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문형의 식물노마드] 국화를 기다리며
[최문형의 식물노마드] 국화를 기다리며
  • 최문형 성균관대 유학대학 겸임교수
  • 승인 2020.09.16
  • 호수 6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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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문형 성균관대 유학대학 겸임교수

[Landscape Times]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중략)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는 우리에게 친숙한 작품이다. 현대 시인의 관점에서 국화를 노래했다. 국화는 조금만 있으면 어디에나 피어나 우리를 흐뭇하게 반겨줄 것이다.

선선해진 날씨는 가을을 재촉하고 나의 눈앞에는 지난 늦가을 헤어진 노란 소국이 아른거린다. 서정주는 국화가 중년의 여인을 떠올린다고 했지만 나는 젊은 시절부터 국화를 좋아했다. 누군가 가장 좋아하는 꽃이 무어냐고 물으면 주저 없이 가을에 피는 작고 노란 국화라고 대답해 왔다. 커다란 송이를 지닌 노란 국화도 있지만 큰 국화는 어쩐지 감당하기 힘들어 보여서이다. 우아하고 고결한 강한 분위기에 압도되어 성큼 다가가기 힘들다.

하지만 소국은 귀엽다. 노란국화의 고귀함과 작은 송이가 주는 앙증맞음이 조화롭다. 그래서 소국과는 부담 없이 사귈 수 있을 것 같다. 국화의 향은 또 어떤가? 진한 매력은 없지만 머릿 속까지 상쾌하게 하는 그윽함이 오히려 더 아찔하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국침(국화꽃베개)을 만들어 사용했다. 국침은 불면증과 두통에 효과가 좋다고 한다. 개화기간이 긴 국화가 불로장수를 상징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국화가 피기까지 지나온 세월을 시인은 봄과 여름의 소쩍새와 천둥소리로 엮어냈다. 뭇 꽃들이 지고 난 계절의 끝에 서리와 추위 속에 피는 꽃을 시인은 찬양했다. 옛 중국과 조선에서도 국화는 관심과 칭송의 대상이었다. 조선 시대 선비의 대명사인 퇴계 선생은 틈만 나면 관직에서 은퇴했다. 고향인 안동 도산에 돌아와 퇴계(退溪)라고 스스로를 칭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여러 왕들이 선생의 학문과 식견을 구했고 나라를 위해 인생의 봄 여름을 지냈지만 선생의 꿈은 한가지였는데, 자연 속에서 즐기며 제자와 후학들과 공부하는 것이었다.

‘은퇴의 대가’ 퇴계 선생이 가장 사랑하고 즐긴 꽃이 바로 국화이다. 인생의 가을로 접어든 선생은 15년 연하의 후학을 존경하고 좋아했다. 임형수라는 후학인데 그는 퇴계 선생에게 제자의 예를 갖추었다. 임형수에게 보낸 시를 보면 ‘은일(隱逸)군자’인 국화에 자신의 마음을 빗댄 것을 볼 수 있다. “붉은 화장이 어찌 가을국화를 비출까!”라는 구절은 봄날에 붉게 피어난 꽃들이 국화를 따를 수 없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옛 선비들은 시류에 따르지 않았고 권력자 왕이라도 바른 길을 가지 않으면 저항했다.

추위와 서리 속에 피는 국화는 선비의 상징이다.
추위와 서리 속에 피는 국화는 선비의 상징이다

나라의 부름을 받아 요직을 거친 퇴계선생은 친구에게 보내는 서한에서 조정의 현실을 통탄했다. 마치 ‘낚시에 걸린 고기처럼’ 처량한 신세가 되고야 마는 조정 속 선비의 아픔을 토로했다. 강직하면 목숨을 보존하지 못하는 현실을 증명하듯 퇴계 선생이 아끼던 임형수는 33세의 나이에 사화로 요절한다. ‘붉은 화장’은 봄 여름에 피어나는 꽃, 여럿이 왁자지껄하면서 현실을 사는 정치인들로 해석할 수 있다. 고고하게 가을에 피어나는 국화처럼 올곧은 선비들이 많기를 바란 퇴계 선생은 그 자신이 ‘가을 국화’였다. 그래서일까? 국화를 의인화한 시도 지었다.

국답(菊答), 즉 ‘국화가 답하다’라는 시이다. 학자이자 시인인 선생의 상상력이 돋보인다. ”누런 빛깔은 하늘이 준 것이니 변할 수 없고 초췌해도 비와 이슬 먹고 자라나니 “붉은 화장이 아니어도, 모습이 초췌해도, 따뜻한 햇볕이 없어도, 바람과 서리 속에서 꿋꿋하게 살아간다는 국화의 답변이다. 국화는 은퇴한 퇴계 선생 자신이다. 가을로 접어들어 완숙한 학문과 인생을 갈무리하는 선생은 놀랍게도 인생의 봄여름을 지내는 후학들과 흥겹게 교유하였다.

거의 40세 나이 차이가 나는, 당시로서는 손자뻘인 제자들과 주고받은 시를 보면 선생이 얼마나 소탈하고 푸근한 분이었나를 알 수 있다. 서쪽 산기슭에 국화나들이를 가자는 젊은 제자들의 제안에 즐거이 길을 나선 퇴계선생은, 이제는 늙어 총기가 떨어져 분위기를 깰 수도 있겠지만 국화를 즐기다가 술 취해 쓰러지면 어떠냐는 시를 읊는다. 가을국화 같은 선생의 알싸한 향기가 느껴진다.

그 향기가 젊은 제자들과의 허물없는 만남을 가능하게 했을 것이다. 강희안은 ‘양화소록’에서 국화의 원산지가 중국이라고 했는데 우리나라도 삼국시대나 그 이전에도 우리나라에 국화가 있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우리 땅에 자생한 국화가 중국으로부터 온 국화와 함께 재배되었을 것이다. 국화는 일본에도 건너가 일본 황실의 문장(紋章)에 들어가 있다. 국화는 매화, 난초, 대나무와 더불어 동양의 사군자(四君子)로 명성을 떨치는 꽃이다.

늦가을에 오롯이 피는 국화는 세상의 번잡함과 영화를 떠나 기품 있게 살아가는 의인(義人)을 상징한다. 퇴계선생은 국화와 대화를 나눌 정도로 국화를 사랑했다. 가을국화 같은 노년에 봄꽃, 여름꽃 같은 제자들과 세대를 뛰어넘는 교제를 나누며 그윽한 향을 발했다. 조금 있으면 국화의 계절이다. 이번 가을에는 국화향에 취해 퇴계선생과 노닐고 싶다.

최문형 성균관대 유학대학 겸임교수
최문형 성균관대 유학대학 겸임교수 askmun@naver.com 최문형 성균관대 유학대학 겸임교수의 다른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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