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문형의 식물노마드] 무릉도원의 주인
[최문형의 식물노마드] 무릉도원의 주인
  • 최문형 성균관대 유학대학 겸임교수
  • 승인 2020.09.02
  • 호수 6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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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문형 성균관대 유학대학 겸임교수

향긋하고 달콤한 복숭아의 계절이다. 황도와 백도의 시절은 그리 길지 않다. 잘 익었는가 하면 금방 물러버리고 맛이 빠지는 복숭아의 타이밍을 잡으려고 해마다 이맘때면 서둘러 과일가게로 간다.

서양에서 사과가 환영받았다면 동양에서 복숭아는 지존의 지위를 누렸다. 복숭아는 최고의 꿈과 이상을 상징했다. 서양인들이 돌아가야 할 낙원을 사과의 정원으로 느꼈다면 동양인들은 복숭아의 숲으로 그렸다.

어딘가에 있을 듯 하지만 쉽사리 갈 수 없는 그곳! 그래서 늘 가슴 졸이며 찾아 헤매는 곳, 하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곳! 이 곳이 바로 무릉도원이었다. 무릉도원은 중국의 시인 도연명의 ‘도화원기’에 묘사되었다. 진나라 시대에 후난성 무릉에 사는 어부가 배를 타고 가다가 복사꽃이 만발한 도원을 발견했다는 이야기다. 동굴을 지나 펼쳐진 마을에는 500년 전 진(秦)나라 시절 피난 온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평화로운 이 마을 사람들은 바깥세상에서 온 어부를 후대하며 많은 이야기를 청해 들었다. 그들은 500년 동안 세상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는 전혀 알지 못했지만 누구보다 풍요롭고 행복했다. 어부는 이후 다시 그곳에 가고 싶었지만, 도원을 찾지 못했다고 한다.

복숭아 픽사베이
복숭아 ⓒ픽사베이

복숭아는 복사나무의 열매인데 복사나무는 벚나무 속(屬)에 속하는 식물이다. 시트론, 석류열매와 함께 북숭아는 지복(至福)의 세 가지 과실 중의 하나로 손꼽혔다. 열매인 복숭아는 예로부터 장생불사의 과실로 여겼다. 도교에서 복숭아 나무는 곤륜산의 낙원에 있는 생명의 나무로 신선들이 즐겨 먹었다고 전해진다.

복숭아는 곤륜산의 신선인 서왕모의 표장이다. 서왕모가 3000년에 한 번 맺는 천도복숭아를 가져다가 한무제와 함께 먹었다는 전설이 있다. 한무제는 중국의 위대한 황제 중 한 사람이다. ‘서유기’에는 서왕모의 복숭아를 훔쳐 먹고 불사의 존재가 된 영리한 황금원숭이 손오공이 등장한다. 그렇게 복숭아는 건강과 젊음을 상징한다. 중국 역사의 위대한 인물들이 나라사랑을 결의한 곳도 하필 복숭아나무 아래였다.

후한 말 황건적으로 인해 의병을 모집하던 때에 유비, 관우, 장비가 장비의 집 뒤뜰(유비의 집이라는 설도 있음)에서 만나 의형제를 맺은 일(도원결의)에 주목하자. 유비는 서왕모와 복숭아를 나누어 먹은 한무제를 본받으려 노력한 인물이기도 하다. 복숭아 숲에 세 사람이 모여 의로움을 위해 뭉친 이 일로 인해, 이후 ‘도원결의’는 공익을 위해 사람들이 뜻을 모아 합심하는 일의 대명사가 되었다. 세 사람은 무엇을 결의했을까?

나라와 백성을 구하기 위해 의형제를 맺은 세 사람이 동고동락할 뿐 아니라 생사를 같이한다는 내용을 두고 학자들은 나관중의 ‘삼국지연의’에 나온 도원결의가 사실이 아니고 나관중이 꾸며낸 이야기라고 한다. 하지만 정말로 궁금한 것은 왜 그들이 하필 복숭아 나무 아래에서 의형제를 맺었다고 했는가 하는 점이다. ‘삼국지연의’는 원말 명초에 나온 책이니, 삼국의 시대로부터 무려 1000년이 흐른 이후이다. 그러니까 그 안에는 긴 세월 동안 사람들의 애환과 전설 등 수많은 이야기가 녹아 있다.

복숭아꽃 ⓒ픽사베이
복숭아꽃 ⓒ픽사베이

복숭아 나무는 예로부터 중국과 동양에서 꿈의 이상향을 상징하는 존재였으니 나관중의 작가적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만물이 기지개를 켜는 봄을 배경으로 하여 연분홍 복사꽃이 화사하게 피어난 장면을 상상해 보라! 그 곳에서 어떤 결의를 하였든지 어떤 맹세를 하였든지 간에 그 끝은 아름답고 풍성하게 마무리 되지 않았을까? 탐스러운 복숭아 열매처럼 그들의 염원은 자라나고 익어갔을 터이다. 나라를 구하려는 그들의 의기에 식물이 함께하지 않았다면, 복숭아 나무가 함께 하지 않았다면 얼마나 초라하고 건조한 장면이 연출되었을까!

‘삼국지연의’의 작가는 그렇게 복숭아처럼 익어갈 그들의 꿈과 이상을 박아 놓았다. 세 사람의 결의는 ‘적벽가’ 앞부분에 배치되어 있다. 일부를 옮기면 다음과 같다. “도원이 어데인고 한날 탁현이라 누상촌(樓桑村) 봄이 들어 붉은 안개 빚어나고 반도하(蟠桃河) 흐르난 물 아침 노을에 물들었다. 제단(祭壇)을 살펴보니 금(禁)줄을 둘러치고 오우백마(烏牛白馬)로 제 지내며 세 사람이 손을 잡고 의맹(義盟)을 정하는디 유현덕으로 장형 삼고 관운장(關雲長)은 중형이요 장익덕(張翼德) 아우되여 몸은 비록 삼인이나 마음과 정신은 한 몸이라 유관장(劉關張) 의형제는 같은 연월 한 날 한 시에 죽기로써 맹약(盟約)허고 피 끓는 구국충심 도원결의(桃園結義) 이루었구나.”

의형제의 맹약이 저절로 완성될 수 없듯이 복사꽃이 복숭아가 되기까지 거쳐야 할 날들과 일들과 힘들은 다 헤아릴 수 없다. 하지만 열매에 실패할까 보아 피지 못하는 소심한 꽃은 없다. 달고 맛있는 복숭아 열매는 금방 시들 수 있지만 그 안의 단단한 씨앗은 후대를 기약하기 때문이다. 복숭아 씨앗 ‘도인(桃仁)’은 한약재로도 쓰이는 귀한 물건이다. 그 씨앗을 두고두고 전하기 위해 세 사람은 마음을 모았다. 그들의 마음이 향한 곳은 어딘가에 반드시 존재하는 이상의 땅, 무릉도원이었다. 복숭아꽃처럼 자유와 평등이 화사하게 피어나는 곳, 복숭아 열매처럼 풍요와 행복이 그치지 않는 곳! 잘 익은 복숭아의 향과 맛에 취해 시공을 넘어 보았다.

 

최문형 성균관대 유학대학 겸임교수
최문형 성균관대 유학대학 겸임교수 askmun@naver.com 최문형 성균관대 유학대학 겸임교수의 다른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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