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문형의 식물노마드] 물과 비의 꽃, 수국의 계절
[최문형의 식물노마드] 물과 비의 꽃, 수국의 계절
  • 최문형 성균관대 유학대학 겸임교수
  • 승인 2020.08.12
  • 호수 59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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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문형 교수
최문형 교수

내리꽂히는 비에 땅과 하늘이 하나가 된 듯하다. 무슨 사연일까? 그들이 원하는 게 무엇일까? 하늘을 끌어다 땅에 붙여 중국 신화의 거인 반고가 했던 일을 되돌리고 싶은 것일까? 가장 깊고 순수하면서 혼탁한 존재, 모든 것을 시작하게 하고 다시 끝내는 존재, 물의 주간, 장마의 기간이다. 우리는 물을 통해 계절을 안다. 비가 그렇다. 생명의 시작을 알리는 비, 땅 속 열기를 식히는 비, 때에 따라 만나는 물들의 빛깔도 향기도 다 다르다. 시간의 간격을 메꾸는 빗소리의 기억이 있고 동일한 공간을 다르게 채색하는 빗물의 역할이 있다.

올해 여름은 큰 비가 온다. 길고 많은 물이다. 예로부터 물은 생명의 근원으로 여겨왔다. 철학자 탈레스도 물을 모든 것의 원리로 보았다. 신화의 세계를 보면 우주가 생성될 때 뿐 아니라, 인류가 탄생되는 지점에도 물과 피가 필수적이었다. 물은 끊임없이 흐른다. 생명은 변화이고 움직임을 의미한다. 노자가 좋아한 물은 정형화되거나 고착하지 않는 속성이었다. 그래서 물은 지혜의 원천이기도 했다. 자신 안에 세상 만사만물을 녹여내니 물을 당할 존재가 없을 것이다.

물은 자유롭다. 어디에서든 어떤 모습으로든 가능하다. 이름도 다양하다. 담기는 곳에 따라 연못, 샘, 바다, 강, 등등 수많은 이름을 가질 수 있다. 물은 홍수가 될 수도 있고 정화 제의에 쓰이는 물이 될 수도 있고 치유와 회복에 쓰일 수도 있다. 갈래머리 여학생 시절, 비오는 날은 마냥 걷는 날이었다. 우산은 손목에 걸쳐두고 내리는 비를 마중했다. 도시소녀였던 내가 가장 손쉽게 자연과 하나 되는 날이었다. 땅 속과 땅위 여행을 마친 물들이 다시 하늘로 올랐다 내려오는 그 순환의 의식 속에 자신을 끼워 넣고 싶었는지 모른다.

식물들도 그렇다. 씨앗들의 여행수단 중 가장 강력한 것은 물이다. 식물은 움직일 수 없는 천추의 한(恨)을 물 위에 띄워 시내에서 강으로 강에서 바다로 내어 보낸다. 생애 단 한 번의 모험이고 생명의 시작이고 끝이다. 물가에 터잡고 사는 걸 좋아하는 식물이 있다. 그 중 하나가 수국이다. 수국의 학명을 보면, ‘Hydrangea’는 그리스어로 ‘물’이고 ‘Macrophylla’는 ‘아주 작다’는 뜻이다. 물을 좋아하는 아주 작은 꽃들의 모임이라고 할까? 한자 이름은 수구화(繡毬花)로, 비단으로 수를 놓은 둥근 꽃이란 의미이다.

 

푸른 수국의 꽃말은 거만함과 무정함이다.  ⓒpixabay
푸른 수국의 꽃말은 거만함과 무정함이다. ⓒpixabay

 

물을 좋아하는 수국은 물 기운이 왕성한 계절인 초여름에 피어난다. 우리 동네에도 곳곳에 있는데 무심히 보아 넘길 때에는 수국의 꽃빛이 각각 여러 가지인 줄 알았다. 알고 보니 다양한 빛깔은 수국의 생애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수국은 처음 필 때는 연두색으로 여리여리 하다가 날짜가 가면 화사한 흰 빛으로 변하고 그러다가 연분홍 꽃이 된다고 한다. 여기가 끝이 아니다. 조금 더 시간이 가면 물처럼 은은한 푸른빛이 되고 이어서 청색이 점점 짙어졌다가 마침내는 보라색 꽃이 된다.

그러다보니 꽃말도 다채롭다. 변덕과 진심, 냉정, 무정, 거만, 바람둥이, 변덕쟁이이다. 영원과 불변을 원하는 인간들의 잣대가 꽃말에 엉겨있다. 색깔에 따라 다른 꽃말도 있다. 흰색은 ‘변덕, 변심’, 분홍색은 ‘처녀의 꿈’, 파란색은 ‘거만, 냉정, 바람둥이, 무정’이다. 물을 좋아하는 꽃이다 보니 물을 닮아 자유롭고 지혜롭고 변화무쌍한 탓일까, 심지어는 리트머스 시험지 역할까지 감당한다. 초년은 흰색이지만 이후의 빛깔은 흙의 성분에 따라 달라진다. 수국의 안토시아닌 성분이 흙에서 흡수하는 성분과 반응하기 때문이다. 푸른 꽃은 토양이 산성, 붉은 꽃은 알칼리성임을 알려 준다.

그리스의 아켈레오스(Achelaoos)강은 신화에서 인격화되어 미녀 데이라네이라(Deiraneira)를 두고 헤라클레스와 결투를 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동물로 변신한다. 강의 신 아켈레오스는 자유자재로 뱀과 황소로 변하는데, 헤라클레스는 황소가 가진 두 개의 뿔 중 하나를 뽑고 승리한다. 강의 신의 변신능력은 물이 지닌 자유로움과 지혜를 상징한다. 강의 신의 구애는 강이 굽이쳐 흘러 처녀가 사는 땅의 한 자락을 덮어버렸다는 것을 상징한다. 뱀으로 변한 것은 뱀이 기어가듯 구불구불 흐른다는 것이고 황소는 큰 소리를 내며 거침없이 흐르는 강을 의미한다. 문화영웅 헤라클레스는 사랑을 좇아 범람하는 강을 제압했고 그 결과 땅은 적당한 물기를 머금고 비옥해질 수 있었다.

다양한 꽃말을 자랑하는 수국의 계절이다. 비와 물의 기간이기도 하다. 자유에는 자유로, 지혜에는 지혜로, 변신에는 변신으로, 순환에는 순환, 생명에는 생명으로, 자연과 맞장을 뜨자. 수국의 빛깔을 변덕스럽다 흉보지 말고 그냥 즐기면 될 터이다.

[한국조경신문]

 

최문형 성균관대 유학대학 겸임교수
최문형 성균관대 유학대학 겸임교수 askmun@naver.com 최문형 성균관대 유학대학 겸임교수의 다른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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