 쳐주지도 않았던 미세먼지가, 이제는 기후변화 때문에 일그러진 시베리아 기압골 영향설(影響設)에까지 결합되면서 우리를 옭죄고 있다. 요즘 어린이들은 봄이 이 시기에 찾아오는 것이 이렇게나 빨리 오는 것이라는 사실 자체를 점점 모르게 될 것이다. 그냥 오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엄습(掩襲)’이라고 해야 될까?

함께 나무를 심고 가꾸는 일이, 경제논리나 정치역학에서 바라보는 속된 관점이 아니라, 이제는 다함께 살아남으려는 진정한 생존의 시도라는 것은 분명해지고 있다. 예년보다 일찍 찾아온 식목(植木)의 시기에, 작년에 심은 나무 한 그루가 혹시나 유명(幽明)을 달리할까봐 옅은 한숨을 내쉬기보다는, 이제는 3000만 그루로 시민과 함께 희망을 찾을 수 있다는 용기를 얻어야 한다. 숨은 잠깐 참을 수 있지만, 오래 참을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문길동 객원 논설위원
문길동 객원 논설위원 mgd273@seoul.go.kr 문길동 객원 논설위원의 다른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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