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문형 성균관대 유학대학 겸임교수

[Landscape Times]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는 가을에서 겨울로 가는 인생을 보여준다. 폐렴에 걸린 화가지망생 소녀가 병상에서 하나 둘 세고 있는 옆집 담쟁이덩굴 이파리는 가을을 달리고 있다. 잎들이 모두 떨어져 버릴 때 자신의 생도 겨울로 마감할 거라고 믿는 그녀는 마지막 남은 한 개의 잎에 시선을 모은다. 찬바람에 파르르 떨고 또 떨지만 가지에 끝까지 매달려 있는 잎을 매일 바라보면서 그의 절망은 희망으로 변해간다. 가을을 견디며 겨울로 소환되지 않는 잎처럼 자신의 가을 또한 확장되는 걸 느낀다. 그리고 그녀는 살아낸다.

아주 긴 가을이었지만 그의 가을은 어느덧 봄이 되었다. 낙엽이 없다면 우리는 어떤 인생을 살까? 늘 푸른 잎을 자랑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지낼까? 1980년대 한국 대중가요계에 신선한 자극을 준 산울림의 노래 중 <그대 떠나는 날에 비가 오는가> 라는 노래가 있다. 비는 눈물이고 슬픔이다. 임이 떠나는 날, 비는 내리지만 정작 주인공은 울지 않았다. 그가 삼킨 엄청난 양의 눈물이 결국에는 빗물이 되어 쏟아졌을 것이다. 노랫말 속에는 ‘그대 떠나는 날에 잎이 지는가!’ 라는 구절이 있는데, 이 구절이 훨씬 마음에 닿는다. ‘그대’라는 열매를 맺기 위해 긴 세월 애썼던 그 잎은 이제 무참히 떨어져 구른다.

마음의 나뭇가지에서 툭! 하고 떨어지는 잎은 가을낙엽을 떠올리면 되니 더 공감이 된다. 가을 낙엽이 없다면 우리는 이별을 어떻게 느낄까? 삶의 아픔을 어떻게 견디어 낼까? 우리는 그저 본성대로 살아가는 식물을 동반자로 산다. 마음의 그라데이션이 식물에 투영된다. 내가 나의 마음을 만나는 것은 쉽지 않다.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사랑의 힘이 필요하다는 이론도 있다. 사랑은 자신을 상대에게 비추어 내는 것이기도 하고 상대에게서 나의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것이기도 하므로.

사랑은 값진 만큼 지불할 비용도 많고 때로는 부도도 난다. 만개한 꽃을 사랑의 기쁨에 표현하기도 하고 만남은 꽃과 나비의 조우라고 본다. 지는 꽃 시든 꽃은 스러져가는 사랑의 아픔이다. 산울림의 노래 중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거야>는 늦여름 숲속 햇살 사이 연인의 모습을 그렸다. 늦여름의 나른한 나무들 사이로 아른거린 사랑하는 사람의 눈빛이 아름답다. 그 눈빛에 취한 주인공에게 숲은 뽀얀 우윳빛으로 변한다. 늦여름 숲은 노동의 절정이다. 열매를 완성하기 위한 식물들의 수고가 들리는 듯하다. 노래 속 연인들의 사랑도 결실이 가까울 것이다.

인생의 모퉁이를 돌 때마다 우리는 자연에, 더 정확히는 식물에 다가간다. 식물이 없다면 인생과 사랑을 어떻게 비추어 볼 수 있을까. 새싹은 어린아이고 신록은 청춘이며 열매는 노력의 산물과 자녀를 상징하고 낙엽은 노년을 말해준다.

우리 인생을 위무하는 낙엽들
Landscape, 김홍태 화백, 1981년 작

요즈음 사랑받는 ‘인생’이란 노래의 작사가이며 친숙한 수많은 대중가요에 옷을 입혀준 작사가 장경수는 가평에 둥지를 틀고 숲을 만끽하며 산다. 아침고요수목원은 그가 즐겨 찾는 산책길이다. 그 곳에 인생이 있기에 그는 그곳을 찾는다. 바람소리 물소리 속에서 숨 쉬고 잠자는 식물들이 있다. 천곡이 넘는 노랫말의 대가는 영감을 숲에서 얻는다. 그의 심상에서 단번에 내닫는 노랫말들은 나무와 식물들의 귓속말이다. 그렇게 수십 년을 채워나간 원고지와 메모지들 속에는 삶의 고뇌와 번민과 잠 못 이루는 밤과 이별과 풋사랑과 희열이 있다. 그는 식물의 결에서 인생의 무늬를 찾으며 정제된 언어를 완성한다. 그래서 소박하지만 묵중한 울림을 받는다.

<마지막 잎새>의 주인공은 잎을 희망으로 살아냈고 우리 보통사람들은 식물이 선사한 대중가요를 의지처로 살아가기도 한다. 클래식도 마찬가지다. 악성 베토벤은 평생 숲에서 영감을 얻었다. 그의 육필원고에는 나무와 숲에 대한 경이가 나있다. “시골에 있으면 마치 나무 한 그루 한 그루가 내게 말을 거는 것 같다. ‘신성하다! 신성하다!’라고.” 그는 나무와 풀과 이끼와 씨앗과 꽃과 잎들이 엉기고 구르고 피어나고 지고 떨어지면서 제 할 일을 다 하는 치열함을 보았다. 그들의 치열함은 자연이고 감동이다. 예상치 못한 수술을 받고 몸과 마음이 힘들었던 시절, 식물의 삶을 곱씹었다.

식물로 치면 둥치에 쿵하고 충격을 받았거나 상한 가지와 낙엽을 떨군 셈이었다. 식물적 사고가 아니라면 식물과 함께 하지 못하면 어디에서 위안을 받고 다시 일어설 것인가. 나의 주변에는 늘 함께 해주는 나무 같은 분들이 있다. 그 숲에서 나는 연약한 나무다. 건장하고 싱그런 그분들이 위안과 용기를 준다. 함께 가자고, 힘들지 않다고 속삭여준다. 그렇게 우리숲은 뚫리지 않는다. 우리는 식물로 인생을 산다. 그들의 열매는 우리의 주린 배를 채워주고 그들의 삶은 우리의 마음과 정신을 풍성하게 한다. 행복하면 행복한 대로 불행하고 힘들면 그것 그대로.

식물의 계절이다. 그들이 없다면 누구도 가을을 알 수 없다. 누른 들판도 앙상한 가지도 익어가는 열매도 부끄러운 단풍도 노마드 낙엽도 모두가 가을의 주역이다. 아니, 삶의 주인공이다. 식물과 함께라면 전문가의 도움이나 사랑하는 사람 없이도 우리 모습을 볼 수 있다. 식물들은 우리 마음의 거울이다. 익어가는 ‘잎새’ 속에서 나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저작권자 © Landscape Time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